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137)
큐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촬영장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스턴트 팀원들이 바닥과 크레인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지미집이 허공을 돌고, 카메라를 실은 이동차가 레일 위를 달렸다. 그리고 이송하는, 건물 외벽에 붙은 에어컨 실외기 위에 서 있었다.
허리와 허벅지에 와이어를 매단 채로.
“저거, 지금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려고 저러는 거야?”
리포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는 척만 하고 스턴트가 대역으로 찍지 않을까요?”
“아니면 클로즈업만 여기서 따고, 나머지는 세트장에서 찍거나.”
위클리연예 제작진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
이송하가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실외기를 힘껏 박차고 뛰었다. 제작진이 헛숨을 삼켰다. 동시에, 작은 손이 2층의 녹슨 베란다 난간을 덥석 붙든다. 그리고 꾸역꾸역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실외기로. 또 더 높은 난간으로.
집집마다 열린 창문에는 좀비 분장을 한 보조출연자들이 허리를 내밀고 팔을 휘저었다. 이송하는 그 손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조금씩, 그리고 멈추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이래서 체조를 했다는 설정이 붙었구나. 저런 씬 찍으려고.”
“와이어로 막 끌어올리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저걸 올라가네.”
“치마 안에 뭐 입었겠죠?”
담당 피디가 조연출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리포터가 감탄하며 말했다.
“근데, 진짜 체조든 뭐든 배운 것 같지 않아요? 동작 같은 게.”
“배운 거 맞아요.”
모자를 거꾸로 쓴 스텝이 불쑥 끼어들었다.
정선우 실장이 이송하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해놓은 스텝이었다. 위클리연예 제작진이 재빨리 카메라를 들고 와이어리스를 내밀었다. 스텝이 헛기침하곤 말을 이었다.
“스턴트 없이 직접 찍는다고 엄청 빡세게 배웠어요. 체조도 레슨 선생 찾아서 배우고, 파쿠르랑 클라이밍인가? 실내 암벽 등반하는 거. 그런 것도 했다던데.”
“그걸 다요?”
“그것도 드라마 촬영까지 병행하면서요. 주말에는 중국도 왔다 갔다 하고 그러던데. 스케줄 봤는데 진짜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 스케줄 케어하는 정선우 실장도 독하고, 그걸 소화하는 이송하 씨도 독하···.”
“어, 어, 어!”
조연출이 펄쩍 뛰었다.
“저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제작진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좀비의 손길을 피하던 이송하가, 붙들고 있던 실외기 끄트머리를 놓쳤다. 가느다란 몸이 아래에 있는 난간에 부딪혔다. 그리고 베란다 안으로 힘없이 쑤셔박혔다.
“저거, 저···!”
“연기예요.”
툭 말을 던지며, 영화 스텝이 웃었다.
“카메라가 계속 동선 따라붙고 있잖아요. 저거 다 연기예요.”
위클리연예 제작진이 재빨리 둘러봤다. 지미집 카메라가 이송하가 떨어진 베란다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액션 엄청 리얼하죠? 아까 리허설 할 때도 다 놀랐어요. 배우 하나 잡는 줄 알고.”
혀를 내두른 스텝이 손짓했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그가 안내한 곳은 최성원 감독과 출연진들이 우글거리는 모니터 앞이었다. 위클리연예 제작진이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그 뒤에 섰다. 스텝이 속삭이듯 말했다.
“밑에 원샷 잡고 있는 모니터 보이시죠? 그거 보세요.”
시선들이 모니터에 꽂혔다.
다시 일어나서 벽을 타고 오르는 이송하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쳤다. 처음에는 겨우겨우 올라가는 듯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몸놀림이 눈에 띄게 가벼워진다. 발끝에 망설임이 없었다.
뚫어지게 화면을 쳐다보던 카메라 감독이 눈을 깜빡였다.
“떠네?”
이송하의 어깨, 팔, 심지어 손가락 끝까지 떨리고 있었다.
“그러게요, 저것도 연긴가?”
“반반일 것 같은데. 와이어랑 매트리스가 있어도 얼마나 무섭겠어.”
“턱도 떨리는데. 우는 거 아니야?”
웅성거리던 제작진의 소리가, 어느 순간 뚝 끊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에서부터 틸업으로 올라간 카메라가 측면 얼굴을 잡았다. 우는 게 아니었다. 이송하는 웃고 있었다. 두려움과 쾌감이 엉망으로 뒤섞인 얼굴로.
벽을 타고 오르는 이 아찔한 상황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좋아······.”
최성원 감독이 모니터에 눈을 박은 채 흐뭇하게 웃었다.
뒤에서 쳐다보던 배우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미치겠다. 쟤 표정 좀 봐. 눌려있던 게 확 터지는, 그런 감정을 어떻게 저렇게 기가 막히게 살리지? 신들렸네, 아주.”
“어린애가 인생에 파도가 많았나? 이연우처럼 진짜 가정사에 뭐가 있든가, 그런 거 없이 저런 연기가 나올 수가 없는데.”
“쟤 아까 웃으면서 인터뷰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어떻게 저렇게 바로 몰입이 돼? 스위치 달렸어?”
“더 기막힌 얘기 해줘? 슛 들어가기 전에 애가 엄청 심각한 얼굴로 중얼중얼하고 있길래 대사 외우는 줄 알았더니,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이러고 있더라.”
“아이고, 늙은이 긴장하게 하네, 쟤가.”
베테랑 배우까지 한마디 던졌다.
만족스럽게 커트를 외친 최성원 감독이 배우들에게 말했다.
“다른 분들 연기도 다 좋았어요.”
“똑같이 좋으면 어떡해요, 감독님.”
여배우 박세령이 툴툴거렸다.
“쟤보다 개런티를 훨씬 많이 받는데. 훨씬 더 좋아야죠.”
“감독님, 저 아까 원샷, 다시 한 번 가도 될까요? 대사를 더 속도감 있게 쳐보고 싶은데.”
이기환이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최성원 감독의 눈이 초승달모양으로 휘어졌다.
“되지, 그럼. 배우가 아쉬워서 다시 연기하겠다는데 당연히 되지.”
“쟤 봐, 쟤 좋다고 웃는 것 좀 봐.”
박세령이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4층까지 올라간 이송하가 와이어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웃고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정선우 실장한테 손을 흔들면서.
그 모습을 보던 박세령이 문득 말했다.
“감독님, 24씬에 나오는 두 번째 악역이요. 그 배우도 정선우 실장 배우라고 하셨죠.”
배우들과 스텝들의 시선이 최성원 감독에게 쏟아졌다.
뒤에 있던 위클리연예 제작진도 새로운 정보에 귀를 쫑긋 세웠다.
“맞아.”
“혹시 그 배우도 좀, 저래요?”
“글쎄. 나도 아직 확신은 못 하겠네.”
최성원 감독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정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 벌써부터 망스멜이 진동한다. 제발 미국에서 개봉한다고 설치지만 마라, 쪽팔림은 국민 몫이냐? 푯값 만 원 내고 이거 보느니 미드보는 게 훨씬 낫다.”
“그만해.”
주름이 깊어진 SBE 필름 대표가 손을 내저었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직원들도 낯빛이 칙칙했다. 홍보담당자가 리서치 자료를 흔들며 말했다.
“이런 반응 예상하셨잖아요. 장르가 장른데.”
“예상은 했지, 그래도 속은 쓰리다.”
“다른 반응도 있어요. 리서치 결과가 아주 극과 극이거든요.”
홍보담당자가 다시 자료를 읽었다.
“믿고 보는 최성원 감독에, 믿고 보는 배우들 총출동인데 대작 하나 나올지도. 제작비가 삼백억이 넘는다던데, 엄청 기대된다. 이런 스케일이면 관객 천만은 무조건 넘을 듯.”
“그만해, 그만!”
대표가 조금 전보다 더 격하게 손을 저었다. 다른 직원들의 낯빛은 칙칙하다 못해 구정물이 줄줄 흘렀다. 회의실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기획팀 막내가 눈치를 살피며 옆자리의 직원에게 속삭였다.
“분위기 왜 이래요? 리서치 반응 좋은 거 아니에요? 엄청 기대된다는데.”
“그게 더 무서운 말이야, 임마.”
기획팀 직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관객들이 백을 기대하면, 백 점짜리 영화를 만들어도 본전이야. 그냥저냥 볼만은 하네, 가 된다고. 그런 관객들 만족시키려면 이백 점, 삼백 점짜리 영화를 뽑아내야 하는데 그게 쉽냐. 그리고 만약에, 영화 퀄이 백 점짜리도 안되면······.”
직원이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을 들은 옆 사람들의 눈이 퀭해졌다.
대표가 테이블을 철썩 내리치며 말했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 성공시키면 되지!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경우라도 손익분기점은 찍을 거야. 홍보도 순조롭게 잘 되고 있고, 감독이 최성원이고, 출연자 라인업이 이 정돈데 설마 망······.”
자신 있게 시작한 말이 점점 무너지더니, 마지막엔 짓뭉개졌다.
“······이거 망하면 어떡하지?”
“재난이죠. 지금 제작 대기 중인 시나리오들도 싹 다 브레이크 걸릴 거예요.”
기획피디의 말에 대표가 영혼 없이 웃었다.
그때 계속 눈치를 살피던 제작피디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대표님, 이런 상황에서 말씀드리기 좀 죄송한데요.”
“죄송한 말이면 하지 마.”
“제작비가.”
“제작비 얘기면 더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감독님이 제작비가 조오금 더 필요하다는데요. 조금이요.”
기어코 뚫고 나온 말에, 사방에서 앓는 소리가 터졌다.
대표가 손을 덜덜 떨며 소리쳤다.
“제작비가 왜 부족해! 돈을 그렇게 쏟아붓고 있는데, 어떻게 제작비가 부족할 수가 있냐!”
“CG 때문에요. 시각효과 팀 인력 증원해야 한대요.”
“중국에서 작업하는 인력까지 데려왔잖아! 그걸로도 부족해?”
“CG 들어가는 컷이 거의 반이잖아요. 지금 있는 스텝들은 벌써 갈려 나가는 중이고요. 그래도 부족하대요. 어떡하죠? 감독님한테 이제 먹고 죽을 돈도 없다고 할까요?”
“야! 너 이···!”
버럭 소리친 대표가 겨우겨우 심호흡했다.
“···알았다고 해. 그리고 현장 나가서는 우리가 이런 얘기 하는 거 입도 벙끗하지 말고! 감독이랑 배우들 안 그래도 부담 클 텐데, 더 얹어줬다가 작품에 영향 미치면 진짜 큰일 난다!”
“넵!”
제작피디가 냉큼 대답했다. 노려보던 대표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투자사들이랑 해외 세일즈 쪽 사람들이 촬영현장 방문하기로 한 거, 그거 준비 완벽하지? 돈 더 나올 구멍은 그거뿐이다.”
“내일 찍을 씬 중에 출연진들 단체 씬, 그거 볼 만할 거예요. 스케일 크고 다이나믹한 씬이니까. 좀비 분장한 보조출연자들도 백 명 가까이 동원할 거고요.”
“돈 쏟아붓는데 스케일 큰 건 당연한 거고. 누구누구 출연하는지는 이미 다 아는 거고. 뭔가, 현장에서 그 양반들 혹하게 만들 수 있는 게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대표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플러스알파가 없단 말이야, 플러스알파가······.”
*
“조윤아! 남조윤!”
촬영의상을 갈아입고 나오던 남조윤이 고개를 돌렸다.
캡모자를 푹 눌러쓴 배우, 김현섭이 손짓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함께 독립영화를 찍는 배우들과 스텝들이 우글우글 모여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남조윤이 가방을 챙겨 들고 다가갔다.
“왜.”
“지금 위클리연예에서 얼라이브 촬영현장 찾아간 거 나오는데?”
남조윤이 DMB 화면을 들여다봤다. 상단에 [한류스타 이송하, 화제작 ‘얼라이브’ 촬영현장]이라는 자막이 떠 있었다. 막 이송하의 단독인터뷰가 끝나고, 현장 스케치그림이 비췄다.
독립영화 스텝과 배우들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현장 규모 끝내준다. 블루스크린 크기가 건물만 하네.”
“배경을 CG로 다 바르겠다는 거지. 와씨, 좀비 분장 봐.”
“재밌겠다. 힘들어도 저런 현장이면 일할 맛 나겠는데.”
“나는 언제 저런 배우들이랑 같이 영화 찍어보나.”
“그냥 우리랑은 다른 세상이려니, 해라. 부러워하면 속만 쓰리지.”
“뭐가 다른 세상이야?”
조감독이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우리도 저런 현장에서 일할 날이 올 수도 있지! 사람인생 모르는 건데. 여기 남조윤 씨도 저 영화 출연하잖아! 내일 첫 촬영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
그가 남조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스텝들과 배우들의 시선이 남조윤에게로 쏟아졌다. 축하하거나, 부러워하거나, 또는 아니꼬워하는 기색이 섞인 시선이.
그때 DMB에서 스텝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스턴트 없이 직접 찍는다고 엄청 빡세게 배웠어요. 체조도 레슨 선생 찾아서 배우고, 파쿠르랑 클라이밍······.
“진짜 엄청 준비하는구나. 근데 조윤 씨는 준비 같은 거 안 해요?”
누군가 툭 물었다.
독립영화 감독이 입술을 핥으며 덧붙였다.
“조윤 씨가 이렇게 꼬박꼬박 촬영 나와주는 거 정말 고마운데, 나도 좀 걱정되네. 조윤 씨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르는 기회잖아. 저 작품에 올인해도 부족한데, 괜히 우리 작품 때문에 시간 뺏기면···.”
“뭐, 준비할 게 필요없는 배역인가 보죠.”
배우들 쪽에서 쏘는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성현 씨, 왜 그래.”
“뭐가요. 비중 별로 없으면 준비 같은 거 필요 없잖아요.”
어깨를 으쓱한 이성현이 홱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배우 몇 명이 남조윤을 힐긋 보더니 이성현 뒤를 쫓아 사라진다.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싸해졌다. 남은 사람들이 남조윤의 기색을 살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남조윤은 줄곧 DMB 화면을 주시했다.
조감독이 남조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신경 쓰지 마. 어쨌든 조연이라며? 그럼 성공한 거지!”
“맞아. 큰물에서 배운다고 생각하고 가. 그 유명한 최성원 감독 디렉팅도 받아보고. 거기 가면 탑스타들 천질 텐데, 가까이서 구경도 실컷 하고. 근데, 나 박세령 사인 좀 받아다 주면 안 되나?”
“저는 이기환이요! 완전 팬인데!”
“괜찮으면 나는 이송하! 우리 딸이 노래 따라부르고 난리더라.”
촬영장이 금세 다시 떠들썩해졌다.
생수를 마시던 남조윤이 핸드폰을 꺼냈다. 진동과 함께 메시지가 들어왔다. 내용을 확인한 그가 익숙하게 답장을 써내려갔다.
김현섭이 뒤에서 기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또 정선우 실장이야? 이번엔 뭐라는데?”
“내일 촬영 전에 데리러 온다고.”
남조윤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젊은 친구가 아주 진국이야. 처음엔 또 간만보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몇 달째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고. 이송하 같은 한류스타 데리고 있으면서 너한테까지 이렇게 신경 써주는 거 보면, 전생에······.”
김현섭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 엄마였을 수도 있어. 이건 거의 모성애야, 모성애.”
“시끄러워.”
“근데 말이다. 네가 워낙 평소랑 똑같아서, 나도 좀 걱정된다, 야.”
김현섭이 목을 긁적이며 물었다.
“너 진짜 촬영준비 잘 되고 있는거냐?”
*
완연한 여름이었지만, 아직 아침 바람은 좀 쌀쌀했다. 대학교 이름이 박힌 점퍼를 입은 청년이 얼굴에 찬바람을 가득 묻히고 체육관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이 주변에 연예인 사나 봐요! 저 밖에서 그 사람 봤어요!”
“누구?”
“왜, 그, 매니전데···!”
“정선우?”
“어, 맞아요! 그 사람! 어떻게 바로 아셨어요?”
체육관 안에 있는 서너 명이 동시에 웃었다. 근육이 두툼한 체육관 직원이 마대 걸레로 바닥을 밀며 말했다.
“그 사람 배우가 우리 체육관에서 운동해. 관장님하고 친하거든.”
“진짜요?”
“요 두 달간은 엄청 자주 왔는데. 새로 와서 아직 못 봤구나.”
“우와, 배우. 보고 싶다. 보통 어느 시간대에 와요?”
“촬영 있는 날은 밤에 오고, 없는 날은 낮이고 밤이고 자주 오니까 금방 볼걸? 거기, 뒤에 캐비닛에서 수건 한 장만 꺼내와 봐.”
대학생이 길쭉한 캐비닛으로 다가갔다. 문을 벌컥 연 순간.
그는 오싹한 무언가와 마주쳤다.
사람의 눈이었다.
“으아아! 시발! 깜짝이야!”
대학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급기야는 발을 헛디뎌 바닥에 쿵 엉덩이를 처박았다. 아닌 척 힐끔거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뒤집어지며 낄낄거렸다.
대학생이 삿대질했다.
“뭐, 뭐예요, 저 사람! 저 안에서 뭐해요!”
“보고 싶다며. 배우.”
직원이 웃다 기침까지 하며 말했다.
놀란 대학생이 홱, 다시 캐비닛을 바라봤다.
캐비닛 안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남자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비좁은 캐비닛 안에서 얼마나 있었던 건지 걸음이 휘청거렸다. 빛이 낯설기라도 한 것처럼 찌푸린 눈은, 여전히 꺼림칙하게 번들거렸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린 대학생이 슬금슬금 직원에게 다가갔다.
“어으, 소름 끼쳐. 저 사람, 저 안에서 뭐한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해. 그냥 저러고 서 있어. 시도때도없이.”
“시도때도없이요?”
“무슨, 연기하는 데 필요하다나. 저 안에서 밤샐 때도 있어.”
대학생이 기겁했다.
“미친 거 아니에요? 정신병 걸릴 거 같은데? 아니, 아까 눈빛이 이미 좀 정상은 아닌 거 같았어요!”
“그치?”
직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체육관 문이 열리고 정선우가 들어왔다. 그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보내고 캐비닛에 기대 서 있는 남자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형, 또 거기 들어가 있었어요?”
“잠깐. 몇 분 정도.”
“이것 좀 그만하라니까. 다른 방법도 있는데 위험하게···.”
“앞으로는 안 할게.”
혀를 차며 걱정하는 정선우에게, 남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 이젠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
[ 정 실장 배우들은, 뭔가 좀 (2) > 끝ⓒ 장우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