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101)
배신자의 동요는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뚜렷했다.
곧 놈이 삐걱거리며 표정을 수습했다. 하지만 이미 얼굴은 태풍경보가 내린 하늘처럼 심란했다. 본색인지 연기인지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어설픈 미소도 안 짓느니만 못한 꼴이었다.
어수선한 침묵을 깨고 3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개인면담 좀 하자. 둘 다.”
포크로 먹음직스럽게 익은 닭갈비와 양배추를 찍어 올렸다. 따끈따끈하게 녹은 모짜렐라 치즈가 쭉 늘어난다. 한입에 넣고 씹었다. 음.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맛도 모르겠다.
맞은편을 보니 김현조도 기계적으로 포크 질을 하고 있다. 3팀장과 함께 사라진 배신자를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원래 건영이 문제를 해결해놓고 나서 너한테 얘기하려고 했어.”
김현조가 포크를 내려놓고 말했다.
“걔 소속을 다른 팀으로 옮길 생각이거든.”
“네? 옮긴다구요?”
내 득달같은 질문에 놀랐는지, 김현조가 조금 늦게 대답했다.
“네가 실장이 됐는데 지금처럼 같이 일할 수는 없잖아. 너희 둘이 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직급이 달라지면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당장 널 옮길 수는 없으니 건영이가 옮겨야지.”
오늘 내 생일인가? 뭘 해도 되는 날인가? 로또를 사야 하나?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에선 흥분한 호르몬들이 부채춤을 췄다. 승진소식만큼이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눈물 나게 반가운 소식이다. 오늘을 내 자체 기념일로 삼을까 보다.
솟구치는 입꼬리를 가리기 위해 다시금 포크를 입에 넣었다.
맙소사. 쫄깃한 닭고기를 씹는 순간 입안에서 닭 한 마리가 홰를 치며 날아오르고, 달짝지근하고 아삭한 식감의 양배추가 혓바닥을 감싼다. 그리고 치즈,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치즈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내가 황홀해 하는 동안 김현조가 계속 말했다.
“다시 블랙아웃 팀으로 보내던가, 아니면 1팀이나 2팀인데······ 그런데 지금 2팀으로 가면 백 프로 손채영이란 말이야. 건영이를 거기다 쳐넣을 수는 없잖아. 무슨 유배 보내는 것도 아니고.”
김현조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기 지금 개판이거든. 손채영 때문에.”
“아. 손채영은 여전한가 봐요?”
“여전한 걸 넘어서 아예 통제불능이래. 꼭 내가 이 지랄을 해도 전속 계약 유지할 거냐고 기싸움 하는 느낌인데, 중간에 낀 새우들만 등짝 터지는 거지. 로드가 벌써 몇 명이나 나가떨어졌댄다. 마지막 놈은 회사 엿 처먹으라고 밴까지 끌고 튀었대. 우리 팀으로 올 신입도 재수 없었으면 그 팀으로 가는 거였는데, 죽다 살았지.”
과연. 손채영 주변에는 조용할 날이 없구만.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 수준이야. 하지만 만약, 배신자가 그 팀으로 가게 되면 손채영의 히스테리마저도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상대할 거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김현조가 덧붙이듯 말했다.
“조 실장은 포기하고 아예 손 놓고 있대고, 그 팀도 잘 굴러간다.”
듣고 있는데, 불현듯 등골이 섬찟했다.
잠깐만.
내가 손채영 담당이었던 미래. 거기선 분명 내가 실장이었지.
낯설고 잘생긴 청년이 나를 정 실장님이라고 부르며 따라다녔고. 반소매를 입고 있었던 걸 보면 아마도 여름 즈음. 설마. 밀물처럼 밀려온 불안감이 무릎까지 차서 출렁거린다.
“그런데요, 실장님.”
“어?”
“새로 오는 신입 매니저는 어떤 사람이에요? 남자예요?”
김현조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왜?”
“혹시 직접 보셨어요?”
“아직. 뭐, 면접 프리패스 스타일이라던데 인상은 괜찮은가 보더라.”
설마 아니겠지?
한동안 넵튠 앨범에 집중하느라 아예 신경도 못 쓰고 있었는데. 손채영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하긴 했지만, 그걸로 내가 봤던 그 미래가 변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찝찝한 마음에 미간을 좁히고 있는데, 김현조가 내 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계속 말했다.
“정확한 건 같이 일해봐야 알지. 너도 처음 봤을 땐 이런 놈일 줄 생각도 못 했어. 정장 풀 세팅하고 왔을 때만 해도 저놈 저거 일주일은 버티겠나 싶었는데, 그놈이 에스컬레이터 승진을 하네.”
“다 실장님 덕분이죠. 감사합니다.”
“됐어, 임마. 립서비스는 딴 데 가서 해. 어쨌든 파티해도 모자를 날인데 분위기가 이래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어차피 하루쯤 지나야 완전히 실감 날 것 같은데요.”
정말이다.
일단 오늘 퇴근하자마자 명함 감상부터 제대로 해야지.
“실장 단 거 정말 축하하고. 스케줄 봐서 넵튠 애들이랑 같이 축하파티 한번 하자.”
얘기하던 김현조가 문득 웃음을 흐리며 덧붙였다.
“그, 건영이한테는 티 내지 말고.”
“네.”
화제가 다시 배신자로 돌아왔다. 김현조가 갑갑한 한숨을 쉬었다.
“걔가 멘탈이 탄탄한 놈이라 지금 버티는 거지, 그 속이 속이겠냐. 그놈도 성격 좋지, 일 잘하지, 다른 팀이었으면 칭찬을 쓸어모았을 놈인데 너랑 동기라 반년 동안 관심 한 톨 못 받았잖아. 이제 너 승진까지 했으니, 속이 다 썩었을 거다.”
말없이 맥주만 마셨다. 김현조가 착잡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개고생해서 들고온 사이먼 리 곡도 어정쩡해져 버렸고. 난 사실 너희 둘이 사이가 좋은 것도 신기해. 저놈들 언제 치고받고 싸우나 조마조마해서 눈치를 얼마나 봤는데, 내가.”
치고받고 싶은 마음이야 지금도 굴뚝같다.
“만약 딴 놈이었으면 벨 꼬이고 열등감 느껴져서 벌써 관뒀을걸? 나도 연차가 더 낮았으면 너 때문에 심란했을 것 같은데. 건영이 걔가 진짜 성격이 좋은 거야. 책임감도 있고. 다른 팀 주긴 아까운 놈인데.”
김현조의 눈에서 안타까움이 뚝뚝 떨어진다.
당신은 속고 있어, 라고 말 못하는 이 답답함. 찐 고구마 한 박스를 목구멍에 쑤셔 넣은 것과 동급이다. 맥주 한잔을 원샷했지만 답답함은 표면만 쓸려나갔을 뿐이다.
닭갈비로 목구멍을 막고 맥주나 한 병 더 추가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쨌든 이 답답함도 이젠 끝이다. 머리를 쥐어짜며 심력 낭비할 필요없이, 배신자를 멀리 보낼 수 있게 됐으니까.
마침내 육 개월간의 고행에 종지부를 찍는 거다.
잘 가라, 배신자. 육 개월 동안 거지 같았고, 앞으론 보지 말자.
“아까는 놀라서 얘길 못했네. 축하해, 승진.”
이놈은 좀빈가? 아니면 전생에 나랑 부부, 아니 원수였나?
다시 빙긋이 웃는 얼굴로 돌아온 배신자와 마주한 순간. 하마터면 김현조와 3팀장이 보는 앞에서 도넛 상자를 내던질뻔했다. 간신히 상자를 책상에 내려놨더니, 배신자가 후식이냐며 태연히 말을 걸어온다.
맙소사. 끝나지 않는 악몽에 시달리는 기분이다.
3팀장이 고뇌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건영이 너는 그거 먹고 있고, 복······ 선우는 얘기 좀 하자.”
곧 라운지 테이블에 3팀장과 나, 김현조까지 세 명이 둘러앉았다.
“뭐야, 형? 얘기가 어떻게 된 건데?”
“너랑 정리했던 대로 얘기했지. 상황이 이러니 팀을 옮겨야겠다. 어디로 가고 싶으냐, 1팀이든 2팀이든, 블랙아웃 팀이든, 최대한 네 의견 반영해 주겠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지금 자리에 계속 있고 싶다네.”
맥주 말고 소주를 마실걸. 멀쩡한 정신으로 듣기엔 자극이 과하다.
“형, 제대로 얘기한 거 맞아? 이 팀에 계속 있고 싶다고 했다고? 아니, 그럼 선우 밑에서 일하는 게 되는 건데 그렇게 하겠다고?”
“육 개월 동안 넵튠 애들이랑 같이 울고 웃고 일했는데, 그리고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긴데 갑자기 소속을 바꿔버리면 앞으로도 마음에 걸릴 것 같다더라. 복덩이랑 일하는 것도 자기는 괜찮대.”
염병. 땡볕 아래 널린 오징어처럼 바짝바짝 말라가다가 이제 막 바닷물 맛 좀 보려는데, 배신자 이놈이 날 아예 맥반석 위에 놓고 구워버릴 셈인가.
오늘 하루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위가 쓰리다. 젠장, 내가 좀 더 섬세한 놈이었으면 지금쯤 위에 구멍이 숭숭 나서 에멘탈 치즈가 돼 있을 거다.
“걔가 그러니까 복덩이가 예전에 넵튠이 눈에 밟힌다고 성도원 걷어찼을 때 일도 떠오르고. 마음이 영 그렇더라고. 서로 불편할 테니까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해놓긴 했는데. 복덩이, 네 생각은 좀 어떠냐?”
내 생각? 내 생각은 더 이상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거다.
“제가 건영이랑 얘기 좀 해볼게요.”
“둘이?”
“네.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거든요.”
“하긴 요즘 둘 다 바빴으니까, 속 터놓고 얘기할 틈이 없었겠네.”
요즘이 아니라 6개월 내내 없었지.
김현조는 좀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3팀장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도넛을 먹고 있던 배신자가 벌써 끝났느냐는 듯 쳐다본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3팀장과 김현조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가 아닌 척 고개를 돌린다.
“나랑 얘기 좀 하자.”
내 말에, 설탕이 묻은 손가락을 핥던 배신자가 멈칫한다.
“얘기?”
“어. 얘기.”
연기 말고.
좁고 밀폐된 회의실. 대화를 나누기엔 딱 좋은 장소다.
듣는 귀가 많은 바깥보다는 회의실이 나을 거다. 배신자도 장소선택에 만족했다. 형광등 빛이 거슬릴 만큼 밝아서 조명은 아예 꺼버렸다. 어두침침한 게 딱 좋다. 저놈과 나 사이엔 이 정도 밝기가 어울렸다.
종이컵에 담긴 까만 원두커피로 목을 축이며 앞을 바라봤다.
배신자는 회의실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웃지 않을 때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완만하게 휘어져 있는 눈매. 보기 좋은 콧대와 끝이 살짝 올라간 입술. 거기다가 친절하고, 매너 있고, 부드러운 태도.
그것들이 모여서 최건영이라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놈을 만든다.
저놈의 진짜 얼굴은 뭘까. 이젠 저 가면이 탈부착 기능이 있긴 한 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행동, 말투, 모든 게 다 계산된 연기라면······ 저놈은 어떤 의미로든 정말 기막힌 놈이다.
“정말 그대로 일해도 괜찮다고? 내 밑에서 일하는 게 되는데도?”
먼저 포문을 열었다.
놈이 끝까지 저 징글징글한 가식을 벗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내가, 아니 나만 나쁜 놈이 될지도 모르지만. 저놈을 계속 옆에 두느니 리스크를 감수하고 만다.
배신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팀을 옮기려고 했어. 살면서 이렇게까지 내 마음대로 안 됐던 적이 없었거든. 이 팀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에 체계적인 계획이 있었는데, 다 망쳤지. 네가 워낙에 일을 잘해서.”
“그런데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냐? 나 때문에 망쳤다면서.”
내 감으론, 넵튠 애들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배신자가 관찰하듯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아마 내 표정은 평소보다 굳어있을 거다. 목소리도 그러니까.
놈이 불쑥 말했다.
“나랑 계속 일하는 게 반갑진 않은가 보네.”
“너야말로 안 불편하겠냐?”
“까짓거 감수하지, 뭐. 앞으론 나보다 네가 더 불편해질 테니까.”
“뭐?”
“남몰래 견제하던 놈 멀리 치워버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아했는데, 내가 안 나가겠다고 했다니까 마음이 급해? 그래도 표정관리는 좀 해라. 너 지금 되게 험악하거든.”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는 이 초쯤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내가 눈을 깜빡거리자, 배신자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나 눈치 꽤 빠르잖아. 네가 날 좀 과하게 의식하는 건 한참 전에 알았어. 경쟁의식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이미지가 워낙 다르니까 나를 더 견제하는 건가, 했지. 그런데 내가 사이먼 리 곡을 가져오니까 허겁지겁 이태희 자작곡 찾아와서 밀었을 때 확신이 들던데. 나한테 주목을 뺏기는 걸 어지간히 못 견디는구나.”
언제부턴가 배신자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승진도 했겠다, 앞으로는 말 잘 듣고 떠받들어주는 후배 데리고 다니면서 일하고 싶어? 그런데 네가 모든 게 잘됐다는 듯이 희희낙락하는 걸 그냥 두고 가려니까 생각할수록 짜증이 나서. 내가 널 좀, 많이 불편하게 만들려고. 좋은 평판은 이럴 때 이용하는 거거든.”
나는 계속 들었다. 놈의 말을 끊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배신자는 그런 내 반응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놀랐어? 하긴, 네가 아는 최건영은 이런 놈이 아니지? 이게 나야. 너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난 여태껏 너만큼 기분 나쁘고 재수 없는 놈을 본 적이 없······ 너 왜 웃어?”
배신자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내가 웃고 있나? 아, 웃고 있네. 이러다 입꼬리가 귀에 걸리겠다.
“내가 왜 웃느냐면······.”
나는 대답을 하다말고 커다랗게 웃었다. 목구멍은 물론이고 뱃속까지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 나는 거의 폭소했다. 웃음소리가 회의실 안을 요란하게 울렸다.
육 개월간, 저놈은 나를 정신병자로 만드는데 가장 큰 몫을 했다.
저놈 때문에 인간불신에 시달리기도 했고, 미래에서 보고 들은 것에 집착해서 어쩌면 나쁜 놈이 아닐지도 모르는 놈에게 낙인을 박아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했었지.
그리고 조금 전엔, 이대로 영영 저놈의 가면 속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던 참인데.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배신자를 쳐다봤다. 놈도 날 보고 있었다. 자기가 원했던 반응과 너무 달랐는지, 표정이 괴상하기 짝이 없다.
나는 다 식은 커피를 몽땅 마시고 말했다.
“내가 왜 웃느냐면, 너무 속이 시원해서 그래. 아니, 개운한 건가?”
“뭐?”
“육 개월 만에 머리 감은 느낌이거든. 이 개새끼야.”
[ 급물살을 타고 출렁이는 (5)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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