Top Coder RAW novel - Chapter (300)
탑 코더-300화(300/303)
300화 가족과 함께
코스피가 4천을 터치하며 사상 초유의 산타 랠리를 이어가던 12월.
대선에서 박신우는 압도적인 표 차로 승리를 거두었다.
지지율 72%.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시내소프트 발굴이었다. 그 타이틀 하나로 그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제1 공약은 새로운 스타트 업 발굴.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시내소프트에서도 총 200조원 규모의 스타트업 투자 펀드 조성을 발표했다.
세계 최고의 펀드 조성액을 가지고 있는 나정의의 미래 펀드가 100조원 규모다.
승호가 발표한 200조는 그 두 배.
펀드의 이름은 AI였다. 펀드의 투자 대상 설정이 AI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에 발 맞추어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4100.
2008년 금융위기로 900까지 떨어졌던 코스피가 4배가 넘게 올라간 것이다. 주가지수가 높다는 것은 경제가 활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 뜻이 사실이라는 듯이 올해 경제성장률 역시 전년 대비 +12% 예측이 나왔다. 전 세계에서 10%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한국은 마치 전 세계의 돈을 모조리 빨아들이겠다는 기세로 발전했다. 그리고 결국 달성했다.
인당 명목 GDP 5만 오천 달러.
곧 6만 달러를 점치는 사람도 있었다. 시중에 유동성은 넘쳐났고,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가격은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그렇다고 양극화가 심화 된 건 아니었다.
박신우는 부정부패 엄단이라는 기치 아래 공직 사회의 투명성을 강도 높게 조정했다. 정부 기구 서로 간의 견제 장치를 만들고, 실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시행했다. 그게 가능한 건 AI 정부 때문이었다.
-적정.
-유의.
-경고.
-퇴출.
AI 정부는 공직자들의 활동에 대해 4가지 등급으로 알람 표시를 해주었다. 만약 적정 이하 등급을 받는다면 자체 감사에 들어갔고, 그렇게 하면 90% 이상의 확률로 부정부패가 발견되었다. 이러니 부정을 저지르고 싶어도 저지를 수가 없어진 것이다. 국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쟁만을 일삼거나, 입법 활동은 하지 않은 채 놀고먹으면 바로 AI 국회 시스템에 의해 평가가 매겨졌다.
-적정.
-유의.
-경고.
-퇴출.
만약 적정 아래 등급을 받으면 언론에 의해 기사화되고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그렇게 윗물이 맑아지자 아랫물은 자연스럽게 맑아졌다. 공정과 투명의 가치가 시민들의 의식 속에 뿌리를 내렸고, 정부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그건 곧 세금 사용에 대한 신뢰를 가져왔다.
자신들이 낸 세금이 올바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극빈층 복지에 대한 여론이 한층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국가 전체가 부강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 원 있을 때 천원을 도와주는 것보다 10만 원 있을 때 천원을 도와주는 건 훨씬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양극화가 사라지며 한국은 점점 살기 좋은 나라로 변해갔다.
그 중심에 승호가 있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강승호 평전.
이라는 책에서부터
-시내소프트의 역사.
TV에서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ONE.
이라는 이름을 단 영화까지 개봉했다. 시민들의 엄청난 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책은 백만 부 이상이 팔렸고, 다큐멘터리를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ONE이라는 영화는 천만 관객을 기록했다. 영화를 본 승호의 첫 소감은 민망함이었다. 함께 앉아 있던 신지은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오빠 정말 저랬어?”
“비슷하기는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지.”
영화에 나온 주인공은 문제의 순간마다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휘어잡으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얼굴에서부터 말투 행동까지 좀 많이 다르긴 했다.
“영화 보면 오빠가 무슨 세계를 구한 영웅이네.”
ONE은 할리우드에서 만든 히어로 물 영화를 연상케 했다. 그만큼 자극적이고, 극적인 장면이 많아 인기는 많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뭐랄까. 민망함의 연속이라고 해야 할까.
“하··· 하하.”
승호가 쑥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신지은이 남산처럼 부른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우리 다정이도 재밌나 봐. 막 발로 차네.”
다정이는 배 속에 있는 아기의 태명. 다정한 아이로 자라라는 뜻에서 지었다. 승호가 조심스럽게 신지은의 배에 손을 얹었다.
툭.
툭.
정말 뭔가가 배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정이도 재밌어?”
대답은 신지은이 대신했다.
“네. 아빠. 재밌어요.”
“얼마만큼?”
“하늘만큼 땅 만큼이요.”
승호가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나오면 더 재밌게 해줄게.”
“정말요?”
“그럼. 아빠랑 놀러 아주 많이 다니자.”
그 말에 신지은이 살짝 삐친 투로 답했다.
“아빠는 맨날 일하느라 바쁘잖아요.”
“하하, 회사 분할 정리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어서 괜찮을 거야.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하자.”
“헤헤. 나도 좋아요. 다정이도 아빠랑 놀고 싶어요.”
“그래, 그렇게 하자.”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둘은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객석 곳곳에 앉아 있던 경호원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전을 보냈다.
“VIP 나가십니다.”
영화관 바깥이 한층 번잡스러워졌다.
***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회사를 물적분할 하고, 자신은 이제 경영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인공지능 연구 개발과 강단에서 후학 양성. 그리고 각종 스타트 업 투자에 시간을 쏟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바쁜 시간이었다. 승호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를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이게 전부 투자를 받고 싶다고 제안서를 보낸 기업이란 말입니까?”
비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회사 전략팀에서 추리고 추린 곳입니다.”
“엄청나군요······.”
거의 20개가 넘는 기업 IR 자료가 쌓여 있었다. 한 회사당 20페이지가 넘는 분량. 오늘 하루에 다 읽기 벅찬 내용이었다.
“기준을 정해주시면 좀 더 추릴 수 있습니다.”
“일단 감을 잡아야 하니 놔두세요.”
“네. 그리고 새롭게 중국 주석이 된 류스페이님이 한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 딱히 제가 할 이야기는 없는데··· 필요하면 각 회사에서 처리하면 될 일을.”
“아직 대표님의 영향력이 전사에 미치고 있으니까요.”
“좀 더 권한이 위임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겠군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다정이와 보낼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 승호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었다.
“약속은 어떻게 할까요.”
“이번은 만나도록 하죠. 가서 잘 이야기해서 다음부터는 각 계열사 사장단이 별도로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하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코엑스에서 ‘탑 코더’ 대회가 있습니다.”
“그게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하하, 네. 말씀하신 대로 총상금 20억. 본선 진출자 전원 경비 지원으로 하니 세계 수많은 프로그래머가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관련해서 대표님이 오프닝 행사 말씀을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 첫 회는 제가 직접 하지만 다음 차수부터는 사장단 분 중 한 분으로 알아보세요.”
어째 일정을 줄이고자 하는데 일이 더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끝입니까?”
비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직 보고드릴 사항이 7가지 있습니다.”
승호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세상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
청담 근처 건물 시내소프트 스마트 시티 본사.
집무실에 앉아 있던 고동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어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고동수의 아버지 고동만이었다.
“그래.”
고동만의 얼굴도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아들을 자랑스러워서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 앉으세요.”
말을 마친 고동수가 인터폰을 누르며 말했다.
“여기, 차 두 잔이요.”
그 모습을 고동만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하, 네가 여기 사장이라니. 믿기지 않는구나. 이 아비는 항상 남 밑에 있었는데. 넌 사장이라니. 그것도 겨우 20대에.”
“운이 좋았어요. 승호 형. 아니 대표님이 잘 봐주신 덕분이기도 하고요.”
“강 대표가 물론 정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능력 없는 사람을 중용하는 이는 아니다. 네가 능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지.”
고동만의 칭찬에 고동수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하하, 네 뭐.”
“그래, 일할 만하고? 사장 자리가 절대 쉽지는 않을 텐데.”
“천천히 적응해 가고 있어요. 야간에는 카이스트 MBA 과정도 밟고 있고요.”
“열심히 해야 해. 네 어깨 위에 수만 명의 밥그릇이 달려있다.” “저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때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대표님, 차 준비됐습니다.”
“네.”
문이 열리고 비서가 차를 준비시켰다. 고동만이 그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향이 좋구나.”
“제주산 녹차에요. 강 대표님이 추천해 주신.”
“하하, 그래. 이왕이면 국산 차를 먹어야지.”
“네.”
“앞으로 회사 운영은 어찌할 셈이냐?”
“하하, 오자마자 일 이야기인 겁니까?”
“네 아비이기도 하지만 나도 선진전자에서 수많은 사람의 밥줄을 쥐고 있다. 최선을 다해야지.”
고동수가 이번에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알겠습니다. 큰 그림부터 말씀드리면 올해 발주액은 전년 대비 20% 정도 플러스 될 것 같습니다. 워낙 전 세계에서 요청이 오고 있어서 오히려 저희가 커트하는 실정이에요.”
“역시 그렇구나. 스마트 시티 사업이 엄청난 호황이라더니. 사실이었어.”
“선진전자나 건설은 내년에도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고동만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동수가 장성해 자신을 뛰어넘자 기쁘면서도, 이제 자신이 늙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 고맙구나.”
“선진은 시내소프트의 동반자니까요.”
매년 시내소프트에서 발주되는 금액이 조 단위를 넘어간다. 과거 선진전자의 최대 고객이 망고사 였다면 이제 시내소프트로 바뀐 것이다. 선진 건설은 매출의 80% 이상이 시내소프트에서 나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고동수의 설명은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고동만은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는 의견을 내며 아들의 말을 경청했다. 가끔 공급 단가 이야기가 나올 때는 날 선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을 때 고동만의 표정에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남아있었다. 이야기를 마친 고동만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이제 정말 사장이 다 됐어.”
고동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민망스러워했다. 부자 사이에 훈풍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