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43)
탑 코더-43화(43/303)
# 43
높아진 위상
────────────────저녁 7시.
차는 먼저 가산에서 멈춰 섰다. 먼저 황호근과 최기훈을 내려주고 다시 출발해 도심 속으로 스며들었다. 승호는 뒷좌석에 앉아 새카맣게 썬팅 된 유리너머로 노을이 보였다.
‘조금은 성공 했구나.’
TV에서나 보던 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다. 차는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안락함을 자랑했다. 감상에 젖어있는 승호에게 운전기사가 말을 걸었다.
“사장님께서 차를 내 주시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것도 서울에서 세종 시까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일 겁니다. 이미 느끼셨겠지만.”
승호는 창문너머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충 얼버무렸다.
“뭐, 네.”
“만약 기존의 계약이나 선진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응하시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사장님은 공과 사가 철저한 분이니까요.”
“하하, 꽤 좋으신 분처럼 들리는 군요.”
“네. 수 년 동안 비서로 일하며 모셔왔습니다. 그 동안 후회한 적이 없으니까요.”
어차피 비서도 선진 쪽 사람.
승호는 그리 귀담아 듣지 않았다.
막히는 출퇴근 시간임에도 차는 부드럽게 강남에 도착했다. 값 비싼 차를 피하려는 운전자들 덕분인지, 비서의 능숙한 운전 실력 덕분인지.
아무래도 상관없다. 빠르게 도착 했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런데 차가 도착한 곳이 승호의 예상과 달랐다.
“여긴······.”
“회사는 딱딱할 수 있다고 이곳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승호가 차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은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런 그림이 즐비하게 걸려있었다. 종업들의 태도나 옷차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종업원이 먼저 다가와 말했다.
“강승호님, VIP 룸으로 모시겠습니다.”
어떻게 알고?
승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종업원을 따라나섰다.
도착한 곳은 새카만 문으로 닫혀 있는 룸.
그 문을 열자 고동만이 앉아 있었다.
두꺼비 상에 커다란 입이 인상적인 남자.
강인한 인상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바쁜 분을 오라 가라 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고동만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자리를 권했다.
“앉아요. 여기 고기가 꽤 먹을 만합니다.”
고동만이 탁자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자 종업원들이 고체 연료 위에 무쇠 판을 얹어서 들고 왔다. 그 위에는 알맞게 구워진 소고기들이 영롱한 빛을 띠고 있었다.
“특별히 할 말이 있 다기 보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눠 볼까 해서 자리를 마련한 거니까. 편하게 해요. 편하게.
“알겠습니다.”
확실히 고동만은 달랐다. 다른 사람들처럼 이직이나 일에 관련된 말을 일절 꺼내지 않았다.
사담이 이어졌다.
과거 무슨 일을 했었는지, 요즘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인지. 만나는 여자 친구가 있는지 까지.
신기하게 어색하거나, 말이 뚝뚝 끊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것이 선진 전자 무선 사업부를 맡고 있는 사람의 힘인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자네 같이 능력 있는 사람을 솔로로 두다니. 여자들이 사람 볼 줄을 모르는구먼.”
“하하, 일을 하다 보니 만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긴 그 점은 나도 공감하네. 일을 하다 보면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않게 되니까.”
“저도 비슷합니다. 개발에 한 번 몰입하면 다른 생각들은 전혀 나지 않아요.”
고동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차에서 들었던 비서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동네에서 만난 아저씨라 생각해도 될 정도로 소탈했다.
선진전자 무선 사업부.
웬만한 회사 규모를 찜 쪄 먹는 무선 사업부의 책임자라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더 게이트를 우승하는데 그런 집중력도 한 몫 했겠어.”
“하하, 네. 비슷합니다.”
“그 사실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랐네. 특히나 마지막 역전승이라니. 무슨 한편의 소설을 듣는 줄 알았어.”
승호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짜릿했다. 자신의 계획이 통했고, 결과물을 얻었다. 실력을 인정받았고, 상금을 받았다.
모든 것이 좋았다.
고동만이 고기를 한 점 씹으며 말을 이었다.
“특히나 내 막내아들이 그 광경을 보고 완전히 자네 팬이 되어 버렸네.”
뜻밖의 말에 승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고동수라고 주니어부 준우승 한 놈인데. 그날 자네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팬이 돼서는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면서 어찌나 성화를 부리는 지.”
“아······.”
“혹시 이 자리에 불러도 될까?”
이때만큼은 영락없는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일. 승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동수.
고동만의 셋째 아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룸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승호에게 말까지 더듬거리며 노트북과 매직펜을 내밀었다.
“여, 여기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생전 처음 하는 사인.
승호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또박 또박 정자로 적어 내려갔다. 사인을 받아 든 고동수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하하, 네.”
“그날 마지막 역전승 하시는 거 보고 울 뻔 했습니다. 5분 남기고 점수가 올라가는 데 정말······.”
승호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고동수를 보았다. 정말 두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그 다음 말은 승호를 한층 더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아이언 맨이었는데 그 날 이후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승호님으로요. 아. 승호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승호는 여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동만이 그런 고동수를 보며 말했다.
“세상에 자식만큼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없다고··· 내 마음 대로 안 되더군.”
승호는 그 말이 어떤 의미 인지 알 것 같았다. 고동수는 개의치 않고 침까지 튀겨 가며 말했다.
“이번에도 1등을 빼앗기나 생각하고 조마조마 한 심정으로 보고 있었는데 승호님께서 갑자기 엔터를 탁 시니, 점수 파바박! 승호님 등 뒤로는 환한 빛이!”
뭔가 그때 상황이 대단히 미화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고동수는 초롱초롱 한 눈망울로 승호를 보았다. 뭔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승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혹시 시내 소프트 채용 진행 하고 있나요?”
“채용이요?”
“네. 폐가 안 된다면 승호님 밑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습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저도 체크 포인트를 먼발치에서나마 구경도 하고··· 무, 물론 이건 제가 실력이 된다는 가정 하에.”
고동만이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고동수!”
“승호님도 아시다 시피 저는 아버지가 재산이 많아서 월급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100만원만 주셔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대신 승호님 밑에서요.”
고동만이 뒷목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너한테는 한 푼도 안 준다고.”
그러나 고동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엄마가 챙겨 준다고 했어.”
“끄으윽. 진짜··· 저 놈이······.”
고동만이 억눌린 신음을 토했다. 마치 한 편의 희극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게 가족의 모습인가?
승호는 약간의 부러움 마저 느껴졌다. 고동수가 그런 승호를 보며 말했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더 게이트 주니어부에서 준우승 까지 했습니다. 실력이 나쁜 편은 아니에요. 대학갈 생각도 해봤지만 이 바닥이 거기 간다고 해서 실력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진짜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고동만이 목소리를 높였다.
“너 엄마가 대학은 꼭 가라고 했지. 그거 약속하고 오늘 자리 마련 한 거야.”
그러나 고동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승호님. 저도 들었습니다. 대학도 안가시고. 이런 쾌거를 이뤄 낸 거라고. 더구나 선진데이터시스템에서 터졌던 해킹 사건도 막으셨다면서요?”
고동만이 이마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두야······.”
“그때부터 제 인생의 롤 모델은 승호님이 되었습니다. 제발 밑에서 일하게 해주십시오.”
승호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동수를 보았다.
“먼저 아버님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고동수가 탁자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이 분야를 잘하고, 또 재밌어 하는지. 난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잘 한다니까. 대학 그런데 가봤자. 실력도 없는 얘들이랑 내 수준마저 낮추기 싫다고.”
“그러면 하버드나 MIT 가면 되잖아.”
고동수는 빽 소리를 질러 버렸다.
“거기는 다른 것도 잘해야 되니까. 그렇지! 컴퓨터만 하고 싶다고!”
고동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승호는 그런 고동만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시연회장에서 그는 절대 권력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식문제로 고민하는 여느 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자신도 부모가 있었다면 저랬을까······.
알 수 없었다.
만나 본 적이 없기에.
“너 진짜 열심히 할 자신 있어?”
고동수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동만이 한 번 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다. 내 맘대로 해.”
고동수가 주먹을 꽉 쥐며 중얼 거렸다.
“나이스!”
그러고는 다시 승호를 보았다. 두 눈에는 짙은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연봉 조건은 차치 하고서라도 무작정 받아 줄 수는 없습니다. 실력도 테스트 해봐야 하고······.”
승호가 슬쩍 고동만 눈치를 살폈다. 상황을 눈치 챈 고동만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혹시나 기술유출을 의심하시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되네. 저놈이 그럴 놈도 아니고, 보안서약서, 퇴직 후 취업 제약서를 쓰면 되니까. 필요하다면 변호사 공증도 받을 수 있어.”
승호가 고동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주니어부 준우승을 했다면 실력은 보장 된 것이나 마찬 가지.
그렇지 않아도 ZONE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실력 있는 사람이 필요한 참이었다. 기술유출 염려가 없다면 뽑아도 나쁘지 않았다.
더구나 고동만의 아들이라니.
그런 사람을 밑에서 부리면.
꽤나 이점이 있지 않을까?
결심을 굳힌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간단히 테스트를 해 봐도 될까요?”
고동수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트북 좀.”
고동수가 바로 노트북을 내밀었다. 승호가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인터넷에서 레벤슈타인 알고리즘 수식을 찾으며 말했다.
“레벤슈타인 알고리즘이라는 게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진행할 프로젝트도 이 알고리즘을 개선하여 사용 할 예정입니다.”
수식을 찾은 승호가 노트북을 고동수가 있는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이 수식을 코드로 구현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고동수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무섭게 코딩에 집중해 나갔다.
***
박신우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더미를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늘도 야근 인가······.”
발표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의 평가 표. 그리고 자신이 채점한 점수. 그것들을 조합해 2차 면접 대상자를 선정해야 한다.
단일 정책에 600억이라는 예산이 책정 되었다.
한 기업에 50억이라는 거금이 지원된다.
박신우는 최선을 다해 서류를 검토해 나갔다. 그때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박신우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주무관님, 이제 가시려고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주무관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저 여기 있습니다.”
“어?”
당황한 박신우의 어깨위로 주름 진 두 손이 올라왔다.
“고생이 많다.”
익숙한 목소리.
자신의 상관인 투자과 국장님이었다.
“국장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시간은 벌써 밤 10시.
국장님이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너도 전화 받았지?”
그 한 마디에 알 수 있었다. 원래 이런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에는 수많은 똥파리 들이 꼬인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소위 ‘빽’이 없으면 사업에 선정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쏟아낸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이상 그럴 일은 없다.
“받았습니다.”
“그래, 잘 처리해 줘. 차관님한테서도 오더 내려 왔다. 알았지?”
“평가대로 할 뿐입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지. 평가대로 하면 어차피 될 테니까.”
다시 국장이 물었다.
“알았지?”
박신우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는 평가대로 합니다.”
국장이 박신우가 보고 있던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 중 미라클 데이터 관련 서류를 콕 집으며 말했다.
“평가대로 하는 거 좋지. 내 말은 그 중 점수가 높은 팀이 있을 거야. 우리가 바라는 유니콘. 그런 기적을 일으켜 줄 회사.”
박신우는 다른 서류를 보며 또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희가 정한 기준. 그 평가대로 했을 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회사들이 선정 될 겁니다.”
박신우의 시선이 닿아 서류.
-지원기업 : 시내 소프트.
거기에는 시내소프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