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18)
누가 내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질질 끌고 다니는 것 같다.
그 정도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외부적으로는 넥스트 K스타의 공식 포스터 촬영, 티저 영상 촬영, 프로필 영상 촬영이 동시에 진행됐다.
레몬걸즈가 찍어놓은 것들을 전부 폐기하고 넵튠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우리도, 제작진도 죽을 맛이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회의, 회의, 회의의 연속이고. 미리 한번 봤던 홍보팀부터 넵튠 멤버들의 보컬 트레이너, 안무가, 스타일리스트······ 며칠 동안 회사 직원 절반이랑 같이 회의한 것 같다. 이름 외우는 건 포기했다.
점심시간, 저녁 시간에는 김현조의 외부 미팅에 따라다닌다. 넵튠의 넥스트 K스타의 출연이 확정되고 녹화준비에 들어가자 다른 곳에서도 살짝살짝 입질이 오고 있다.
그래서 점심은 어디 케이블 프로그램의 피디랑 먹고, 저녁은 행사대행사 직원이랑 먹고, 술은 기자들이랑 마시고······.
매니저들이 졸음운전 하다가 교통사고 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건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 소화할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닌 거다.
난 어제도 집에 못 들어갔다. 입사한 지 며칠 만에 W&U의 지박령이 돼가고 있다고.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가 개봉했는데 보러 갈 시간도 없어.
이게 말이 돼?
그런데도 지금은 괜찮은 거라고 하더라. 애들 스케줄이 더 많아져서 전국의 행사장을 누비고 해외까지 왔다 갔다 하게 되면 지금이 꿀 빨 때였구나, 싶을 거라고··· 김현조가 그렇게 말했다.
귀신도 안 잡아갈 놈. 그걸 위로라고······.
그렇게 일을 시킬 거면 생명수당도 줘! 죽을지도 모르니까!
“헉!”
흥분해서 양칫물을 삼킬 뻔했다.
벌써 분노조절장애 같은 게 생겼나······.
세면대에 뱉고 입 안을 헹군다. 피곤해 죽겠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며칠 새 반쪽이 돼 있다.
누구든 괜찮으니까 날 한 대 때렸으면 좋겠다. 병원 가서 푹 쉬게.
세면대를 짚고 잠깐 쉬고 있는데 화장실 입구에서 소리가 들린다.
“너 어디까지 따라올거야. 화장실까지 같이 들어가게?”
“형, 아, 형······!”
들어온 건 남자 둘이다. 평범하게 생긴 남자, 그리고······ 화장실에서도 빛이 나는 성도원.
날 보고 멈칫한 남자가 성도원에게 말한다.
“시놉만 봐요, 형.”
“어휴··· 그만 좀 볶아라.”
“제가 먼저 봤는데 시놉 진짜 잘빠졌어요. 소문 쫙 퍼져서 벌써 여기저기서 탐내고 있다니까요. 형이 안 한다고 하면 바로 채갈걸요? 형, 감독이 형이 오케이하면 출연료 회당 7천에 도장찍는대요.”
“그래도 드라마는 이제 안해. 몸도 힘들고 잘 가다가 산타는 일도 많고.”
“이 작품 백프로 사전제작이래요. 그러니까 형한테 하자고 그러죠. 그리고 스위스 로케 촬영도 있어요. 형 스위스 여행 가고 싶다고 했었잖아요.”
“어휴······ 알았어. 알았으니까 시놉 줘봐. 한번 볼게.”
부럽다. 저 매니저가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안녕하세요.”
성도원이 나를 똑바로 보고 인사했다. 칫솔을 든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네, 안녕하세요.”
“피곤해 보이시는데, 건강 챙기면서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저 얼굴에 인성까지 좋아. 다 가졌네, 다 가졌어.
감탄하면서 성도원을 구경하고 있는데 성도원의 매니저가 못마땅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본다. 결국 쫓겨나듯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더 보고 싶었는데······ 아냐, 차라리 잘됐어. 더 있었으면 성도원을 붙잡고 언제 나한테 매니저 해달라고 할 거냐고 물어봤을지도 몰라.
‘난 선우씨가 내 매니저가 돼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지.
그럼 난 저 매니저 대신 들어가게 되나? 아니면 밑으로?
뭐든 괜찮으니까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오긴 오는 거겠지. 분명히 성도원 연기자 인생이 위험해질 만한 대위기에서 내가 도와준다, 이런 얘기였는데.
성도원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차피 넘어야 할 위기라면 그 위기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내가 몸 바쳐서 도울 테니까, 제발.
미래가 보인다는 건 인생의 답안지가 훤히 보이는, 진짜 사기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답만 알고 자세한 풀이과정을 모르니 이건 이거대로 너무 답답하다.
그래도 얼마 후에 성도원의 매니저가 된다는 것만 확실하면 지금의 시련은 지나가는 태풍이라고 생각하고 견딜 수 있다.
사무실로 돌아가자 이미 나갈 준비를 끝낸 배신자가 다른 직원들이랑 웃으며 얘기하고 있다.
“어, 왔어?”
웃지 마, 이 자식아.
몸도 피곤한데 배신자를 볼 때마다 정신까지 데미지를 입고 있다.
“오 분 후에 출발이야. 첫 녹화니까 일찍 가서 스텝들한테 인사한대.”
“실장님은?”
“통화할 데 있다고 먼저 내려가셨어.”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다가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를 봤다. W&U에 소속된 연예인들의 스케줄을 정리한 스케줄보드다. 오늘 날짜에 ‘넵튠-넥스트K-스타 녹화’라고 써있다. 그래도 저거 쓸 때는 기분 정말 좋았지······.
지하에서 김현조와 합류하고, 승합차를 몰고 넵튠의 숙소로 갔다. 운전은 내가 했다. 하루에 몇 번씩 운전할 일이 생기니까 배신자한테만 맡겨놓을 수가 없어서 용기를 냈는데, 막상 운전대를 잡으니까 할 만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어제 다들 좋은 꿈 꿨어?”
“우리 밤새도록 연습했어요!”
아침인데도 넵튠 멤버들은 활기가 넘친다. 진정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첫 녹화를 기대하는 게 그대로 드러나서 귀엽다.
분명히 똑같이 바빴는데 내가 이런 꼴이 되는 동안 얘들은 얼굴이 더 좋아졌다. 스케줄은 스케줄대로 소화하고, 첫 미션이 노래라는 걸 듣자마자 보컬 트레이닝도 빡세게 하고 있는데 말이다.
비결이 뭘까. 관리의 힘인가?
샵에서 방송용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로 변신하고 다시 녹화장소인 스튜디오로 출발했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뒷좌석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현조가 애들을 붙들고 신신당부를 하는 중이다.
“인터뷰 딸 때는 잘 생각해서 대답해. 급하게 대답 안 해도 괜찮으니까 충분히 생각하고 단어를 고르라고. 고준태 피디가 연출한 프로그램들 다 봤지?”
“당연하지.”
“괜히 악마의 편집이라고 하는 게 아냐. 피디들은 편집할 때 니들이 어떤 뜻으로 인터뷰했는지 그 의도까지 신경 안 써. 텍스트만 신경 쓰지. 문맥도 무시하고 막 잘라서 붙이는 놈들도 있어.”
“알아. 우리끼리 질문지 뽑아서 계속 연습했어.”
“그래. 태희는 걱정 안 하는데, 서영이랑 엘제이는 당황하면 실수하니까 조심하고, 욱하지 말고. 그리고······ 송하 쟤가 제일 걱정이다.”
김현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백미러로 보니 이송하 본인은 두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게, 납득 못하고 있다. 며칠밖에 안 본 나도 김현조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내가 왜?”
“넌 감정표현도 적고 말하는 것도 직설적이라서 오해받기 딱 좋잖아. 지금 그것도, 넌 궁금해서 묻는 거지만 이상한 타이밍에 끼워 넣으면 안 좋게 들릴 수 있다고.”
“······내가?”
“너한테 말해 뭐하겠냐. 넌 얼굴이 다 하니까 그냥 입 다물고 언니들 옆에 붙어있어. 나도 주의하겠지만 니들도 신경 좀 써라. 단체 인터뷰는 송하까지 차례 안 가게 대신 때워주고.”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오빠.”
“선우랑 건영이. 니들도 애들 잘 지켜보고.”
“네.”
난 예능을 잘 챙겨보는 편이 아니라서 조사를 하면서 좀 놀랐다. 요즘 방송계에서 말하는 악마의 편집은 내가 알던 것보다 엄청나게 수위가 강해져 있었다.
자극적인 편집이랑 언플로 의도적으로 논란을 키우는 것 같던데. 화제성을 위해서 출연자 하나를 욕받이로 만들려고 작정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까 자기는 악마의 편집 희생양이라며 눈물의 인터뷰를 한 사람도 여럿 되고, 아예 SNS에서 대놓고 피디를 저격한 연예인들도 있었다.
넵튠에게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욕먹는다고 했던 건 자극적인 기사를 막은 걸로 넘어간 건지, 아니면 또 뭐가 있는 건지. 미래를 보고 힌트라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 미래 예지 능력은 감감무소식이다.
밀당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안달나게.
얼마 안 지나서 넥스트 K스타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콘서트장처럼 넓은 스튜디오에는 스텝들이 카메라와 조명, 음향장비들을 설치하고 점검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전 인터뷰 때문에 우리를 먼저 부른 거라서 아직 다른 아이돌 팀들은 안 보인다.
스텝들에게 인사를 돌리고 바로 인터뷰룸으로 안내됐다. 인터뷰룸에는 카메라 두 대와 조명이 설치돼 있고, 촬영 스텝 몇 명과 고준태 피디, 작가 한 명이 함께 있다.
멤버들이 옷에 마이크를 다는 동안 우리는 피디 작가와 이야기했다. 정확히는 얘기는 김현조가 하고 우린 옆에 서 있기만 한 거지만.
“피디님, 살살 좀 부탁드립니다.”
“왜 다들 인터뷰하자고 하면 살살하자고 그러지? 제 프로그램은 다른 피디들 거랑 비교하면 그렇게 자극적인 것도 아니에요. 다큐죠, 다큐.”
퍽이나.
고준태 피디의 말이 헛소리라는 건 바로 증명됐다. K스타에 참가하게 된 소감이 어떠냐, 높은 점수를 받을 자신 있느냐, 연습은 많이 했느냐, 나머지 일곱 팀 중 누굴 라이벌로 생각하느냐, 등등 무난한 질문들로 안심시키더니 불쑥 종이를 내민다.
“넵튠이 생각하기에, 마지막에 여덟 팀의 순위가 어떻게 될 거 같은지. 1위부터 꼴찌까지 순서대로 팀명하고 이유를 적어주면 돼요.”
“우와······ 이유까지 적어요?”
“그냥 간단하게. 무기명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적어요.”
“진짜 무기명이에요? 막 넵모팀, 모튠팀, 이렇게 발표하시는 거 아니죠?”
“하하하. 비밀 보장합니다. 이름 빼고 내용만 발표할 거예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앞에 일곱 팀 중에 다섯 팀이 넵튠을 꼴찌로 찍었어요.”
애교로 분위기를 풀던 임서영이 굳어버린다. 옆에서 팔을 건드린 태희 덕분에 바로 수습했지만, 그래도 카메라엔 찍혔겠지.
“몇 개만 읽어드릴게요. ‘넵튠은 비주얼 그룹. 비주얼 빼면 글쎄’, ‘넥스트 K스타에 나온 건 잠재력보단 소속사빨’, ‘실력이 아니라 외모로만 어필하는 그룹 같아서’. 이렇게들 썼어요. 어때요?”
난 애들이 동요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멤버들의 멘탈은 튼튼했다.
이번에는 임서영 대신 리더인 이태희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다른 팀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시청자분들도 저희한테 기대를 거시는 분들이 많이 없을 거예요. 오히려 좋아요. 스토리는 반전이 있어야 재밌잖아요. 저희가 열심히 하는 만큼 큰 임펙트를 남길 수 있을 테니까, 다른 팀에게는 없는 기회를 얻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수가 적어서 몰랐는데 쟤 말 잘하는구나.
애쓰지 않아도 당당하고 털털하게 보이는 편이라 인터뷰하는 모습도 믿음직하다. 대인배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왜 김현조가 이태희는 걱정을 안 한다고 한 건지 알겠다.
그건 그렇고 무기명이라지만 생각보다 멘트들이 세네.
아이돌은 이미지를 걱정해야 하니까 일반인 오디션이나 래퍼들의 서바이벌 프로 같은, 그런 프로그램들에 출연했던 사람들보다는 멘트가 부드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이면 앞으로 만만치 않겠다.
옆을 돌아보니 김현조도 표정이 안 좋다.
“정선우.”
“네?”
“너 화장실 좀 갔다 와라.”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화장실에 가라구요?”
“너 화장실 갔다 올 때마다 좋은 일 있었잖아. 두 번이나. 혹시 모르니까 녹화 시작하기 전에 갖다 오라고.”
“······진심이세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
나는 반 강제로 인터뷰룸에서 쫓겨났다.
뭐 가라니까 가긴 하는데, 나 참, 기가 막혀서······.
화장실 입구 앞에서 생각에 빠진 척하고 두세번 빙빙 돌았는데 아무일도 안 생긴다. 미래 예지 능력도 여전히 잠잠하고.
에이씨, 때려치우자.
화장실까지 온 김에 볼일이나 봤다. 손을 씻고 다시 인터뷰실로 향했다.
“야.”
처음엔 날 부르는 소린지도 모르고 있다가 다음 말을 듣고 멈췄다.
“야, 넵튠 매니저!”
돌아보니 저번에 봤던 덩치 큰 남자, 레몬걸즈 매니저가 내 쪽으로 건들건들 걸어오고 있다.
며칠간 조용하길래 잊어먹고 있었는데, 진짜 왔네.
“W&U가 꽂은 듣보잡 걸그룹 얼굴이나 보려고 왔는데······ 어디서 본 것 같은 놈이 로드라길래 한참 생각했네. 너 그때 그 새끼 맞지?”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시비를 걸다니, 저 사람은 시간이 남아도나?
“너 그날 화장실 앞에서 쳐다보던 새끼 맞잖아. 그때 고준태 피디 앞에 엎어져서 대타로 니네 애들 들이밀었냐? 그 다음 날 바로 기사 뜨던데, 그날 밤에 아주 바빴겠다? 어? 뭐 이런 상도덕도 없는 시발놈이 다 있어? W&U에서 그렇게 배웠냐?”
이렇게 대놓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오랜만이라 좀 놀랐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이라고는 저 사람이랑 나 뿐이다.
싸움은 자신 없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욕먹은 마당에 얌전히 뺨까지 내밀 수는 없지.
“그게 제가 욕먹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 이 새끼야?”
레몬걸즈 매니저가 내 가슴을 툭툭 민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다시 말해 봐.”
“제가 고준태 피디님한테 뇌물 주고 레몬걸즈 대신 넵튠 넣어달라고 로비를 한 것도 아니고, 기회가 있길래 잡은 것뿐인데······ 다시 생각해도 제가 욕먹을 일은 아닌 것 같다구요.”
“뭐 이 새끼야?”
다시 말하라고 해서 다시 말했다, 이 새끼야.
“왜 엄한 사람한테 화풀이를 하세요.”
“시발, 이 새끼가 안 그래도 빡치는데 더 빡치게 하네. 너 한 대 맞고 싶어서 그러냐? 어? 맞고 싶어서 환장했어?”
위협하니까 덩치가 더 커 보인다. 팔뚝도 두껍고 주먹은 돌덩이 같은 게 맞으면 엄청나게 아프겠지.
어쩌면······ 어쩌면 입원해야 할지도······.
“치세요, 그럼.”
“뭐?”
“치세요. 병원에 입원해서 기자랑 인터뷰나 하게.”
박우정 기자한테 전화해야겠다.
“뭐 이런 또라이 새끼가 다 있어?!”
[ 밟지 않으면 밟히는 곳 (1)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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