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44)
탑 코더-44화(44/303)
# 44
높아진 위상
────────────────다음날.
승호는 고동수와 함께 선진데이터시스템을 찾았다. 고동수는 특성화 고를 다녔기에 산학 연계를 이용하면 굳이 학교를 갈 필요가 없었다. 고동수가 선진데이터시스템 빌딩 앞에서 승호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이곳으로 출근 하면 된다는 말이죠?”
둘은 나이 차만 6살.
거기에 고동수는 승호를 존경을 넘어 신성시 하고 있었기에 말을 놓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 다음 주까지 면 파견 끝이야. 그 뒤부터는.”
“ZONE 프로젝트를 본격 개발 하고.”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맞아.”
고동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답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승호가 보기에도 열정만큼은 넘쳐흘렀다.
“파견 마무리 단계니까. 엔진 스토어 성능 향상, 생체인식 성능 향상. 마지막으로 SDN 적용 건까지. 이 세 건에 대해서 산출물 작업 도와주면 된다.”
“알겠습니다!”
둘은 걸음을 옮겨 사무실로 들어섰다.
승호가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장민재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다.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규정대로면 어제 발표 참가를 하는 것이 힘들었다. 갑사의 배려. 즉 장민재의 허락이 있어야 갈 수 있었다. 승호의 환심을 사고 싶은 장민재가 허락해 준 것이었다.
“하하, 잘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분은 신입사원이라고······.”
고동수를 보던 장민재의 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장민재라고 해서 수많은 임원들의 자식들 얼굴 전부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고동만은 달랐다.
그는 선진 그룹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무선 사업부의 사장. 승진을 위해서라면 관련 된 내용은 머릿속에 꾹꾹 담아놔야 한다. 앞에 서 있는 인물은 그 기억의 파편 속에 남아 있었다.
‘고동수··· 고동만 사장의 셋째 아들?’
고동수가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시내소프트에서 일하게 된 고동수입니다.”
고동수.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 이름이 맞았다. 장민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네. 반갑습니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둘 사이 인사가 끝나고 승호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아침부터 무슨 일로······.”
“별일 아니었습니다. 그저 인사차 들린 겁니다.”
“그러면 저희 들어가 봐도 될 까요?”
장민재가 몸을 돌려 길을 비켜 주었다.
“네.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
회의실로 들어간 고동수는 시내 소프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승호의 옆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동수가 들고 온 노트북에는 망고, 선진, 포트 등등 유명한 기업에서 배포하는 스티커 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승호의 사인.
노트북 앞면에 그려져 있는 자신의 사인에 승호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진짜 사인을 새로 만들어야 하나······.’
정자로 새겨져 있는 자신의 이름이 약간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동수가 그런 승호의 잡념을 깨웠다.
“저는 무슨 일부터 하면 될까요?”
“먼저 포트사의 코드 제로에 접속해서 몇 등급 까지 올라가는지 해봐. 그 등급에 맞춰서 일을 시킬 테니까.”
“죄송한데··· 승호님은 몇 등급까지 가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러자 일하던 문호경이 툭 하고 한 마디 내뱉었다.
“CTO 님이야 당연히 1등급이지.”
고동수가 놀라 기함을 터트렸다.
“네? 1등급이요?”
문호경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것도 3시간 만에.”
“네에! 3시간만 1등급이요?”
“들어가 봐. 한 3달 전 등급표 보면 zerone 아이디 남아 있을 테니까.”
고동수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급히 마우스를 움직여 몇 달 전 기록을 뒤져 보았다. 거기에는 정말 zerone이라는 아이디가 있었다. 등급을 확인한 고동수가 괴성을 질렀다.
“으어아! 정말! 그래서 더 게이트 팀명도 제로원이었구나······.”
문호경이 놀란 눈을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는 고동수에게 말했다.
“하하, 그렇지. 그런데 신입. 승호님이라는 호칭 뭔가 어색 하지 않냐?”
고동수가 턱 부분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저는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만. 인터넷상에서는 다들 님이라 부릅니다.”
문호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아··· 그, 그래.”
둘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 승호는 산출물 작성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까지 완료한 프로젝트가 엔진 스토어 성능 개선, SDN 구성. 그리고··· 생체인식 성능 개선. 꽤 많은 일을 했구나.’
거의 밤낮으로 일을 했다. 낮에는 엔진 스토어 성능 개선을 했고, 밤에는 SDN을 개발했다. 엔진 스토어 성능 개선이 끝나고 나서는 SDN과 생체인식을 병행.
SDN이 마무리 되었을 때 쯤 발표 준비를 시작해 마무리 했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 일들이 하나하나 성과를 맺었고, 회사에는 ZONE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자본이 쌓였다. 발표 당시의 반응을 보면 정부 지원금도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2.5억에 4억. 3.5억이면 10억. 거기에 지원금 10억을 합치면 20억. 이 정도면··· ZONE를 개발 할 자본으로는 충분하다.’
더구나 황호근은 억 대의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승호는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타닥.
타다닥.
리듬 까지 타며 산출물 작성에 몰입했다. 그렇게 두 페이지 쯤 작성 했을 때 ctrl+s를 눌렀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생긴 습관이었다. 수시로 ctrl+s를 눌러 코드를 저장한다. 혹시나 컴퓨터가 과부하가 걸려 다운 될 것을 염려한 탓이다.
-저장 중······.
문제는 ctrl+s를 누를 마다 저장 중이라는 알람이 뜬다는 것이다. 길게는 5초까지 딜레이가 걸렸다. 승호가 얕은 한숨을 토했다.
“휴우······.”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 디지털 권리 관리).
프로그램이 저장한 내용을 변환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었다.
‘DRM을 지울 수도 없고···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산출물인 문서 파일은 전부 DRM이 적용된 파일로 제출해야 한다. 문서들에 담긴 내용이 대외비 였기 때문이었다. 한숨을 내쉬던 승호가 살짝 눈을 감았다 뜨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러자 0과 1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승호는 그 세계를 돌아다니며 변환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원인을 찾아보았다.
0111000011111······.
‘파일을 저장하는 순간 자체 알고리즘을 거치면서 변환 된다. 그래 그건 이해가 되. 그런데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 어?’
그런데 이상한 데이터가 눈에 띄었다.
‘내가 누르지도 않은 키보드 이벤트가 발생했다······.’
해킹.
그것 말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승호는 조금 더 집중해 보았다.
그러자.
‘화면도 캡쳐 해서 보내고 있다?’
화면을 캡쳐 하고, 접속 자가 보내는 키보드 이벤트를 원격지에서 발생 시킨다. 전형적인 원격 제어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승호는 어떤 프로세스가 이벤트를 발생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어떤 프로그램인지 찾을 수 있었다.
‘pcGuard.exe 이 프로그램은 선진에서 설치해준 pc 보안 프로그램인데 그렇다는 말은······.’
선진의 누군가가 자신의 PC를 살펴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누가?
왜?
의문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
승호는 먼저 장민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해킹을 당한 것 같습니다.”
장민재가 펄쩍 뛰며 당장 선진데이터시스템 정보보안팀에 연락을 취했다.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인프라 팀을 비롯해 관련 부서에 이 사실을 알렸다.
-제목 : 사내 해킹 정황 안내.
-내용 : 사내 노트북 해킹 정황이 포착 되었습니다. 전 사원은 즉시 악성 코드 검사를 실시하시고, 그 결과를 상급자에게 보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전체 메일이 전 사원에게 뿌려 졌다. 김신우도 해당 메일을 확인했다.
“젠장··· 설마 했는데.”
pcGuard 프로그램은 보안 프로그램인 동시에 특정 pc의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신우가 한서준을 찾았다.
“부장님. 메일······.”
김신우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한서준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했다.
“그래서 결과는?”
김신우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직도 못 찾았단 말이야?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돌아온 건 질책뿐이었다. 김신우는 자괴감마저 느꼈다.
“죄송합니다.”
“곧 조용해 질 거야. 그러니까 어서 코드나 찾아내. 알았어?”
꾸벅 고개를 숙인 김신우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상황은 한서준의 바람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승호는 고동만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엔진 앱 스토어 및 생체인식 성능 개선 관련 내용 해킹 의심.
그 한 줄이면 충분했다. 메일을 받자마자 고동만은 선진 전자 보안 인력들을 승호가 있는 곳으로 급파했다.
“보안점검 나왔습니다.”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보안 요원들과 함께 도착한 기술자들은 그 자리에서 승호의 노트북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승호는 한편으로 물러나 상황을 주시했다.
‘과연······.’
이미 누가 자신의 노트북에 접근했는지 파악해 두었다.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옆에 있던 고동수가 물었다.
“누굴까요? 겁도 없이 승호님의 컴퓨터에 침입한 게.”
“나도 그게 궁금하다.”
고동수가 의뭉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알고 계시죠?
“아니.”
“승호님이 모른다면 저들도 알 수 없을 텐데······.”
그렇게 수십 분을 기다린 끝에 점검을 하던 인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피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192.168.0.121.”
승호의 두 눈이 이채를 발했다.
‘찾아냈네.’
저 아이피의 주인.
그게 누군지도 알고 있었다. 이내 전화를 하던 보안 인력의 안색이 어두워 졌다.
“김신우 과장이요?”
승호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고 있는 이름이기도 했다.
“아, 알겠습니다.”
점검을 하던 인력이 다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승호에게 노트북을 다시 돌려주었다.
“점검 완료 됐습니다. 다시 정상적으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승호가 모른 척 물었다.
“김신우 과장님을 언급하시는 것 같던데··· 혹시 저 아이피 사용자가 김신우 과장님이십니까?”
보안 인력이 살짝 눈치를 살피더니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현재 확인 중에 있습니다.”
순간 승호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
‘이곳도 여기 까지다.’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승호가 한발 물러서는 순간 옆에서 흥분한 고동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선진전자 보안 점검 하시는 분이 점검을 마쳤는데 아직도 확인 중이라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신다니까.”
그러고는 직원에게 핸드폰을 넘기며 말했다.
“전화 받아 봐요. 여기 선진전자 고동만 사장님이니까.”
보안점검 직원이 황당한 표정으로 고동수를 보았다.
“···네?”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말을 해봐.
익숙한 목소리에 직원은 한층 더 당황했다. 고동수가 직원을 향해 말했다.
“방금 하신 말씀 그대로 해보세요.”
-거기 담당자 바꿔봐.
순간 고동만의 목소리가 한 없이 낮아졌다. 묵직해진 목소리에서 단단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직원이 영문을 모른 채 전화를 받았다.
“선진전자 SA(Security Agent) 김태경 대리입니다.”
-결과 어떻게 됐어.
김태경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 그게······.”
-SA 김태경 대리.
“네, 네!”
-내가 자네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 건가?
고동만의 말이 끝나자마자 승호는 듣지 못했던 정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