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41)
탑 매니지먼트 242화
정선우 리스트 (3)
[관계자 라이브] 화제의 정선우 리스트?-W&U 정선우 팀장, 왜 미다스의 손이라고 부를까?
-엔터업계 관계자들이 말하는 정선우, 실패 없는 안목 부러워
동영상 밑에 줄줄이 달린 댓글을 무시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죽은 지 나흘쯤 된 시체처럼 소파에 드러누웠다.
루머 하나가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기자, 피디, 작가, 매니저 등 직업군마다 친목 도모나 정보공유, 대나무숲 용도의 단톡방이 수두룩하니까.
적게는 십수 명부터 많게는 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인 단톡방에 누군가 루머를 올린다.
그 정보는 다시 사적인 단톡방으로 옮겨지고, SNS와 커뮤니티를 한 바퀴 돈 다음, 오프라인으로 나와 가족, 친구, 회사 동료들에게까지 전달된다.
포털 메인에 헤드라인이 걸리거나 TV에 나오지 않더라도.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 꽤 흥미로운 소식이라면.
“삼촌, 정선우 리스트 진짜야?”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이번처럼 루머를 널리 퍼뜨리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많은 경우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넌 그거 어디서 봤어?”
소파에 들러붙은 채 고개만 돌려 물었다.
아래쪽에 기대앉은 겨울이가 핸드폰을 보며 대꾸했다.
“위튜브에서 허스키즈 신곡 뮤비 뜬 거 봤는데, 거기 베댓으로 걸려 있던데? 허스키즈 멤버가 홍길동전 영화에 나오거든. 특출.”
“그래······.”
아이돌 팬덤까지 엮였으면 뭐, 정말 전국민이 다 알게 생겼네.
쿠션 밑을 더듬어 처박아 놓은 핸드폰을 꺼냈다. 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져서 진동으로 돌려놓은 지 오래다. 어지간한 연락은 전부 미팅 중이라고 둘러대는 중이었다.
형네 집으로 피신을 온 것도 그래서였다.
마음의 평화가 필요했다.
< TVL 드라마국 송윤택 부장
정팀장, 닥터 25시 얘기 진짜야? 나한테만 귀띔 좀 해줘.
닥터 25시랑 동시간 붙는 애들이 좀 물어보라고 볶아서 그래.
< JJB인베스트먼트 황영현 이사
팀장님, 시간 괜찮으실 때 꼭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홍길동전하고 소금에 투자를 꽤 했는데······.
사실무근이라고.
오늘 하루 같은 답변을 얼마나 보냈는지 모르겠다. 납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첩보를 보고 대박이라고 했다던데, 닥터 25시도 계약 직전까지 갔다던데, 하고 찔러대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제 모르겠다, 나도.
계속 떨고 있는 핸드폰을 도로 던져버렸다.
“삼촌, 그거 막 읽고 씹어도 돼?”
“난 지금 죽은 사람이야. 시체가 어떻게 일을 하냐.”
“옛날엔 하나하나 다 답장 보내느라 엄지손가락 지문 닳겠다고 하더니. 이제 막 씹어도 괜찮구나.”
“출세하면 다 그래. 드러우면 출세하라는 말이 왜 있겠냐?”
“삼촌이 아직 출세한 건 아니지. 대표 정도 돼야 출세한 거지.”
겨울이 옆에 나란히 앉아서 마찬가지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쌍둥이들이 애늙은이처럼 떠들었다. 심신이 지쳤을 때 심리적 안정감과 원동력을 불어넣어 주던 애들이 언제 이렇게 됐지.
“너희들 이제 안 귀여운 거 알지?”
물었더니 한심해하는 듯한 대답들이 날아왔다.
“원래 어릴 때나 귀여운 거야, 삼촌. 그때 많이 보지 그랬어.”
“우린 이제 귀여운 걸로 먹고 살 나인 지났지.”
“너희는 점점 누굴 닮아가냐. 형하고 형수님이랑은 너무 다른데.”
“삼촌을 닮은 게 아닐까?”
······그럴지도.
핸드폰에 몰두한 애들을 보다가 툭 말했다.
“야식 먹을 사람?”
“저요!”
네 명이 똑같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모습으로 팔을 쳐들었다.
저녁 먹은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뭐 먹을래?”
“치킨이요!”
“치킨 저번에 먹었잖아! 국물 닭발 먹자!”
“국물 닭발은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삼촌, 나 불족발 먹고 싶어! 진짜 불족발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
“이번에 내가 메뉴 고를 차례잖아! 난 피자 먹고 싶다고!”
“그런 게 어딨어! 삼촌이 사주는 건 따로 카운트해야지!”
“야! 가위바위보 해!”
보통 네 쌍둥이쯤 되면 적극적이고 활달한 형제자매에게 치이고 치받히며 손해 보고 사는 안쓰러운 애가 한 명쯤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데.
우리 애들은 다르다. 전투력 떨어지는 애가 한 명도 없다.
주먹질하듯 가위바위보를 하는 애들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그냥 다 시켜. 다 먹을 수 있으면.”
“······!”
존경받는 일이 이렇게 쉽다. 환호성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여름이 녀석이 카드를 공손히 받아 챙기며 아부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삼촌은 출세한 게 맞는 것 같아.”
“그냥 다 시켜! 와······!”
애들이 흥분한 얼굴로 깨춤을 췄다. 신난 모습들을 보니 마음이 좀 평화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뼈 닭발을 시킬 것인가 무뼈 닭발을 시킬 것인가를 두고 싸우기 시작하는 애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핸드폰으로 전화가 들어왔다.
월드아트 픽처스의 심부장이었다. 벌써 두 번째 전화였다.
아까처럼 회의 중이라고 둘러댈까하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나도 참, 정이 많아서 큰일이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제가 계속 회의 중이라 정신이 없네요.”
-아닙니다. 지금 정팀장님 바쁘신 거 다 알죠. 귀찮게 해서 제가 더 죄송합니다. 딱 하나만 물어볼게요.
리스트 얘기만 하지 마라.
-그, 정선우 리스트라고 돌아다니는 거, 그거 진짭니까?
젠장.
한숨을 쉬고 오늘만 한 백 번쯤 떠든 멘트를 자동 재생했다.
“완전 헛소리예요. 저도 지금 그것 때문에 일을 못 하는 중이에요.”
의심스러워도 어쩔 거야.
당사자가 아니라는데.
-정팀장님. 우리가 도시정글 함께 하면서, 제 딴엔 팀장님하고 친분도 좀 생겼다고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다른 사람들이 미다스니 불패 신화니 떠드는 게 부담스러우신 거면 딱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목소리가 지나치게 절절하다.
-그냥 정팀장님 입에서 홍길동전 잘 되겠다, 그 한마디만 들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그래요.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홍길동전 내부 시사 반응이······ 영화가 좀, 생각보다 난해하더라고요. 개봉 연기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었는데, 투자 문제도 있고 당장 추석이 코앞이라 무조건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요즘 이것 때문에 신경 쓰여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어요······.
철두철미하고 깐깐하던, 인텔리의 정석 같던 사람이 어쩌다······.
어쩐지 미래 예지에서 봤을 땐 꼴이 영 초췌해 보이더라니. 홍길동전으로 마음고생을 한 탓이었나? 수백억짜리 영화를 폭삭 말아먹었으면 사람이 초췌해질 만도 하지.
-제작사 쪽은 추석 특수도 있고, 호불호 갈리더라도 판권수익이랑 뭐 이것저것 더하면 설마하니 손해는 보겠느냐고 하는데. 당장 개봉이 코 앞인데 관객반응이 어떨지······.
위튜버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근본도 없는 영화.
전화라서 다행이다. 표정 관리 할 필요가 없어서.
“어쨌든 그 리스트 얘기는 정말 사실무근입니다. 그래도 홍길동전 영화는, 제가 보진 못했지만 다들 고생하셔서 만든 영화니까 꼭 좋은 결과가 있······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심부장의 목소리가 더 침울해졌다.
-저번에 도시정글 잘될 거라고 하셨을 때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그때는 영혼이 충만했는데, 지금은······.
실시간으로 정신적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그리고 참담하게도 영화가 개봉되고 나면 증상이 더 심해질 듯한 심부장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통화를,
끊자마자 다시 진동이 울렸다.
공범자 쪽 도형태 대표였다.
“······네, 대표님.”
-정팀장님. 그 리스트 때문에 다시 전화를, 네, 드렸는데요.
“그거 사실무근이라고 제가 아까,”
-알죠, 알죠. 그런데 점점 일이 커져서 지금은 사방에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창인이 귀에도 자꾸 얘기가 들어가는지, 걔가 신경 쓰느라 시나리오에 집중도 못 하는 거 같고······.
“제가 감독님한테 다시 연락드릴까요?”
-아뇨, 걔 지금 전화도 꺼놨어요. 근데······ 배급사 쪽에서도 저한테 리스트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던데. 거기도 소금이 리스트에 있으니까, 궁금한가 보더라고요.
소금.
공범자와 계약한 투자배급사의 내년 텐트폴 작품이 바로 소금이었다.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간 초특급 블록버스터.
초특급으로 망할 테지만.
“대표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루머예요. 이 리스트가 진짜면 제가 공범자를 첫 번째로 썼겠죠. 제가 생각하는 제일 성공할 것 같은 영환데.”
-그렇죠? 우리가 임주원 씨를 바로 오케이 안 하고 오디션을 보느니 마느니 해서 리스트에서 짤리고 뭐 그런 건 아닌 거잖아요, 그죠?
“······아니에요.”
-그럼 혹시 나중에 계약하고 나서 우리 공범자 넣어서 정선우 리스트 새로 하나 만드실 생각은······.
“없습니다.”
전화를 끊고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아, 진짜······.”
“삼촌 왜 그래?”
메뉴 선정을 끝내고 주문까지 마쳤는지, 다시 소파 밑으로 돌아온 겨울이가 물었다. 진동하는 핸드폰을 무시하며 중얼거렸다.
“사는 게 쉽지가 않다.”
“나도. 로또나 됐으면 좋겠다.”
“······넌 로또 사지도 못하잖아. 중학생이라.”
“엄마 아빠가 로또나 됐으면 좋겠다.”
곧바로 소원을 바꾼 겨울이가 나를 슬쩍 봤다.
“근데 삼촌 정도면 사는 게 좀 쉬운 편인 거 아냐?”
“뭐?”
“하는 것마다 잘 되니까. 댓글 보면 사람들이 삼촌은 인생 날먹이라 살맛 나겠다고 그러던데.”
“어떤······.”
또 전화가 걸려 왔다.
던져버리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홍보팀 박팀장이었다.
-자기, 괜찮아?
“어떨 것 같으세요?”
-나야 모르지. 난 유명인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자긴 오늘 포털이랑 SNS, 위튜브까지 싹 실검 1위 찍은 거 알아?
“실검 같은 게 왜 있는지 모르겠어요. 없어져도 되지 않나?”
건너편에서 박팀장이 낄낄거렸다.
-자기 아무래도 기분 전환 좀 해야겠다.
“안 그래도 어디 나갔다 올까,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어디?
“글쎄······ 인도?”
-엉?
갠지스강에서 둥둥 떠다니다 보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좀 가까워지지 않을까?
한참이나 더 웃어댄 박팀장이 마침내 용건을 말했다.
-근데 자기, 월드아트 픽처스 쪽이랑 뭐 얘기한 거 있어?
“월드아트요? 거기 심부장님하고 좀 전에 통화했는데, 리스트 사실이냐고 물어보셔서 아니라고 했죠. 왜요?”
-아니, 지금 홍길동전 쪽이 홍보하면서 대놓고 자기 이름이랑 리스트를 들먹이길래, 난 또 자기랑 무슨 얘기가 있었나 했지. 저쪽 홍보팀이 오프닝스코어 잘 뽑으려고 막 지르는 중인가 보다. 어떻게, 내가 저쪽에다 전화해서 지랄 좀 할까?
“······아니에요.”
곧 망할 텐데.
심부장의 수척한 얼굴도 눈앞에 아른거리고.
-그리고 첩보 말인데, 투자자 미팅에서 이거 정선우가 꽂힌 영화라고 대놓고 그랬다던데? 낯짝에다 철판을 깔았나?
그것도 망할 텐데.
-게다가 닥터 25시 그거, 자기가 까고 나서도 그쪽 제작사에서 계속 다시 고려해달라고 전화 왔었다며? 이제 안 올 거야.
“왜요?”
-그게 원래 1순위 배우한테 까이고 좀 돌다가 주원 씨한테 들어온 거잖아. 근데 1순위가 갑자기 하겠다고 했대. 닥터 25시 제작사는 이게 웬 횡재냐고 신났다더라.
어차피 망할 텐데.
-거기 대표하고 감독이 1순위랑 만난 자리에서 임주원은 사실 별로였네 어쩌네, 떠들었다는 말이 내 귀에까지 들리네?
아, 그래?
기운 없던 몸에 돌연 아드레날린이 퍼졌다.
-그리고 자기한테 까였다고 하면 정선우 리스트 들먹이기 그러니까, 주원 씨한테 까인 거라고 했다나 봐. 주원 씨가 보는 눈이 없는 거라고.
그건 좀 선을 넘었지.
원래는 적당히 타이밍 봐서 제작사 쪽에 작가 문제를 알릴 생각이었는데, 관둬야겠다.
그 대신······.
이거 편성 받은 채널이 IBC였나?
역사에 획을 그을 황당한 논란 끝에 드라마가 조기 종결되면,
드라마국 국장은 얼마나 날벼락이겠어.
박팀장과의 통화를 끝내고 곧장 IBC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 뭐 좋은 일 생겼어?”
“가끔은 남의 고통이 내 즐거움이 될 때도 있거든.”
“응?”
신호가 길게 이어진다. 아쉽게 끊으려는 참에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어, 정팀장. 이게 얼마 만이에요? 요즘 별일 없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내심 찜찜한 게 있는 사람의 목소리다.
간단한 안부만 묻고 용건을 꺼냈다.
“국장님, 닥터 25시 말인데요.”
-아, 그거. 담당 피디 말론 제작사에서는 꼭 임주원 씨가 했으면 했는데, 주원 씨가 고사했다면서요? 제작사 대표가 계속 설득하려고 애를 쓰다가 똥줄이 탔나 보더라고.
내가 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줄줄이 사정을 늘어놓는다.
-이번 일은 이렇게 된 걸로 하고, 다음 작품이 또 있잖아요, 우리 다음 작품은 꼭 같이해야지. 근데 정팀장, 내가 그 정선우 리스트라고 돌아다니는 걸 봤는데······.
“그건 루머고요. 닥터 25시, 웬만하면 김경수 작가님 대본 7, 8부까지 받아보시고 진행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6화까지는 사귀던 공미희 작가가 반은 써주다시피 했고.
둘이 깨지고 7화부터 사달이 난 건데.
공미희 작가가 본인의 분노와 살인 충동을 SNS에 써 갈겨 놓고 협곡에서 번지점프나 하는 걸 보면, 이미 순조롭게 엿된 상황일 테니까.
-대본?
“이것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예전에 타임슬립 때, 촬영장에서 사고 나서 국장님이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었다고 들었거든요.”
-타임슬립?
안 그래도 걸걸하던 국장의 목소리가 쩍 갈라졌다.
-그건 갑자기 왜요? 내가 그 씨부럴, 아니, 그 감독작가 둘이 눈 맞아서 촬영장 뒤집어지고 불륜 드라마 내보냈다고 항의 전화 쏟아졌던 거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요. 그런 일이 또 생기면 국장님이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
핸드폰 건너편이 고요해졌다.
-왜요? 닥터 25시 뭐 있어요? 뭐 아는 게 있구나? 그래서 정팀장이 임주원 안 넣은 거예요? 설마 이것도 감독이랑 작가가 바람난, 아니지, 둘 다 남잔데? 그 둘이······!
“대본 꼭 더 받아보세요.”
다급하게 붙잡고 늘어지는 국장에게 작별 인사를 던졌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찜찜해서라도 대본을 더 받긴 할 테고.
그 후에야 알아서 하면 될 일이고.
어쨌든, 국장에게 빚 하나 달아 놨으니 다시 연락오겠지.
전화를 끊기 무섭게 다음 연락이 줄을 잇는다. 통화하는 사이 쌓인 메시지나 톡들을 대충 확인했다. 죄다 리스트에 있는 네 작품들과 관련된 것들뿐이었다. 계속 울려대는 통에 이젠 배터리도 간당간당했다.
화면을 꺼버리고 말했다.
“겨울아, 보조 배터리 좀.”
“이럴 거면 그냥 일하러 가는 게 낫지 않아?”
“이제 끝이야. 진짜 전화도 안 받을 거야. 그냥 충전만······.”
손에 들린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다.
백한성 대표였다.
겨울이의 웃는 얼굴을 뒤로 하고 일어나 앉았다.
“네, 대표님.”
-하루 종일 시끄럽네. 어때, 버틸만해?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신규사업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일이 있는 건지, 요즘 회사에 얌전히 붙어있는 일이 드물 정도로 바쁘던데.
그러고도 볼 때마다 사람이 반드르르해지는 게 회사 직원들 생기를 혼자 다 빨아먹나 싶을 정도다.
“뭐······ 둘러댈 건 둘러대고 무시할 건 무시하고 있습니다.”
-정말 급한 일 아니면 미뤄놓고 푹 쉬고 있어. 출근하지 말고. 도시정글 때부터 계속 바빴으니까, 이참에 좀 충전하는 것도 괜찮지.
“알겠습니다.”
-아, 그 리스트에 있는 작품들 말이야. 망할 것 같다고 했다면서. 정팀장 생각에는 얼마나 망할 것 같아?
“얼마나요?”
-그게 좀 궁금해서.
얼마나 망할 것 같냐고?
“아주······.”
역병이 창궐한 수준으로 영화계 말아먹은 영화에,
조기종영도 못 하고 엎어질 드라마.
“크게요?”
건너편에서 백한성 대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잠시.
뭔가 가볍게 툭, 툭,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말했다.
-그럼 이제 시작이겠네.
“네?”
-정팀장, 멘탈은 좋은 편인가?
······멘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