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40)
탑 매니지먼트 241화
정선우 리스트 (2)
“뭔 리스트요?”
“정선우 리스트.”
머릿속에 에러가 났다.
온통 파란색 창으로 뒤덮였다.
지인피셜.
지인이 넵튠 로드매니저임.
지금 넵튠의 로드매니저는 두 명이다.
장서정이랑 박승호.
이 찌라시가 밝힌 출처가 사실이라면 둘 중 하나란 얘긴데.
맙소사.
그러니까 이걸······.
맙소사.
“자기 괜찮······ 안 괜찮은 얼굴인데, 지금?”
“정팀장? 선우야? 얘 지금 숨을 안 쉬는 거 아냐?”
박팀장과 본부장이 나를 둘러싸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얼떨떨한 표정들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그렇겠지.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잠깐만요.”
일단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영혼이 같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다음 장서정과 박승호에게 하던 일 내려놓고 바로 팀장실로 들어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삼분쯤 지났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부르셨······ 어,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팀장님.”
“안녕하세······.”
“앉아봐.”
둘이 본부장과 박팀장을 의식하며 엉거주춤 빈자리에 앉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얼굴에 물음표가 떠다녔다.
“이거 봤어?”
“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여주자, 둘 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모습을 가만히 관찰했다.
넵튠을 담당할 로드매니저라 애초에 신중하게 뽑았다. 로드매니저 채용에 이골이 난 3팀장이 보고, 김현조도 보고, 나도 꼼꼼히 살펴본 후에야 선택했는데.
입사 이틀 만에 문자로 사직서를 날리는 놈들도 있는 세상에, 이만하면 사람 잘 골랐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는데.
그런데 나한테 엿······.
아냐. 속단하진 말자.
생사람 잡는 걸 수도 있으니까.
“글에 넵튠 로드매니저라고 적혀있길래, 제일 먼저 불렀어.”
내가 운을 떼자마자 사무실이 긴장에 휩싸였다.
뭔가 터질 것 같은 위태위태한 침묵 속에서, 계속 옆자리의 장서정을 힐끔거리던 박승호가 물었다.
“야······ 너야?”
“뭐?”
“넵튠 로드면 우리 둘 중 한 명인데, 난 아니니까. 그럼 너잖아.”
장서정이 벌떡 일어났다.
“지랄하고 있네, 미친 새끼가. 야, 이거 네가 그런 거지? 네가 밖에다 떠들었지?”
박승호도 벌떡 일어났다.
“나 아니거든?! 돌았나, 진짜!”
“너 팀장실 앞에서 맨날 기레기처럼 기웃거리잖아. 쥐새끼도 아니고.”
“쥐새끼?! 야, 장서정! 난 뭐 너한테 할 말 없는 줄 알아?!”
“있으면 해, 쥐새끼 새끼야. 안 그래도 너 마음에 안 들었어.”
······개판이구만.
아예 멱살까지 잡지, 왜.
아, 잡았네.
막장 드라마 보듯 쳐다보고 있는데 장서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
“팀장님. 돌아가신 저희 아빠 이름을 걸고, 전 아니에요.”
“팀장님! 저도 아니에요! 와, 진짜 미치겠네! 아니, 근데 증거라고 올라온 게 백프로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 어, 사원증이나 명함 같은 건 루머 퍼뜨린 사람이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조작한 걸 수도 있고!”
“······.”
그렇지. 나도 그래서 섣불리 의심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네가 영 수상한 티를 내고 있는데, 지금.
일단 가볍게 한번 떠볼까 싶어서 말했다.
“박팀장님, 이거 경찰에 신고하고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까요?”
“경찰?”
“여기 적힌 내용이요.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고 딱 이 메모가 전부거든요. 누가 제 사무실에 들어와서 훔쳐봤다는 건데. 바깥에 CCTV도 있고, 사무실 안에도 지문 같은 게 남아있을 테니까.”
“그렇겠지.”
“메모 좀 들춰본 거야 큰일은 아니지만, 다른데도 손댔을지 모르는데 그냥 넘어가긴 찝찝하잖아요.”
“······!”
얼씨구.
저건 누가 봐도 범인이었다.
박승호는 지문 얘기가 나오자마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깍지를 끼었다 뺐다, 문질렀다가, 비볐다가, 아주 온갖 부산을 다 떨어대는 중이었다.
그 꼴을 보다가 좀 더 누그러진 투로 말했다.
“이해를 못 하겠네. 내가 다음 작품 뭐할지가 궁금하면 그냥 나한테 물어보면 되지, 그게 무슨 엄청난 기밀정보도 아닌데 왜 몰래 사무실을 뒤져? 뭐, 산업스파이야?”
“혹시 모르니까 자기 사무실에 없어진 거 있나 잘 확인해 봐.”
“그래. 금품이나, 뭐 시계 같은 거.”
눈치 빠른 박팀장과 본부장까지 거들고 나서자,
“저, 저기······.”
박승호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눈알을 바쁘게 굴리며 이쪽저쪽 눈치를 살피는 게, 아직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안 들어도 내용을 알 것 같았다.
“다른, 다른 물건 훔치거나 한 건 절대 아니고요. 팀장님 말씀처럼 그냥, 팀장님이 다음 작품 뭐 하실지 살짝 찾아보기만 한 거거든요. 기자한테 말하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너무 궁금해서······ 죄송합니다······.”
어디선가 앓는듯한 신음과 한숨이 번갈아 들려왔다.
내가 다시 물었다.
“본건 그렇다 치고. 대체 밖에서 뭐라고 떠든 거야?”
“그거는,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한잔하다가 어쩌다 보니까······ 근데 제 친구 중엔 이쪽 일 하는 애가 하나도 없거든요. 제가 다른 사람한텐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무실은 이제 숨소리도 제대로 안 들릴 정도였다. 다들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박승호를 바라봤다. 그걸 모르는지 박승호는 저를 꼭 믿어달라는 듯 결연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팀장님! 제가 정말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
귓속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이성이 집 나가는 소리였다.
“야, 너는······.”
앞으로고 나발이고.
“너는 다시는 내 눈에 띌 생각도 하지 마, 만약 어디서든 내 눈에 띄면······.”
험한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몇 개는 튀어 나가기도 했다.
고리타분한 작자들이 왜들 그렇게 누군가를 협박할 때 이따위 멘트를 애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입에 짝짝 붙었다.
차마 여기서 더 진부한 대사를 치고 싶진 않아서, 책상에 놓인 텀블러를 집었다. 대용량이라 묵직했다. 이 상황을 말끔하게 마무리할 아이템으로 적격일 것 같았다.
막 들어 올리는데, 박팀장과 본부장이 재빨리 내 팔을 붙들었다.
“참아! 말로, 아니 법으로 해결해, 법으로!”
“일단 진정하고. 차라도 한잔······ 아니, 여기 술 있나?”
양팔을 붙들린 채로 도로 의자에 앉았다.
가출한 이성을 끌고 들어온 후에야, 박승호에게 말했다.
“너 일단 짐 싸서 나가.”
“네?”
“짐 싸서 나가라고. 지금. 당장.”
뒤늦게 알아들었는지 박승호가 사색이 돼서 펄쩍 뛰었다.
“팀장님! 방금 메모 본 거 큰, 큰일 아니라고······,”
“당연히 큰일이지. 그래도 그건, 그래, 내가 어떻게든 넘어가 볼 수 있어. 그런데 너 서정이한테 바로 뒤집어씌우려고 했잖아.”
“그······!”
“난 뒤통수치는 동기한테 트라우마가 있거든.”
배신자. 최건영 때문에.
짧고 굵게, 내 말랑했던 영혼에 스크래치를 남기고 갔지.
안 그래도 그놈 때문에 인간불신증에 걸렸는데 오늘부터 병세가 더 악화되겠구만.
“그러니까 나가. 집에 가서 법무팀 연락이나 기다려.”
“이렇게, 막, 팀장님이 그냥 막 자르셔도 되는 거예요?”
“돼.”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부당해고나, 뭐 그런 거······.”
“부당해고 같은 소리하고 있네. 입사할 때 비밀 유지 계약서에 서명한 거 기억 안 나? 아예 변호사랑 같이 얘기할까?”
박승호는 자기편을 찾으려는 듯 박팀장, 장서정, 그리고 본부장을 번갈아 보다가 싸늘한 시선에 밀려 찌그러졌다.
“제가······.”
우물쭈물하던 놈은 결국 보안팀 직원에게 끌려 나갔다.
동기 때문에 날벼락 맞은 장서정을 위로하고, 박승호가 곱게 짐만 싸 들고 나가는지 감시하라고 내보낸 후에야 사무실이 다시 고요해졌다.
“어이구야······.”
본부장이 나를 쳐다봤다.
웃음을 겨우 눌러 참는 듯 입꼬리가 들썩거린다.
“이런 말 할 상황이 아니긴 한데. 동기끼리 회사에서 멱살 잡고 싸우는 건 뭐······ 전통이야?”
“······.”
“본부장님. 그런 말 할 상황 아니에요.”
박팀장이 핸드폰을 든 손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지금도 문자와 전화가 들어오는지 계속 진동 중이었다.
“계속 퍼져나가고 있거든요. 정선우 리스트.”
“아. 그거······ 일이 좀 커질까?”
“선우 씨.”
박팀장이 빈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홍길동전, 소금, 첩보, 닥터 25시. 이 중에 첩보는 자기가 망할 것 같다고 내던진 거고. 닥터 25시도 주원 씨한테 들어온 거 자기가 검토하다가 망할 것 같다고 깐 거잖아. 맞지?”
“네.”
“내가 좀 쎄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 나머지 두 개도 혹시.”
“······.”
“망할 것 같구나. 어······.”
박팀장이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멈췄다.
눈동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느릿하게 기어가더니 깜빡인다.
“오케이. 알았어. 그러니까, 지금 인터넷에서 정선우가 찍은 대박작 리스트라고 퍼지고 있는 게 사실은 정선우가 찍은 망작 리스트란 거잖아? 그지?”
“그렇죠.”
“주여······.”
무교인 박팀장이 주님을 찾았다.
급기야는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기도하듯 양손을 꼭 쥔다.
“이거 어떡하지? 어떡하죠, 본부장님?”
“일단 시간 좀 지나면 조용해질,”
“수가 없죠!”
박팀장이 핸드폰 속의 리스트를 삿대질했다.
“내가 저기 홍보팀이면 이거 SNS, 커뮤니티, 하여튼 사람 많은 곳엔 다 뿌리고 다닐 거니까! 왜? 정선우가 우리 영화, 우리 드라마 대작이라고 찍었다는 걸 전국민이 다 알았으면 좋겠으니까!”
“근거도 없는 루먼데······.”
“루머면 어때요? 사람들이 믿으면 그만인데. 쟤들이 이런 입소문 하나 만들려고 개봉 전에 돈을 얼마나 태우는지 아시잖아요. 홍길동전, 소금, 첩보, 이야, 골라도 하필이면 블록버스터만 골랐네. 얘들 다 합하면 마케팅비 최소 백억이에요!”
자기가 말해놓고도 충격적인지 박팀장이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대박작 리스트라고 퍼져서 다행이지. 이게 사실 망할 것 같은 작품 리스트라는 건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선우 씨 이름표 달고 밖으로 나가면 안 돼요. 지금은 절대 안 돼.”
박팀장이 거듭거듭 강조했다.
“지금 선우 씨 이름값이랑 영향력을 생각해 봐요. 정선우가 대작이라고 했다고 소문나면 안 붙던 투자도 붙는 판이에요. 근데 정선우가 망할 거라고 했다? 그게 무슨 블랙리스트가 돼서 소문이 쫙 났다? 국내 대형 투자배급사들 사활이 걸린 텐트폴 대작들인데?”
그리곤 나를 휙 돌아보며 덧붙였다.
“잘못하면 고소장 날아와, 진짜.”
가볍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에러 창을 싹 없애고 재부팅 한 머리로 결론을 냈다.
“사실무근인 거로 가요.”
“어?”
“리스튼지 뭔지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요. 최근에 본 시나리오나 대본 제목들을 그냥 다 적어놨는데, 로드가 그걸 보고 이상한 오해를 했을 수는 있겠네요.”
내 말을 듣고 있던 박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그렇게 가자. 사실무근.”
“근데 말이야.”
리스트를 곰곰이 들여다보던 본부장이 내게 물었다.
“선우 네가 촉이 남다른 거야 잘 알지만······ 얘들이 정말로 다 망할 것 같아?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해? 이게 아무리 봐도 쉽게 망할 사이즈들이 아닌데?”
“······.”
대꾸도 없이 그냥 웃었다.
본부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다 식어 빠진 밀크티를 홀짝였다.
“만약 이거 다 망하면 영화판에 곡소리 날 건데. 투자자들도 몸 사릴 거고. 어이구야, 홍길동전 이건 월드아트 픽처스가 거의 기둥뿌리 뽑아서 만드는 거 아냐? 그게 왜······.”
“그런 게 문제가 아니죠. 정말로 이 리스트에 있는 게 죄다 망해버리면요. 그렇게 되면.”
박팀장이 묘한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양손을 들어 올렸다.
“자긴 그때부턴 미다스의 손이 아닐 거야.”
“······그럼요?”
“신의 손이지, 신의 손.”
“······.”
이 순간에도 박팀장의 핸드폰은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
내 핸드폰도 울렸다. 기자였다.
그냥 무시했다.
그리고 다시 소파에 늘어져 앉아, 블라인드 너머로 하늘을 바라봤다.
정선우 리스트고 뭐고, 난 모른다.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오늘 날씨 좋네요. 점심 뭐 먹을까요?”
“······.”
***
그룹/연예부 친구/같이 좀 먹고살자
-다들 그거 봤어? 정선우 리스트
-넌 무슨 전화도 안 터지는 데 있다 나왔냐?
-그거 땜에 오늘 나간 기사 다 묻혔어. 아니, 정선우가 연예인도 아니고 이게 이렇게 이슈가 될 일이야?
-이슈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걔는 이제 이름이 브랜드야, 그냥
-누군지 몰라도 타이틀을 기깔나게 뽑았어. 정선우 리스트. 정선우가 무슨 연예계 비리 폭로한 거 같잖아. 클릭하면 막 갑질 연예인 목록 뜰 것 같잖아. 이거 어떻게 안 눌러봐? 이거 안 궁금해?
-존나 궁금해
-근데 그 리스트는 진짜래? 팩트 확인해 본 사람 있어?
-W&U 홍보팀에 연락 해봤는데 사실무근이라고 웃던데?
-넵튠 로드 하나 짤렸다며 그거 땜에 짤린 거 아냐?
-진짜? 짤렸대?
-거기 홍보팀장이랑 친한 선배가 물어봤는데, 정선우가 최근에 본 시놉들 제목을 걍 끄적여 놓은 거를 로드가 보고 밖에다가 떠드는 바람에 소문이 와전된 거라던데?
-글쎄
-딴건 몰라도 첩보는 확실할걸? 정선우가 첩보 시나리오 보자마자 대박이라고, 서지준한테 이건 꼭 해야된다 그랬었대
-이 리스트가 아예 루머는 아니란 말이네
-근데 홍길동전은 관계자들이 쉬쉬하고 있긴 한데, 저거 내부 시사회 반응이 좀 별로야 개봉 연기 얘기까지 나왔었다는데?
-만듦새 개떡 같다더라 자신 없으니깐 엠바고도 길잖아, 개봉 전에 입소문 통제하려고. 시사회 갔다 온 애 말로는 이번엔 정선우가 백프로 잘못 고른 거라던데?
-정선우 드디어 헛발질 한번 하나?
-흥행이야 까봐야 알지 도시정글은 그만큼 잘 될 줄 알았나
-정선우 본인이 리스트 사실무근이라는데 아무도 안 믿냐?
-근데 홍길동전이랑 소금엔 정선우 배우 없지? 첩보도 빠그라졌고 그거 원래 서지준한테 먼저 간 거를 최수영이 인터셉트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W&U에서 사실무근이라더라 얘넨 다 사실무근이래
-쪽팔리게 배역 뺏겼다고 광고하고 싶겠어? 서지준인데?
-그럼 리스트 중에선 닥터 25시만 하는 건가? 그거 임주원이 하지?
-내가 거기 제작사에 물어봤는데 W&U에서 깠다던데?
-뭐야, 임주원이 깠나?
-임주원이 지금 정선우가 가져온 작품 깔 만큼 배부른 처지가 아닐 텐데
-모르지, 인터뷰할 때 보니까 곤조 좀 있는 스타일이던데
-이상하네
-뭐가?
-정선우가 찍은 대박작 리스트에 정선우네 배우가 하나도 없는데, 이게 안 이상하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