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52)
탑 코더-52화(52/303)
# 52
터지면 죽는다
황호근.
사장인 그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영업이었다. 사람을 만나 정보를 얻고, 나누며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이 황호근이 집중하고 있는 일이며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 황호근이 오랜만에 모교인 대한 대학교를 찾았다. 이유는 겸사겸사.
승호의 특강이 끝나길 기다려 밥도 사주고, 모교에서 컴퓨터 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 신영식 교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둘은 오랜만에 옛 추억을 들춰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네. 제가 바보였습니다!”
“크큭.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냐.”
“30년 전인가.”
“ROTC 동기들 만나기만 하면 그 이야기다. 네. 제가 바보였습니다!”
신영식 교수의 말에 황호근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몇 번을 말해. 긴장해서 그렇지. 긴장해서.”
“내가 잘 못 가르친 거냐. 네가 멍청한 거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농담에 황호근의 입가에서도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사담을 나눈 신영식이 물었다.
“그나저나 오늘 회사 직원이 특강을 하러 왔다고?”
“강승호라고. 허춘수 교수가 특별 부탁 했다고 하더라.”
“허 교수라면··· 그 직원 꽤 능력 좋은가봐. 허 교수가 그런 거 부탁할 사람이 아닌데.”
“왜? 어떤 사람인데?”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능력이 없다면 말도 제대로 섞지 않아.”
“그래?”
“그래서 학교에서도 논란이 꽤 있지. 문제는 허 교수가 워낙 능력이 출중해서 아무도 건들지 못하는 위치라······.”
“호오.”
“MIT에서 박사하고, 교수 제의까지 받았는데 모교로 왔다고 하더라.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너무 낙후되어 있어서 발전시키고 싶다고.”
“애국심이 있는 건가?”
“그 사람 속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말을 하던 신영식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직원이 원자력 시스템 연구실에서 파일 하나가 유출된 걸 찾은 모양이더라.”
황호근이 의기양양해하며 말했다.
“특강 시간에 우리 회사 차기 제품인 ZONE에 대해 말 할 거라고 했어. 그게 성능이 워낙 좋아서. 뭔가 발견한 모양이지.”
신영식의 표정이 한 층 더 심각해졌다.
“그것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다. 문제는 파일 유출이 아니라. 악성 코드. 그게 유포된 모양이야.”
“악성코드?”
“대외비로 연락이 왔는데.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 그래서 리버싱에 능한 사람 찾더라고. 내가 알기로는 그 직원도 거기에 간걸로 아는데.”
황호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발전소라니. 자세히 좀 말해봐.”
“그 이상은 나도 몰라. 민감한 일이라 내 선까지 오는 정보에 한계가 있어서. 한 가지 확실 한 건.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고. 그 직원이 거기에 갔다는 거야.”
황호근이 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승호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도통 받지를 않았다. 직감이 말했다. 문제가 생겼다. 이번에는 고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동수가 전화를 받자마자 황호근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어디야?”
-밥 먹으러 왔습니다.
“승호는?”
-헬기타고 월성 가셨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네. 나도 가고 싶었는데.
“월성?”
-월성원자력 발전소. 악성코드 감염이 의심된다고 해결하러 가셨어요. 아! 그리고 이건 대외비라니까 다른데 말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미친! 너라도 말렸어야지!”
-네, 네?
“거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가. 원자력 발전소다. 방사능에 피폭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발전소가 그렇게 위험 한가······.
“악성코드 감염이 의심 되는 발전소야. 자칫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 수도 있어.”
황호근의 설명에 핸드폰 너머로 침묵이 이어졌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은 황호근이 신영식을 향해 말했다.
“나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다.”
“너 설마······.”
신영식은 그 순간 황호근이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 눈치 챘다. 자신이 아는 황호근은 그런 놈이었으니까.
말려도 소용없겠지만.
제수씨.
친구의 딸인 시내를 위해서라도.
신영식이 고개를 저었다.
“왜 그렇게 까지 하냐. 그냥 있어. 누구도 너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 없다.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내 직원이 거기 있으니까. 사장인 내가 가야지.”
황호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수실을 빠져 나갔다. 신영식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황호근의 등을 바라보았다.
***
전화를 끊은 고동수가 들고 있던 식판을 덜덜 떨었다. 아직 19살이지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누, 누나. 승호님 아무 일 없겠죠?”
“그렇겠지. 별일이야 있겠어. 그런데 너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식판을 들고 있는 손, 땅을 디디고 있는 다리.
손과 발의 떨림이 차츰 커져갔다.
“마, 만약에. 만약에 말이에요. 정말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건······.”
백채원이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악성코드를 분석해 제거 하면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방사능이 유출이라도 된다면······.”
방사능.
그 말을 듣자 작금의 현실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조금 이지만 감이 왔다.
“그렇게 되면······.”
정말 큰 사고로 번질 것이다. 그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거길 간다고 한 걸까?
“제가 말렸어야 하는데··· 철없이 같이 못 가게 됐다고. 아쉽다 며 징징 거리기나 했으니······.”
백채원은 헤어지기 전 단호했던 승호의 표정을 떠올렸다.
-넌 안 돼.
-저만 가면 됩니다. 채원씨도 안 됩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혼란만 가중 될 뿐입니다.
백채원이 고동수의 떨리는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백채원의 손끝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
청와대 지하 벙커.
대통령은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고, 다른 직원들은 쉴 새 없이 상황 파악을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결심 하실 시간입니다.”
정지명령은 통하지 않았다.
남은 건 대피 명령.
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인명 피해를 줄일 것인가. 물적 피해를 줄일 것인가. 어떤 걸 선택해도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 되겠군.”
“아무 일도 없이 지나 갈 수도 있습니다. 그저 잠시 벌어진 헤프닝 처럼요.”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인원이 있다고?”
“국정원 요원 5명. KISA 직원 이정훈. 거기에 강승호라는 민간인 한 명입니다.”
“민간인?”
비서실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훈이 섭외한 인물입니다. 실력이 워낙 출중해 이번 작업에 포함 되었다고 합니다.”
“알았네. 우선 헬기부터 대기 시켜.”
“대통령님 그건······.”
“대피명령을 내리더라도 거기 가서 한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 그게 기본이니까.”
비서실장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른 참모진들도 하나 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대통령님 신변에 문제라도 생기면 추후 사태 수습은 누가 합니까.”
“그러라고 국무총리 뽑은 거 아닌가.”
국무총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대통령님 그건······.”
“잘 부탁하네.”
홍상훈이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서실장이 할 수 없이 경호 실장에게 지시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경호 인력은 최소화로 한다. 인명 피해는 최소화 해야지. 그리고 내 서랍에 편지 한 장 있으니까. 안보실장이 제 자식들에게 전해주세요.”
비서실장은 그 말을 끝으로 대통령의 뒤를 따라 나섰다.
***
-에에에엥.
-에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그 순간에도 승호는 각 시스템들에 손을 대고, 악성 코드를 찾아.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어 나갔다.
벌써 5분이 지났다.
듣기로는 혹여 생길 불상사를 막기 위해 10분 뒤에는 원전이 완전히 폐쇄 된다고 한다. 그 후 수동 정지 작업을 실시한다고 들었다.
시간을 들여 작업한다면 자신이 직접 정지명령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시간을 짐작 할 수 없었다. 악성코드를 찾아내 제거 하는 것 만 해도 시간이 촉박했다.
4분.
3분.
뚝.뚝.
승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옆에 있던 이정훈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주었다.
“작업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곧··· 곧 끝납니다.”
승호는 초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거대한 0과 1의 세상에 들어가 간섭을 일으킨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국정원 요원들은 승호가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악성코드들을 교차 검증했다.
“PAS 시스템 확인 완료 했습니다.”
“IOS 시스템 확인 완료 했습니다.”
“ASTS 쪽 시스템 확인 완료 했습니다.”
검증을 완료한 요원들의 보고에 담당관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남은 시간은 3분. 남은 시스템은 단 두 개······.”
이정훈이 그런 담당관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여기서 나가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이번 일 끝나면 옷 벗을 각오 하고 있으니까.”
이정훈이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승호를 보조 했다.
‘제발··· 제발······.’
담당관은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아무런 문제없이 오늘 하루가 지나가게 해달라고.
***
공군 1호기.
대통령이 연설문을 점검하며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내가 자네와 정치를 시작한 게 몇 년 이지?”
“만 10년째입니다.”
“이건 그냥 개인 적인 궁금증인데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 생각해 본적 있나?”
“대학 시절 시위하다 끌려가서 이제 정말 죽겠구나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대통령이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런 적이 있었나?”
“어두운 시대였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도망쳤나? 아니면.”
“그때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태어날 자식에게 쪽팔리더군요. 그래서 더 개겨 버렸습니다.”
“크하하하. 자네답군.”
비서실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겁니다. 이렇게 농담 따먹기 할 수 있는 추억으로 남게 될 겁니다.”
대통령이 들고 있던 연설문에 마침표를 찍으며 말했다.
“그렇게 돼야겠지. 한번 검토해보게. 이번 일은 연설 비서관이 아닌 자네 의견이 듣고 싶군.”
고개를 끄덕인 비서실장이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제가 서 있는 이곳은 월성원자력발전소.
-인류 생존에 필수가 된 전기를 생산하는 곳입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먼저 이 말씀부터 드려야겠군요.
-현 시간 부로 월성원자력발전소 반경 20Km를 국가재난지역으로 선포 하겠습니다. 국민여러분들께서는 즉시 안전한 곳으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
-저는 마지막 한 분이 무사히 피하실 때 까지 이곳에 남아 현장을 지키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내려간 비서실장의 두 눈에 붉은 기운이 가득했다.
“어떤가?”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서 최고입니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헬기에 설치된 보안 전화의 벨이 울렸다. 비서실장이 황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사실이야?”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전화를 끊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보며 말했다.
“이 연설문··· 이제 필요 없어 졌습니다.”
대통령이 두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