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88)
탑 코더-88화(88/303)
# 88
독보적 기술
승호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아 남아있는 작업을 진행하자 그간 친해진 연구원이 다가와 놀란 표정으로 엄지를 추켜세웠다.
“우와, 역시 승호씨 대단 합니다.”
“네?”
“저기 러시아에서 온 얼음 마녀를 상대로 한 번도 지지 않았잖아요.”
“아··· 예카테리나 박사님?”
연구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 R&D 센터에서는 이미 유명합니다. 인공지능 빅스를 이끄는 팀장.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차가운 냉기만이 흐른다. 누가 그녀를 상대할 소냐.”
“하하, 무슨 판타지 소설 같습니다.”
“거기 근무하는 동기가 해준 말입니다. 일할 때도 아주 칼 같아서 대충해놓고 가면 다음날 불호령이 떨어진다 하더라고요. 그런 그녀를 상대로 지금까지 세 마디 이상 나눈 사람이 없습니다.”
“왜요?”
“지식으로 압살해 버리니까요. 그녀가 가진 지식의 방대함에 웬만한 박사들은 명함도 못 꺼냅니다. 한 두 마디 나누면··· 바로 깨갱하고 물러서는 게 대부분입니다.”
승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엄청나게 똑똑한가 보죠?”
연구원이 마치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처럼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경이적이다. 공포 스럽다. 세상이 바뀔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승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들어본 말들이네요.”
연구원의 두 눈썹이 추켜세워졌다.
“아? 승호씨도?”
또 다시 끄덕.
승호의 반응에 연구원이 손뼉을 마주 쳤다.
“역시 천재끼리는 통하는 건가······.”
“하하, 연구원님도 충분히 천재 십니다. 그러니 어제 제가 말씀 드렸던 핸드오버 레이턴시 0.5ms 이내로 개선시키는 작업. 마무리 됐겠죠?”
연구원이 울상을 지으며 중얼 거렸다.
“역시··· 천재들은 다 똑같아. 불가능한 일을 마치 아주 쉬운 일인 것처럼 말하네.”
승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걸 아직도 못하셨단 말입니까?”
“그, 그걸 어떻게 하루 만에 합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그러면 같이 보죠. 저도 이제 이 일 마무리하고 본사로 들어 가봐야 합니다..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인공지능 말씀이십니까?”
“네. 3개월 후에 체스 대결을 펼치려면 빡세게 준비해야 해서요.”
“전 승호씨를 응원하겠습니다.”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앞으로 회사가 발전하려면 인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세간의 평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가 탐이 났다. 생각을 마친 승호가 일에 몰두 했다.
-퇴근할 시간입니다♩♬♪
저녁 6시 30분.
양재에서 퇴근한 승호는 바로 고속 터미널로 이동했다. 청와대 초청에 가기 전 양복 한 벌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지금껏 회사 면접이라고 본 곳은 시내 소프트가 전부였다. 그곳에 면접을 보러 갈 때도 양복은 입지 않았다.
승호는 이참에 양복 한 벌을 맞출 참이었다. 그리고 막상 양복을 맞출 생각을 하니 이것저것 부족한 게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변변한 구두도 없고, 벨트에 넥타이. 시계. 지갑까지 사려면. 꽤 시간을 들여야겠는데······.”
대략 살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백화점입구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향기와 화려한 불빛이 오감을 자극했다. 승호는 담담히 대리석 바닥을 밟으며 조금 씩 걸음을 옮겼다.
평일 오후지만 백화점 안은 사람은 가득했다. 승호는 정말 궁금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많을까. 세상에 잘 사는 사람이 이리도 많단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자신에게 꿈의 공간이었다. 똑같은 옷도 인터넷에서 사면 만 원이면 될 것을 백화점에서 사면 오 만원이 넘어간다. 승호의 선택은 당연히 인터넷이었다.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돈 조차 변변치 않았기에 수십 번을 고민하고 사야 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꿈이었던 공간을 자유로이 이용하는 사람은 넘치고 넘쳤다.
그리고.
이제 자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폴 스미스 매장에 들러 지갑을 하나 골랐다.
“이걸로 할게요.”
“네. 고객님. 250,000원 결제 해드리겠습니다.”
지갑 하나에 25만원.
그러나 자신의 통장에 있는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결제를 위해 카드를 내밀었다.
반짝 이는 금빛 카드.
그 카드를 보는 순간 직원의 눈빛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건 믿음 골드 카드잖아.’
믿음 카드 사에서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발급되는 것으로 직원 교육을 받을 때 숙지해야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해당카드는 현금 자산 50억 이상인 고객들에게 발급되는 카드 입니다. 응대에 한층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 분들이 곧 저희 신성 백화점의 VIP 고객이 될 확률이 높으니까요.
직원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공손히 두 손으로 카드를 받아들었다.
“결제 해 드리겠습니다.”
“네.”
승호는 결제를 마치고 지갑을 가지고 나왔다. 다른 매장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양복.
벨트.
구두.
대부분의 매장에서 승호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처럼 자신의 낡은 옷차림을 보고 푸대접하는 경우는 없었다. 일반 고객처럼 대해주었고, 카드를 내미는 순간 한층 더 공손하게 대했다. 근 삼 백 만원에 달하는 돈을 썼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이래서 백화점에 오는 구나.’
자신이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런 건 차치 하고서라도 돈을 쓰는 재미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돈 쓰는 거라더니.”
그렇게 백화점을 한 바퀴 돌고 마지막 시계 매장 앞에 섰다.
흔히 남자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시계.
승호는 시계에 꽤 돈을 들일 생각이었다. 허세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언젠가 인터넷 뉴스에서 연예인이 차고 나온 수 천 만원에 달하는 시계에 관한 내용을 본 적 있었다.
뭐 이런 것도 뉴스거리냐는 생각과 함께 헛헛한 생각에 사로 잡혔었다.
‘저들은 내 1년 치 연봉을 손목에 차고 다니는데 난···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지.’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승호가 매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호가 선택한 브랜드는 블랑팡.
스위스 스와치의 최고위 브랜드로 러시아 대통령이 착용하는 시계로 유명했다. 하나에 천만 원은 기본 이었고 수 천 만원을 넘는 게 수두룩했다. 그래서 인지 매장 안에 몇 사람 있지도 않았다.
승호가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안내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보여준 건 승호가 미리 인터넷에서 보고 온 모델.
“이 제품은 미들 라인 제품으로 이름은 리만 그랜드 아쿠아 렁이라는 제품입니다. 이게 러시아 대통령께서 착용하셔서 꽤 화제가 된 적이 있는 모델입니다.”
직원의 설명에 승호가 살짝 가격표를 살폈다.
‘시계 하나에 1300만원 이라······.’
이곳에 오기 전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기는 했었다. 그러나 실물로 보며 가격표를 확인한 느낌은 또 달랐다. 약간은 비싸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보시면 시계 줄이 엘리게이터의 가죽을 사용해 착용감이 뛰어나고, 특유의 고급스런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나 사회 명사 분들이 좋아하시는 라인이죠. 한번 착용해 보시겠습니까?”
승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이 승호의 손목에 시계를 살짝 얹었다.
‘확실히 비싼 게 좋긴 좋아.’
때깔부터가 달랐다. 조명에 반짝이는 가죽이 소유욕을 불러 일으켰다. 돈은 충분히 있었다. 결심만이 남았을 뿐이다. 승호가 시계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이제 이런 걸 사는데 익숙해 져야겠지.’
얼마 전 수십억에 달하는 빌딩도 거래했다. 시계 가격은 겨우 1300만원에 불과했다. 생각을 마친 승호가 말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이내 값비싼 시계가 승호의 손목에 걸렸다.
***
한국 벤처 기업인 연합회.
청와대 만찬장에 초대를 받은 벤처인 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간편 송금 서비스.
O2O 택시 서비스.
음식배달서비스.
같이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벤처인들만이 아니라, 이미 기존 시장에서 공고히 자리를 잡고 있는 바나나 톡과 넥스터의 CEO도 있었다. 승호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에서 먼저 간단히 다과를 나누고 청와대로 이동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승호가 눈을 반짝였다.
‘저 사람도 왔네.’
안재현.
미라클 데이터의 사장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눈을 마주 치는 순간 안재현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어지간히 기분이 나쁜 눈치였다. 승호가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네요. ZONE서비스 도입이후 처음 인가요?
승호에게 다가온 사람은 바나나 톡 CEO. 승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았다.
“네. 오랜만입니다. 의장님.”
“서비스 이용 만족도가 대단히 높아요. 직원들 칭찬이 자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앉아 있던 다른 회사 CEO들도 일어나 승호에게 다가왔다.
“하하, 저희도 해당 서비스 도입 결정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부서 직원들 만족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PASS CEO 최준성입니다.”
승호가 공손이 명함을 받아들며 답했다.
“아,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서 먼저 승호와 인사를 나누겠다며 다가왔다. 이미 ZONE서비스를 도입한 곳이 모인 사람들 중 30%가량 되는 것 같았다. 승호는 못내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꽤나 성장했다는 방증이겠지.’
그렇게 벤처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안재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유니콘 육성 프로젝트에 선정 되서 10억이 넘는 나랏돈을 받은 걸로 아는데. 그걸로 비싼 시계나 차고 다니는 걸 보니 겉멋만 잔뜩 들었어.”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분위기가 싸늘해 졌다. 승호가 고개를 돌려 안재현을 바라보았다.
“하하, 세금으로 사용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알아서 잘 했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이건 제 사비로 구매한 제품입니다.”
또 다시 툭.
“그걸 알게 뭐야.”
말하는 투가 너무 얄밉기 짝이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안재현에게 향했다.
“하하, 시계 좀 살 수도 있는 것 같은데.”
“자기 돈으로 자기 걸 사는데 뭐가 문제지.”
“너무 과한 반응인 것 같습니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승호 편을 들었다. 그게 안재현의 심사를 더 뒤틀리게 만들었다. 안재현이 한 마디 더 하려고 할 때 국내 최고 인터넷 서비스 기업 넥스터의 CEO 이정환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 근처에 있던 안재현이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미라클 데이터 안재······.”
그러나 이정환은 안재현을 지나쳐 바로 승호가 있는 곳을 향해 직선으로 걸어갔다.
“반갑습니다. 넥스터 이정환입니다. 이렇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요.”
승호가 일어나 손을 맞잡았다.
“네. 반갑습니다. CEO님. 시내소프트 강승호입니다.”
승호가 안재현이 있는 쪽을 향해 아주 살짝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