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38)
탑 매니지먼트 239화
오고 가는 수작질 속에 (7)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형태 대표가 체할 것 같은 얼굴로 분위기를 수습했다.
“어, 그러니까······ 사실 주원 씨는 이미지가 좀······.”
내가 임주원을 담당한 뒤로 물리도록 들은 말이다.
인지도는 높지만, 배우보다는 예능프로 고정 멤버로 더 유명하다.
달짝지근한 로맨틱 코미디로 성공한 후 연달아 비슷한 역할을 맡아서 이미지 고착화도 심한 편이고.
“이미지가 뭐랄까, 너무, ‘나 연예인이다!’하는 느낌이라서요. 예능 이미지도 강하고. 아, 물론 그게 나쁘단 건 아니에요. 그런 셀럽 같은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역할도 많잖아요.”
서지준이라는 당근이 눈앞에 매달려 있어서인지, 도형태 대표는 어떻게든 임주원을 듣기 좋게 거절하려고 애썼다.
“근데 우리 영화에선 아무래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으니까. 여준이가 가족 땜에 인생 꼬여서 알바로 빚 갚으면서 사는 앤데. 임주원 씨 얼굴을 보면 뭔가······ 갑자기 파티하러 갈 것 같잖아요?”
“저기, 이여준이 절대 쉬운 역할 아니에요.”
이창인 감독이 내게 말했다.
“세파에 찌든 성인이면서도 소년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해서.”
임주원인데.
“겉모습은 밝아 보여도 속은 예민하고 가시 돋친 사람이고. 또 열등감도 있고.”
임주원인데.
“뭔가 쎄하고, 사고 칠 것 같은 아슬아슬한······ 그런 역할이에요.”
아. 그래서 배명진이었나?
사고를 치긴 했지.
“감독님. 저도 이렇게 좋은 시나리오에 말도 안 되는 배우 넣어달라고 억지 부릴 생각 없어요. 그런데 제가 아는 임주원은 이여준이라는 역을 정말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핸드폰의 사진 폴더를 열었다.
“주원 씨 이미지를 잠깐 치워두고, 얼굴만 한번 보세요.”
시나리오를 다 보고 미리 비슷한 이미지로 골라뒀던 임주원의 사진이 주르륵 뜬다. 전신, 클로즈업, 웃는 얼굴, 무표정, 까칠한 인상까지.
이창인 감독이 고개를 숙이고 임주원의 사진을 한장 한장 넘겨봤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주원 씨를 한 번 만나보시는 게 어때요?”
“네?”
“오디션이라고 생각하시고, 가볍게.”
“아뇨.”
이창인 감독이 사진에서 눈을 뗐다.
“그래도 이여준 역은 배명진 씨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불러내서 얼굴까지 보고 거절하면 임주원 씨한테도 미안하니까, 오디션은 좀······.”
“······네, 그럼. 북엇국 드세요.”
직진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막혔으니.
좀 돌아가야겠네.
*
문득 보니 가을이었다.
어제는 밤에도 후덥지근하더니, 오늘은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씨다.
크게 숨을 들이쉬면 보드라운 햇볕 냄새가 나는 날.
하늘은 높고,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고. 이따금 부는 바람은 선선하고. 보도블록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그런 기분 좋은 날이었다.
오랜만에 사람 조사를 좀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딱 알아야 할 것만 알면 되니까.
*
회사로 들어가자마자 홍보팀으로 향했다.
“어? 정팀장님, 지금 출근하세요?”
“네. 밖에서 뭣 좀 하고 들어오느라.”
“오늘은 컨디션 되게 좋아 보이시네요? 어젯밤엔 숙면하셨나 봐요.‘
“그래요? 한숨도 못 잤는데.”
“······각성상탠가?”
홍보팀 직원들과 잠깐 떠들다가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박팀장님은 어디 계세요? 핸드폰 통화 중이시던데.”
“본부장님하고 계실걸요.”
곧장 본부장실로 갔다.
노크하고 문을 열어보니, 안에는 본부장 혼자 한가롭게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팀장님은요?”
“통화하러 갔어. 첩보 때문에 기자한테 계속 전화가 와서. 어디서 싸우고 있을걸?”
본부장이 복잡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너 안 바쁘면 좀 앉아봐봐.”
“지금은 급한 일이 있어서, 좀 이따 다시 올게요.”
이번엔 야외 흡연실 쪽으로 갔다. 박팀장은 양손에 핸드폰과 담배를 들고선 누군가와 싸우는 중이었다. 거의 죽일 기세였다.
“아니라니까? 누가 그래요? 어? 누가 지준이가 까였대?!”
가까이 다가가자, 박팀장이 나를 발견하고 한쪽 눈썹을 올렸다.
담배를 콱 눌러 끄면서 손을 뻗어 연기를 휘휘 젓는다.
“어쨌든 기사 쓰기만 해요, 나 진짜 가만 안 있어! 바로 내용증명 보낼 줄 알아요!”
전화를 끊은 박팀장이 울화를 참는 듯 어깨를 들썩거렸다.
“괜찮으세요? 저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안 괜찮아. 지준이 배역 뺏긴 거냐고 쑤셔대는 전화만 몇 통짼지 모르겠어. 답답해 죽겠는데 내가 왜 답답한지 밖에다 말할 수도 없어!”
“박팀장님.”
“어? 아.”
박팀장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내가 요즘 분노 조절이 안 돼. 뭐, 할 얘기 있다고?”
“회의실로 갈까요? 여긴 좀 시끄러워서. 보는 눈도 있고.”
“조용한 데서 해야되는 얘기야? 뭔데?”
“일단 가시죠.”
“자기가 그러니까 나 PTSD 올 것 같잖아. 내가 정말······.”
아무도 없는, 불 꺼진 회의실을 찾아서 박팀장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어요.”
그 순간.
동태처럼 죽어있던 박팀장의 눈이 확 살아났다.
“······진짜? 어떤 작품인데?”
“이창인 감독님 차기작이요. 감독님이 주인공에 배명진을 정해뒀는데.”
“배명진? 아, 그 사람 연기 잘하지. 여주인공 롤에 송하 넣으려고?”
“아뇨. 주인공을 가져오고 싶어요.”
“······어?”
박팀장이 고장 난 것처럼 멈춰버렸다.
“투톱 주연인데, 서지준 씨랑 임주원 씨가 같이하면 딱 좋을 것 같거든요. 시나리오 들고 와서 상의해 봐야겠지만, 저는 꼭 그렇게 캐스팅이 됐으면 싶은데.”
“주인공이······ 이미 배명진이 있다며?”
“아직 계약은 안 했어요.”
“잠깐만.”
박팀장이 손을 더듬거리며 담뱃갑을 쥐었다가 도로 내려놨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몹시 미묘했다.
“······이건 또 참신한 상황이네. 그러니까 배명진을 치우고, 그 배역을 갖고 오고 싶다는 거지, 지금?”
“네. 제가 알아봤는데.”
박팀장 쪽으로 얼굴을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문제가 좀 있더라고요.”
“······문제?”
“여자 문제?”
“아.”
“감독님이 배역 때문에 체중을 십오 킬로 정도 빼달라고 부탁했는데. 매일 여자들이랑 술 마시느라 오히려 살이 더 쪘던데요. 애인도 따로 있는 것 같던데.”
“리스크관리가 안 되네. 그러다 사생활 논란 터지면 어쩌려고.”
박팀장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우리 지준이를 봐, 얼마나 프로페셔널해? 사생활 깨끗하고. 감독이 크랭크인 전까지 빼라고 하면 빼고, 찌우라면 찌우고, 체지방량, 근육량, 주문받은 대로 딱딱 맞춰놓잖아.”
“배명진 역은 임주원 씨가 어울릴 것 같아요.”
“아, 그래?”
“지준 씨는 감독님도, 제작사 쪽도 긍정적이라 문제가 없는데. 주원 씨가 좀 어려워요. 감독님이 배명진 씨한테 확 꽂혀서 아예 2순위를 생각도 안 하시더라고요.”
“감독 의사가 확고하다······ 그럴 수 있지.”
언제부턴가 박팀장의 얼굴엔 반들반들 광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림을 어떻게 만들어 볼까? 자기가 생각한 거 있어?”
“제작사 대표는 배명진 씨에 대해서 미적지근한 편이고. 투자배급사가 이창인 감독 전작도 같이 했던 파인 엔터테인먼튼데, 그쪽도 썩 환영하는 분위긴 아닐 거예요.”
“그렇겠지. 배명진이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는 아니니까.”
“투자배급사 쪽으로 접근하면 좋겠는데요. 배우 논란 때문에 덩달아 얻어맞은 영화들 수두룩하니까. 그쪽에서 배명진 상황을 듣고 찜찜해서 감독님 설득하는 방향으로.”
“그래. 그게 깔끔하겠다.”
“혹시라도 나중에 괜히 누구 배역을 뺏었네, 어쩌네, 이런 잡음 안 생기게요.”
“당연하지, 아마추어도 아니고.”
오가는 목소리가 산뜻한 리듬을 타기 시작했을 때.
노크와 함께 본부장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둘이 뭐해? 어두컴컴한 데서 불도 안 켜고? 연애해?”
“······.”
곧 자초지종을 들은 본부장이 웃는 얼굴로 회의실을 둘러봤다.
“어이구야, 여기가 바로 음모와 모략의 산실이구만.”
농담처럼 말한 그가 박팀장을 봤다.
“좀 전까지만 해도 피터팬 구성민 대표한테 개자식이라고, 양심도 없이 우리 애 배역 쌔벼간 놈이라고 욕을 그렇게 하더니.”
“제가 제일 개자식이에요. 저 원래 양심도 없어요.”
박팀장이 어깨를 가볍게 들썩였다.
“그리고 지준이가 이 영화 들어가서 리스크관리 안되는 배우랑 파트너 되면, 홍보팀 입장에선 문제 터지는 거 아닌가 계속 불안할 거고.”
“너 엄청 신나 보인다.”
“제가요? 아닌데.”
“웃고 있는데?”
“저 원래 웃는 상이에요.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해요.”
본부장이 이번엔 내 쪽을 돌아봤다.
“너는······.”
“저도 웃는 상이에요.”
“아니야. 박팀장 쟤도 아니지만, 너는 더 아니야.”
그러면서 본부장이 의자를 빼 앉았다.
“좋아. 다 좋은데. 정팀장 너는 잘 안 하던 짓을······.”
그가 나를 슥 훑어보더니 물었다.
“괜찮겠어?”
괜찮겠냐고?
사실 범죄든 징역이든, 그건 언제쯤일지 모르는 미래의 일이고.
내가 지금 배명진이 성공할 기회를 빼앗는 건 분명하지.
“양심이······ 좀 따끔한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진짜?”
박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떡해. 내가 너무 쓰레긴가 봐.”
“잠깐만요.”
내게 남은 자그마한 양심을 위해 삼 초쯤 묵념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그럼, 계속 얘기할까요?”
*
일은 간단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쉬웠다.
모든 상황이 내 생각대로 순탄히 전개돼서, 며칠 후에는 이창인 감독이 투자배급사 측에 거듭 설득당해 이여준 역을 다시 물색하게 됐다는 정보가 귀에 들어왔다.
물론 정보의 출처는 도형태 대표였다.
곧바로 이창인 감독 작업실로 찾아갔다. 이번엔 장어 초밥을 사 들고.
“주원 씨 한 번만 만나보세요.”
“하······.”
이창인 감독이 영 마뜩잖은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래도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거 제작비는 넉넉한 편인가?
“감독님. 오디션이니 뭐니 일 키우면 서로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가볍게 얼굴 보고 커피나 한잔하시죠. 그 후에도 별로라고 하시면 저도 주원 씨 얘긴 더 이상 안 꺼낼게요.”
“그래요. 그래. 한번 봐요, 그러면.”
마침내 이창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정팀장님 때문에 보기는 보는데······ 한번 보고도 아니면, 정말 두 번째는 없는 거예요.”
누가 그랬지. 판에 앉히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일단 판에 앉히기만 하면······.
“날짜는 언제로 잡을까요?”
웃는 얼굴로 물었다.
*
안전벨트를 매면서 임주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탁하고 웅얼거리는 목소리였다. 인사도 제쳐놓고 물었다.
“주원 씨, 지금 집이에요?”
-네, 좀 전에 일어났어요.
“이후에 스케줄 있어요?”
-아뇨. 심심해서 이따 저녁 약속이나 잡을까 하던 참인데······.
“잡지 마세요. 삼십 분 뒤에 주원 씨 집으로 갈게요.”
-삼십 분이요?
얼떨떨해하는 임주원과 통화를 끝내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성의민 실장의 번호를 눌렀다. 모처럼 머리가 아주 팽팽 돌아간다.
-네, 팀장님.
“지금 하시는 일 잠깐 미뤄놓고, 주원 씨 집에서 봬요.”
-네? 지금이요?
“자세한 얘긴 만나서 해요. 주원 씨 개인 스탭한테도 지금 시간 되는지 연락 좀 해주시고요.”
-어······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올림픽대로는 한적했다. 성수동에 있는 임주원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정확히 삼십 분이 지나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파자마 위에 수건을 걸친 임주원이 문을 열었다.
“뭐예요? 의민이 형도 온다던데, 나한테 뭐 문제 생겼어요?”
임주원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마음의 준비하고 들어야 되는 일이에요? 그런 거면 보리차라도 좀 마시고요.”
“아뇨, 작품 얘기하러 온 거예요.”
여전히 모델하우스 같은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말했다.
임주원이 반색했다.
“닥터 25시 계약해요?”
아.
그런 게 있었지, 참.
“아뇨. 그건 잊어버려요. 들은 적도 없었던 것처럼.”
“네?”
내가 공미희 작가 SNS를 좀 찾아봤는데.
최근에 써놓은 글 꼬라지가 마치 예비 살인마의 일기장 같았다.
지금은 뉴질랜드 협곡에서 번지점프를 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중이라는데. 김경수 작가와는 이미 헤어진, 그것도 몹시 더럽고 험하게 헤어진 게 분명해 보였다.
“지금 얘기할 작품은 영화고, 제가 주원씨한테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에요.”
“할게요.”
임주원이 잽싸게 다가와서 말했다.
“이창인 감독님 신작이에요. 주인공이고.”
“할게요.”
“장르는 범죄 스릴러물이에요.”
“저 할게요.”
“시나리오 다 봤는데 재밌어요. 제가 볼 땐 배역도 주원 씨한테 딱 맞고. 이거 잘 되면 이미지 고착 어쩌고 하는 얘기는 싹 들어갈 거예요.”
“지금 감독님한테 가면 돼요?”
“투톱 주연인데, 큰 문제 없으면 다른 쪽은 서지준 씨예요.”
“서지준?”
당장 웃옷을 벗어 던질 태세던 임주원이 우뚝 멈췄다.
환희에 젖었던 얼굴도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식어버렸다.
“혹시 내가 서지준한테 업혀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안 할 거예요?”
“······정말이에요?”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렇게 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주원 씨한테 확신이 없어요. 만나서 오디션 보고 주원 씨 힘으로 배역 따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서지준은 오디션 안 보죠?”
“네.”
“서지준이······.”
임주원이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말했다.
“아니, 오디션 볼게요. 저도 배우 생활하면서 오디션 수도 없이 봤어요. 날짜만 알려주세요. 이거 무조건 제가 할 거니까.”
형형한 눈이 나를 찌를 것처럼 바라본다.
오랫동안 갈망하던 기회를 마침내 손에 넣은 사람의 눈. 빳빳하게 선 자존심과 문드러진 열등감이 공존하는, 어딘가 애처롭기까지 한 눈.
이여준에게 어울리는 눈이다.
지금 당장 감독에게 저 얼굴을 보여주면, 오디션은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서지준은 뭐래요? 나 오디션 본다고 얘기했어요?”
“아뇨.”
“나랑 같이 촬영하는 건 괜찮대요? 저번에 회식 때, 마찰이 좀 있었는데.”
“마찰? 무슨 마찰?”
“그냥 사소하게······ 술김에 좀, 그랬어요. 심각한 건 아니고.”
둘이 설마 싸우기라도 했나?
켕기는 구석이 있는 듯 시선을 피하는 임주원을 보고 말했다.
“서지준 씨한텐 아직 얘기 안 했어요. 여기에 먼저 와서.”
“아······ 진짜요?”
내 말을 듣자마자 임주원의 입 끝이 움찔거렸다.
그에게 시나리오 출력본을 건넸다.
곧바로 임주원의 개인 스탭과 성의민 실장이 차례차례 도착했다.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다.
스탭에게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주원 씨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는데요. 사진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임주원이 예전에 찍었던 음료수 광고 사진.
이창인 감독이 유난히 오래 들여다봤던 사진이다.
“이게······ 5년 전 사진이네요?”
“네. 다음주까지 될까요?”
스탭이 나를 올려보더니 눈으로 욕했다.
“턱선을 이렇게 깎으려면 최소한 5킬로 이상 빼야 하는데. 이때가 주원이 제일 말랐을 때라서요. 트레이너랑 얘길 좀 해봐야겠는데요. 며칠 굶고, 머리는 염색하면 되고······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볼게요.”
다음 차례는 성의민 실장이었다.
“스타일리스트 연락해서 주원 씨 카페 유니폼 좀 구해주세요. 잘 어울리는 걸로.”
“아, 네, 유니폼이요.”
좀 과하게 준비한 것처럼 보여도 상관없다.
주연급 배우가 배역을 따고 싶어서 진지하게 달려드는 걸 싫어할 감독은 거의 없으니까.
“그리고 카페 대관도 하나 알아봐 주세요. 미팅 장소를 아예 카페로 잡게. 가능하면 주원 씨가 알바생 흉내라도 낼 수 있게 코칭도 좀 받았으면 좋겠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당장 필요한 조처를 해두고 시선을 돌렸다.
임주원은 이미 시나리오에 몰두한 채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그의 주위만 공기의 밀도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이젠 임주원 손에 달렸다.
배역을 따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배우의 능력이니까.
*
서지준은 화보 촬영 중이라 약속만 잡아놓고 회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뜬금없는 광경과 마주쳤다.
정재이가 내 사무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노크하려는 듯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돌아섰다가, 다시 문 앞으로 되돌아갔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아주 난해했다.
“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