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45)
탑 매니지먼트 246화
정선우 리스트 (7)
올 게 왔구나, 싶은 심정이었다.
차라리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침착하게 싱크대 서랍을 뒤져 청심환 하나를 찾아 먹었다. 남조윤 어머님께 받은 토종꿀을 머그잔에 퍼 넣고 꿀차도 한 잔 탔다. 당이 쭉 올라오면서 신경이 느슨해진다. 약빨이 최고였다.
-오빠, 왜 이렇게 조용해요? 팀장님? 지금 모니터링하는 거 아니죠?
-그냥 보라고 해. 똥도 한번 먹어봐야 똥인 줄 알지.
-뭔 소리야! 오빠, 절대 인터넷 찾아보지 마세요! 이런 일엔 제가 전문가인 거 아시죠? 멘탈 관리가 제일 중요해요.
-그렇게 잘 알면서 너는 왜 맨날 찾아보고 질질 짜냐?
-아, 조용히 하라고! 지금 분위기 파악 안 되냐?!
스피커폰 속에서 한참 임서영과 엘제이의 목소리가 소리가 뒤섞이더니, 곧 임서영이 다시 말했다.
-어쨌든 오빠, 악플 같은 건 절대 신경 쓰지 마시고요!
“악플이 있어?”
나한테?
SNS에 접속했다. 내 이름을 검색해 보니 새로운 글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뭐라고들 떠드는지 한번 보자.
-홍길동전 조조로 보고 왔어요ㅎ 정선우한테 환불받으러 가는 중
-이건 시발 추천한 정선우도 개새끼임 이런 거를 시발 내가 이걸 볼라고 아침 7시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영화관에 시발
└뭔 추천??? 본인이 루머라고 해명까지 했는데
└근데 정작 홍길동전 홍보할 땐 정선우 추천작이라고 떠듦
-난 이거 암만 봐도 정선우가 홍보비 받고 입 털어 준 것 같은데?? 정선우랑 월드아트 픽처스랑 얼라이브부터 도시정글까지 계속 같이해서 친하니까 홍보해 준 거 아냐? 영화 별로인 거 아니까 본인은 극구 루머라고 해명하면서 발 빼는 거고. 홍보는 홍보대로 하고 어차피 루머니까 리스크는 없고 완전 개꿀 아님?
└와 진짜 이거 맞는 듯 통찰력 대박
└그럼 리스트에 있는 다른 작품들은?
└하나만 하면 속보이잖아ㅋ 리스트 정돈 만들어야 티가 안 나지
-걍 이번엔 정선우가 잘못 찍은 거지 뭘. 한 번 삐끗할 때도 됐음.
그만 보자.
내 어처구니없는 한숨 소릴 들었는지 임서영이 다시 조언했다.
-봤어요? 아, 보지 말라니까! 제 경험상 이런 날은 웬만하면 침대 밖으로 안 나가는 게 좋은데.
“이게 뭔 큰일이라고 칩거까지 하냐.”
-오빠.
이번엔 이송하였다.
-진짜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 소란도 얼마 안 갈 거야.”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이송하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 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게 느껴진다.
자기한테 쏟아지던 악플들은 잘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너희야말로 모니터링 그만하고 하던 일이나 해.”
-어떻게 그래요, 이 난리가······.
“다 해결할 거야. 내가 언제 일 망치거나 실패한 적 있어?”
-그건 없죠.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속 시원히 다 말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눌러 놓고,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여전히 뜨끈뜨끈한 꿀차에 허브차 티백을 하나 넣었다. 달고 은은한 향이 코끝에 감돌았다.
또 누가 메시지를 보냈는지, 팽개쳐 둔 핸드폰이 덜덜 떨었다.
무시하고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이쯤이야. 다 예상했던 일이다.
백한성 대표 입에서 멘탈은 괜찮은 편이냐는 말이 나온 그날부터 쭉. 이 순간을 위해 심신을 갈고 닦아왔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로.
*
온라인이 시끄러운 것에 비해 회사는 조용했다.
시선이 따라붙긴 했지만 대놓고 뭘 묻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최선을 다해 이 사태를 모른 척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로 나를 대하려는 직원들의 노력이 느껴진다.
인류애가 조금 차올랐다가,
5층에 도착하자마자 도로 증발했다.
홍보팀 앞에 승냥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얼씨구.
죽상이 된 내 꼴을 실시간으로 감상하고 싶었는지, 평소 나를 아니꼬워하는 사람을 뽑으면 3위 안에 들 작자들이 다 몰려왔다. 마주칠 때마다 떫은 표정들이더니 오늘은 아주 얼굴에 꽃이 피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신이 난 건,
“정팀장!”
조병환 실장, 아니, 임시팀장이고.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처음이 힘들지, 지나면 별거 아냐. 우리도 다 겪어봤어.”
“그래, 사람이 어떻게 꽃길만 걸으면서 살아요. 이게 정상이지.”
“뭐 엄청난 일이라고 사방에서 떠들어대나 모르겠네. 원래 다들 욕도 처먹고, 망신살 뻗치기도 하면서 배우는 거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정팀장님.”
차라리 빈정거리는 게 낫겠는데.
‘그렇게 유난을 떨더니, 너도 오늘이 있구나’라는 속내가 빤한데, 겉으론 하나같이 무슨 인생의 대선배 같은 얼굴을 하고 위로와 격려의 멘트를 쏟아내니 더 꼴 보기 싫었다.
“지나갈게요. 좀 바빠서.”
“어, 그래······.”
파리 쫓듯 손사래를 치고 자리를 떴다.
사무실로 갔더니 김현조가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단내가 진동하는 도넛 박스를 든 채였다.
“욕봤다. 이건 선물.”
“감사합니다.”
팀장실 안으로 따라 들어온 그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밖에서 뭣도 모르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 너도 알잖아. 원래 재수 없는 놈이 미끄러지면 다들 신나서 물어뜯는 거.”
“제가 그 재수 없는 놈이에요?”
“······내 말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놈들이 이때다, 하고 우르르 튀어나온 거란 얘기지. 원래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잖아. 너야 모난 돌 정도가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석 수준이었으니까······.”
두서는 없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피로에 찌들고 다크서클에 침식된 얼굴을 하고선, 나한테 어설픈 위로의 뜻을 전달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짠했다.
아. 내가 지금 좀 감상적인가?
하마터면 끌어안을 뻔했네.
때마침 두들기는 듯한 노크와 함께 3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양손에 풀뿌리가 든 담금주와 종이꽃 한 송이를 들고서.
블랙아웃 굿즈로 나온 스냅백을 비스듬하게 뒤집어쓴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철딱서니 없어 보였다.
그가 찌그러진 종이꽃을 내 책상에 올리고 뜬금없이 명복을 빌었다.
“······누구 죽었어요?”
“응, 있어. 미다스의 손이라고. 3년 정도 짧고 굵게 왔다 가셨다.”
이 양반이 진짜.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김현조가 진짜로 당황한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더니 대뜸 3팀장의 굵직한 정강이를 걷어찼다.
“형은 소시오패스냐? 어?!”
“아, 야, 야, 아파! 장난이야, 인마! 원래 이런 일은 가벼운 해프닝처럼 넘겨야지. 얘가 욕먹는다고 콧대 꺾여서 궁상떨고 있을까 봐 내가 분위기를 좀 쇄신해 주려고······!”
“장난? 장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제 콧대 멀쩡하고요. 궁상 안 떱니다. 나가서 노세요, 나가서.”
내 평화를 방해하는 두 사람을 돌려보내고 나서 커피를 내렸다.
막 한 잔 따르자마자 불길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저기, 팀장님······.”
이번엔 프리티걸의 이태신 실장이었다.
조심스럽게 들어온 그가 손에 움켜쥔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직사각형 형태의 약상자였다.
“이게 피로회복제 같은 건데요. 프리티걸 애들 한창 상황 안 좋았을 때, 제가 스트레스성 위염에, 두통에, 여기저기 고장 나서 먹기 시작한 약인데 효과가 괜찮거든요. 혹시 도움이 되실까 해서······.”
단순히 피로회복제라기엔 뭔가 적혀있는 효능이 많다.
불안초조, 신경쇠약, 수면장애, 무기력증, 자양강장, 식욕부진······.
만병통치약이야?
“······감사합니다.”
어쨌든 받았다.
사무실 문이 닫히고 다시 홀로 남았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늘어뜨렸다.
출근한 지 십 분 만에 진이 다 빠진 느낌이다.
속는 셈 치고 만병통치약을 먹어 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서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대신 도넛을 하나 꺼내먹었다.
한입 물어뜯는 순간.
달짝지근한 설탕 코팅이 입안에서 산산이 부서져 녹아내린다.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튀긴 빵은 쫄깃하면서도 촉촉했다. 한입 씹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단숨에 두 개를 먹어 치우고, 내친김에 담금주도 한 잔 따랐다.
역시 마음의 평화엔 당과 탄수화물, 알콜이 최고지.
담금주를 마시며 이 사태가 어디까지 갈까를 생각했다.
어쨌든 이제 시작이니,
당분간은 시끄럽게 생겼네.
*
백만 명.
홍길동전의 개봉 첫날 관객 수는 무려 백만 명이 넘었다.
국내 역대 오프닝 스코어 3위를 갈아치운, 어마어마한 성적이었다.
사전예매를 해놓고 홍길동전 개봉 날만 기다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고, 기대를 무참히 배신당한 사람들도 그만큼······.
아니, 백만······.
어쩌다 이걸 첫날에 백만 명이나······.
후폭풍도 어마어마했다.
나는 이걸 보고 말았지만, 너희는 절대 보지 말라는 살신성인의 감상.
나만 죽을 순 없다, 홍길동전이 희대의 역작이고 내 인생작이니 너희들도 꼭 보라는 물귀신들의 감상.
양쪽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냥 아사리판이었다.
그리고 개봉 이틀째와 삼 일째.
관객 수가 그야말로 기록적으로 폭락했다.
당연히, SNS든 커뮤니티든 난리가 났다.
그 속에서 내 이름이 어떻게 굴러다니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안 봤으니까.
앞으로도 안 볼 거고.
***
< 그룹 채팅/연예부 친구/같이 좀 먹고살자
-홍길동전 어떡하냐? 이렇게 요란하게 망하는 영화도 참 오랜만이네
-왜 요즘 그거 때문에 기사 쓸 거 많아서 좋은데ㅋㅋㅋㅋ 홍길동전에다가 폭삭 망한 텐트폴 영화 몇 개 더 붙여서 특집기사나 써야겠다.
-어차피 망할 거 오프닝으로라도 백만 찍고 들어가서 월드아트 픽처스는 얼마나 다행이야? 정선우 간판이 진짜 대단하긴 하다.
-정선우는 인터뷰 안 해주겠지?
-해주겠냐? 지금도 리스트 사실무근이고 루머라고 딱 짜르던데
-진짜든 아니든, 정선우랑 W&U입장에선 무조건 루머라고 밀고 가야지 이제ㅋㅋㅋㅋ 홍길동전 망해서ㅋㅋㅋㅋㅋㅋㅋ
-닥터 25시 지금 제작 올스탑이라던데. 뭐 아는 사람?
-???????
-진짜? 팩트 확인된 거야? 왜?
-그거 주인공 캐스팅도 끝나지 않았어? 임주원 대신 한경민으로?
-제작사에서 무조건 노코멘트래서 나도 자세한 건 모르는데 발칵 뒤집어진 건 확실해. 캐스팅이든 뭐든 다 홀드상태고. 뭔가 큰 문제 터진 모양이던데?
-나도 닥터 25시 김경수 작가가 IBC 국장한테 불려 가서 쌍욕 먹었단 얘기 들었는데, 진짠가?
-뭐야? 설마 닥터 25시 엎어지나?
-이게 뭐얔ㅋㅋㅋ이 정도면 정선우 리스트 그거 대박작이 아니라 쪽박작 리스트, 뭐 그런 거 아니냐?ㅋㅋㅋㅋ
-쪽박작 리스트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
성큼성큼 IBC방송국 로비로 들어갔다.
출입증을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드라마국이 있는 5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호기심 어린 시선이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어깨를 툭툭 털고 드라마국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사무실을 듬성듬성 채운 사람들이 날 보고 뭔가 대답한 가십거리라도 발견한 것처럼 쑥덕거리는데, 내용이야 안 들어도 뻔하고.
누군가 땀 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
“어, 김재일 피디 보러 왔어요? 걔 지금 잠깐 자리 비웠는데.”
닥터 25시 담당피디 이름을 대며 내 반응을 살피는 얼굴이, 저열한 호기심으로 번들거린다. 고기를 발견한 하이에나 같은 꼴이었다.
“아뇨, 국장님 뵈러 왔습니다.”
“저희 국장님이요? 지금, 계신가? 만나기로 약속하고 왔어요?”
“그럼 설마 쳐들어왔겠어요?”
웃는 얼굴로 말하면서 남자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바라봤다.
드라마국 윤동섭 피디. 모르는 사람인데.
나한테 섭외 제안 보냈다가 까인 적이라도 있나?
국장실을 찾아가는 동안 기어코 따라와서 말을 건다.
“정선우 팀장님, 그거 봤어요? 홍길동전?”
“안 봤습니다.”
“그래요? 그거 정팀장님이 대박 날 작품이라고 딱 찍어놓은 거 아닌가? 정선우 리스튼가 그거. 왜 본인이 안 봤어요? 지금 다 난리던데.”
“그건 루머고요”
“에이, 한번 말을 뱉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야지. 영화 욕먹고 망할 것 같으니까, 인제 와서 루머라고 입 싹 닦으면 너무 없어 보이잖아요.”
걸음을 뚝 멈췄다.
착하게 살고 싶은 사람을 굳이. 굳이 이렇게 긁어대네.
“저기요. 윤동섭 피디님.”
“에?”
“사람이 말하면 좀 들었으면 좋겠는데요. 헛소리 그만하시고.”
“네?”
제 귀를 의심하는 듯 굳어진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내 입으로, 루머라고 하잖아요. 왜들 사람 말을 이렇게까지 안 믿지? 윤동섭 피디님은 그게 루머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내 표정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저 양반 반응을 보니 썩 착한 얼굴은 아닌 모양이다.
주춤 물러서는 남자를 보고 있을 때, 국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정팀장 왔어요? 들어와요, 들어와. 윤피디 너는 거기 서서 뭐 하고 있어, 인마. 가서 커피나 두 잔 타와.”
“제가요?”
“빨리 안 가?”
부리부리한 시선에 얻어맞은 피디가 찔끔한 얼굴로 돌아섰다.
국장실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시선들이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내가 무슨 일로 국장을 만나러 왔는지.
대체 단둘이 무슨 얘기를 할지.
아주 궁금해 죽겠는 모양이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