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167)
“하나가 안 꺼졌네? 저 카메라는 왜 빼먹었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귀퉁이 영상.
그걸 확인한 임서영의 반응은 가벼운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영상이 커져 전체화면을 꽉 채우고 나자, 임서영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서는 카메라의 존재를 모르는 임서영이 거실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큼직한 눈이 나를 홱 쳐다본다. 안에서 지진이 났다.
“뭐예요, 오빠? 저거 왜 계속 나와요? 편집이 잘못된 건가? 방송사고?”
“그럴 리가. 유 피디님이 밤새 편집한 부분인데.”
“네? 저 혼자 있는 걸 왜······. 내가 저 날 뭐했지?”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날짜를 중얼거린다.
그동안 화면 속의 임서영은 리모컨을 눌렀다. TV속에서 똑같은 TV가 켜진다. 로열패밀리 재방송 채널이었다. 이송하가 연기한 까칠한 탑스타, 이소희가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현실의 임서영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리모컨을 쥔 나를 흔든다.
“우, 우리 다른 거 봐요!”
“모니터링 해야지. 이제 시작했는데.”
“이 부분은 안 봐도 돼요! 해로운 부분이에요! 오빠, 살려줘요!”
“너 살아있다.”
“뱀! 피도 눈물도, 동정심도 없어!”
나를 조르다가 포기한 임서영이 다른 멤버들을 돌아봤다. 자기편을 만들려는 모양이었지만, 이미 셋 모두 흥미로운 눈빛으로 TV화면을 주시하고 있다. 임서영이 이송하의 어깨를 덥석 붙들었다.
“나가자, 송하야! 내가 족발 쏠게!”
“족발?”
이송하가 눈을 번뜩였다.
“그래. 족발!”
“아까 주문했는데 왜 이렇게 안 오지?”
심각한 혼잣말에 임서영이 발을 굴렀다.
“이씨, 보려거든 나를 밟고 봐!”
가오리처럼 양팔을 펼치고 TV쪽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삼초 만에 도로 끌려온다. 엘제이가 임서영을 낚아챘다. 단숨에 러그위에 깔아뭉개고 올라탄다. 레슬링 선수 뺨치는 동작이었다.
임서영이 러그를 치며 깽깽거릴 때.
TV스피커에서 임서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떻게 선글라스 좀 썼다고 날 몰라봐? 눈이 삐었어요? 내 가슴에, 다리에, 심지어 엄지발가락에도 이소희라고 써있잖아! 이런 예술적인 라인이 또 있는 줄 알아요? 봐요! 보라고!」
이소희의 대사다.
자료화면으로 로열패밀리의 이소희 씬이 나오더니, 그 대사를 똑같이 따라하는 임서영의 모습이 비춰졌다. 매끈한 다리를 박력 넘치게 허공에다 척 올리고, 엄지발가락을 꼬무락꼬무락 움직이는 모습이.
나름 예술적인 라인의 발이었고, 예술의 경지를 넘어선 발연기였다.
몇 번 이소희의 대사를 따라 치더니 손부채질을 한다. 연기 혼을 불태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소희의 대사가 부끄러웠기 때문인지, 화면에 비친 동그란 얼굴이 화끈화끈 달았다.
엘제이에게 깔린 임서영이 황급히 변명했다.
“그냥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한번 해본거야!”
동시에, 스피커에서 같은 목소리가 겹친다.
「고양이 수호령보다 이게 훨씬 어렵네. 얼라이브 대본은 남는 거 없나?」
“나한테 이러지 마! 차라리 곱게 죽여줘!”
현실의 임서영이 울부짖었다. 이마를 러그에 퍽퍽 받으면서.
이송하가 무릎걸음으로 그 곁에 다가가 말했다.
“언니. 나한테 얼라이브 대본 많은···.”
“아니! 그게 아니··· 으아아!”
임서영이 팔다리를 미친 듯이 허우적거렸다. 화면 속의 임서영이 이번엔 제 방에서 종이더미와 노트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종이에 빼곡하게 그려진 건 악보였다.
현실의 임서영이 이태희에게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어, 언니, 우리 TV끄고 맥주나 한잔 할까?”
“서영아.”
“내가 오늘은 제대로 술친구 해줄게!”
“소리가 안 들리잖아.”
언제부턴가 일어나 앉아있던 이태희가 말했다.
“귀여운데, 왜.”
“아니야! 언니 말은 신빙성이 없어!”
“왜?”
“언니는 손주가 뭘 해도 허허허 웃는 할아버지니까!”
임서영이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절망했다.
그즈음 화면 속의 임서영은 노트에 콩나물대가리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작곡 중이었다. 때때로 흥이 올랐는지 수준급의 안무도 붙였는데, 돼지 목의 진주였다. 누가 봐도 저건 댄스보단 율동이 어울리는 곡이었다.
자료화면으로 이태희가 W&U 프로듀서 실에서 작업하는 모습이 붙는다.
다시 돌아온 화면에서, 작곡을 마친 임서영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은데. 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 다음으로는 평소 잘 꺼내지도 않는 반지를 열손가락에 끼고, 온 거실을 뛰어다니며 랩을 한다. 유수영 피디는 잔인하게도 엘제이가 랩하는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삽입했다.
현실의 임서영이 축 늘어졌다.
자료화면을 빼면 임서영의 원맨쇼 분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애를 너덜너덜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임서영은 여전히 엘제이에게 덮쳐진 채 얼굴을 자기 손바닥 위에 숨기고 있었다.
엘제이가 임서영의 옆구리를 살살 찌르고 간지럽혔다.
“야, 너 혼자서도 재밌게 논다? 그래서 집에서 잘 안 나가는구만?”
“시체한테 말 걸지 마. 폭력배야.”
임서영이 음산하게 말하며 엘제이를 밀쳤다. 엘제이도 이번엔 순순히 밀려났다. 일어난 임서영이 힐끔 TV를 본다. 전환된 화면에서는 이제 프리티걸 멤버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퇴각하는 적군을 본 것처럼, 임서영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붉은 뺨을 문지르며 나를 바라본다. 또렷한 눈으로.
“시청자 반응은 어때요, 오빠?”
“좋아.”
내가 곧바로 대답했다.
시청자들이 본방을 보며 실시간으로 써 올리는 글들은 대부분 호의적이다. 자료화면으로 이태희와 이송하, 엘제이의 모습을 끼워 넣어 실력파 걸그룹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임서영으로 예능적인 재미까지 담았다.
저 멤버는 누구냐고 묻는 글도 꽤 보인다.
그런 글마다 넵튠 팬들이 울면서 댓글을 남기고 있다. ‘임서영’이라고.
임서영이 둥근 어깨를 들썩였다.
“잘 됐네요.”
“방금 전까진 죽으려고 하더니?”
엘제이가 물었다.
“너 같으면 멤버들 다 보는 앞에서 흑역사 틀어놓고 싶겠냐!”
버럭 소리친 임서영이, 금방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뭐어, 그건 그거고. 중요한 건 반응이니까. 시청자들이 재밌어하고, 덕분에 우리 인지도 올라가면 완전 잘된 거지. 나 넵튠 예능담당 4년째거든? 새삼 셀프몰카 가지고 충격 먹고 그러겠어? 웃음 주는 게 내 롤인데.”
태연히 말하더니 나를 흘겨본다.
“그래도 미리 얘기라도 좀 해주시지!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미안.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사정이 좀 있었어.”
“사정이요?”
의아해하는 임서영에게 다시 말했다.
“그리고, 웃음 주는 롤 아닌데.”
“네?”
“네 롤 말이야. 이번엔 웃음 주는 거 아니라고.”
“그럼 뭔데요?”
“글쎄, 감동?”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임서영의 의아한 시선이 따라온다. TV화면 속에서는 다시 숙소 거실이 비치고 있었다.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 부랴부랴 청소중인 임서영도 모습도.
「프리티걸 애들 온다구요? 숙소에 저 밖에 없는데.」
화면을 보는 임서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화면을 주시했다.
유수영 피디에게 대강 편집방향을 들어서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는 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녹화 테이프를 다 돌려본 것도 아니고, 편집본을 미리 확인한 것도 아니다.
정확히 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화면 속, 나와의 통화를 마친 임서영이 청소에 박차를 가했다. 곧이어 벨이 울렸다. 방문객은 프리티걸 멤버들이다. 미리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는데도, 선후배 관계라 어려운지 표정이 바짝 굳어있었다.
「집에서 엄마가 보내주신 반찬인데요. 선배님들도 숙소생활하신다고 했더니 저희거랑 두 개를 싸주셔서요. 저, 선배님들 혹시 밥 차려 드시는 일 있으시면 이거······.」
오연두가 에코백을 양손으로 내밀었다.
임서영이 덥석 받았다.
「완전 좋지! 우리 숙소에 식신이 하나 있어서 이런 거 금방 먹어! 앉아서 뭣 좀 마시고 가. 우리 숙소에 뭐 많아. 어디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만, 뒤져보면 분명 있을 거야.」
「오늘 촬영 날 아닌데 그래도 돼요? 카메라 있잖아요.」
「카메라 아까 다 껐어. 괜찮아!」
임서영이 활짝 웃으며 프리티걸 멤버들을 초대했다.
그 다음 화면은, 통곡의 도가니였다. 카메라가 꺼졌다는 말이 붕어들의 긴장감을 무너뜨렸는지, 아니면 임서영의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태도에 마음이 녹았는지, 두루마리 휴지를 하나씩 들고 눈물과 딸꾹질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임서영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달랬다.
「얘들아, 왜 그래, 어? 울지 마. 나도 눈물 나려고 하잖아!」
「죄소, 옹해요. 선배님 얘기 듣다보니까 자꾸 생각이 나서···!」
「저희 이제, 갈게요. 죄송합니다!」
「야아, 이러고 가면 어떡해! 그치고 가야지! 뭐, 무슨 생각이 났는데?」
끅끅대며 일어나는 붕어들을 임서영이 다시 주저앉혔다.
「악플? 기사에 악플 같은 거 달렸어?」
「아아니요. 그게 아니고, 찌끄레기 때문에요.」
「뭐? 찌끄레기? 그게 뭐야?」
윤솔이 대답했지만, 사람의 언어가 아니었다.
오연두와 이화인이 번갈아가며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사장님이 저희한테 그랬었거든요. 찌끄레기들만 남았다고.」
「걔들 가지고 뭐가 되겠냐구요.」
「우리가 잘돼서 찌끄러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더 힘냈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그 말이 생각나요. 어마어마한 게 진행되고 있는데, 엄마도, 실장님도 기대하시는데 저희 때문에 금방 실망할까봐 무섭고.」
「재이 언니도 이제 저희랑 같은 팀 하기 싫어서 안 돌아오는 것 같고.」
「재이 언니 얘기는 하지 마! 보고 싶잖아아······!」
장난삼아 붕어라고 불렀더니, 남의 집을 어항으로 만들 기세다.
오연두가 눈물로 세수한 얼굴을 휴지로 북북 문질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은 저희한테 좋은 말도 많이 해주시고 도와주시는데, 저희는 선배님 곤란하게 울고 있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더 열심히 해서 꼭 선배님처럼··· 그러니까, 제 롤모델이 선배님인데···!」
횡설수설을 듣던 임서영이 입술을 꾹 물었다.
붕어들에게 동화돼서 당장이라도 넘칠 것 같던 눈물이 도로 스며든다.
「너희 찌끄러기 아니야. 난 너희가 되게 부러웠는데.」
「네?」
「너흰 선우 오빠가 직접 가서 데려왔잖아. 그게 나한테는 되게, 부러운 거라서. 난 그런 경우가 아니었으니까. 회사가 선우 오빠를 우리 팀 매니저로 보냈고, 내가 운 좋게 그 팀에 있었던 거지.」
프리티걸 멤버들이 당황해서 입을 벙긋거렸다.
조금 젖었지만, 담담하려고 노력하는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송하 때는 선우 오빠가 연기해 보라고 설득하고, 밤새우면서 같이 리딩도 하고 그랬거든. 태희 언니 땐 미완성인 자작곡 들어보자마자 밤새워 작업하고, 타이틀로 만들자고 밀어붙였었고. 나도 별의별 걸 다 해봤는데, 나한테는 그런 게 없더라고.」
임서영이 멋쩍은 듯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끌어안은 무릎 위에 턱을 얹는다.
「엘제이처럼 매사 당당한 것도 아니고, 나 혼자 몰래 눈치보고 그래.」
「서, 선배님은 춤도 무지 잘 추시고, 노래도 잘 하시고, 그리고 예능도 잘 하시잖아요! 넵튠 무명일 때는 선배님이 예능프로 돌면서···!」
「예전엔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좀, 다 어중간하거든.」
임서영이 목을 문지른다.
「다른 멤버들한테는 스케줄이 알아서 들어오는데, 나는 아직도 선우 오빠가 일일이 물색해서 스케줄 잡아줘야 되고. 너희가 프리티걸 찌끄러기면, 지금은 뭐, 내가 우리 팀 찌끄러기 같은 거야.」
「아,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선배님 엄청 대단한데!」
눈물이 쏙 들어간 프리티걸 멤버들이 엉거주춤 손을 저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임서영이 살짝 웃었다.
「그렇게 보였으면 다행이다. 백조처럼 노력한 보람이 있네.」
「선배님······!」
「어쨌든 다시 찌끄레기 생각이 나면 내 생각 해. 속마음은 이래도, 노력하다보니 나한테도 너희들처럼 날 롤모델이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생겼잖아. 그러니까 너희도 기회 놓치지 말고 계속 노력해 봐.」
임서영이 다시 빙긋 웃었다.
목소리는 상냥했지만, 아주 조금, 씁쓸했다.
「조금만 지나면, 너희는 금방 나아질 거야.」
화면에 못 박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말없이 임서영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 속에서, 임서영이 시체처럼 창백해진 얼굴을 들었다.
[ 메이킹필름, 하늘에서 떡밥이 빗발친다 (4)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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