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86)
탑 코더-86화(86/303)
# 86
선의의 경쟁
고동만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양재 R&D 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있었다. 옆에는 관련 분야 전문가인 네트워트 사업부 부장이 자리해 있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때? 우리가 데리고 있는 박사급 인력들이 부족한 건가 아니면 저 강승호라는 친구가 뛰어난 건가?”
부장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우물쭈물 거리며 영상을 지켜보았다. 고동만이 그런 부장을 채근했다.
“아주 중요한 문제야. 만약 전자라면 인재를 뽑는 우리 인사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말이니까.”
“조, 조금만 더 지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고동만이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서는 승호가 보드마커를 들고 수식을 적어 나가고 있었다.
-그게 아닙니다. 이 수식의 의미는 현재 트리에 소속된 각 노드들이 가진 path score를 계산해 적정한 path를 완성. 완성 된 path에서 데이터를 복호화 하자는 겁니다.
-자, 잠시 만요. 말씀 하신대로면 노드들이 가진 path score를 계산해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여기 수식 중 어느 부분이 그걸 계산하는 건지.
연구원 중 한 명 화이트보드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120*90 화이트보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수식.
승호가 그 중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 부분입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고동만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보고 있으니 굳이 자네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크, 크흠.”
네트워크 사업부 부장이 괜한 헛기침을 했다. 사업부 부장이면 한 사업부의 책임자. 연구원들의 실력이 곧 자신의 실력이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사업부 부장은 여전히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사이에도 승호의 설명은 계속 되고 있었다.
승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또 질문 있으십니까?”
이미 질문만으로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실제 작업을 해야할 시간이었다.
“없으면 바로 작업 시작하시죠.”
승호의 말에 인력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중에는 5G 기지국에 들어가는 칩을 개발하는 연구원도 칩 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연구원도 있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 두 개가 합쳐져 칩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분야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흔히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라 부른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는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웹이나 스마트 폰에서 사용하는 앱 개발과는 또 다른 분야로 대부분 C언어를 사용하여 개발한다.
승호가 해야 할 일은 방금 설명한 수식을 C언어로 구현하는 일.
구현한 내용을 칩에 이식하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구현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에 관련 알고리즘이 명확하게 나와 있으니 그대로 구현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을 칩에 이식해서 정상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는 최적화된 소프트웨어 개발.
저 사양의 칩에 들어갈 소프트웨어는 약간의 비효율도 용납되지 않는다. 승호는 구현을 하면서 이곳에 오기 전 읽었던 칩 사양을 떠올렸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저 스펙을 사용하고 있었어.’
당연한 일이었다. 고 사양의 칩을 사용하면 성능이 올라간다. 대신 프로그램을 러프하게 짜도 된다. 코드는 약간의 중복이 허용되고, 이중 for 문을 사용하여 CPU 센서티브 하게 해도 된다.
왜냐하면 어차피 칩에서 커버가 가능하니까.
그러나 칩 성능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최대한 최적화를 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데스크 탑의 하드용량에는 한계가 있는데 수 백 개의 게임을 설치 할 수는 없 듯이.
승호는 칩 성능에 맞춰 최적화를 진행했다. 한 번 자리에 앉아 프로그래밍을 시작하자 주변은 전혀 인식 되지 않았다. 손끝에서 시작되어 모니터에 나타나는 활자들만이 감각을 통해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세 시간 쯤 지났을 때 프로그래밍이 끝이 났다. 이제 칩에 이식해 정상 작동을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승호는 주변에 위치한 연구원에게 다가갔다.
“작업 결과 파일 서버에 올렸습니다. 테스트 한 번 해봤으면 하는데요.”
“아, 알겠습니다.”
연구원이 파일 서버를 뒤져 승호가 올려놓은 파일을 찾아 칩에 이식했다.
1% 진행중······.
5% 진행중······.
9% 진행중······.
프로그래스 바가 올라가며 승호가 만든 결과물이 칩에 설치되었다. 진행 상태를 지켜보던 연구원이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개발이 끝났네요.”
“어차피 이건 알고리즘만 잘 나오면 개발이야 금방 끝나는 작업이니까요.”
“그렇긴 합니다. 칩에 이식해서 테스트하는 과정이 더 오래 걸리더라고요. 실제로 스마트 폰을 붙여서 기지국이 정상 작동하는 지 까지 봐야 하니. 그걸 또 디버깅하고 수정 하려면. 쩝.”
말을 하던 연구원이 입맛을 다시며 인상을 찡그렸다.
“오늘도 야근 하겠네요.”
승호가 살짝 입 꼬리를 올렸다.
“오늘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네?”
“제가 여기 까지 와서 야근 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승호가 슬며시 노트북과 연결된 칩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0과 1의 세계.
승호는 주의 깊게 그 세계를 살피며 말했다.
“설치 다 된 것 같은데 테스트 진행 하시죠.”
당황한 연구원이 급히 테스트를 진행했다.
고동만이 카메라를 통해 전송되는 화면을 보며 손에 깍지를 끼고 턱을 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본 것 같은데 어떤가?”
사업부 부장이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아, 아직······.”
“세미나를 녹화한다는 명목으로 설치하긴 했지만 저 카메라를 언제까지 돌릴 수는 없네. 그렇다고 사장인 내가 직접 연구소를 찾아가서 지켜 볼 수도 없지 않겠나?”
빨리 대답을 하라는 압박에 부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크흠······.”
부장은 입술을 깨물며 침음을 흘렸다.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기에는 집에 있는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눈에 밟혔다.
“그냥 자네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네. 부담 없이 말해봐.”
“저는······.”
부장이 말을 하려고 할 때 고동만이 한 마디 덧붙였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객관적으로 봐도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저 강승호라는 친구 실력이 뛰어난 겁니다. 저렇게 실시간으로 디버깅을 진행하는 연구원은 지금껏 본적이 없습니다.”
고동만이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맛을 다셨다. 잠시간 이어진 침묵의 시간.
부장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내가 잘 못 말했나? 그냥 박사들 실력이 떨어진다고 했어야 했나.’
이내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건 아니야. 연구원들 실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 그건 내가 보증한다.’
째깍.
째깍.
초조하고 긴장된 시간이 흘러갔다. 고동만의 한 마디면 당장 내일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지 이미 와이셔츠 뒤편이 흠뻑 젖어 버렸다. 그렇게 정적의 시간이 끝나고 고동만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도 자네와 같아.”
“휴우······.”
그 한 마디에 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건··· 우리 연구원들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야······.”
화면에서는 승호가 빠르게 수정을 마치고 다시 적용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돼 일어난 일.
확실히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승호를 직접적으로 상대하고 있는 연구원의 놀라움은 더 큰 것이었다.
“벌써 수정 끝났습니까?”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연구원이 다시 파일 서버를 확인해 칩에 설치한 프로그램을 새롭게 내려 받았다.
1% 진행중······.
5% 진행중······.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서 공부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승호씨 실력 정도면 반도체 학회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서······.”
“딱히 네트워크 관련 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네?”
“정확히는 대학도 나오지 않았어요.”
“네에?”
목소리에는 충격과 경악이 가득했다.
“독학으로 알게 된 겁니다.”
연구원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 독학으로··· 공부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승호가 어깨를 으쓱 거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네.”
“······.”
연구원은 그저 멍하니 승호를 바라보았다. 독학으로 이런 수준의 지식을 뽐내는 게 말이 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되질 않았다. 해외에서 발표되는 논문을 숙지하고, 관련 내용을 개선 시켰다. 박사급 인력도 어려워하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선진에서 수 년 간 실무 경험을 쌓은 박사급 인력 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다.
‘이, 이런 게 재능 인가.’
재능.
연구원은 그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오늘 따라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
양재 R&D 센터.
이슈가 차례대로 해결될 때마다 연구원들 사이에 승호의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천재다.
-사실 하버드 최연소 박사 받고 왔다더라.
-회장님이 키우고 있는 핵심 인재다.
여러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누군가 진실을 말했다.
-그냥 평범한 고졸에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하던데.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금세 묻혔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까. 그런 갖가지 소문과 억측 속에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남은 이슈도 세 번째 핸드오버 레이턴시 개선 한 건.
그간의 승호가 보인 활약 덕분인지 연구원들은 승호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가 내리는 업무지시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어제 테스트 결과 나왔나요?”
“여기 있습니다.”
“흐음. 아직 생각만큼 성능이 안 나오네요.”
“MSC 팀에 칩 설계 개선할 수 있는지 문의해 두었습니다.”
“알고리즘도 더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한 번 더 검토해 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승호는 연구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자신이 해야 할 작업에 열중했다.
연구실로 들어서던 고동만이 그 모습을 확인하곤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선진 사람이라 해도 믿겠어. 어떤가? 자네가 원하면 자리는 언제든지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생각 없습니다.”
“아까워.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단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찾아뵈려 했었는데 곧 일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그래서 온 거야. 여기 인사하지.”
고동만의 뒤에서 흰 피부의 푸른 눈동자. 170은 넘어 보이는 훤칠한 키의 미녀가 나타나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예카테리나 에요.”
승호가 손을 맞잡았다.
“강승호 입니다. 그런데 누구.”
고동만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빅스 플랫폼 팀장. 자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함께 왔네.”
승호의 시선이 예카테리나를 향했다. 그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회사에 강승호라는 이름이 많이 들리더군요. 스마트 폰 쪽에서도 몇 가지 이슈를 해결하고 이제 네트워크 관련 이슈를 해결 중이시라고.
“네.”
“회장님께서 절 부르셔서 직접 오더를 내리셨습니다. 빅스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이슈가 있으면 강승호씨께 한번 문의 드려보라고. 그러나 전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승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경쟁을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예카테리나의 두 눈에는 미약하지만 적의가 드러나 있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그쪽이 만든 인공지능과 저희가 만들고 있는 걸 경쟁 시켜서 승자를 가려보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