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170)
손채영이라고?
시야가 뒤집어졌다.
박 국장의 얼굴이 송인호로 바뀐다. 부유하는 먼지마저 빛나던 환한 사무실은 사라지고, 나는 다시 어둑어둑한 주차장 구석에 쭈그리고 숨어있었다. 꿉꿉한 먼지 냄새가 훅 밀려왔다.
끝이야?
뜬금없이 손채영에 대한 정보 몇 개로 끝이라고?
허망한 기분에 눈살을 찌푸렸을 때.
“······안 돼요?”
초조한 목소리가 물었다.
송인호가 나를 보고 있었다. 거스러미 하나 없는 입술을 잘근잘근 못살게 굴면서. 내 양팔을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러다 멍들겠다. 팔을 떼어냈더니 다시 덥석 잡는다. 그것도 뗐더니 또 잡는다.
“놔봐, 좀.”
“형. 형님. 혀엉.”
“하지 마, 소름 돋는다.”
“모성애를 자극하면 형 마음이 말랑말랑해질 거라고 하셨는데.”
아쉽다는 듯 중얼거린다.
어쩐지 남들 앞에선 가정교육 엄하게 받은 도련님처럼 구는 놈이 나한테는 유난히 애처럼 치댄다 싶더니.
“누가 그런 소릴 해?”
“이봉준 실장님이요.”
이 양반이.
혀를 찼더니 송인호가 내 팔을 놓고 엉거주춤 뒤로 물러난다. 눈썹 끝이 내려온다. 잘 관리 받은, 어두침침한 주차장 구석에서도 빛이 나는 얼굴.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지치고 갑갑한 기색이 읽힌다.
쉬운 일은 아니지.
이제 연예계에 한 발을 담근 신인. 이놈이 무지개연못에 막 태어난 올챙이라면, 2팀장은 왕개구리쯤 된다. 그런 작자의 성화를 견디면서 독립영화를 끌어안고 있는 거. 어지간한 사람이었으면 벌써 포기했을 일이다.
이놈도 어지간히 고집스러운 성격이다.
그것 때문에 탐이 났던 거지만.
그래서 ‘형 팀으로 데려가 달라’는 말이 나오도록 꼬드긴 거고.
말간 눈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내려다보는 송인호에게 말했다.
“조금만.”
“네?”
송인호가 고개를 번쩍 든다.
움찔거리는 어깨를 손으로 짚고, 말을 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봐.”
왁, 하고 큰 소리를 낸 송인호가 재빨리 입을 막는다. 그리고 주차장 내부를 휙휙 돌아보더니 이번엔 소리를 죽여 웃었다. 비 내린 다음날의 싹처럼, 눈동자에 싱싱한 활기가 넘친다.
“형이랑 같이, 오랫동안 연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불쑥, 좀 전에 봤던 미래가 떠올랐다.
손채영이 한창 인기 많았을 때 은퇴했다.
별별 소문만 무성했고,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머릿속에 곰팡이처럼 피기 시작하는 생각을 툭툭 털어냈다.
기왕이면 송인호의 미래를 보고, 정보를 얻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필요 없는 정보 말고.
*
“여기 완전 꽉 막혔는데요.”
-어, 겨, 경호원들이랑 진행요원들이 그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행사 쪽도 정신이 없나보다. 다급한 목소리에 삑사리가 반이다.
전화를 끊고 차창 밖을 내다봤다. 사람들이 차 주변을 에워싸고 다닥다닥 붙어있다. 창문 좀 열어달라고. 얼굴 좀 보자고 외치면서. 얼라이브 찍을 때 이 사람들을 보조출연자로 썼으면 좀비 씬이 열배는 더 리얼했겠는데.
도착은 삼십분 전에 했는데 대기실 쪽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 운전석에 앉은 이관우는 핸들에서 손을 뗀지 오래다. 뒷좌석의 넵튠 애들도 다들 아연한 얼굴이다.
나도 놀랐다. 그간 기업이나 지역행사, 대학 축제, 수두룩하게 다녀봤지만 이렇게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파묻힌 건 처음이라.
임서영이 꼭두각시 인형처럼 삐거덕삐거덕 고개를 돌렸다.
“오, 오빠, 오빠, 오빠 목소리 좀 들려줘요.”
“왜.”
“몸이 뜨거워요. 이러다 자연발화 될 것 같아요!”
“내 목소리 들으면 괜찮고?”
“으아아, 얼음물에서 냉수마찰 하는 느낌이에요.”
늘 그랬지만, 오늘은 한층 더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찌나 재잘거리는지 엘제이가 재갈을 물리겠다고 나섰을 정도다.
조금, 병아리 눈물만큼 진정한 임서영이 속눈썹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혹시, 혹시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우리 공연 보러 온 건 아니겠죠?”
“어, 아냐.”
창밖 가로등을 가리켰다. 초대가수 명단이 적힌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오늘 피날레무대가 바벨이거든.”
“아.”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 중에 반은 걔들 보러 온 거지 싶은데. 거기 팬덤 애들은 새벽부터 쳐들어와서 무대 앞에 자리 잡고 있다더라.”
바벨. 한창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십인조 보이그룹이다. 데뷔연차로 따지면 넵튠이랑 비슷한데, 팬덤 규모는 우리랑 상대가 안 된다. 분명 대학 축젠데도 캠퍼스에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이 더 많을 정도다.
김칫국을 마신게 부끄러웠는지 임서영이 우렁차게 헛기침했다.
“그, 그렇구나. 메이킹필름 방송 나가고 인터넷에서 계속 띄워줘서, 오프에서도 우리 인기가 이마만큼 높아진 건가 싶었어요.”
“그건 맞고.”
내 말에 임서영의 눈이 다시 커다래진다.
웃으며 덧붙였다.
“바벨 제외하면, 너희 공연 보러온 사람들이 제일 많을걸. 지금 차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그럴 거고.”
지금까지 넵튠의 행사는 이송하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늘은 많이 다를 거다. 메이킹필름은 3회째 화제몰이중이고, 그 덕분에 넵튠의 대중적 인지도와 호감도가 급상승했으니까.
작년 히트곡이었던 위성이랑 물고기자리가 역주행으로 음원차트에 다시 진입했고, 오랜만에 이송하 단독이 아닌 단체 CF가 들어왔다. 지금의 넵튠은 핫한 그룹이다. 충분히 관객몰이가 될 만큼.
-임서영!
차창 밖에서 들린 고함에 임서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인은 바라지도 않는다! 가까이서 얼굴만 보여주라! 보고 싶다, 진짜!
“오, 오빠!”
“안 돼.”
“아주 잠깐, 정말 눈 깜빡일 만큼 잠깐도 안 될까요? 문 열고 인사만!”
임서영이 애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안 돼. 밤이라 발밑도 잘 안 보이는데, 사람들 흥분하면 사고 난다.”
“아······! 그럼 안 되죠.”
사고 얘기에 임서영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제 이름이 불릴 때마다 안타깝게 창문을 더듬는다. 누가 보면 밖에서 로미오가 세레나데라도 부르는 줄 알겠다.
그 바로 옆자리. 이송하도 귀를 창문에 바짝 들이대고 있다.
이송하 이름은 단체 구호수준이라 백 미터 밖에서도 들리겠구만, 뭐 하러 귀를 기울이지. 더군다나 이런 걸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닌데. 중국출장 갈 때마다 인파에 파묻혀서 뭉개지다시피 하는 애가, 뭘 저렇게 집중해?
그때 이송하가 월척이라도 낚은 사람처럼 말했다.
“방금 누가 오빠 이름 불렀어요.”
“누군지 취향 한번 마니악하네.”
그 뒷좌석에서 엘제이가 킬킬거렸다. 시선은 창밖에 꽂혀 있다. 그 옆의 이태희도 마찬가지다. 공연 전에 늘 끼고 있는 이어폰도 빼놓고 물끄러미 창 너머를 바라본다.
넷이 창문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서 밖에 온 신경을 쏟아 붓고 있다.
-이태희! 우리 주점에 오면 전이랑 밤막걸리 공짜!
-송하야! 어느 쪽에 앉아있니! 내 목소리 들리니!
-언니! 엘제이 언니, 너무 좋아요!
이름이 불릴 때마다 애들 얼굴도 점점 창에 달라붙었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처럼.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야외공연장을 발 디딜 틈 없이 채우고 있는 수천 명의 관객들. 그 너머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가 보인다. 곧 애들이 올라가게 될 무대.
얼른 저 위에 올리고 싶다.
이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
경호원과 진행요원들이 총출동해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가서 진정시키고 나서야 승합차가 움직였다. 애들과 스텝들을 데리고 겨우겨우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실장님! 선배님!”
“밖에 엄청 소란스럽던데, 괜찮으세요?”
프리티걸 붕어들과 이태신 실장.
그리고 유수영 피디를 비롯한 메이킹필름 제작진 몇 명.
프리티걸이 컴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전에, 넵튠의 대규모 행사 공연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려고 불렀다. 지금까지 프리티걸이 섰던 무대는, 방송을 제외하곤 무대라고하기도 뭐한 소규모였으니까.
메이킹필름 제작진은 대학과 대행사 측에 허가를 받고 동행한 거고.
관객들에게 잡혀있었다는 소릴 들었는지, 이쪽을 바라보는 프리티걸 애들 시선에 동경과 선망의 빛이 가득하다. 그 표정을 카메라 몇 대가 찰싹 달라붙어 촬영했다.
“너희는 어땠어? 들어올 때 사람들 많이 안 몰렸어? 어?”
임서영이 잔뜩 기대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연두가 큰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어, 저희는 실장님 차타고 대기실까지 훅 들어와서, 사람들하고 마주칠 틈도 별로 없었어요. 차에서 내렸을 때 멀리서 저희 바라보는 사람들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의상, 의상이 평범해서 몰라봤을 거야. 무대 메이크업도 안 했고!”
임서영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덧붙였다.
“제대로 준비하면 밖에서도 알아보는 사람 많을 거야. 실망하지 마.”
“아니에요, 아니에요, 실망 안 해요!”
윤솔이 얼토당토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다른 프리티걸 멤버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한쪽에서 분주하게 텀블러와 종이컵을 꺼내고 있던 정재이가 눈을 나긋이 휘며 웃었다.
“아직도 인터넷에서 저희 이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데요. 밖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몰려들었으면 심장마비 왔을지도 몰라요.”
그러면서 차를 한잔씩 돌린다. 미지근한 대추생강차였다.
오연두가 흥분으로 붉어진 뺨을 문지르며 덧붙인다.
“이렇게 큰 행사는 처음이라, 지금 대기실에 와있는 것도 신기해요.”
밖에서 다른 팀이 공연을 시작했는지, 요란한 함성이 진동했다.
프리티걸 멤버들이 구경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얼굴로 문을 힐끔거린다.
“대행사 직원한테 인사하고 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넵튠을 스타일리스트를 비롯한 스텝들에게 맡기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VJ감독 한명이 뒤따라 나온다. 카메라가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는 대기실 현장을 촬영했다.
대행사 직원을 찾아다니다가 멈칫했다.
소음 속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나처럼 멜로디를 알아챈 VJ 감독이 재빨리 카메라를 돌렸다. 흥얼거리고 있는 건 단발머리의 앳된 여학생이었다. 대학교 스텝 비표를 걸고 있는. 함께 짐을 옮기던 친구가 물었다.
“너 그거 무슨 노래야?”
허밍을 하던 단발머리가 고개를 갸웃한다.
“뭐가?”
“너 아까부터 계속 똑같은 노래 흥얼거리잖아. 멜로디 나도 외우겠다.”
“아, 이거. 프리티걸 신곡.”
단발머리가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프리티걸? 메이킹필름 그 애기애기한 애들? 벌써 앨범 나왔어?”
“아니. 3회에서 애들 녹음하는 거 나왔는데, 그때 살짝 살짝 들리더라.”
“노래 좋은가보다? 입에 계속 붙어 있는 거 보니까.”
친구의 물음에 단발머리가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처음엔 그냥 좋은 것 같다, 정도였는데. 이게 중독성이 있네. 방송 때 잠깐 들은 건데도 계속 생각나. 수능 전에 들었으면 난리 날 뻔 했다니까? 그리고 풀 음원이 없으니까 더 감질나.”
“네가 그러니까 나도 궁금하네.”
이야기를 듣는 사이 입 끝이 사이좋게 올라갔다.
부담을 한 보따리 끌어안고 정재이를 그리워하는 프리티걸 막내들과, 나와 이태신 실장이 정재이를 찾아내 엉킨 속마음을 푸는 장면. 그리고 애타하던 네 명의 멤버들이 다시 상봉하는 장면까지.
프리티걸의 스토리가 유수영 피디의 손에서 기막히게 뽑혀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 방송된 3화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곡 작업에 들어갔다.
멤버들이 신곡을 연습하는 장면과 녹음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오디오를 반복적으로 집어넣었다. 회의결과 만장일치로 꼽은, 가장 중독적인 훅 부분의 오디오를.
이런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
날 보고 얼떨떨해하는 여대생들에게 양해를 구해 인터뷰를 따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대기실 밖으로 나가니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노랫소리와 수천 명의 흥겨운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대행사 쪽 진행요원들이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넵튠은 안전하게 대기실로 들어가서 스탠바이중입니다!”
“바벨! 바벨은 체크했어?”
“부산에서 여유 있게 출발했다고 했어요!”
“딜레이 되면 큰일 나니까 다시 확인해보고, 바벨 도착하면 넵튠 때보다 사람들 더 몰릴 거야! 경호원들 미리미리 배치해!”
몇 주 전에 만났던 대행사 직원, 윤 팀장도 그 사이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동시에 날 발견한 윤 팀장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인사가 오가자마자 그가 혀를 내둘렀다.
“좀 더 기다렸다가 스케줄 잡으신다고 해서, 왜 그러시나 했더니만!”
“말씀드렸잖아요. 상황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윤 팀장이 헛웃음을 짓는다.
“보름 만에 이정도로 달라질 줄 알았나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넵튠 스케줄 빽빽하게 잡아놓는 건데!”
목소리에 아쉬움이 콸콸 흘러넘친다.
윤 팀장이 입맛을 다시며 개런티에 대해 말을 꺼냈을 때였다.
“팀장님! 팀장님!”
대행사측 여직원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바벨이요, 서울 올라오다가 접촉 사고 났대요!”
“뭐?”
“그래서 피날레무대 시간 좀 미뤄달라고······!”
“미치겠네, 얼마나 늦는다는데? 십분? 이십분?”
“하, 한 시간이요!”
윤 팀장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한 시간을 어떻게 때워!”
“다른 가수들한테 앵콜 한두 곡씩만 더 해달라고 사정해보면 안될까요?”
“되겠냐! 지금 공연 중인 팀도 다음 행사 있어서 계약한 십분 딱 하고 짤없이 내려올 거야. 벌써 매니저가 밴에 시동 걸고 기다리는 거 안보여? 행사철이라 다들 앵콜 연장 못한다고, 매니저들이 신신당부했잖아!”
“그, 그럼 사회자한테 레크레이션이나······!”
“바벨 나오길 눈 빠지게 기다리는 팬들이 수두룩한데, 한 시간 동안 레크레이션하면 사회자한테 돌 날아와!”
거칠게 머리를 헝클이던 윤 팀장이 고개를 홱 돌렸다.
내 쪽으로.
[ 누가 그의 사람인가 (2)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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