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87)
탑 코더-87화(87/303)
# 87
선의의 경쟁
승호의 시선이 고동만을 향했다. 고동만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여기 예카테리나 박사님은 우리가 특별히 초빙한 AI 전문가시네. 하사비스와도 동문으로 초기 버전의 델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함께 지켜봤지.”
“무슨 말씀인지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경쟁이란 걸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예카테리나는 승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바둑 아니지. 그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체스부터 시작하면 좋겠군요. 서로간의 인공지능으로 체스 게임을 펼쳐서 승자를 가리는 겁니다.”
승호의 시선이 고동만을 향했다. 고동만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이 분이 한 가지 생각에 꽂히면 다른 건 잘 안 보시는 분이야. 가끔 오해를 받을 때 가 있어.”
승호는 순간 에이든을 떠올렸다.
‘천재들은 원래 저런 건가.’
승호는 의문을 접고 예카테리나를 보았다.
“만약 제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제야 예카테리나가 승호를 보았다.
“빅스 프로젝트를 접겠습니다. 그러면 선진은 그쪽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될 겁니다.”
갑작스런 폭탄선언에 고동만이 급히 나섰다.
“박사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갑자기 프로젝트를 접으시겠다니요.”
“계약 조건에는 그렇게 해도 상관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제 자존심을 건들이셨으니. 저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 보일 수밖에요. 여기 이분이 아니라 제가 만드는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회장님께서 말씀 하신 건 빅스의 가치가 아니라 그저 이슈 사항 몇 가지 있다면 같이 의논해 보자. 뭐 이런 취지였습니다.”
“왜 그 의논을 뇌 공학에 관한 학위도 없고, 딱히 관련 분야 논문 실적도 없는 사람과 해야 합니까?”
날카로운 예카테리나의 반응에 고동만이 쩔쩔 메며 겨우 입을 열었다.
“꼭 학위나 논문이 그 사람의 실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지는 않지 않습니까. 에디슨도 겨우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 입니다. 그런데도 세기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이건 인간의 두뇌가 움직이는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걸 프로그램 상에 구현해야 하는 일입니다. 에디슨. 그가 현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뇌 과학 분야의 전문가로 평가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인공지능 전문가가 전 세계에 몇 명이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10명? 20명?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예카테리나가 거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인간에게 바둑으로 이기는 델타 같은 인공지능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 인원들 대부분이 포트에서 델타를 만드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단언컨대 에디슨이 현시대에 살았다고 해서 인공지능을 만들지는 못했을 겁니다.
예카테리나가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내자 고동만은 그저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 뿐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예카테리나의 숨소리가 살짝 거칠어져 있었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 어지간히 분한 모습이었다. 승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고동만을 보았다.
‘고 사장님이 쩔쩔매는 걸 보면 이분이 확실히 능력자 이긴 한 모양인데······.’
다시 예카테리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얀 피부에 금발.
분홍 립스틱이 반짝 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하는 말 중 틀린 말은 없었다. 실제로 인공지능 분야는 세계적인 석학들도 어려워하는 분야였다.
그러나.
예카테리나가 말을 해 나갈수록 승호는 기분이 나빠졌다.
‘맞는 말인데 날 대상으로 저 말을 하는 게 영.’
그 찰나.
에카테리나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조언을 구하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이제 다시는 제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경쟁. 그걸 해보면 답이 나올 테니까.”
살짝 상기된 볼이 그녀의 흥분을 짐작케 했다. 대단한 실력자인지 고동만도 더 이상 입을 떼지 못했다. 승호는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각종 정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승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카테리나.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고 생각했는데 2015년도 네이처지에 DDN(Deep dive Network)알고리즘을 게재하셨군요. 해당 논문이 증명한 결과는 오로지 화면상의 픽셀 정보만을 가지고 인공지능이 게임을 하도록 만들어 유저가 파악하지도 못했던 히든 클리어 방법까지 찾아내는 경이적인 결과. 거기 공동저자가 예카테리나 소르키나. 당신이었군요.”
승호의 말에 굳어져 있던 예카테리나의 얼굴이 조금은 풀어졌다.
“유명한 논문이죠. 델타의 기원이기도 하고. 지금 만들고 있는 빅스는 델타를 뛰어넘는 아이가 될 겁니다.”
승호가 예카테리나를 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그 논문에도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승호가 슬쩍 물어본 말에 그녀는 즉각 반응했다.
“해당 논문에 나온 내용은 게임을 할 때 마다 D. 즉 델타라는 사람을 옆에 두고 의견을 물어가는 방식. 만약 델타의 판단이 잘못되면 인공지능은 틀린 의견을 내게 되겠죠. 그래서 델타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의 두뇌와 가장 비슷하다고 알려진 DNN(Deep neural network: 심층 신경망 알고리즘)를 적용했어요.”
승호가 예카테리나를 또렷이 쳐다보았다.
“그게 바로 제가 말씀 드리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심층신경망 알고리즘이 제대로 적용된 게 바로 포트의 델타. 그러나 빅스는 적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아직 빅스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닌가요?”
고동만은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승호를 보고 있었다. 예카테리나의 눈빛이 살짝 사납게 변했다.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뭐가 그리 분한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참고로 저는 뇌 공학의 전문가도, 관련 논문을 발표한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더군요.”
예카테리나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래서 그쪽은 DNN 적용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요?”
승호가 어깨를 으쓱 거리며 의뭉을 떨었다.
“글쎄요. 어쩌면 가능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DNN을 적용하는데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 하는 게.”
“그런 장난 스런 말이 통할 자리가 아닙니다.”
승호가 눈 가늘게 뜨며 예카테리나를 보았다.
‘네이처지라면 세계적인 학술지. 거기에 DDN 논문을 게재 했다는 건 정말 엄청난 실력자라는 뜻이다. 저 친구를 우리 회사로 데려 올 수 있다면 추후 큰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해.’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비록 독단적인 면이 조금 있어 보이지만. 저 사람이 제안한 경쟁에서 이긴다면?
그 정도의 단점은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지 않을까.
결정을 내린 승호가 입을 열었다.
“장난이라니요. 몇 가지 키워드만 드리자면 TPU, 몬테카를로 탐색 알고리즘, 그리고 페타 급 데이터.”
“TPU라면 GPU보다 벡터 행렬 계산에 특화된 칩이잖아요. 현재 포트에서만 개발해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몬테카를로 탐색은 주로 바둑이나 체스 같은 게임에 사용되는 의사결정 악고리즘. 그걸 이용해 뭘 한다는 거죠?”
날카로움은 호기심으로 변해있었다.
“더 자세히 알려달라는 말입니까?”
찌릿.
예카테리나는 입술을 깨물 뿐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승호가 그런 그녀를 보며 웃어보였다.
“말씀을 못하시는 걸 보니 궁금하긴 한 모양이군요.”
“정말 알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걸 이용하면 DNN 적용의 이슈가 해결 되는 겁니까?”
연달아 묻는 질문에는 다급함 마저 서려있었다. 승호의 태도가 한층 더 느긋해졌다.
“예카테리나 박사님. 혹시 이직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습니까?”
이직이라는 말에 고동만이 사색이 되어 입을 열었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그러나 예카테리나가 고동만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렸다.
“상관없어요.”
“좋군요. 마침 저희 회사에 실력 있는 뇌 공학자가 필요한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안은요?”
“체스 대결 받아 드리겠습니다. 대신 조건을 조금 바꿨으면 하네요. 만약 제가 이긴다면 예카테리나가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걸로. 연봉은 저희 회사 테이블에 맞춰서.”
그러자 고동만이 기함을 토했다.
“자, 자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무리한 조건을 거는 경우가 어디 있나. 이분은 우리 빅스 플랫폼의 팀장이야.”
이내 이어진 승호의 말에 고동만이 입을 닫았다.
“만약 제가 진다면 선진 전자에 입사하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여기 예카테리나 팀장님 밑에서 일해도 되고요. 부하직원이 되는 거니 당연히 방금 말씀 드린 내용들도 공유해 드려야 겠죠. 어떠세요?”
승호가 예카테리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지긋이 승호를 보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
그 안은 마치 심해처럼 깊어 보면 볼수록 정신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 만큼 매력적이라고 해야 할까. 두 눈만 보고 있을 뿐인데도 심장이 떨리는 느낌이었다. 승호를 보고 있던 예카테리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제가 질 일은 없을 테니까요. 당신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곧 알게 되겠군요.”
승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네. 좋은 승부가 되길 바랍니다. 아! 대결은 3개월 후에 하시는 걸로 하시죠. 저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 ”
그러나 그녀는 승호의 손을 잡지 않은 채 쌩 하니 스쳐 지나가 버렸다. 눈치를 살피던 고동만이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라일락 향이 승호의 코끝을 스쳤다. 승호가 씁쓸히 중얼거렸다.
“선진전자 사장도 힘들게 사는 구나······.”
언제나 갑은 많이 가진 자의 것이다.
그것이 돈이거나 지식이거나 상관없이.
***
승호가 안 보이는 곳 까지 쫓아가고 나서야 고동만이 입을 열었다.
“박사님. 그런 무리한 결정은 서로에게 좋지 않습니다.”
예카테리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전 무리한 결정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방금. 이직하겠다는 말. 그런 말을 함부로 하시는 건······.”
“그만. 만약 정말 빅스가 저 분이 만든 인공지능에게 진다면 더 이상 이곳에서의 연구는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분명 최초 선진에 협력할 때 말씀 드렸습니다. 델타를 이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겠다고. 만약 빅스에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옮겨야지요.”
“전 세계에서 선진만큼 박사님께 투자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고 보십니까? 그 곳으로 간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어차피 계약서는 쓰지 않았으니 제가 연락해서 방금 전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이번에도 예카테리나는 고동만의 말을 가로채고, 서늘한 냉기가 내려앉은 표정으로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그만 하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말로 한 것도 약속입니다. 그걸 깨라는 건 제 자신을 부정하라는 것과 같은 말. 절 기업인의 관점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그러고는 휑하니 몸을 돌려 사라져 버렸다. 고동만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