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57)
탑 코더-57화(57/303)
# 57
서현석의 스타트업
밤 9시.
대부분의 직원이 퇴근한 사무실에 넷이 탁자위에 음식들을 펼쳐두고 앉았다.
초밥, 떡볶이, 김밥.
종류도 다양했다. 승호가 장어 초밥을 한 점 집어 먹을때 고동수가 말했다.
“오전에 올리신 코드 확인해 보니까. 아웃라이어 감지를 추가하셨더라고요.”
꿀꺽.
겨우 밥을 삼킨 승호가 대답했다.
“ZONE 서비스 클라이언트에서 보내주는 데이터는 시간 순서대로 파악이 가능하지만.”
이번에는 백채원이 나섰다.
“혹시 놓친 부분이 있을까. 검증된 데이터들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함이군요.”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렇게 해서 이상 데이터 검출 율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었습니다.”
백채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관련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아웃라이어 감지는 이상과 평범하다 사이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어려워 잘 사용하지 않는 다고 들 하던데.”
“그래서 그 기준을 만들어주는 기계 학습 모듈을 추가하고 있었습니다. 일정 맞추려면 최대한 빨리 해야 하는데 하면 할수록 양이 늘어만 가니.”
고동수도 떡볶이를 한 점 입으로 넣어 우물거렸다.
“기계 학습에는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하실 생각이세요?”
“우선적으로 신경망을 검토 중인데 규모에 비해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백채원도 포크로 떡볶이를 하나 콕 찍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경망은 포트의 인공지능 프로젝트에서도 베이스로 사용하고 있는 알고리즘이니까요.”
그때까지 황시내는 한 마디도 끼어 들 수 없었다. 여기에서 대화를 나누기에는 관련 지식이 너무 미천했다. 그저 깨작깨작 자신이 사들고 온 분식을 먹을 수밖에.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승호가 고개를 숙인 채 분식을 먹고 있는 황시내에게 물었다.
“화면 개발은 어때요?”
갑작스런 질문에 놀란 황시내가 사레가 들려 켁켁거렸다. 옆에 있던 고동수가 급히 물을 건네주었다.
“네, 뭐, 뭐라고 하셨어요?”
요즘 들어 자꾸만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황시내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져 괜히 더 위축되었다.
“화면 개발은 할 만한지 물었어요. 평소 하던 일이 아니니까.”
“바로바로 결과를 확인하는 게 적성에는 맞는 것 같아요. 인터넷 익스플로어, 크림 같이 여러 브라우저에서 구동하게 만드는 건 귀찮지만.”
“그래도 시내씨는 잘 할 거예요. 과거에도 그랬으니까.”
승호의 칭찬에 황시내의 귀가 붉어졌다. 묘한 분위기에 고동수가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승호님은 참 칭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승호는 그저 담담히 대답했다.
“나도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주변 사람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 했을 지도 몰라.”
한 점의 감정도 없는 그 말투에 황시내의 표정에 다시 그늘이 졌다. 승호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특히나 여기 시내씨가 해준 칭찬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말에 다시 황시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백채원이 포크로 떡볶이를 하나 콕 집으며 말했다.
“그랬어요?”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
그러나 고동수가 느끼기에는 조금 달랐다.
‘누나가 화가 난 것 같은데··· 아니겠지.’
이내 머리를 털며 그런 생각을 지웠다. 온라인 해킹 커뮤니티 나이트 차일드에서 백채원은 남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질 만큼. 평소 이성과는 담을 쌓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까.
“네. 시내씨가 항상 제게 말했습니다. 실력은 한 번에 점프하는 경우가 많다.”
승호가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을 이었다.
“뭐, 지금은 너무 많이 점프해 버린 것 같지만.”
고동수가 입술을 오므리며 ‘오’ 소리를 냈다.
“이건 너무 팩트라 인정 할 수밖에 없네요. 누나도 인정?”
백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시내도 밝아진 표정으로 수긍했다.
“농담입니다. 농담.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하늘이 제게 기회를 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언맨도 인질로 집혀간 동굴에서 다시 태어났잖아요. 처음에 조잡했던 장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이 좋아졌고요.”
“그런가.”
고동수가 신이나 떠들었다.
“승호님이 얻은 눈과 팔이 아크 원자로. 뭔가 이야기가 딱딱 들어맞잖아요.”
순간.
백채원이 승호의 오른 손등을 살짝. 아주 살짝 터치했다.
“많이 아팠겠어요.”
황시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승호가 오른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간질거리는 후유증이 있는 사람도 많다는데 전 제 것처럼 아주 멀쩡합니다.”
“다행이에요. 정말.”
백채원의 말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황시내도 충분히 느낄 정도로.
어두운 이야기로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
어느새 탁자위에 올라와 있던 야식 거리는 동났다. 승호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늦었습니다. 어서 다들 퇴근하세요.”
벌써 밤 10시.
가산 디지털 단지의 불이 하나 둘씩 꺼지는 시간이었다.
***
밤 12시.
횡단보도 앞에 선 승호가 심호흡을 했다.
“후우.”
집으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그곳.
지나 칠 때 마다 가슴이 떨렸다. 그럼에도 일부러 이곳으로 왔다. 피하고 싶지 않았다. 정면으로 부딪쳐 이겨내고 싶었다. 그게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기에.
“이제 81%. 조금 만 더 하면.”
핵심모듈 개발은 마무리 된다. 그러면 화면, 기타 백엔드 API, 서비스 운영 툴 등 남은 부분에 전력할 생각이었다.
“대략 2개월 정도가 남은 건가.”
개발 완료 후 베타 버전이라 부를 수 있을 수준 까지.
남은 시간 2개월.
그간 디자이너를 채용하고 하드웨어 장비를 구매 했다. 그걸 관리할 시스템 엔지니어를 뽑고.
그렇게 쏟아 부은 돈이 10억.
유니콘 프로젝트에 선정 되어 1차로 지급 받은 돈의 대부분 소모한 것이다. 다행이 그 전에 모아둔 돈이 있었기에 아직 운영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서현석의 스타트업.
황호근은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해당 방송에 신청했고 결국 본선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에서도 우승하면 상금만 5억.
개발 완료까지 아무 문제없이 진행 할 수 있었다.
“ZONE 서비스 개발을 완료하면. 그걸 안정화 시킨 후. 그 다음은······.”
생각에 잠겨 있던 승호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초록 불.
건너야 할 시간이었다.
***
며칠 뒤.
아침부터 회사 분위기가 시끌벅적했다.
“진짜지? 오늘 서현석의 스타트업 때문에 XOXO 서윤아 인터뷰 하러 온다는 거 거짓말 아니지?”
“왜 볼이라도 꼬집어 주랴?”
“어, 해봐. 해봐.”
원지훈이 문호경의 볼을 세게 잡아당겼다.
“끄아악! 야!”
“현살 맞네.”
“이 미친놈아!”
그런 분위기가 승호는 이해되지 않았다.
‘서윤아?’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
그곳에서도 선임이나 후임들이 TV를 볼 때 승호는 도서실에서 책을 봤다.
‘서윤아가 누구기에······.’
저러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승호는 인터넷 창에 서윤아를 검색해 보았다.
-서윤아. 삼촌 서현석의 부탁으로 출연 결정-공항패션 서윤아. 오늘도 섹시하게.
-오늘도 도도하게 저 어때요?.
관련기사들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 중 승호의 눈에 들어온 뉴스는 단 하나.
‘서윤아가 서현석 이사님 조카였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다른 사진들이나 뉴스에는 관심도 가지 않았다.
‘전혀 닮지는 않은 것 같은데······.’
승호의 감상은 그걸로 끝이었다. 다시 개발에 전념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약속의 오후 2시가 되는 순간 일련의 무리가 회사로 들어왔다. 누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왔다!”
그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 조명, 마이크 등등 각종 장비들이 먼저 사무실로 들어왔다. 뒤이어 서윤아가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 승호도 고개를 쑥 내밀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서윤아를 보았다.
‘예쁘긴 하네.’
얼굴은 주먹 만 했고, 볼륨감은 한국인이라 보기 힘들었다. 몸매를 여실히 드러나는 청바지는 각선미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가리고 있는 게 더 자극적일 수 있다.
왜 그런 말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서윤아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서윤아가 인사를 할 때 마다 마다 직원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형이 말을 한 다······..”
“말도 안 돼. 이건 꿈일 거야······.”
찰칵.
찰칵.
누군가는 이미 사진을 찍고 있었다.
“승호님도 서윤아 팬이세요?”
고동수의 말에 무의식 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놀란 고동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승호님 혹시 고······.”
“야.”
“아니 그게 아니면 어떻게 윤아님 팬이 아닐 수 있어요.”
“이름도 네가 하도 떠 들어서 알았어.”
“승호님 외계인이세요?”
“TV를 안보니까.”
“인터넷은요?”
“그것도 튜브 넷으로 강의 들을 때나 하지.”
고동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유물 급 인정 합니다.”
“너 개발 어디까지 됐어?”
“아니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던 고동수가 두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돌렸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더 가까이에서 들렸다. 승호의 시선도 고동수가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멀리 있던 서윤아가 시야에서 확대되었다.
전신.
상반신.
얼굴.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왔다.
서로의 체취가 느껴지는 거리.
가까이 다가온 서윤아가 승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강승호씨?”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서현석 이사님 아세요?”
당연히 알고 있다. 승호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아가 손을 흔들며 매니저를 불렀다.
“오빠. 여기 이분 맞아요.
승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윤아를 보았다. 그 사이 매니저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XOXO 매니저 김민구 입니다.”
승호가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아, 안녕하세요. 강승호 입니다. 그런데 저는 왜······.”
“다름이 아니고, 저희가 근래 바나나 라이브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숙소에 웹캠을 설치했는데 이게 해킹이 된 것 같아서요.”
고동수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해킹이요?”
승호가 김민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구가 승호를 보며 말했다.
“혹시 바나나 미니 아세요?”
“인공지능 스피커라면 알고 있습니다.”
“웹캠에 그 바나나 미니까지. 마음대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서··· 사진이나 음성이 유출 되진 않았을까 하는 우려까지 있는 상황입니다.
매니저가 한층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만약 정말 그게 유출 된다면 윤아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물론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승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가는 상황이었다. 자신만 해도 집안에서는 편하게 생활한다. 간혹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상황도 연출된다.
그런 것들이 전부 유출 된다면?
일반인이 그럴 진데 연예인이라면 더 치명적이리라. 그러나 지금은 내부 서비스 개발 중 그런 일에 신경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요즘 많이 바빠서요.”
거절당할 줄 몰랐던 서윤아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네?”
“저희 회사 서비스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없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일은 전부 거절하는 중입니다.”
김민구는 물어보고 싶었다.
외부 일.
그거 어디에서 얼마나 들어오는 일이냐. 그러나 초면에 실례이기에 다시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례금은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쪽 일이 잘 풀리면 시내소프트 서비스 홍보에도 많은 영향이 있을 겁니다. 윤아 SNS 팔로워만 100만 명입니다.”
승호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죄송하지만 선진전자에서 하루 와서 일 봐주는데 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것 보다 많이 주실 수 있습니까?”
단순 비교는 힘들겠지만 서윤아가 행사장에서 노래 3곡을 부르는데 받는 돈이 900만원.
그것 보다 많은 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