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155)
이태신 실장은 욕실 문에 기대 허겁지겁 숨을 들이켰다.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조급해졌다.
-찌라시 내용 진짜야? 이 실장, 나한테만 말해보라니까?
“피디님, 그게···!”
-뭐가 있긴 있구만?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오늘 점심 어때?
그가 프리티걸을 영업하려고 케이블 방송사에 커피를 돌릴 때면, 늘 성가시다는 듯 거들떠도 안 보던 피디였다.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감회에 젖을 만도 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사색이었다. 이곳이 숙소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멤버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호흡곤란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피디님,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요,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약속부터, 이 실장! 이 실장!
도망치듯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가 들어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잠깐 망설이던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프리티걸 이태신 실장님이시죠? 투데이스타 기잔데요. SNS에 올라왔던 찌라시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관련 기사를 준비 중인데, 사실 확인 좀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인터뷰 부탁드려도 될까요?
고객센터 상담원 같은 사근사근한 목소리였다.
기자라는 말에 당황했던 이태신 실장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
“기자님, 이게 아직 다 확정된 사항이 아니라서 인터뷰는 곤란합니다.”
“근거 없는 찌라시는 아니란 말씀이시죠?”
“저기, 당장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보도 자제 부탁드립니다.”
간신히 기자를 설득한 그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금방 다시 진동이 울렸지만, 이번엔 무시했다. 대신 그는 프리티걸 멤버의 핸드폰을 빌려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다 통화중이었다.
“저, 정실장님 전화 안 받으세요?”
“응. W&U홍보팀 대표번호도 통화중이고. 저쪽에도 기자들이 붙었나 봐.”
“어떡해. 실장님, 지금 큰일 난 거 맞죠?”
멤버들은 창백한 얼굴로 얼어붙어 있었다. 서로 꽉 움켜잡은 손들이 오들오들 떨렸다. 어젯밤 가족들과 통화했을 때만 해도 행복에 겨워 울고불고 하던 얼굴이, 지금은 겁에 질려 울상이었다.
정체모를 고등학생이 올린 SNS. 모두 그것 때문이었다.
「건너건너 들었는데, 프리티걸이라고 데뷔 2년차 듣보 걸그룹 있음. 근데 W&U 정선우 실장이 걔들 데리고 리얼리티 방송 만든다는 것 같던데?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무명 연예인 띄우는 그런 거면 재밌을 듯.」
글은 올라온 지 얼마 안돼서 삭제됐지만, 대부분의 찌라시가 그렇듯 곰팡이처럼 퍼져나갔다. SNS 캡처 이미지가 돌고, 추측성 찌라시 기사가 떴다. 그리고 기자의 확인전화까지. 모두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 때문인가 봐. 우리가 집에 얘기하고 나서 바로 이렇게 됐잖아.”
“가족들은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다는데, 건너건너 어디서 들은 거야.”
“통화하는 거 누가 들은 거 아냐? 우리 아빠 밖에서 통화했는데. 나보고 사기당하는 거 아니냐고, 정선우 실장님 얼굴 직접 본 거 맞냐고 계속 물어봤단 말이야. 그거 누가 들었을지도 몰라.”
“집에 괜히 말했나봐. 그냥 좀 더 참을걸.”
오연두가 이태신 실장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실장님, 저희 때문에 이거 엎어질 수도 있어요?”
“아냐. 어제 정 실장님이 너희 집에 얘기해도 된다고 했어. 너무 걱정하지 마. 아마 곧 W&U에서도 정식 보도자료 나올···.”
멤버들을 진정시키며, 그는 넷북으로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프리티걸 이름을 입력하자마자 찌라시 기사가 쏟아졌다. 현실감이 멀리 달아났다. 더듬더듬 기사들을 훑던 이태신 실장이 눈을 부릅떴다.
······프리티걸 측 관계자는 갑자기 터진 찌라시 기사에 난색을 표하며 “백프로 확정된 사항이 아니라서 아직 인터뷰는 곤란하다, 당장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투데이스타 기사였다. 그가 했던 말이 고스란히 올라가, 찌라시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었다. 이태신 실장의 얼굴에 그나마 남아있던 핏기가 싹 가셨다. 이제는 도리어 멤버들이 그를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그가 맨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실장님, 전화요! 전화 왔어요!”
오연두가 허둥지둥 자기 핸드폰을 건넸다. 정선우의 번호가 떠 있었다.
“정 실장님!”
-네, 기자들한테서 전화가 계속 들어와서 이제 확인했습니다.
목소리는 무겁고 거칠었다.
-죄송합니다. 피곤해서 그런지 목이 잠겨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던 이태신 실장이 안도했다.
헛기침과 함께 원상태로 돌아온 정선우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평상시처럼.
“실장님, 기사 보셨어요?”
-방금 봤어요. 투데이스타에서 독점 기사도 났던데.
이태신 실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기사에 나온 관계자가 접니다. 좀 전에 기자랑 통화했는데, 제가 대처를 잘못한 것 같아요. 보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렇게 바로 기사로 내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혹시 이것 때문에 문제가···.”
-아, 아닙니다. 오히려 잘됐어요. 자연스럽게.
“네?”
얼떨떨한 얼굴로 굳어있는 이태신 실장에게, 정선우가 다시 말했다.
-생각보다 더 빨리 터졌네요. 이렇게 빠를 줄 알았으면 어제 말씀드렸을 텐데.
“그럼, 그러니까 이 찌라시가······.”
긍정하듯,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
이태신 실장은 택시를 탔다. 운전대를 잡으면 사고를 낼 것 같은 상태였다. 택시비를 내고 내리자, 거대한 W&U 사옥이 코앞에 있었다. 멍하니 건물을 올려다보던 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도착했다고 전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오는 중에도 계속 진동하는 걸 무시했더니,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가 가득했다. 목록에는 NK엔터에 가있는 멤버들, 박효진과 윤보라의 이름도 줄줄이 찍혀있었다.
그가 가장 위에 있는 메시지를 눌렀다.
-실장님. 왜 이렇게 전화연결이 안돼요? 지금 기사 뜨는 거 뭐예요?
-프리티걸 기사 뜨는 거, 이거 우리 말하는 거 맞아요? 어디 계세요?
“어, 안녕하십니까.”
누군가 아는 척을 했다. 이태신 실장이 황급히 돌아봤다.
부드럽게 처진 눈, 경호원처럼 커다란 체격. 정선우 실장과 함께 한번 본적이 있는 로드매니저 이관우였다. 그는 양손에 커피 박스와 편의점 봉투를 바리바리 들고 있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이태신 실장이 손을 내밀었다.
“제가 하나 들게요.”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뭐.”
여유롭다는 듯 손을 까딱거린 이관우가 말했다.
“회의 때문에 오셨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 예.”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닙니다. 명함만 실장이지, 사실 실장 겸 로드나 마찬가지라서.”
“그래도 연차도 나이도 많으신데.”
“정말 괜찮아요. 이게 편합니다.”
이태신 실장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관우가 엘리베이터쪽으로 안내했다. 이태신 실장은 W&U소속 연예인들의 프로필 영상이 지나가는 LED전광판을 홀린 듯 보다가, 이관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태연한 표정이었다. 인터넷의 난리는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덕분에 이태신 실장도 조금씩 혼란에서 빠져나왔다.
그런 그를 이관우가 다시 떠밀었다.
“프리티걸 곧 실검 1위 올라가겠던데요.”
“네? 어디요?”
“실검이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
이태신 실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포털의 실검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건 무명 연예인들에겐 큰 성과였다. 때문에 SNS에 문제성 발언을 적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실검 순위에 머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리티걸도 실검에 잠깐 올랐던 적이 있었다. 데뷔 초기, 교복과 에이프런을 활용한 무대의상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이태신 실장이 수많은 시도를 했음에도 변변한 성과가 없었다. 1위는 언감생심 노리지도 못했다.
그런 걸 대수롭지 않게 언급하니, 이태신 실장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올라가면 어, 얼마나 머무를까요?”
“못해도 오늘 하루는 온종일 떠 있을··· 괜찮으세요?”
이태신 실장이 헛숨을 삼켰다. 손이 가슴께를 짚었다.
“숨을 못 쉬겠네요. 여기선 그런 게 별 일이 아닌가 봐요.”
“그런 건 아니고, 자주 있는 일이라 익숙해져서 그렇습니다.”
“자주······ W&U홍보팀 정말 대단하네요.”
“홍보팀장님도 대단하시지만, 저희 실장님 브랜드 파워도 어마어마하죠.”
자랑스럽게 말한 이관우가, 뒤늦게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했다.
이태신 실장이 그 모습을 힐끔 바라봤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춰 서자 이관우가 다시 앞장섰다. 직원들이 퀭한 얼굴로 쉬고 있는 라운지, 매니지먼트사업부 3팀이라고 패널이 붙어있는 사무실, 글자로 빽빽한 스케줄보드.
“여깁니다.”
주위에 시선을 빼앗겼던 이태신 실장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기자들이 프리티걸 홍보자료 달라고 난린데, 같이 보낼까요?”
“기다려봐. 자기, 리얼리티 프로 건은 반응 어때?”
“외주 프로덕션에서도 사실이면 같이 해보자고 몇 군데서 연락 왔고, 케이블이랑 PBS쪽에서도 찔러보는 게 관심 있는 눈치예요. PBS는 좀 깐깐하고요. IBC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IBC에선 연락 없고?”
“네. 그쪽도 지금 기사보고 상황파악 했을 테니까, 이 얘기중이겠죠.”
“다른데서 제안 들어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어느 정도는 알겠죠. 그 사람들도 눈치 빤한데.”
회의실 안은 시끌시끌했다. 홍보팀 직원들은 핸드폰을 어깨와 뺨 사이에 끼운 채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고, 정선우와 홍보팀 박 팀장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 중이었다.
“커피랑 간식 왔습니다!”
이관우가 테이블에 커피 박스와 간식을 올려놨다. 사람들의 얼굴에 순식간에 생기가 돌았다. 커피대신 숙취해소 음료를 찾은 정선우가 단숨에 병을 비웠다. 그리고 이태신 실장을 발견했다.
환영하듯, 그가 벌떡 일어났다.
정선우의 소개로 인사를 마친 이태신 실장이 자리에 앉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기획안을 들고 갔더니 IBC의 부장이 얼토당토않은 조건을 내밀었다는 것, 그래서 사태전환을 위해 기사를 터뜨렸다는 것. 전후관계를 정리한 이태신 실장이 내심 침을 꿀꺽 삼켰다.
지상파 방송국 부장과의 힘겨루기.
조연출과도 말 한마디 나누기 어려운 처지인 그로써는, 듣기만 해도 살 떨리는 얘기였다. 그가 이런 처지에 놓였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손발이 차가워졌다.
그가 정선우를 힐끔 바라봤다. 평소와 다름없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갈 곳 없어서 IBC로 간 것도 아니고, 예의상 기사 터뜨리기 전에 먼저 얘기해보려고 한 건데. 대놓고 홀라당 벗겨먹으려고 들더라고요. 제가 좀 얕보이는 스타일인가 봅니다. 눈썹이라도 밀어야 되나.”
“하지 마세요.”
홍보팀 여직원이 통화하다말고 반대했다. 회의실 안에 웃음이 번졌다.
이태신 실장은 그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고 어색하게 입 끝을 올렸다.
“슬슬 반응 좀 떠볼게요.”
정선우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고요해진 회의실에 신호음이 울렸다. 통화는 십초도 안 돼서 연결됐다.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에 정선우가 소리 없이 웃음을 흘렸다.
-정 실장님?
“연락 늦어서 죄송합니다, 피디님. 혹시 기사 보셨어요? 지금 그거 수습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요.”
앓는 소리가 천연덕스럽게 나왔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듯, 능숙한 태도였다. 기자와 통화를 하다가 고스란히 코멘트를 내줬던 기억을 떠올린 이태신 실장이 목을 문질렀다.
최병수 피디가 똑같이 앓는 소리를 냈다.
-리얼리티 프로에 대해서도 추측성 기사가 엄청 나돌던데요. 황 부장님이 어제 하던 얘기 마무리 짓고 정식으로 보도자료 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자꾸 쪼시네요. 성격이 급하셔가지고.
“아, 그게 아직 내부적으로 회의가 덜 끝났는데. 기사가 터지는 바람에요. 그리고 기사 보고 프로덕션이나 다른 방송사 쪽에서도 제안이 좀 오고 있거든요. 기획안 좀 보내달라고.”
-······그래요?
“IBC보다 조건 좋은 얘기도 많아서요. 이게 참, 저도 난감하네요.”
건너편에선 말이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태신 실장이 눈동자를 굴렸다. 모두의 시선이 핸드폰에 꽂혀있다. 하지만 숨소리까지 죽이며 긴장한 건 그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최 피디의 대답이 궁금한 듯, 흥미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제가 부장님께 다시 얘길 잘 해볼게요. 최대한 애써보겠습니다. 그런데 실장님, 다른 방송사로 옮기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좀. 부장님이 벌써 리얼리티 프로 담당할 메인피디까지 물색해놓으신 상태예요.
“벌써요?”
-네, 그래서 실장님이 다른 방송사 운운한 거 아시면 난리 날겁니다. 아주 길길이 뛰시면서 서영이랑 엘제이 진짜 하차시키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럼 둘은 프로그램 열심히 잘 하다가 무슨 날벼락입니까.
걱정을 가장한 위협이었다.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정선우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말끝마다 애들을 걸고넘어지네요. 인질 잡힌 것도 아니고.”
“요즘 지상파고 케이블이고 예능이 다 남탕이라, 굿프렌즈처럼 걸그룹 애들이 둘이나 고정자리 꿰차고 들어갈 버라이어티가 없잖아. 끽해야 예쁜 병풍처럼 앉아서 박수나 치다가 오는 롤이지.”
박 팀장이 혀를 찼다.
“굿프렌즈만한 게 없는 걸 자기들도 아니까 더 세게 나오는 거야. 날강도가 따로 없다니까, 아주.”
이태신 실장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출연할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건, 걸그룹 매니저들의 공통된 문젯거리였다. 만약 넵튠 멤버들이 굿프렌즈에서 하차한다면 그 자리를 노리는 걸그룹이 줄을 설 게 뻔했다.
이태신 실장이 물었다.
“일이 잘 풀려서 IBC쪽에서 과한 요구조건을 좀 철회하면 좋은데, 만약에요. 저쪽에서 이대로 한 발짝도 안 물러서면 어떡합니까?”
“갈라서야죠.”
정선우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가, 갈라서요? 정말 다른 방송사로 간다고요? 그러다가 IBC에서 보복으로 넵튠 멤버들 하차시키면 그때는······!”
당황해서 더듬거리던 이태신 실장이 눈을 크게 떴다. 최악의 가정을 꺼냈는데도 불구하고, 정선우는 여전히 담담한 기색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동요하는 기미가 없었다.
이태신 실장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말했다.
“혹시 애초에 멤버들 하차까지 생각하고 시작하신 겁니까?”
[ 무능하거나, 유능하거나 (8)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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