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13)
“그런데요, 팀장님.”
김현조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고민한다.
“기사를 너무 과하게 내면 오히려 욕먹지 않을까요? 요즘 네티즌들 눈치 빨라서 소속사 언플인지 아닌지 바로 알잖아요.”
“그러니까 과하지 않게 잘 조절해야죠.”
“얼마 전에 스타트렌든가? 거기 기사 봤는데 성공적인 데뷔, 강렬한 눈도장, 떠오르는 스타, 이런 걸로 떡칠을 해 놔서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요.”
“그런 건 자제해 달라고 할게요. 망한 거 다 아는데 쪽팔리게…… 아마 그 기사 인턴이 썼을 거예요.”
대화를 듣다 보니 매니저와 홍보팀, 기자의 관계도가 대강 그려진다.
매니저가 담당 연예인의 기삿거리를 홍보팀으로 전달하면 홍보팀은 보도자료를 돌리거나 친한 기자에게 부탁해 좀 더 정성 들인 기사를 내보낸다.
만약 해당 연예인이 화제성이 있으면 인터넷 여러 매체가 첫 기사를 고대로 베껴 쓴 후발 기사, 즉 우라까이 기사들을 쏟아내고, 화제성이 없으면 리플 하나 없이 묻힌다.
검색창에 이름을 쳐야만 찾을 수 있었던 넵튠의 기사들처럼.
“그리고 실장님. 오늘 오후에 넵튠 인터뷰하는 거요.”
“지투데이 거요?”
“네. 그거 애들한테 힘들었다, 고생했다는 얘기 많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연예인인 니들이 힘들어 봤자지, 세상에 안 힘든 사람 어딨냐, 우리도 힘들다, 이런 반응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냥 열심히 하겠다고만 해야겠네요.”
“그게 제일 좋아요. 대타로 들어간 거라 조금만 밉보여도 욕먹을 거예요.”
“그럼 일단 첫방 나가고 반응 지켜본 다음에…….”
언제부턴지 회의가 점점 회의다워지고 있다. 홍보팀 젊은 남녀직원도 노트북을 두드린다. 한글창을 열어놓고 뭔가 쓰고 있다.
나도 듣고만 있기 그래서 새 노트를 꺼내 김현조와 박팀장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메모했다.
“블랙아웃한테 얘기해서 걔들 인스타에 언급 좀 해달라고 하면 어때요? 기사 헤드라인에 블랙아웃이랑 넵튠이랑 같이 뜨면 분명 화제 될 텐데.”
“그건 좀 기댜려보구요. 저번에 블랙아웃 여동생 그룹으로 기사 냈을 때 오히려 반응이 안 좋았잖아요. 잘못하면 이제 막 빛 보려는 애들 비호감으로 찍힐 수도 있어요. 블랙아웃 팬들이 얼마나 극성인데.”
“그런 거 하면 블랙아웃 이용하지 말라고 회사로 항의전화도 와요.”
“맞아요. 백퍼야, 백퍼.”
머리를 긁적이던 박팀장이 불쑥 묻는다.
“그런데 실장님. 넵튠 애들 사생활엔 문제없죠?”
“없어요.”
“기자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거 있으면 우리가 먼저 알아야 돼요. 안 그럼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못 막는 거 알잖아요.”
“진짜 없어요.”
“연애하는 애 없어요? 펀치라인에 랩하는 애가 송하 찍었다던데?”
김현조가 깜짝 놀란다.
“어떤 놈이, 확실해요?”
“그 팀 스타일리스트가 얘기하는 거 듣고 알려준 거예요.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지. 펀치라인도 이번에 넥스트 K스타 같이 나가잖아요. 걔들 벌써 팬도 꽤 있어서 스캔들나면 큰일 나요. 진짜 안 돼요.”
“저도 알죠. 잘 지켜볼게요.”
“두 사람도 신경 써서 좀 봐줘.”
박팀장이 나와 최건영을 보고 당부한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면 바로 얘기하고.”
“네.”
몇몇 의심 정황들을 메모하고 ‘펀치라인 랩하는 놈’ 밑에 밑줄도 쫙쫙 쳤다. 국내 정서상 스캔들이 나면 피해를 보는 건 거의 여자 쪽이다. 넵튠도 이송하도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지만, 그래도 내가 맡은 첫 연예인이다. 펀치라인 랩하는 놈이 곱게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벌컥.
문이 열리더니 처음보는 남자가 고개를 들이민다. 이웃집 형 같은 친근한 인상이다.
“아이고, 바쁘신데 죄송해요. 박팀장님한테 급하게 부탁할 게 좀 있어서.”
“뭔데요?”
“우리 채영이 내일 시사회 가잖아요.”
채영? 설마 손채영?
나이는 이십대 중반이지만 아역부터 시작해서 벌써 데뷔 연차 십 년이 훌쩍 넘은 여배우다. 성도원만큼의 인기는 없지만, 대세 여배우를 다루는 기획기사에는 꼭 이름이 올라가는 매력 있는 배우다. 영화와 TV를 오가며 쌓은 필모도 탄탄하고.
나는 손채영이 청순한 여대생으로 나온 영화를 영화관에서 세 번이나 봤다.
저 사람이 손채영 매니전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지.
“발망 원피스 입고 간다는데, 모델보다 더 소화 잘했다고 비교 기사 써 달래요.”
“설마 그 전투복 같은 원피스요? 그거 입고 간다구요? 조실장님이 좀 말리시지.”
“재계약 시기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기사 내 줘요. 박팀장님 친한 기자들 많잖아요. 나 좀 살려줘요.”
조실장의 엄살에 박팀장이 한숨을 쉰다.
“기사 내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 옷 진짜 안 어울려요.”
“코디가 안티냐, 소속사 일 안 하냐, 또 욕 엄청 먹겠네요.”
홍보팀 직원이 투덜대자 조실장은 잘 좀 부탁한다면서 계속 엄살을 떤다.
“아 참!”
나가던 그가 빙 돌아서 다시 들어온다.
“거기 두 사람이 신입이야?”
인사할 타이밍만 재고 있던 나와 배신자가 동시에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정선웁니다.”
“최건영입니다.”
“그래. 얼굴 익숙해질 만하면 바뀌네. 그래도 이번엔 왠지 오래갈 것 같다. 둘 다 허우대가 커서 체력도 좋겠네. 그 팀에서 시작하면 다음에 어디를 가든 적응 잘할 거야. 언제 전체 회식하면 그때 길게 얘기하자고.”
“예, 알겠….”
“수고해!”
쾅!
우리는 잠깐 문을 바라봤지만, 다시 열리지는 않았다.
그 뒤로 회의는 한 시간쯤 더 이어졌다. 한 시간 동안 나는 노트 두 장을 메모로 채웠고, 박팀장을 비롯한 홍보팀 직원들에게 감탄했다. 조금 전에 만났는데 몇 달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친하게 느껴진다.
대단한 사람들…….
“이거 받아.”
김현조가 배신자에게 차 키를 던진다.
“내가 지금부터 회의랑 외부미팅이 줄줄이 있어. 그러니까 지투데이 인터뷰 준비는 니들 둘이 해라.”
“저희가요?”
“건영이 넌 해봤을 거 아냐. 태희한테 전화해 놨으니까 애들 데리고 샵부터 가고, 스타일리스트들도 거기로 바로 갈 거야. 의상 입고 신문사로 가면 돼. 도착해서 기자한테 연락하면 안내해 줄 거고. 나도 인터뷰 시작하기 전까지는 갈 테니까.”
그가 수첩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한다. 스케줄 칸에 그가 오늘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시간대별로 빽빽하게 정리돼 있다.
“애들 숙소랑 샵 주소는 내비에 찍혀있으니까 보고 찾아가면 되고, 스타일리스트 연락처, 신문사 주소, 기자 연락처는 문자로 보내줄게. 점심은 어제처럼 샵에서 먹고. 2시 인터뷰니까 늦어도 1시 반까지는 가. 문제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 알았어?”
“네.”
“참, 저녁에 넥스트 K스타 제작진이랑 사전미팅 겸 밥 먹기로 했어. 아마 길어질 거야. 애들한텐 내가 얘기했으니까 너희도 알고 있으라고.”
“네?”
“가, 얼른!”
나와 배신자는 급하게 가방만 챙겨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오늘도 퇴근은 물 건너갔네.
나는 형에게 오늘도 늦는다고 톡을 보냈다. 배신자는 시계를 보고 있다.
“지금이 9시 반이니까…… 1시 반까지 가려면 여유 부릴 틈은 없겠다.”
“여긴 하루가 뭐 이렇게 빡빡하게 돌아가냐.”
“넥스트 K스타 시작하면 아예 회사에서 살아야 할지도 몰라.”
“실장님은 이미 여기서 사는 것 같던데?”
“어. 어제 회사에서 잤다고 그러더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도 힘들다.
왜 영화나 드라마 속의 독심술사들이 냉소적이고 비뚤어진 캐릭터로 자주 묘사되는지 알겠다. 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한 명밖에 모르는데도 이렇게 찝찝한데 온 세상 사람들 속마음이 다 들리면 얼마나 끔찍하겠냐고.
내 능력이 독심술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독심술사에게 위로를 보냈다.
곧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했다. 승합차는 어제 그 자리에 주차돼 있다. 우리는 운전석을 앞에 두고 멈췄다. 사람은 둘이고 운전대는 하나다.
“너 운전 잘해?”
배신자가 먼저 물었다.
면허증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땄다. 그 뒤로는 형 차를 좀 몰아본 게 전부. 입사 전에 다시 운전연수를 받았지만, 솔직히 복잡한 청담동 골목을 누비고 다니긴 좀 겁난다.
내가 헛기침을 하자 배신자가 운전석 문을 연다.
“운전은 내가 할게.”
“콜. 대신 내가 도시락 셔틀 할게.”
사양하지 않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내비를 작동시키자마자 승합차가 부드럽게 출발한다.
배신자는 운전도 잘했다. 하긴 블랙아웃 매니저 알바를 할 때도 운전을 했다고 했었지.
숙소로 가는 동안 나는 인터넷에 성도원을 검색했다. 아까 회의 때에도 성도원 생각이 불쑥불쑥 나서 몇 번이나 집중이 깨질 뻔했다. 이제 마음 놓고 좀 알아봐야지.
보자…… 성도원의 근황, 차기작에 대한 루머, 근거 없는 찌라시. 성도원과 관련된 정보들을 샅샅이 훑었다. 부정적인 여론은 별로 없다.
얼마 전에 성도원 몸값에 대한 기사가 떴었다. 국내 드라마 출연료가 회당 6천, 중국에서는 회당 억대의 출연료를 받았다고.
이런 기사가 뜨면 여론이 술렁이기 쉬운데도 성도원 정도면 받을만하다는 반응이 많았지. 워낙 이미지가 좋은 배우니까.
잘생겼지, 연기 잘하지, 기부도 많이 하고, SNS나 인터뷰 망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적도 없는 걸 보면 신중하기까지 해. 흠잡을 데가 없는데.
이런 배우한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얼마나 큰 사건이 터지길래, 성도원의 입에서 연기자 인생이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왔을까. 수작에 말려들 뻔했다는 건 또 뭐고. ‘그쪽’은 대체 누구고?
그리고 아까 본 미래는 왜 어제 본 것들과 달랐을까?
에이씨…… 궁금해 죽겠네!
[ 시작은 예능, 넥스트 K-스타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