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7)
탑 코더-7화(7/303)
# 7
갑질을 이기는 기술
────────────────선진에 검색 프로그램 납품을 위한 시연회 당일.
황호근, 최기훈, 박태수.
그리고 최기훈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승호 까지.
총 네 명의 인원이 선진 데이터시스템 본사를 찾았다.
박태수 과장이 고개를 꺾어 빌딩을 올려보며 말했다.
“확실히 대기업이 다르네요. 이거 도대체 몇 층이야.”
최기훈이 입맛을 다셨다.
“우리도 저렇게 되 야지.”
황호근 역시 고개를 꺾어 빌딩을 보았다.
“언젠가는 되지 않겠어?”
최기훈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정말이요? 저는 5층짜리 사옥만 있어도 좋겠습니다.”
승호도 고개를 들어 빌딩을 보았다. 무려 20층짜리 빌딩은 당당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저 빌딩의 주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시간을 확인한 황호근이 일행을 보며 말했다.
“가자. 곧 약속 시간이야.”
사장인 황호근의 말에 세 명은 빌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입구에서 부터 난항이었다.
“방문자 등록이 안 돼 있다고요?”
황호근의 반문에 안내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시스템에 등록이 되 있지 않으세요. 담당자 분이랑 통화해서 등록해 달라고 하셔야 합니다.”
분명 오늘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등록이 안 돼 있다?
황호근이 핸드폰을 들어 통화를 시도 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신호음만 갈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미라클 데이터 안재현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미라클 데이터.
시내 소프트의 경쟁사 이자 전직 선진 데이터 시스템 부장이 차린 회사였다.
“바, 반갑습니다.”
“그럼 올라가서 뵙죠.”
안재현이 안내 직원에게 방문자 증을 요청했다.
“총 네 분 승인 되셨습니다. 여기 방문증입니다.”
황호근이 황당한 표정으로 안재현을 보았다.
“어······.”
“그럼 이만.”
안재현이 직원들과 게이트를 통과해 유유히 사라졌다. 최기훈이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가 등록이 안 돼 있데.”
“저쪽도 오늘 시연회 참석 차 온 거잖아요.”
“내 말이.”
“그러면······.”
최기훈이 말을 줄였다. 뒷말은 듣지 않았지만 승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갑 질.
이런 식의 치졸한 방법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황호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기다려봐. 다시 통화해볼 테니까.”
황호근이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나서야 전화가 걸렸다.
“시내 소프트 황호근입니다.”
-아, 네. 올라오시지 않고.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 쪽 방문자 등록이 안 돼 있다고 해서요. 지금 1층에서 대기 중입니다.”
-아··· 최 대리 내가 방문자 등록 해 놓으라고, 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 뭐? 알았어.
황호근이 초조한 표정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시간 20분 전에 도착 했지만 어느새 15분이 지나 버렸다.
약속 시간 5분 전.
이러다가는 늦을 것 같았다.
-제가 다시 등록하라고 했으니까. 곧 될 겁니다.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을은 감사하다고 했다. 갑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사무실에서 개발만 하다 갑, 을의 민낯을 본 승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허겁지겁 올라갔지만 결국 약속시간에서 5분이 늦어버렸다.
30명 정도가 들어가는 대회의실.
20여명 정도가 회의실로 들어오는 승호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건 선진 데이터시스템 구매팀 이도준 과장.
기다렸다는 듯이 핀잔을 주었다.
“시연회 날 시간 엄수는 몇 번을 강조 드렸는데, 늦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황호근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죄, 죄송합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승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승호에게 황호근은 사장이자 아버지. 그런 사람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자 배속에서 부터 천불이 이는 것 같았다. 황호근이 자리에 앉자, 이도준이 말을 이었다.
“자, 그러면 선진그룹 검색 시스템 납품 시연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지난 번 보안 점검 조치 사항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정보 보안 팀의 송보영 대리가 조치 결과 내용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앉아 있던 사람들 중 큰 눈에 단발머리가 인상 적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정보 보안 팀의 송보나 대리입니다. 미라클 데이터와 시내 소프트의 보안 점검 결과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ppt 한 장이 떠올랐다.
“1차 점검 결과 당시 시내 소프트는 51건의 지적 사항을 미라클 데이터는 24건의 지적 사항을 받았습니다. 시내 소프트가 압도적인 수치로 많은 지적 사항을 받으신 걸 알 수 있습니다.
송보나의 발음은 마치 아나운서를 연상케 할 만큼 또렷했다. 목소리 역시 청명했기에 듣는 이로 하여금 시원한 청량감마저 느끼게 했다.
“다음은 상세 결과입니다.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트, sql 인젝션, 기본 보안 정책 미흡 등등. 상세한 내용은 별도 첨부 파일에 동봉되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다음.”
송보나의 말에 PPT가 넘어갔다.
“어제 부로 1차 점검에 대한 조치 결과를 확인한 결과 시내 소프트는 51건 전부를 미라클 데이터는 22건에 대해 처리 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안재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황호근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아졌다.
“됐다.”
옆에 있던 최기훈이 주먹을 쥐며 작게 중얼거렸다. 굳어져 있던 승호의 표정도 조금 밝아졌다. 송보나가 말을 이었다.
“미라클 데이터는 아직 조치하지 못한 2건에 대한 조치 계획서를 제출해 주셨습니다. 해당 계획대로 조치된다면 납품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세 내역은 각 회사에 메일로 발송 될 겁니다. 이상 입니다.”
이도준이 헛기침을 하며 굳어져 있는 안색을 풀었다.
“보안은 이번 솔루션 선정에 중요한 평가 요소 중 하나입니다. 신경 또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선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솔루션 성능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승호의 표정이 긴장으로 한층 더 딱딱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평가는 데이터베이스 검색, 파일 검색 그리고 기 안내해 드린대로 파일 내용에 대한 세 가지 검색에 대해 이루어지겠습니다. 평가 방법은 총 50여개의 검색어를 입력하여 나온 결과를 ISQI(국제검색품질지수) 항목별로 총 5분의 평가위원 분들이 평가해 점수화하겠습니다.”
황호근이 황급히 손을 들었다. 이도준이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평가 위원에는 자사 빅데이터 분석 팀의 장민재 부장님을 비롯한 직원 분들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장 부장님 간단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장민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이며 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빅데이터 분석팀 장민재입니다. 검색과 빅데이터 분석은 많은 부분에서 기술 셋이 겹치는 분야입니다. 앞으로 서로간의 기술교류를 통해 양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장민재의 인자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황호근이 다시 손을 들었다. 이도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신호를 주었다. 황호근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서려있었다.
“자, 잠시 만요. 제가 알기로는 데이터베이스 검색, 파일 검색 까지 인걸 로 아는데요.”
“내부 검토 결과 파일 내용에 대한 검색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관련 내용을 이틀 전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답변은 그걸로 끝이었다.
털썩.
황호근이 힘없이 손을 내렸다. 어깨는 축져져 보기에 안쓰러운 정도였다. 안재현이 비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황호근을 보았다. 이도준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검색 하실 데이터베이스 주소는 이미 알려드렸고, 파일 역시 안내해 드린 디렉토리에 존재하는 그 파일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어느 회사가 먼저 하시겠습니까.
안재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그럼 저희 먼저 하겠습니다.”
안재현의 지시 아래 미라클 데이터 직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과 노트북을 연결 하고, 관련 프로그램들을 구동 시켰다. 최기훈이 착잡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이거 아무것도 못해보고 끝나게 생겼네요.”
황호근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그냥 들러리 세우기 위해서 우리를 부른 거였어.”
“항의라도 하는 건 어떨까요? 그런 메일 받은 적 없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어차피 업체를 결정해 놓고 진행하는 계약에.”
박태수도 조용히 한 마디 거들었다. 분노가 가득했다.
“개 같은 놈들. 이럴 거면 부르지나 말지.”
황호근이 두 눈을 감았다.
“순진하게 생각했던 내가 바보지.”
“애초에 파일 내용 검색을 알려주지 않은 쪽이 쓰레기 짓을 한 겁니다. 사장님이 무슨 잘 못 이 있답니까.”
“사업은 선의로만 해서는 안 돼. 전쟁터에 나간 병사의 마음으로 임했어야 하는데······.”
황호근의 푸념에 최기훈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님과 함께 한 겁니다. 다른 사장들과 비슷하게 하셨으면 여기 안 왔습니다.”
그때 승호가 최기훈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저희는 문서 내용에 대한 검색은 안 되는 건가요?”
최기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색인 서버에 컨버터 구현이 안 돼 있어.”
“DB 검색과 파일명 검색만 된 다는 말 인거죠?”
최기훈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일 내용 검색은 많은 준비가 필요해. excel이나, doc, hwp 같은 문서들을 디코딩 하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리고. 그걸 알 고 저쪽에서 짜고 치는 모양이야.”
승호가 눈을 반짝였다.
“그렇군요······.”
“이 계약까지 나가리 되면 정말 큰일인데······.”
최기훈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건 황호근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잠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승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거 제가 한 번 개발해 볼까요?”
최기훈의 대답에는 힘이 없었다.
“회사 가서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니, 제 말은 지금 여기 서요.”
최기훈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뭐?”
갑작스런 소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기훈에게로 향했다.
“으흠. 흠흠.”
헛기침으로 상황을 모면한 최기훈이 승호를 보며 물었다.
“지금 여기서 개발을 하겠다고?”
끄덕.
승호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평안한 태도에 최기훈이 어이없어 하며 빠르게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개발해서 바로 적용하겠다는 말을 하는 거지?”
끄덕.
이번에도 승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좀 필요하긴 해요. 그래서 말인데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최기훈은 올라가려는 목청을 겨우 낮추었다.
“···뭐?”
“일단 최대한 시간을 끌어주세요. 저도 빠르게 개발을 완료해 볼 테니까요.”
노트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승호는 최대한 조용히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비틀.
휘청 이 던 몸이 한창 시연회 준비를 하고 있던 미라클 데이터 쪽으로 넘어갔다. 승호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사과 했다.
“아, 죄송합니다.”
준비를 하던 직원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조심 좀 하세요.”
순간 툭. 툭툭.
승호는 오른 손으로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과 연결 되어 있는 미라클 데이터의 노트북을 건드렸다. 쉴 세 없이 오가는 0과 1의 흐름에 무작위로 간섭했다. 승호 자신도 어떤 일이 생겨날지 모를 정도였다. 옷을 털며 일어난 승호가 유유히 문을 통해 나가고.
당황한 미라클 데이터 직원이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어, 이거 갑자기 왜 이래.”
“이 대리 뭐해. 어서 검색 화면 열지 않고.”
“아, 아니. 화면이 갑자기 멈췄습니다.”
“뭐?”
“이, 일단 재부팅 해보겠습니다.”
직원이 재빨리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당황한 직원이 반복적으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뭐, 뭐지······.”
끝내 노트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