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75)
탑 코더-75화(75/303)
# 75
잃어버린 코인
한국 국정원.
해외정보 담당 요원에게 CIA로부터 한 통의 연락이 도착했다.
“강승호··· 강승호······.”
요원이 같은 말을 중얼 거렸다.
요청은 강승호라는 인물에 대한 신원 조회.
아주 간단한 요청이었다. 이런 일은 서로 간에 왕왕 존재했었다. 요원이 중얼 거리는 이유는 그 이름이 낯설지 않아서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국정원 인물 데이터베이스에 강승호를 입력했다. 수초가 지나고 나서 화면에 사진과 간단한 약력이 나타났다.
“천사 보육원 출신. 고졸. 군대는 3사단 만기 전역. 그리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 더 게이트 우승. 현재 시내소프트 근무 중.”
요원이 차분히 적혀 있는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특이사항. 해킹능력 특급. 관련 케이스가······.”
-****년 **월 **일. 작전명 증발.
-기여도 : 90% 이상.
-열람 권한 : 갑.
내용을 확인한 요원이 마른 침을 삼켰다. 국정원 관련 사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화면에 나타난 열람 권한 갑(甲).
자신과 같은 일반 요원이 아닌 국장급 이상이 돼야 볼 수 있는 내용이라는 뜻이었다.
사건의 중요도가 그 만큼 높다는 뜻으로 강승호라는 인물이 그 만큼 국가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사람 도대체 뭐야······.”
작전명 증발.
그 사건이 무엇이었기에 갑 급 권한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자신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지 궁금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허락된 건 거기 까지였다. 요원은 호기심을 억누르고 관련 내용을 CIA 쪽으로 송부했다.
“신원 확인 이상 없음.”
***
라스베가스 크라운 호텔.
장민이 묵고 있던 숙소는 한 마디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탁자위에 놓여 있던 컴퓨터의 잔해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넘어진 의자와 탁자들은 상황의 긴박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장을 살피던 FBI 직원 블레이크가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신원 확인 결과 이상 없습니다.
“알겠어.”
연락을 끊은 블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이 열리고 승호가 들어왔다.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승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게 도대체······.”
블레이크가 승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강승호씨. FBI 국가안보부 블레이크입니다.”
승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아··· 네······.”
“올라오시면서 들었겠지만 난감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 때문에 이분들이 납치당했다고······.”
“네. 최근 북한을 비롯한 여러 테러 집단들이 코인 시장을 돈 벌이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거래소 해킹도 그 중 하나고요. 그래서 능력 있는 해커들을 모집 혹은 납치해 자신들의 수익을 늘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은 그들이 여기에선 납치를 자행했다는······.”
“네. 저희 쪽 요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해당 스파이웨어의 복구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걸 해낸 사람을 PS 단체에서 추적해 이곳 까지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말을 해나가던 블레이크가 승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아 PS는 저희가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올려놓고 있는 단체입니다. 그 PS라는 집단이 깊은 감명을 받고 보시다 시피.”
블레이크가 난장판이 되어 있는 호텔 방 내부를 가리켰다. 설명을 들은 승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라스베가스.
미국 한 복판에서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만약 시상식 참가가 조금만 늦었으면. 어디에선가 목숨을 위협받고 있을지도 몰랐다. 승호가 입술을 축이며 흠칫 몸을 떨었다. 블레이크가 굳은 표정으로 승호를 보며 말했다.
“여기 까지 모신 이유는 협조를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놈들을 잡아야 하는데 증거의 대부분은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터라.”
“제, 제가요?”
“올해 체크포인트 대회에서 우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주시하고 있는 블랙워치 공격도 막아냈고. 저희 측에 근무하는 요원도 당신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아······.”
“이곳은 저희 FBI에 의해서 철저히 보호 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 까지 안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승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굳어져 있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PS 라는 놈들이 제가 여기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게 걱정이었다. 여기서야 FBI가 보호 한다고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또 어쩐단 말인가.
“그런 걱정은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납치된 비낸스 직원들에 의해 강승호씨 신분이 노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이번 사태를 일으킨 놈들을 일망타진 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승호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블레이크라는 남자의 말대로 자신의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놈들을 잡아야 한다.
한 가지 선택지 밖에 남지 않았다.
***
FBI 사이버범죄 대응 서비스부.
에단이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물어뜯고 있었다. 에단을 보며 그의 상사 로건이 물었다.
“에단 어때? 알아낼 수 있겠어?”
에단이 잘근 잘근 입술을 씹으며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려 나갔다.
“일단 해볼 수 있는데 까지 해보고요.”
“네 말대로 그 강승호라는 사람도 합류 시켰어. 크라운 호텔에서 작전 진행하게 될 거야.”
“체크 포인트 우승했다는 건 기본은 됐다는 뜻일 겁니다. 거기에 저도 못한 스파이웨어 복원 까지 해냈어요. 실력은 확실합니다.”
“그렇겠지. 그 놈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납치 까지 하려고 했으니까.”
에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생각보다 위험했고, 위협적이었다.
“설마 죽이지는 않았겠죠.”
“모르지. 그러나 늦으면 늦어질수록 알렉 스미스, 류웨이, 메이든 베이커, 루카스 피셔 이 네 명의 생사가 불투명 해지는 것만은 사실이야.”
“······.”
그때 사무실에 설치된 보안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로건이 급히 손을 뻗어 전화기를 잡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로건이 굳은 표정으로 전화기를 끈 순간 에단은 직감했다.
“설마······.”
로건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 미친 새끼들이!”
“66번 국도변 수풀 사이에서 발견 됐어. 그래도 아직 세 명 남았다.”
에단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돈을 해킹해 간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선을 넘었다.
같은 소식이 블레이크에게도 전해졌다.
“···알겠습니다.”
블레이크가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승호를 바라보았다.
“일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스파이웨어가 데이터를 보내던 서버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추적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단 수집된 지갑 주소들을 이용해 인터넷상에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을 추리는 중입니다.”
“더 빨리는 안 되겠습니까?”
더 빨리.
그 말은 원전 사고를 겪을 당시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그 말을 한다는 이유는.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한 명이 발견 됐습니다.”
한 명이 발견 되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음산하게 들리는 걸까. 승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이어지는 침묵.
승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달았다.
떨림 보다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이런 미친······.’
함께 있던 장민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말도 안 돼··· 왜 내게 이런 일이······.”
겨우 언론으로 흘러나가는 걸 막았지만 이 정도면 비낸스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전 세계에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투자금은 빠져 나갈 것이고, 코인 시장에도 큰 충격을 주게 된다.
그러면······.
말 그대로 떡락.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때 장민의 전화기가 불길한 진동음을 토했다. 전화를 받은 장민의 표정이 시시각각 굳어졌다.
“어, 어··· 뭐? 200억? 젠장. 당장 차단해!”
“거래 중지하란 말··· 잠깐만.”
장민이 승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저희 쪽 거래소로 공격이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납치당한 저희 직원들이 관리자 계정 정보에서부터 시스템 구조 까지 전부 털어 놓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털린 금액만 벌써 200억. 거래소가 전 방위 공격을 받고 있어서 당장 거래소 문을 닫아야 할 상황입니다.”
장민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450억에 이어 이번 사고로 200억이 털렸다. 정말 거래소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온 건 지도 모른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혹시 운영 중인 proxy 서버 있습니까?”
“네 있긴 하지만 그건 왜······.”
“지금부터 들어오는 모든 트래픽을 이쪽 호텔로 보내세요.”
“네, 네?”
“거래 데이터를 비롯해서 전부.”
승호의 단호한 말에 블레이크도 의문을 표했다.
“여기 호텔이 그런 부하를 감당 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저희 FBI 중앙 서버 쪽으로 보내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분석 할 수 있습니까? 그걸 못해서 절 찾아온 것 아닌가요.”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
“입씨름 할 시간 없습니다. 이쪽으로 전부 보내세요. 그러면 누가 어디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건지 밝혀낼 테니까.”
***
워싱턴 DC FBI 본부.
FBI 국장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직 인가?”
“네.”
“확인 예상 시점은?”
“미정입니다.”
“휴우······.”
국장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납치를 당한지 벌써 한 시간.
아직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국도 주변 CCTV를 샅샅이 뒤졌으나.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CCTV가 해킹 당했거나. 적들이··· 영리하거나.”
“본토 한 복판에서 납치, 살인이라니. 화이트 하우스에서도 지시 내려왔네. 모든 자원을 총 동원해서 발본색원 하라고.”
“그래서 CIA를 비롯해서 NSA에도 협조 요청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네.”
“NSA에서 운용하는 프리즘 시스템이면 금세 알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PS가 그들이 지원하고 있는 단체 일지도 모르고.”
“코인을 탈취해 NSA 운영자금을 모은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더럽게 꼬여 있었다.
“그들에게 사람 목숨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오로지 하나 국익.”
“젠장! 젠장!”
“지금은 저희 내부 팀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습니다.”
“섭외 했다는 체크포인트 우승자는?”
“뭔가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아직 성과는 없습니다.”
그때.
뚜르르르.
뚜르르르.
국장실에 설치된 보안 전화가 신호음을 토했다. 국장이 급히 전화를 받았다.
“뭐?”
국장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거칠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번에는 144번 국도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기에 부하직원도 입술을 꾹 다물며 침묵 할 수밖에 없었다. 거친 숨을 내쉬던 국장이 전자담배를 꺼내 물었다.
“젠장······.”
허공으로 하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