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30)
탑 매니지먼트 231화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3)
“이거 개또라이 아냐?!”
홍보팀 박팀장이 이틀 사이 훅 썩어버린 얼굴로 폭발했다.
그럴만했다.
[피터팬 구정민 대표 “W&U 백한성 방식 고리타분했던 게 문제”] [W&U의 헐리웃 진출? 일찌감치 실패 예견했던 구정민 대표]구정민 대표는 실로 관심종자였다.
개인 SNS와 피터팬 공식 계정에 하루에도 몇 개씩 글을 써재끼는데, 그중 절반은 본인의 업적에 대한 자화자찬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백한성 대표를 대놓고 까는 내용이었다. 돌려 까는 성의도 없었다.
우리 홍보팀이 피터팬 엔터 측에 항의를 쏟아부었는데도 소용없었다.
피터팬 홍보팀은 대표의 관종짓에 손을 놔버렸다. 소속 연예인들이 지랄하면 대표한테 하소연이라도 하지, 대표가 지랄하면 답도 없다면서.
홍보팀 남직원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우린 이런 쪽으론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네요.”
“우리 대표님이 SNS로 이런 짓 하다가 망신살 뻗치는 건 상상이 안 가긴 해요. 차라리 검찰청 포토 라인에 서는 거면 모를까.”
홍보팀 여직원의 말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어쨌든 구정민 대표가 장작을 계속 대주니, 할 일 없는 기자들은 그의 SNS를 염탐하고 있다가 뭔가 올라오면 앞다퉈 기사를 내보냈다.
그래 놓고는 구정민 대표가 이런 말을 했으니 얼른 피드백을 달라며 우리 홍보팀 직원들을 볶아댔다. 피터팬과 W&U를 싸움 붙이고 싶어서 안달 난 놈들 천지였다.
물론 반응이야, 뭐.
-언플 좀 작작 하지 권인주보다 대표 기사가 더 많이 뜨네
-아는 사람은 다 알지, 여기 대표··· 하······ 나도 모르고 싶었음
-권인주 인터뷰한 거 보니까 스트레인저에 캐스팅된 것도 거의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 급의 운빨이던데 뭐 엄청나게 계획적인 플랜으로 헐리웃 입성한 척을 하고 있냐
-구정민 대표 프로필도 새로 찍은 거 앎? 기자들이 백한성 사진은 잘나온 거 쓰고 지건 못나온 거 쓴다고 자기사진 셀렉해서 SNS에 올려 놨어ㅋㅋㅋㅋ 미친놈인가
-소속 배우들 프로필이나 새로 찍어주지 뭔 지랄이야 덕질 9년 차에 듣도 보도 못한 꼴값이다, 진짜······
얼음이 띄워진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시는 박팀장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별말 없으세요?”
“신경 쓰지 말라곤 하시는데, 그래도 신경 쓰이시겠지.”
박팀장이 시계를 힐긋 봤다.
“지금 방송사 들어가셨는데, 거기선 별말 안 나오나 모르겠다.”
“방송사 가셨어요?”
“응. GTBN. 요즘 계속 바쁘시네.”
준비 중이라던 콘텐츠제작사업 때문인가?
막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던 참이었다.
“팀장님!”
홍보팀 여직원이 황급히 노트북을 가리켰다.
“이거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화면에는 기사가 하나 떠 있었다.
[독점 인터뷰]배우 윤상아, ‘W&U 손잡고 미국 간 것 인생 최대의 실수’
1팀이 해외사업을 접고 귀국하던 날, 기자들 앞에서 눈물의 인터뷰를 하며 할리우드 스타병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 윤상아였다.
그때 우리 쪽 법무팀과 홍보팀이 나서서 한바탕 푸닥거리한 뒤론 조용했는데. 뜬금없이 웬 독점 인터뷰?
헤드라인도 어처구니없는데 본문은 더했다.
윤상아는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온갖 불합리하고 충격적인 일을 겪었으며, 그 과정에서 W&U의 스탭들과 담당 팀장은 너무 무책임하고 무능력했다고 떠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피터팬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은 윤상아는 ‘구정민 대표님의 진솔한 설득 덕분에 다시 용기가 가지게 됐다. 피터팬 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한편 피터팬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배우 권인주는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트레인저에······.]
나도 모르게 박팀장의 안색을 살폈다.
귀신같은 얼굴이었다.
“누가 아직도 얘 헛소리를 받아 쓰니, 이거 기자 누구야?”
언론사와 기자 이름을 확인한 박팀장이 핸드폰을 들고 뛰쳐나갔다. 아이스 컵의 얼음이 녹기 전에 적장의 모가지를 딸 기세였다.
슬슬 외부 미팅을 가야 할 시간이라 나도 일어섰다.
입맛이 영 떨떠름하다.
연예인과 소속사의 분쟁이야 흔해 빠진 일이고. 미국에 있을 때 1팀의 사정이 어땠는지, 윤상아와 1팀장의 관계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윤상아의 인터뷰 중 한 부분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담당 팀장은 너무 무책임하고 무능력했다.’
한때는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배우에게 이런 말을, 그것도 기사를 통해 듣게 되는 건 어떤 느낌일까.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상념을 잘라버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심하게.
외부 미팅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왔을 때 주차장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마주쳤다. 길쭉길쭉한 몸에 창백한 피부. 이목구비도 분위기도 화려해서, 딱히 치장하지 않아도 한눈에 연예인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
이도경. 장요한.
윤상아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1팀 배우들이었다.
두 사람이 향수 대신 술 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
“정선우 팀장님. 맞죠?”
“네, 안녕하세요. 근데 혹시 술 마시고 운전해서 온 건 아니죠?”
내 말에 이도경이 멈칫했다.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갑자기 실없이 웃기 시작한다.
“내가 미쳤어요? 그랬다간 이도경 알콜중독, 한때의 톱스타 어디까지 떨어지나, 헐리웃에서 일은 안 하고 사고 치는 것만 배워왔다, 아주 쌩 난리가 날 텐데. 술은 나만 마셨고 얘는 안 마셨어요.”
이도경이 옆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장요한은 피곤한 얼굴로 하품하는 중이었다.
둘 다 귀국한 이후로 영화나 드라마도 새로 찍었고, 성적도 썩 나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전히 퇴폐하고 음울해 보인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피해 공항을 빠져나오던 그날처럼.
“나한테 술 냄새 많이 나요?”
“네.”
“우리 윤팀장님한테 또 한 소리 듣게 생겼네.”
“그걸 알면 좀 그만 처마셔. 그러다 속 다 버린다.”
장요한이 말했다.
“윤상아 걔 인터뷰를 보고 어떻게 술을 안 마셔? 소시오패스야?”
미간을 구기며 엘리베이터 앞에 선 이도경이 나를 뜯어봤다.
“근데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네요? 성격 진짜 별로일 줄 알았는데.”
“······누가요? 제가?”
“손채영이랑 친하다길래. 내가 편견이 좀 있었어요. 아, 요즘 우리 회사 간판이 걔라면서요? 이송하? 손채영이 걔한테 지랄 안 해요?”
“······.”
“했구나? 하긴 뭐, 나도 짜증 나더라. 누군 그 개고생을 해도 안 됐는데, 누군 단번에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왔네?”
그러면서 이도경이 엘리베이터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팀장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면서요? 손대는 일마다 다 잘됐다고. 혹시······.”
말끝을 늘리던 이도경이 쯧, 혀를 찼다.
“아냐. 내가 의리가 있지. 우리 팀장님이 나한테 해준 게 있는데.”
그러더니 중얼거렸다.
“어쨌든 좋을 때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곧 주차장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벌어졌다. 이도경과 장요한이 안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삼켜지는 것 같은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 진출이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겠지.
모두가 그 성공에 환호했을 테고, 배우가 실패의 책임과 원망을 떠넘길 대상을 찾을 일도 없었을 거고. 그리고······.
문득 미래의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망설이지 말고, 악착같이 성공하라고.
그래야 더러운 꼴을 덜 볼 수 있으니까.
***
5층 야외정원 흡연실.
1팀장은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머리카락도 헝클어뜨린, 다른 때보다 더 난잡한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있었다. 한숨 같은 담배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지랄할 수 있는 만큼 지랄했는데, 기사 수정은 못 하겠대.”
양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홍보팀 박팀장이 어깨로 문을 밀고 나왔다.
“피터팬 쪽에서 받아먹은 게 있나. 하여튼 우리 쪽 코멘트는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예전에 한번 난리를 쳐놔서 그런지, 윤상아 또 할리우드 스타병 도졌네, 뭐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더라고.”
“······그래?”
1팀장이 담배를 재떨이에 던지고 커피를 받았다.
“고마워.”
“어떻게 할 거야?”
“뭘?”
“윤상아.”
“맞는 말 했지, 뭐.”
1팀장이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차가운 커피를 들이켰다.
“내가 헛바람 넣어서 미국에 데려간 것도 맞고, 내가 무능력해서 실패한 것도 맞고. 그냥 내버려 둬.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나면 조용해지겠지.”
“······번아웃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점점 폐인이 돼가네.”
박팀장이 1팀장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 윤팀장이 어쩌다 이 꼴이 됐니.”
“잔소리할 거면 가. 기운 없다.”
그 말에 박팀장이 들으라는 듯이 혀를 찼다.
“윤상아는 그냥 두더라도, 피터팬은 진짜 어떻게 해야겠어. 얼마 전엔 송하랑 선우씨한테도 대놓고 찝쩍거렸다던데.”
돌연, 박팀장이 입꼬리를 들썩였다.
“선우씨가 칸에서 상 받아오면 그 집 개 한다고 그랬다며?”
“······그거 어디서 들었어?”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다 내 귀로 들어오지.”
“아, 3팀장 그거, 진짜······.”
1팀장이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근데 자긴 대체 언제까지 선우씨랑 데면데면하게 지낼 거야? 이제 좀 친해져 보지? 둘이 꽤 잘 맞을 것 같은데.”
“일부러 피하는 거야.”
“왜?”
“······얼굴 보면 생각이 많아지니까. 이러다 언젠가 터질 것 같아서 피하는 거야. 의사가 스트레스 유발요인은 가능한 한 마주치지 말라고 하더라고.”
“의사? 무슨 의사?”
“카운셀러.”
태연한 대꾸에 박팀장의 눈이 커다래졌다.
“자기 병원까지 다녀?”
“무기력증이나 강박증도 병이라길래.”
“가기 전에 보험은 다 들었지?”
“······.”
1팀장이 빈 커피 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어쨌든, 난 걔랑 친해질 생각 없다.”
***
차창에 기대고 있던 머리를 떼고 뺨을 몇 번 때렸다.
“저기 커피숍 앞에, 횡단보도에 세워주세요.”
“네. 횡단보도요.”
눈알은 뻑뻑하고, 카페인에 절여진 속은 거북하다. 택시가 아니라 미친 듯이 꿀렁거리는 낚싯배에 타고 있는 기분이다. 딱 죽을 맛이었다.
“잠 깨는 껌 하나 줄까요?”
택시비를 결제하려는데 기사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젊은 사람이 말이야, 활력이 있어야지. 아침부터 병든 닭처럼 그러면 일은 어떻게 해? 이거 우리 딸내미가 나 먹으라고 사준 껌인데······.”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때마침 신호가 바뀌었다. 미적지근하지만 어쨌든 바람 냄새가 나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알은체를 했다.
“정팀장님!”
“어쩐 일로 택시 타고 오셨어요?”
커피 캐리어를 나눠 든 홍보팀 직원들이었다. 둘 다 최소 7시간 이상 숙면한 게 틀림없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활기차고 상쾌한 얼굴이었다.
“밤에 못 잤거든요. 요즘 계속 수면 부족이라, 이 상태로 운전하면 좀 위험할 것 같아서요.”
“아이고,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뇨. 이미 2리터쯤 마셨어요.”
1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홍보팀 여직원이 말했다.
“요즘 영화 투자사 쪽에서도 연락 많이 오시죠?”
“······어떻게 알았어요?”
“홍보팀으로도 문의 전화 오거든요. 팀장님이랑 미팅 잡고 싶은데 개인 연락처 좀 알려달라고.”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고 해서 나가보면 열에 아홉은 시간 낭비다. 심지어 리스트를 들이밀면서 이 중에 뭐가 잘될 것 같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무당집에 점치러 온 것도 아니고.
뭐, 이런 반응도 이골이 났다.
고양이수호령이 성공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벌써 몇 년째다.
메이킹필름 예능이 큰 역할 했지.
그때 미다스의 손이라는 타이틀을 방송용으로 확 띄우는 바람에. 그걸로 프로그램 화제성을 높여보자던 계획이 제대로 먹혀서, 뭐든 정선우한테 물어보라는 밈까지 생겼었으니까.
그 밈은 죽지도 않고 지금도 잘 살아있다.
홍보팀 남직원이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럴 만도 하지, 실적이 대박인데. 정팀장님이 지금까지 골랐던 작품들에 전부 투자했으면 완전 떼돈 벌었을 거 아냐. 팀장님은 투자 쪽 일 제대로 해볼 생각은 없으세요?”
“없어요.”
미래 예지가 랜덤이라서.
“지금까지 잘 됐다고 앞으로도 쭉 잘 되리란 법도 없고.”
아무 맥락 없이 뚝 떨어진 능력이 어느 날 사라질지도 모르고.
홍보팀 직원 둘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신기한 게, 팀장님은 손대는 것마다 성공시키는 사람치곤 굉장히 현실적으로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붕 뜨는 것도 없고. 전 솔직히 팀장님 말만 믿고 한 2억까진 그냥 투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2억 있어?”
“있으면 한다고, 있으면.”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했다.
홍보팀 직원들과 헤어져 사무실로 들어가자, 이미 서지준과 이봉준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까진 한 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서지준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팀장님. 시나리오 보셨어요?”
“봤어요.”
“······어때요?”
가방에서 시나리오를 꺼냈다.
어젯밤, 날 한숨도 잠들지 못하게 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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