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123)
“어어, 왜요?”
임서영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몰려온 사람들 상당수가 고양이 수호령 팬들이랍니다.”
“고양이 그거요? 그거 팬들이 와있다고요?”
“네.”
스텝이 친절하게 대답했지만, 현실감이 없다.
고양이 수호령이 중국에서 좋은 반응을 끌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팬들 수백 명이 몰려와서 VIP 통로로 몰래 나가야 할 정도라고?
아직 중국에선 정식 방영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일단 일반통로로 가실 분들은 먼저 움직이시죠.”
놀라서 수군대고 있는 우리가 답답했는지, 스텝이 재촉했다.
김현조가 정신을 차리고 넵튠 애들과 이관우를 챙겼다.
“송하 빼고, 다른 멤버들은 일반통로로 나가겠습니다. 사람들이 그만큼 모였으면 기자들도 와있을 거고, 이런 그림은 홍보용으로도 쓸만할 테니까.”
“저도 일반통로로 갈게요.”
임주원이 뒤이어 말했다.
“이렇게라도 한류스타 기분 좀 내봐야지.”
“네. 넵튠 멤버분들이랑 임주원 씨는 일반통로. 서은교 씨는···.”
“저는 VIP 통로로 갈게요.”
서은교가 턱을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변명하듯 한마디 덧붙인다.
“지난번엔 왔을 때 극성 팬이 달려들어서 좀 놀랐었거든요.”
“그럼 그렇게 하시죠.”
곧 대부분이 한류스타 코스프레를 하겠다며 일반통로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몇 명뿐이었다. 나는 눈알을 굴려 이송하와 손채영, 그리고 서은교를 번갈아 바라봤다.
남아도 참 거지같이 남았다.
VIP 통로를 빠져나가는데, 이관우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실장님! 지금 이쪽 장난 아닙
죽기 전에 남긴 다잉메시지도 아니고.
어쨌든 일반통로 쪽 상황이 장난이 아니라는 건 잘 알겠다. 그 와중에 어떻게 찍었는지, 살짝 흔들린 사진도 첨부돼있다. 넵튠 애들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인파를 뚫고 가는 사진.
좀비 영화 포스터로 써도 되겠는데.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훑다가 이송하의 이름을 찾아냈다.
“송하야, 이거 봐봐. 여기 네 이름 있다.”
대답이 없길래 봤더니 딴생각에 빠져 있다.
얘도 아직 정신이 없나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또렷한 눈알이 앞서가는 손채영 등에 딱 박혀있다. 여전히 꼬리를 세우고 의식하는 중이었다. 저 혼자서. 시비를 걸어올까 봐 걱정했던 손채영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마이웨이를 걷고 있는데.
“송하야, 너 뭐하냐. 내 목소리 들리냐.”
“들려요. 오빠 목소리 다 듣고 있었어요.”
“어, 그래. 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데?”
“사실은 목소리만 들렸어요. 좀 낮은 목소리였어요.”
바로 이실직고하면서 내 눈치를 본다.
손채영에 비할 건 아니지만, 얘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생명체다.
한방에 한류스타 타이틀을 따게 될지도 모르는 판에. 연예인으로서는 로또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진데. 지금 다른 거에 신경 팔고 있을 때냐고.
“아직 실감이 안 나요.”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이송하가 담담히 말했다.
“나도 그랬는데. 사진 보니까 좀 난다. 이게 웬일이냐.”
스텝이 항공사 직원한테서 수집해온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해적판으로 본 사람들 사이에서 꽤 탄탄하게 팬층이 생긴 상태였는데, 이번에 화이TV에서 예고편이랑 클립 영상들 공개하고 제대로 홍보 시작하면서 입소문이 확 번지는 중이라나 봐요. 기존 팬들이 드라마 대박 터지라고 온라인에서 영업하고 다닌다네요.”
화이TV라면 고양이 수호령의 판권을 산 온라인 플랫폼이다.
그쪽에서 먼저 불을 붙이고, 기존 팬들이 기름을 부었구나.
“그거 때문에 고양이 수호령 출연자들 인지도가 한류 스타급으로 수직상승하는 분위기래요. 이거 크게 터질 것 같대요.”
내가 엿봤던 미래에서도 그랬었지.
고양이 수호령의 주조연들이 전부 하루아침에 한류스타가 됐다고.
마침내 그 아침이 밝은 건가?
지금 상태에 대해선 홍보팀에 전달했으니 곧 피드백이 오겠지. 호텔에 도착하면 김현조랑 얘기하면서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좀 정리하고······.
“에이, 너무 비행기 태우시는 것 같은데요? 떨어지면 어쩌려고.”
서은교가 툭 던졌다.
겉으론 장난처럼 가벼운 말투지만, 눈에는 심술과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당장에라도 ‘놀고 있네, 개나 소나 다 한류스타야?’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눈빛이다.
아까부터 저러고 있다.
스텝이 이송하한테 VIP 통로를 이용해달라고 했을 때부터 계속.
어디나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이 있다더니, 손채영이 조용하니까 저쪽이 날뛰는 건가.
“이송하 씨는 사실 주연은 아니었잖아요?”
서은교가 이송하를 힐긋 보며 말했다.
“밖에 모인 팬들은 서지준 씨 보러 온 거 아니에요? 우리랑 같이 도착하는 줄 알고 있을 테니까.”
“아, 확실히 서지준 씨 때문에 온 사람이 많긴 하더라구요.”
서은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자마자, 스텝이 덧붙였다.
“근데 이송하 씨도 주연급 인기랍니다. 저도 드라마 봤는데, 워낙에 정해원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잖습니까. 연기도 잘하셨고. 뭣보다, 그, 미모가 아주 열일하셨죠.”
스텝이 헛기침하며 이송하를 힐끔거렸다.
주위 온도가 올라가는 느낌이다. 서은교가 하도 뜨거운 눈빛으로 쳐다봐서.
“문앞에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다니까 곧장 타시면 됩니다.”
VIP 통로의 끝에서 멈추자, 스텝이 신신당부했다.
“곧장이요. 안 그러면 택시 타고 쫓아올 수도 있어요. 중국팬들은 유달리 극성이라. 따라붙기 전에 빨리 출발해야 합니다!”
“네. 안내 감사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2팀 실장은 아까부터 쉴 틈 없이 통화 중이고, 서은교 쪽 사람들도 함께 뭔가 속닥거리느라 바쁘길래.
다들 선글라스를 다시 꺼내쓴다. 이송하한테도 한 씌워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순간.
비명인지 아우성인지 구분할 수 없는, 엄청난 소리가 터졌다.
“이쪽으로!”
어설픈 한국어로 외치는 경호원에게 이끌려갔다.
시끄러운 쪽을 보자, 다른 경호원들이 열댓 명쯤 되는 사람들을 막고 있다. 손채영과 이송하 이름을 외치면서. 서지준이 없는 걸 알자 몇몇은 알아듣지 못할 말로 거의 울부짖다시피 했다.
중국 팬들이 한류스타에게 좀 광적인 면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 기세가 장난 아니다. 소란이 커지니까 멀리서 눈치채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얼른 타세요!”
스텝이 소리쳤다.
가까운 곳에 허리가 길쭉한 리무진 두 대가 서 있었다.
손채영과 2팀 실장은 앞쪽 리무진에 탔고, 넷이나 되는 서은교 일행이 뒤쪽 리무진에 탔다. 별수 없이 이송하를 앞차에 태우고 같이 올라탔다. 문을 닫자마자 리무진이 급하게 출발한다.
겨우 푹신한 시트에 앉아서 한숨 돌리려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차가 거꾸로 간다.
가만 보니 의자가 서로 마주 보는 형태였다.
이거 가는 내내 분위기 끝내주겠구만, 하고 혀를 찼을 때였다.
“그쪽이 내 앞에 앉아요.”
손채영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나보다 이송하가 먼저 물었다.
“왜요?”
“둘 다 꼴 보기 싫은데, 네가 더 꼴 보기 싫으니까.”
이제야 진짜 손채영 같네.
무슨 폭풍전야처럼 저러다 대폭발이라도 하는 거 아닌지 신경 쓰였는데.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자리를 바꿔서 손채영 앞에 앉았다. 이송하랑 손채영을 마주 앉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낫지.
이 안엔 언뜻 봐도 던질만한 물건이 너무 많거든.
불씨만 튀어도 곧장 폭발할 것 같은 공기가 흘렀다.
침묵을 깬 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2팀 실장이었다.
“저기, 채영 씨.”
“왜요?”
“중국 활동 이어주는 에이전트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GHB 호텔 소유주가 채영 씨랑 따로 밥 먹는 게 소원이라는데. 잠깐만 시간 내주면 평생 호텔숙박권이랑 선물···.”
“안 먹어요.”
손채영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거 이상한 자리 아냐. 술도 아니고, 그냥 점심 먹자는 거야.”
“이 바닥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냥 점심이 어딨어요. 점심 먹으면 다음엔 저녁 먹자고 할거고, 그다음엔 술 마시자고 할 텐데.”
2팀 실장이 입맛을 다시며 설득했다.
“그렇게 나오면 회사에서 가만 안 있지. 근데 이 사람은 진짜로 수작 부리려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채영 씨 팬이라서.”
“레스토랑에서 단체로 먹자고 해요. 따로 자리 만들지 말고. 그리고 괜히 숙박권이니 선물이니 그런 거 받았다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일 더러워지는 거 몰라요?”
“알았어. 그건 그렇게 하고. 그럼, 말이야.”
“똑같은 얘기할 거면 아예 꺼내지 마요. 입 아프니까.”
손채영이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꺼낼 얘기도 비슷한 건이었는지, 2팀 실장이 입을 다물었다.
쌍꺼풀이 진한 그의 눈이 잠깐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내 쪽을 보고 멈추더니, 씩 웃었다.
*
무슨 국빈쯤 된 기분이다.
리무진을 타고 이동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호텔에 도착하고 나니 호화스럽기가 말로 다 못할 정도였다. 5성급 호텔의 위엄에 감탄하기도 전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호텔 측 관계자들과 십수 명의 경호원들. W&U와 연계된 중국 에이전트 쪽 사람들이었다.
환영인사를 체할 만큼 듣고 나서야 7층으로 올라갔다.
넓고 눈부신 복도에 익숙한 얼굴들이 바글바글했다. 공항에서 일반통로로 나갔던 일행들이다. 김현조와 이관우, 그리고 넵튠 애들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저희보다 먼저 도착하셨네요.”
“우리도 방금 왔어. 전쟁터를 헤치고 왔다, 아주.”
김현조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흥분 때문에 얼굴이 새빨간 임서영이 이송하를 낚아채 갔다. 일반통로로 빠져나가는데 밟혀 죽을 뻔했다느니, 중국 팬들이 진짜 네 이름을 부르고 난리였다느니, VIP 통로는 어떻게 생겼냐느니.
숨도 안 쉬고 떠드는 걸 보다가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여기 호텔인데 너무 시끄럽게 구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호텔 측에서 7층하고 8층을 아예 비워줬거든.”
“빼줘요?”
“어. 통째로 빼줬어. 그래서 지금 객실 고른다고 다 난리잖아.”
우리 쓰라고 두 층을 다 비워줬다고?
원래 이런 일이 흔한 건가?
김현조가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윤태경 때문일걸? 진짜 탑급 방문할 땐 이렇게 하기도 하더라고. 정신 나간 팬들이 객실에 숨어들고 그러니까, 보안 철저하게 한다고 아예 통째로 비우는 거지.”
한류스타들이 중국에 가면 대접이 엄청나다,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여긴 대체 무슨 세상인가 싶다.
객실에 짐을 두고, 성 실장과 함께 8층으로 올라갔다.
로열패밀리 우 감독. 그리고 웰메이드 프로덕션 제작팀 스텝들은 촬영장소 헌팅 때문에 미리 도착한 상태였다.
밤새 술을 마셨다며 퀭한 눈으로 맞이한 우 감독과 인사를 하고, 제작팀 스텝들을 만났다. 몇 마디 인사만 나누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던 때였다.
“두 분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긴 머리를 말총처럼 묶은 제작 피디가 발목을 잡았다.
“마침 손채영 씨도 여기 계시고, 곧 서지준 씨도 오시잖아요.”
“네.”
고개를 끄덕였더니, 제작 피디가 매달리는 듯한 눈으로 물었다.
“혹시 로열패밀리에 카메오 출연을 좀 부탁드릴 수 없을까요?”
“카메오요?”
“네. 안 그래도 톱스타역할 카메오가 필요해서 W&U 쪽에도 연락 한번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손채영 씨랑 서지준 씨가 나와주시면 완전 최고의 캐스팅이니까요.”
*
중국에서의 첫 밤이 깊어졌다.
종일 앞으로의 일정을 정리하느라 숨 고를 틈도 없었다.
넵튠의 단체 팬 미팅 일정.
베이징을 시작으로 광저우, 상하이, 홍콩 등 일곱여 개 지역을 거칠 예정인 고양이 수호령의 프로모션 일정.
당장 포스터와 첫 촬영을 목전에 둔 로열패밀리 일정까지.
빽빽한 건 둘째치고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잡음 없이 정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고양이 수호령이 상승세 때문에 만난 사람마다 웃는 얼굴이었고, 시종일관 축제 전야 같은 분위기였다.
좋은 날이랍시고 막판엔 바에서 술까지 퍼마셨다.
화이TV 쪽 담당자를 배웅하고, 혼자 바깥바람을 쐬면서 술기운을 좀 털어냈다. 그리고 다시 7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객실을 찾아 들어갔는지 낮엔 시끌벅적하던 복도가 조용하다.
한 명, 손채영만 복도를 느리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뭘 찾는 사람처럼.
서로 눈만 마주치고 지나쳤다.
아니, 지나쳤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몇 걸음 더 갔던 손채영이 갑자기 되돌아왔다.
“왜 나한테 얘기 안 해요?”
온종일 온몸으로 무시하려고 애쓰더니, 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
“무슨 얘기요?”
“로열패밀리 제작사에서 카메오 요청했다면서요. 그런데 왜 나한테 부탁 안 하느냐고요.”
“그 건은 이미 거절했다고 들었는데요.”
분명히.
회사에 말했더니 배우들이 오케이 하면 진행 하라는 답이 왔었다.
그래서 성 실장이랑 가위바위보로 단판 승부를 봤다. 손채영한테 카메오 해달라고 부탁하는 상상을 했더니 등짝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라, 확률을 반으로 줄여보려고.
그렇게 긴장감 넘치는 가위바위보는 처음이었지.
이기고 나서 기쁨의 세레모니를 한 적도 처음이었고.
내가 한국에 있는 서지준한테 긍정적인 답변을 듣는 동안, 성 실장도 손채영한테 직접 부탁했다고 들었다.
말 꺼내기 무섭게, 단칼에, 거의 1초 만에 까였다고 하던데.
영혼이 빨린듯한 성 실장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였다.
돌연 손채영이 하이힐 굽으로 바닥을 콱 밟았다.
“그쪽이 부탁하면 내가 한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뭐, 그럼 카메오···.”
“안 해요!”
[ 물리고 물리는 갑을관계든, 신경전이든 (5)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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