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46)
탑 코더-46화(46/303)
# 46
터지면 죽는다
────────────────ZONE 프로젝트.
현재 시내 소프트의 주력 솔루션인 XONE의 고도화 버전으로 보안특화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지향한다. 비슷한 서비스로는 스플런크, 하둡의 창시자 더크 커팅이 수석아키텍터로 있는 클라우데라가 있었다.
ZONE도 그 둘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었다.
그러나 ZONE은 후발주자.
그 약점을 이기기 위해 보안과 속도에 차별화 포인트를 두었다. 승호는 그 점을 중점적으로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SDN.
NFV.
협업필터링.
신경망 알고리즘.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 했다. 그걸 완전히 알아듣는 이는 거의 없었다. 최기훈이 그나마 이해를 하고 있었고, 고동수도 조금 알아듣는 눈치였다. 승호도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 인력으로는 쉽지 않겠어······.’
개발 계획이 구체화 될수록 인력 충원이 절실해 졌다. 그러나 실력 있는 인원이 작은 연봉을 받고 이런 소기업에 올 이유가 없었다.
그나마 고동수가 특별한 경우.
자신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실력자가 필요했다.
‘동수 같은 친구들이 많으면.’
더 게이트 주니어부 준우승.
그 타이틀이 결코 땅 따먹기를 하지 않았다는 듯 고동수는 월등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고동수 같은 친구들이 몇 명만 더 있어도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수가 주니어 부 준우승이면 주니어부 우승자. 더구나 대학생 부도 있을 테니까. 대학생 부 우승자. 만약 그들을 채용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승호는 잡념을 접고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개발 계획을 듣는 직원들의 반응은 승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 너 협업 필터링이라고 들어 봤냐?”
그러자 옆에 있던 직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들어 봤을 거라 생각하고, 물어보는 건 아니지?”
“큭. 어쩌냐···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직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 거렸다.
“나도······.”
“괜히 CTO님한테 폐만 끼치는 건 아닌지 몰라. 나도 교통사고라도 당해야 하나.”
“내가 말했잖아. 넌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안 돼.”
“······.”
“CTO님 예전 생각 안 나냐? 매일 다 퇴근하고도 남아서 새벽까지 일하다가 갔잖아. 주말 출근은 기본이었고. 그게 기반이 된 거지. 넌 주말에도 전혀 공부 안하잖아.”
“하, 하긴······.”
그건 둘 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다른 직원들도 수군거리며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그 속에 함께 있던 황시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이었다.
‘저걸··· 정말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런 황시내의 상념을 신입사원 고동수가 깨웠다.
“뭐예요. 설마 저 정도가 어렵다고 하는 거예요?”
19살.
아직 고등학생의 말에 직원들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저 정도는 공부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내용인데.”
고동수의 말에 몇몇 직원들이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애초에 똑똑한 사람들이야 그렇지.”
“그러게 누군 뭐 못하고 싶어서 못하나.”
“신입. 말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우리도 잘하고 싶어. 그런데 안 되니까 그렇지.”
고동수는 그런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여기 하루 4시간 씩 자면서 공부해보신분?”
그러자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고동수가 혼잣말인 척 한 번 더 중얼 거렸다.
“난 어제도 퇴근하고 집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다가 잤는데. 해보지도 않고······.”
고동수의 중얼거림에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직원들이 먼 곳을 보며 딴청을 부렸다.
설명을 마친 승호가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개발 계획 발표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으니 잠시만 주목해 주시기랍니다.”
시내 소프트의 CTO.
승호의 말에 사람들이 눈을 반짝였다.
“브라이언 커니핸이라는 유명 컴퓨터 과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승호가 앞에 놓여 있던 물을 한 잔 마시고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컴퓨터 과학이 천재들의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현실은 반대다. 단지 많은 사람이. 작은 돌로 된 담처럼. 다른 사람의 작업 위에 쌓아 올릴 뿐이다.”
승호의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ZONE 프로젝트 개발은 제가 주도 하는 작업이지만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승호가 직원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었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능력의 한계에 부딪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 자신 있습니다.”
회사의 운명을 논하는 자리.
직원들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승호를 보았다. 사장인 황호근이나 최기훈도 마찬 가지였다.
“유니콘이 되어 국내를 휩쓸고 세계가 인정하는 회사가 된 미래가 보입니다.”
코드 제로 1등급.
더 게이트 우승.
각종 프로젝트 완수 까지.
이 자리에 승호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들이 쌓아올린 작은 돌이 필요합니다. 이상입니다.”
승호가 말을 마쳤을 때 더 이상 부정적인 의견을 토로 하는 직원은 없었다.
***
점심시간이 끝나고 승호는 다시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황호근이 따뜻한 눈빛으로 승호를 보며 말했다.
“그간 수고 많았다. 앞으로 ZONE 프로젝트를 완성 할 때 까지 외주 일은 없을 거다.”
“아닙니다. 사장님이 더 고생 많으셨죠. 정부 지원금 서류 작성에 영업 하러 다니신다고. 주말에도 일하신 거 최 팀장님께 들었습니다.”
“너도 매일 야근했다면서? 선진에 나가 있는 문 대리 한 테 들었어.”
“뭐,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몸 생각해야 돼. 이제 네가 시내 소프트의 기둥이다.”
함께 있던 최기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두 분.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아주. 부자지간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황호근이 민망함에 헛기침을 했다.
“흠··· 흠흠. 뭘 또 그렇게 까지.”
최기훈도 승호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냈다.
“정말 고생 많았다. 뭐. 앞으로 쉬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나도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 낼 수 있도록 하마.”
황호근이 슬며시 탁자 위로 회사 재무 상황을 나타낸 간략한 표를 한 장 올리며 말했다.
“지금 회사에 모인 돈도 15억을 넘었다. 이 정도면 6개월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야.”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인센티브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돈을 주셔서······.”
지난 달 월급날에 들어온 인센티브만 1억 5천.
승호의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었다.
“앞으로도 수익 쉐어는 최대한 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정말 한 번 잘해보자.”
승호가 입술을 깨물며 의지를 다졌다. 최기훈이 그런 승호를 보며 말했다.
“개발 계획은 나왔고, 인력 배치도 거의 마무리 됐다. 이제 바로 개발 스타트 하면 되는 거야. 미력하나마 나도 작은 돌 하나씩 쌓아보마.”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와 관련해서 드릴 말이 있습니다.”
황호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해. 최대한 지원해 주마.”
“최소한 3명. 많으면 5명 정도 신규인력 채용이 필요합니다. 실력자로요.”
황호근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건 나도 알아봤지만 마땅한 인력이 없더라.
승호가 원하는 인력은 실력자.
그런 이들은 시내 소프트 같은 소기업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많은 돈을 들여 인력 채용에 전부 사용 할 수도 없었다. 승호가 곤란해 하는 황호근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좀 알아봤는데. 대한 대학교 특강. 좀 더 빨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
“동수가 주니어 대회 준우승 한 건 아시죠?”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 게이트.
승호가 우승한건 팀 전으로 이루어지는 일반부.
고동수가 출전한건 개인전으로 이뤄진 주니어부.
일반부와 주니어부 사이에 대학생 부가 있었다.
“거기 대학생 부. 우승을 차지한 친구가 대한 대학교 학생이더라고요.”
최기훈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말은······.”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는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 돈, 환경. 돈은 풍족하게 줄 수 없으니, 사람이나 환경을 만족스럽게 만들어주면 오지 않을까 합니다. 동수가 제게 온 것 처럼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황호근이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
며칠 뒤.
승호는 고동수와 함께 대한 대학교를 찾았다.
대한 대학교.
언제나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학교.
대학의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한 승호에게 가을 낙옆이 지고 있는 대한 대학교 교정은 색다른 감회를 주기에 충분했다. 고동수가 학교 정문 상징물인 대(大) 자를 보며 말했다.
“확실히 학교가 크고 좋네요.”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내에 버스가 다녀야 할 정도니까.”
승호의 시선도 정문에 세워져 있는 상징물에 멈춰 있었다. 자신도 이런 대학을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그런 상념을 고동수가 깨웠다.
“승호님은 대학 갈 생각 안 해보셨어요? 저는 요즘에도 엄마가 대학을 가라고 하도 성화라.”
“대학 자체가 선택지에 없는 삶이었으니까.”
말에 담긴 처연함에 고동수가 입을 다물었다. 지긋이 승호를 보던 고동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언맨도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그러고 보면 영웅의 삶에 고난은 필수 인가 봐요.”
고동수 나름의 위로라는 걸 알기에 승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승호가 고동수를 보며 말했다.
“정말 백채원씨와 아는 사이 맞지?”
“그렇다니까요. 해커 커뮤니티에서 꽤 유명해요. 닉네임은 희망나무. 대회 뒷 풀이에서도 이야기 되게 많이 했었는데 못 보셨어요?”
일반부 최초 한국팀 우승 타이틀.
그리고 난생 처음 받아본 상.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없는 와중에,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하긴 당시 승호님 인기가 장난 아니었으니까요. 저도 말 좀 붙이려고 했는데 끼어 들 틈이 없었어요.”
그때 고동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도착했어. 그렇다니까.”
고동수가 대답을 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에서 부터 후드티를 입은 학생이 뛰어오고 있었다.
“어. 보여!”
고동수가 반대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뛰어오는 학생이 점점 더 선명해 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수록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사슴 같은 눈망울에 붉은 입술이 청초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앞까지 뛰어온 학생은 잠시 동안 허리를 숙인 채 들지 못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헥··· 헥······. 미, 미안. 내가 좀 늦었지?”
“괜찮아. 여기는 희망나무 누나.”
백채원이 눈썹을 찡긋 거렸다. 고동수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아··· 아니. 백채원 누나.”
“정말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백채원입니다.”
승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강승호 입니다.
백채원.
더 게이트 대학생부 우승자.
승호가 여기까지 온 가장 큰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