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126)
레몬조각이 턱으로 질질 흘러내린다.
떼서 던져버리고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손이 닿는 곳마다 축축하다. 입술을 핥았더니 술맛이 난다.
“어, 어떡하지, 오빠, 아프세요?”
이송하가 가운 소매로 내 얼굴을 문지른다. 허둥지둥하면서도 손길은 쫄딱 젖은 병아리 만지듯이 조심스럽다. 주변의 눈이 한둘이 아니라, 이송하의 손을 밀어내고 대충 손등으로 닦아냈다.
“아프진 않은데, 송하야.”
“네, 네.”
“너 뭔가 던지고 싶을 때는 나랑 상의하기로 했었던 거 같은데.”
손이 허전하다느니 말했어도, 파블로프의 개니 뭐니 했어도.
그래도 나랑 한 약속이 더 우선순위일 줄 알았는데.
물끄러미 바라봤더니 이송하가 안절부절못하면서 말했다.
“알아요. 죄송해요, 오빠, 그런데 감독님이······.”
“감독님?”
촬영팀 쪽을 쳐다보니 우 감독은 찍은 영상을 돌려보며 모니터 중이었다. 제작팀 스텝들, 그리고 조감독과 말을 주고받으면서.
곧 우 감독이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정 실장님. 리액션 커트 기가 막히게 나왔어요. 놀라고 황당해 하는 게 싱싱하게 찍혔어요. 거 봐요, 그냥 반응만 잘 해주면 된다니까요. 술벼락 맞을 거 미리 알고 있었으면 이 표정이 안 나오거든.”
아.
이게 우 감독 오더였구나.
“카메오 부탁해놓고 이런 씬이라 미안해요. 채영 씨가 워낙 존재감이 커서, 송하 씨가 기싸움에서 이기려면 이 정도 액션은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국내 시청자들은 송하 씨랑 정 실장님 관계 다 아니까 그 와중에 개그 포인트도 될 거고.”
“괜찮습니다. 그림 잘 뽑혔으면 됐죠.”
난 또. 이송하가 본능을 못 이기고 집어 던진 건 줄 알았네.
이송하한테 잘했다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커트가 기가 막히게 나왔으면, 왜 NG지?
묻기도 전에 우 감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채영 씬 액션, 애드립 대사, 다 좋았습니다. 디렉션이 필요 없네요.”
손채영이 입 끝을 살짝 올렸다.
“문제는 송하씬데. 송하 씨 바스트 컷은 하나도 못 쓰겠어요.”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이송하 때문에 NG가 났다고? 커트를 하나도 못 써?
우 감독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전 씬까진 눈빛 연기 좋았는데, 이번엔 그 팽팽하던 긴장이 확 무너졌어요. 칵테일 뿌릴 때도 머뭇거리는 게 너무 티 났고. 갑자기 왜 그래요? 이런 씬 처음이라? 친한 사람이라 칵테일 뿌리는 게 힘들어요?”
“아뇨. 실수였어요, 저도 모르게 움찔해서··· 이번엔 제대로 할게요.”
이송하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대답했다.
우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정 실장님 리액션 컷은 완벽한데, 이게 쓰리샷이나 실장님 어깨 걸고 찍는 커트도 있어서. 실장님이 화면에 계속 걸려요. 칵테일 맞는 거 다시 한 번···.”
미안해하는 우 감독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송하가 카메오로 나온 손채영보다 더 생동감이 떨어지는 것 같단 말이 신경 쓰였는데. 이 컷으로 분위기가 반전된다면. 시청자들이 손채영보다 이송하를 보게 만들 수만 있다면야.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재촬영을 준비하는데, 손채영이 툭 물어왔다.
“직접 맞아보니까 기분 어때요. 더럽죠?”
“시원하고 좋은데요. 맛도 있고.”
어떤 드라마 배우들은 김치나 밀가루 같은 걸로도 얻어맞던데, 칵테일이면 그럭저럭 할 만하지. 아랫입술을 핥으며 말했더니 손채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리곤 입 끝을 비스듬히 올린다.
“이런 거 즐겨요? 그럼 다음엔 쟤한테 케이크도 한판 던져달라고 해요. 그게 기분 더 더러우니까.”
“그건 구경하는 걸로도 충분···.”
대꾸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송하가 이쪽을 의식하고 있다.
제 구역을 홀라당 뺏기고 구석에 내몰린, 의기소침해서 꼬리를 말고 눈치만 보고 있는 강아지처럼.
저 작은 머리통 속에 어떤 생각이 휘몰아치고 있을지 빤하다.
나랑 손채영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애가 타는데. 감독 오더였다지만 대뜸 칵테일을 퍼붓고, 그마저도 NG를 낸 것 때문에 미안하고, 자괴감이 들고. 그래서 차마 당당하게 여기 끼어들 수는 없고.
뭐, 이런 생각이겠지.
쟤를 저 꼬락서니로 방치해 놓고 손채영이랑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싶어서, 곧장 이송하한테 다가갔다. 그리고 NG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송하를 끌어올렸다.
“송하야, NG 났다고 긴장하지 말고. 나 신경 쓰지 말고 해.”
“네, 네, 오빠, 이번엔 완벽하게 성공할게요. 세 번째는 없어요.”
이송하가 비장하게 말했다.
“NG!”
또?
이송하가 당황한 얼굴로 허둥거리는데, 우 감독이 곧장 소리쳤다.
“다시! 하이, 큐!”
손채영이 내 팔을 바싹 잡고 끌어당긴다.
이번엔 얼굴에 칵테일이 날아오든 말든 이송하의 표정을 살폈다.
알겠다. 왜 자꾸 NG가 나는지.
이송하는 연기할 때만큼은 걱정될 정도로 그 배역에 쓰이는 앤데. 지금은 아니다. 텅 빈 칵테일 잔을 들고 굳어 있는 건 안하무인 탑스타인 이소희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냉랭하다며 오해하고, 다가가기 힘들어하는 연예인 이송하도 아니고.
저건 늘 내 눈에 비치던 이송하다.
내 옷소매를 잡고 슬쩍 잡아당기거나, 보조석에서 열심히 부스럭거리며 과자나 젤리를 하나씩 내밀던 그 이송하.
저러니 NG가 날 수밖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궁리하는 사이에도 NG가 쏟아졌다.
나도 그만큼 칵테일을 얻어맞았고 이송하는 혼란의 늪 구덩이에 처박혔다. 처음엔 왜 NG가 나는지 어리둥절해 하더니, 우 감독과 함께 영상을 모니터하고 나서는 제가 더 놀란 표정이었다.
지금껏 당황해서 대사를 통째로 까먹었던 때를 제외하곤 연기로 이만큼 버벅거려본 적이 없는 앤데. 저도 연기가 마음대로 안 되는 이 상황이 답답하고 초조한지 어쩔줄을 몰라 한다.
“이게 왜 안 되지, 안 되면 안 되는데.”
다시 칵테일이 준비되는 동안, 이송하는 여분의 칵테일 잔에 물을 담아서 열심히 뿌려댔다. 쫓기는 사람처럼. 그래도 연습할 때는 제법 눈빛이 살아난다. 스냅도 거침없다.
문제는 슛만 들어가면, 저게 다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거지.
아무래도 나 때문에 몰입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은데. 우 감독하고 다시 얘길 해 볼까? 그런데 저 양반 지금 표정이 영 안 좋다. 이러다 씬이 통째로 날아가는 건 아니겠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며 궁리하는데, 등 뒤에서 스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저러지? 고양이 수호령 촬영 때는 NG 내는 일 거의 없었다고 하던데. 그땐 애드립 하나도 안 하고 대본대로만 찍었나?”
“그놈의 카더라, 믿지 말라니까. 손채영 씨랑 매니저만 개고생이네.”
“매니저야 그렇다 치고, 손채영 씨 눈치는 좀 보이겠는데. 대선배를 카메오로 앞에 세워놓고 똑같은 데서 NG가 몇 번째냐? 짜증 안 내는 게 용하다. 아까 서은교 씨 때보다 더 심한데?”
“그러게. 근데 저러다 이송하 씨 멘붕 오는 거 아니야?”
“그럼 이 커트 날리는 거지, 뭐. 첫 씬에 카메오 씬이라 때깔 좋으라고 필름도 영화용으로 겁나 비싼 거 쓰는데, 돈을 그냥 칵테일이랑 같이 쏟아버리는구만.”
힐끔, 우 감독을 쳐다봤다. 그는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도록 보면서 구레나룻을 긁적거리고 있었다. 간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마치 플러스알파까지 기대했다가 본전도 못 건진 사람의 표정이다.
반면 서은교는 좋아 죽어가고.
아까까지만 해도 손채영한테 실수한 것에 첫 촬영을 망친 것까지 얹어져서 아예 무덤 파고 누운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선베드에 드러누워서 희희낙락 칵테일까지 마시는 중이다.
제 매니저랑 수군거리면서 이송하를 곁눈질하는데, 대화 내용이야 안 들어도 뻔하다. 이송하가 이대로 촬영을 망쳐서 씬이 줄어들기를. 그리고 감독이랑 손채영한테 안 좋은 인상을 남기길 애타게 바라고 있겠지.
그렇게 되면 칵테일로 건배까지 하며 좋아할 테고.
생각만 해도 내장이 꼬인다.
“송하야.”
가까이 다가가자 애가 흠칫 놀란다.
죄지은 사람처럼.
주위를 살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부담 갖지 마. 원래 신인배우가 NG 내는 거 당연한 건데, 뭐. 즉흥적인 부분이 많은 촬영이라 잠깐 삐끗한 거야. 그러니까 힘 빼고, 차분하게 이소희 리딩 연습했던 거 떠올려봐.”
“네. 죄송해요, 오빠. 저 때문에 다 젖으셨죠.”
“괜찮다니까. 살면서 한 번쯤, 칵테일에 맞는 경험도 나쁘지 않지.”
“벌써 다섯 번이잖아요.”
“드라마 주인공 같고 좋네.”
“저 때문에 오빠가 다섯 번이나 술 맞고, 다섯 번이나 붙들리고···.”
이송하가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손채영을 쳐다본다. 저쪽은 이상하게 조용하다. NG가 반복되고 있으니 손채영도 서은교처럼 이 기회에 짜증을 넘어 온갖 인신공격을 해댈 줄 알았는데.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손채영한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도 몰입이 잘 안 되면, 나 말고 손채영한테 뿌린다고 생각하고 해봐. 너 바로 얼마 전에도 손이 허전하네, 어쩌네 했었잖아. 케이크랑 눈사람 머리통 던졌을 때 기억나지? 그때의 분노를 다시 끌어올려 봐.”
“분노···!”
눈을 가늘게 뜬 이송하가 풀 바에 놓인 다른 칵테일을 낚아채더니 단숨에 마셨다. 쾅,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잔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양 주먹을 꽉 움켜쥐고 말했다.
“이번엔 진짜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느낌 왔어요.”
그때, 우 감독이 미간을 찌푸린 채 다가와 말했다.
“마지막 테이큽니다. 이번에도 안 살면 다음 씬으로 넘어갈게요.”
최후통첩이다.
우 감독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다들 마지막 테이크가 OK 컷으로 끝날지,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NG 컷으로 마무리될지에 관심이 지대한 모양이다.
서은교는 팝콘이 필요한 모양이고.
젠장. 저쪽은 쳐다보지 말자, 열 오르니까.
어쨌든 모든 스텝이 주시하는 상황이다. 만약 이번에도 NG가 나면 고양이 수호령으로 쌓은 연기파 신인 이미지는 뭉텅이로 깎아 먹고, 앞으로 촬영하는 내내 오늘 일이 꼬리표처럼 이송하를 따라다니겠지.
마른침을 삼키고 이송하를 바라봤을 때였다.
“착각하지 마요.”
손채영이 불쑥 말했다.
“또 뭘 말입니까?”
“카메오 출연도 출연인데, 쟤 때문에 내 분량까지 토막 날 판이라 끼어드는 거니까.”
그러면서 이송하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리고 이송하의 귓가에 뭔가 속삭였다.
뭐하고 하는 거지?
귀를 바짝 기울여도 아무것도 안 들린다.
주위의 시선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아닌 척 이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가까이에 있는 나한테도 안 들리는 게 저기까지 닿을 리는 없다.
둘의 은밀한 대화는 금방 끝났다.
손채영은 태연히 원래 있는 내 옆으로 돌아왔고, 이송하는 새롭게 채워진 칵테일 잔을 붙들고 우두커니 서 있다. 고개를 살짝 숙인 탓에 표정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손채영한테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어보려던 순간.
“마지막 갑니다! 하이, 큐!”
웅성거리는 소리가 확 잦아들고, 이송하가 고개를 번쩍 든다.
그렇지!
나는 이송하의 표정을 보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서리라도 내린 듯 싸늘한 얼굴. 하지만 눈빛은 활활 타고 있다.
이소희다운 눈빛. 사람 하나 잡을 눈빛이다.
“저게 지금 나한테 뭐랬는 줄 알아?”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손채영이 내 팔을 끌어당겼고.
동시에 이송하가 거침없이 칵테일 잔을 휘둘렀다.
감정 좋고! 스냅 좋고! 기세도 좋고!
나는 뺨을 철썩 치는 레몬조각을 느끼며 확신했다.
이건 틀림없이 OK 컷이다.
그 순간, 이송하가 박력 넘치게 나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갑자기 풀 바에 세팅된 다른 칵테일 잔을 양손에 두 개씩, 총 네 개를 움켜쥐고 휘둘렀다.
방패가 되던 내가 없으니, 손채영이 그걸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야!”
손채영이 소리를 빽 질렀다.
“너 지금, 너 미쳤어?”
이송하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빈 칵테일 잔을 버렸다. 그리고 새 걸로 다시 장전한다. 눈빛에 광기가 엿보인다. 손에 든 게 칵테일 잔인지 화염병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보자 보자 하니까! 너 여기서 개싸움 한번 해보자는 거야? 그래?”
손채영이 이 가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그리고 이송하가, 좀처럼 볼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멍멍.”
“저게 진짜!”
나는 밀려난 자세 그대로, 멍청히 눈앞의 광경을 쳐다봤다.
손채영이 먼저 이송하의 기다란 머리채를 잡았고, 곧바로 이송하가 양손으로 손채영의 머리통을 잡았다. 손채영의 고함과 이송하의 개소리가 뒤섞여 수영장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달라붙어서 개싸움을 벌이던 둘이 수영장 안으로 풍덩 빠졌다.
재해를 맞닥뜨린 사람들이 허겁지겁 물러났다.
조용하던 풀이 삽시간에 개판으로 뒤집어졌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아까 우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 바닥에선 내가 제일 미친년이다.’ 같은 걸 원한다고 했지.
저기 있네.
***
우 감독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구레나룻부터 턱까지 덥수룩하게 나 있는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퉁방울처럼 커다래진 눈도, 촬영콘티를 둥글게 말아쥐고 있는 두툼한 손도 떨렸다. 그는 흥분한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대부분의 드라마 작가는 대본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기대하고.
연출가는 디렉션 이상의 연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앞에, 기대를 넘어선 열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놀란 건 우 감독만이 아니었다.
제작팀, 연출팀, 카메라와 조명, 음향을 비롯한 모든 스텝이 풀 안에서 벌어지는 개싸움에 혼을 빼앗겼다.
이송하의 발연기를 기원하던 서은교는 헤벌어진 입을 못 다물었고, 경호원들 눈을 피해 사진을 찍으려고 야단이던 구경꾼들도 우뚝 멈춰서 눈동자만 굴렸다.
웰메이드 제작팀 스텝 한 명이 침묵을 깨고 감탄했다.
“우와 씨, 둘 다 박력 끝내 주···!”
우 감독이 손을 들어 웅성대는 소리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재빨리 모든 스텝들에게 지시했다.
“안 끊고 계속 갑니다! 지미집도 풀샷으로 쫓아가고, 붐 마이크! 감독님, 애드립 대사들 다 쓸 거니까 최대한 살려주세요. 후시로 작업하면 끝내주는 그림 다 죽으니까!”
음향팀 감독이 수영장 위의 붐 마이크를 체크하고 엄지를 올렸다.
“거의 다 건질 수 있을 거 같아요. 배우 둘 다 장난 아냐. 저렇게 격하게, 그것도 쉬지도 않고 애드립 대사를 날리는데, 발음은 엄청 또렷하고 안정적이라 귀에 딱딱 꽂혀요!”
“좋아, 좋아.”
바짝 마른 입술을 핥은 우 감독이 다시 말했다.
“카메라 한 대, 정선우 실장한테도 붙여. 리액션 좋네.”
금방 카메라 한 대가 정선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정선우는 당혹스럽고 기가 막힌 얼굴로, 물보라 치는 수영장 안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그 표정을 카메라가 고스란히 담았다.
다닥다닥 붙은 모니터 화면들을 쳐다보던 스텝이 가슴을 누르며 소곤거렸다.
“어우, 보는 사람이 숨을 못 쉬겠네. 정선우 실장은 진짜 놀라서 나오는 리액션이라고 쳐도, 손채영 씨나 이송하 씨는 진짜 엄청나네요. 리얼하고, 박진감 넘치고! 진짜 싸워도 저것보단 덜 실감 나겠는데요.”
“운 좋은 줄 알아라. 저런 거 어디 쉽게 볼 수 있는 건 줄 알아? 영화판에서도 저만한 애드립 씬 드물어. 둘 다 무슨 신들린 거 같네.”
“둘이 합이 끝내주게 잘 맞네요. 누가 보면 애드립이 아니라 리허설만 한 백번하고 찍는 줄 알겠네. 이거 촬영분 보여주고 통째로 애드립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걸요?”
“심지어 딕션도 정확하대잖아요. 저 와중에 대사전달까지 신경 쓰고 있단 얘긴데, 기가 차네. 저런 게 어떻게 즉흥으로 되지?”
“그러니까 배우지, 임마. 그러니까 프로고.”
수영장에 모인 이들 모두가 흥분으로 얼굴이 벌게지고, 감탄으로 침이 마를 지경이 될 때까지도 두 배우의 연기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우 감독의 입에서 벼락같은 사인이 떨어졌다.
“오케이! 컷!”
[ 물리고 물리는 갑을관계든, 신경전이든 (8)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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