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42)
탑 코더-42화(42/303)
# 42
높아진 위상
────────────────허춘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다른 교수들이 질문할 틈을 주지 않았다.
“보안 특화 분석 서비스라고 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특화되어 있다는 말씀이신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방화벽을 통해 들어오는 패킷들을 헤더만이 아니라 body에 담긴 내용까지 분석한다는 의미입니다.”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까?”
“대부분의 보안 솔루션은 흔히 http나 socket으로 대변되는 tcp/ip 통신에서 헤더 부분을 체크해 해당 패킷의 정상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데이터 부분 까지 검증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허춘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승호가 말을 이었다.
“저희는 SDN을 구성해 네트워크 전송 속도를 높였습니다. 그걸 통해 body를 검증할 시간을 벌 수 있었고요.”
“body에 들어 있는 데이터의 정상 유무 판단 여부는 요?”
“일종의 룰을 설정하는 방법. 분석을 통해 비정상 패킷을 필터링 하는 방법 두 가지가 사용됩니다.”
“룰 설정은 더 들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분석은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하십니까?”
승호는 리모컨을 눌러 ppt를 넘겼다.
Advanced Levenstein’s Algorithm.
화면에 나타난 글자.
그 밑에는 대략 적인 수식이 쓰여 있었다.
lev(i, j) = max(i, j) if min(i, j) =0.
lev(i-1, j)+1 = min(j, I) if max(j, 9) =1······.
생략.
복잡한 수식이 심사위원들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대학 교수들은 수식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승호가 수식 부분을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키며 말했다.
“생략된 부분은 자사의 핵심 기술이라 공개가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허춘수는 멈추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저건 두 변수간의 유사도를 수치화 하는 알고리즘인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 적용 되었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쏟아지는 허춘수의 질문에 20여장 준비한 ppt는 겨우 5장 밖에 넘어가지 못했다.
자세히.
더 자세히.
허춘수는 승호가 개발한 내용을 송곳처럼 찔렀다. 그럴 때 마다 승호는 적절한 대답을 내놓았다. 다른 교수들은 질문 하나 하지 못했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만 30분.
배정된 발표시간 40분 중 대부분을 사용해 버렸다.
함께 있던 박신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교수님. 아직 발표도 끝나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허춘수가 고개를 저었다.
“더 들어 볼 필요 없습니다.”
“네?”
“지금까지 들었잖아요.”
박신우는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신지······.”
“지금까지 발표자와 주고받은 질답. 그 정도면 결과는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뒤에 남아 있는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없어요.”
박신우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합격.
불합격.
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표정을 읽은 허춘수가 말을 이었다.
“시내 소프트. 무조건 뽑아야 합니다.”
“아······.”
허춘수.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직 까지 제안 받았으나 모교인 대한 대학교로 돌아온 수재.
박신우는 이번 심사위원으로 그를 섭외 하는데 대단히 공을 들였다. 그랬기에 그의 말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기업에 지원하려고 이 사업에 심사위원 하겠다고 한 겁니다. 기술은 있는데 자본이 부족해서 곤란을 겪고 있는 기업. 사람들을 홀리는 혀를 가진 기업이 아니라 탄탄한 기술을 갖추고 있는 그런 기업.”
허춘수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저 발표자의 기술은 진짜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잠시 휴식시간 좀 가집시다. 저 사람이랑 이야기 좀 해봐야 할 것 같으니까.”
“잠시 만요. 아직 다른 참가자들이 남아서.”
그러나 허춘수는 막무가내였다.
“그러면 먼저 진행하고 계세요.”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사이 10분이 흘러가 버렸다. 발표 시간이 끝난 승호가 단상에서 내려갔다.
“잠시만요!”
허춘수가 벌떡 일어나 승호를 쫓아갔다.
***
허춘수가 숨을 헐떡거리며 승호를 붙잡았다.
“헉··· 헉······. 잠시 만요!”
한 회사에 총 50억이라는 지원금이 지급되는 사업의 심사위원.
승호도 허투루 대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린 승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심사위원님.”
“헉헉······. 나이가 드니 잠깐 뛰는 것도 힘드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른 허춘수가 승호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제로원··· 제로원. 내가 어디서 많이 들어 봤다 생각했는데.”
승호가 묵묵히 허춘수를 바라보았다.
“NAX 프로젝트에 코드 커밋한 것 말고, 얼마 전에 대학원생에게 들었던 이야기.”
순간 승호는 허춘수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직감했다.
“더 게이트 우승팀 제로원. 팀장 강승호.”
마치 당신이지 하는 표정이었다.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감탄하던 허춘수가 황급히 손을 내밀었다.
“이런 아직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눴군요. 허춘수입니다.”
승호가 허춘수의 손을 맞잡았다.
“강승호입니다.”
“더 게이트에서 한국 팀이 최초로 우승했다고 하기에 누군가 했는데 그 사람을 바로 눈앞에서 보다니. 체크포인트에도 당연히 나가실 생각이겠죠?”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는 8명이 팀이니 아마 팀원이 부족하실 수도 있습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저희 랩 실 에도 인원들이 꽤 있으니 한 번 고려 부탁드립니다.”
“하하, 네.”
“아, 제가 이런 말 하려고 온 건 아니고. 다름이 아니고 혹시 저희 학교에 와서 특강 한 번 부탁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릎 쓰고 쫓아 왔습니다. 우리 애들이 랩 실에 만 박혀 있다 보니 우물 안 개구리가 되가는 것 같아서요.”
심사워원의 부탁.
승호는 거절하기 힘들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아! 그걸 말씀 안 드렸군요. 대한 대학교입니다.”
“아··· 대한 대학교요?”
대한 대학교.
관악산 아래에 위치한 명실상부 국내 최고 대학.
그 대학의 교수가 자신에게 특강을 부탁하다니······.
허춘수가 명함을 꺼내 승호에게 건넸다.
“일정 확인하시고 연락 주시면 됩니다. 물론 만족스럽지는 못하겠지만 소정의 강의료도 지급해 드릴 겁니다.”
승호가 건네받은 명함을 살펴보았다.
-대한 대학교.
-컴퓨터 공학부 정교수
-허 춘 수.
그곳에는 정말 국내 최고 대학인 대한 대학교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
발표자와 발표자 사이에는 10분간의 텀이 존재한다. 그 시간동안 박신우는 시내소프트가 추가로 제출한 서류를 살폈다.
“선진데이터시스템 기술 협력 MOU 체결. 선진 전자 기술 협력 MOU 체결. 개발이 끝나면 판로는 이미 뚫어 놓았네······.”
박신우가 다음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회사 재무 상황을 보면··· 그 사이에 수익이 5억?”
지원 대상 기업은 기술이라는 하나의 지표로 선정되지 않는다.
기술.
경영상황.
판로.
인력 구성.
물론 기술력이 가장 중요한 지표지만 다른 평가에서 0점을 받는다면 선정될 수 없다.
그런데 이 회사는 다른 지표에서도 월등한 점수를 보이고 있었다. 이 정도 현금 흐름이면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될 수준처럼 보였다. 박신우가 옆에서 보조를 하고 있는 주무관에게 물었다.
“주무관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뭐, 제 의견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다만 한 마디 첨언하자면 허춘수 교수님은 꽤 믿을 만하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인 주관입니까? 아니면 객관적인 평가입니까?”
“저희 부서에 출입하는 IO에게 들은 내용입니다.”
IO.
국가정보원의 요원으로 각 정부 기관을 비롯해 민간 부문 까지 국내 전 영역에 걸쳐 정보를 수집하는 요원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박신우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주무관님은 어떻게 그런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은 겁니까?”
“같은 공무원이니까요. 서로간의 애로사항을 나누다 보면 됩니다. 이를 테면 워커 홀릭 상사를 둔 애환 같은.”
박신우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주무관을 보며 말했다.
“결론은 주무관님이 보기에도 꽤 괜찮아 보인다는 말이죠?”
“내용은 너무 전문적이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눈빛은 총명하고,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으며, 태도에서는 신실함이 느껴집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다······.”
“기업은 변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투자를 할 때 사람을 봐야 하는 이유죠.”
“그런 건··· 또 어디서 아는 겁니까?”
“책. 일에만 매몰되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제 상사는 항상 책을 곁에 두는 분이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박신우가 다시 서류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는 발표자의 경력사항이 적혀 있었다.
-강승호
-대신 고등학교 졸업
-S사 해킹 방어
-S사 SDN 및 NFV 구성
-S사 앱 성능 개선 프로젝트.
-S사 생체인식 성능 개선 프로젝트.
-더 게이트 우승
고졸에 경력은 S사라 불리는 곳에서 프로젝트를 한 것 밖에 없었다.
눈에 띄는 경력은 ‘더 게이트’ 우승.
“고졸 이지만 더 게이트 우승이라······.”
박신우가 혼잣말을 중얼 거릴 때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다음 지원회사는 엔테크 정보통신입니다.”
서류를 살피던 박신우가 고개를 들었다.
***
자리로 돌아온 승호가 황호근과 함께 대강당을 벗어났다.
“뭐? 심사위원이 와서 특강을 부탁해?”
“네. 대한 대학교 교수인데 꼭 한 번 연락 달라고 합니다.”
함께 있던 최기훈이 깜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그건 합격 한 거나 마찬 가지 아냐?”
“그게 그렇게 되나요······.”
“널 인정했다는 말이잖아. 그렇지 않으면 뭐 하러 특강 까지 부탁하겠어.”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훈이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다.
“꼭 가서 특강 해줘. 혹시 알아. 거절 했다가 앙심을 품고 탈락 시킬지.”
“알겠습니다.”
셋은 대강당을 나와 정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승호가 KTX를 타기 위해 오송 역으로 가는 택시를 잡으려 할 때 잘빠진 검은색 세단이 셋 앞에 정차했다.
문이 열리고 나온 사람은 처음 보는 얼굴.
승호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 사람을 보았다.
“고 사장님이 보내셨습니다.”
놀란 승호가 되물었다.
“네?”
“고동만 사장님이 정중하게 시간을 여쭙고 만약 스케줄이 되시면 모셔오라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아까 회의 때 더 나눌 말씀이 있었는데 이번 발표 때문에 못하셨다고 하셔서요. 저희 쪽에서 급히 찾아온 거니 만약 시간이 안 되시면 댁 까지 모셔다 드리라는 말씀도 남기셨습니다.”
남자의 정중한 태도에 황호근도, 최기훈도 놀란 얼굴로 승호를 보았다. 승호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이 분들도 같이 가야하는데······.”
“물론 일행 분들도 함께 가시면 됩니다. 세 분을 태워 드릴 공간은 충분하니까요.”
정중한 남자의 태도에서는 고급스런 기품마저 느껴졌다. 조용한 가운데 최기훈이 나섰다.
“타, 타고가자. 여기까지 와서 기다리셨는데 거부하는 것도 그렇고······.”
황호근도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지 뭐. 승호야 타자.”
둘의 권유에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절도 있는 행동으로 차문을 열었고, 셋은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