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48)
탑 매니지먼트 249화
얼마나 더 성공해야 (3)
나름 착하게 살았는데.
생긴 대로 막살다가 미래에 검찰청을 내 집처럼 드나드는 놈이 되면 어떡하나 싶어서, 일부러라도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하면서 살았다.
누가 시비 걸어 올 때만 빼면 정말 평화주의자처럼 살았다고.
꼴값이란 꼴값은 다 떨어대는 놈들을 앞에 두고도 어지간하면 웃는 얼굴 하면서. 하얀 백로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까마귀는 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노력해서 지금 나한테 붙은 꼬리표가,
우습고 만만한 놈인가?
“이거 안 될 것 같은데요.”
“네?”
메인 피디를 마주 보며 말했다.
“프로그램 포맷도 애들하고 좀 안 맞고, 일단 스케줄도 안 되고요. 넵튠은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계획이 빡빡해서, 레귤러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
뭔가 말하려던 메인 피디가 어물거리며 부장 쪽을 쳐다봤다.
저 인간이 넵튠 섭외는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라도 쳐놓은 모양인데. 후배들이랑 작가들 보는 앞에서 쪽팔린 거야 내 알 바 아니고.
“정팀장, 내 말이 이해가 안 가? 서로서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으면서 기분 좋게 가자니까? 왜 굳이 GTBN이랑 W&U 사이에 좋은 분위기를 깨려고 그래? 눈치가 그렇게 없어?”
“아. GTBN하고 저희하고 지금 분위기가 좋긴 하죠. 부장님이야말로 굳이 그 좋은 분위기를 왜 깨려고 하세요.”
“······뭐?”
“콘텐츠 만드시는 분이 이렇게 맥락 파악을 못 하시면 어떡하지. 구경거리처럼 불려 와서 협박씩이나 당하는 기분이 영 별로라, 저도 비슷하게 한번 해본 건데. 듣기 거북하셨으면······.”
“야! 뭐 이런 건방진 새끼가 다 있어?”
“제 소문 중에 성격 얘긴 못 들으셨나 봐요. 저 재수 없고 밥맛없고 싸가지없다는 소문도 있는데.”
“이······!”
얼굴이 벌게진 전종호 부장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메인 피디가 황급히 부장의 팔에 매달렸다.
“부장님! 부장님, 참으세요!”
“뭘 참아! 지금 저 새끼가 나한테!”
“참으, 부장님! 다들 뭘 보고 있어? 다 나가, 나가!”
메인 피디가 이 순간에도 멍청한 얼굴로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든 피디, 작가들이 회의실 밖으로 쫓겨 나갔다.
나도 일어섰다.
부장이 혹시라도 내 멱살이라도 잡을까 싶어서 기다린 건데. 딱 봐도 허약해 뵈는 메인 피디 손에 붙들려서 삿대질이나 하시는 걸 보니, 더 기다린다고 손찌검으로 넘어갈 것 같진 않았다.
좀 아쉽네.
이렇게 된 거 정말 정당방위를 노려볼까 했더니.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야, 놔 봐!”
“다음에 언제 또 뵐진 모르겠지만, 그땐 오늘보단 생산적인 얘길 했으면 좋겠네요. 서로 시간 아깝잖아요.”
“놔 보라니까! 야! 어디 가!”
회의실을 나왔다. 좀 전에 쫓겨난 사람들이 멀리 가지도 못하고 근처에서 웅성거리다가, 날 보고 화들짝 놀란다.
“안녕히 계세요.”
“아, 안녕히 가세요.”
성큼성큼 예능국을 빠져나갔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왔더니 속은 시원했다.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여자가 불쑥 옆으로 따라붙었다.
오며 가며 꽤 낯을 익힌 연예부 기자였다. 음방에 나오는 그룹을 취재하러 온 모양인지, 손에는 누구 건지 모를 사인 앨범을 들고 있었다.
“정팀장님, 여기서 다 뵙네요?”
“안녕하세요.”
형식적인 인사에 이어 바로 질문이 튀어나왔다.
“IBC 드라마국에 갔다 오셨었다면서요? 그날 닥터 25시 엎어졌던데. 제가 그거 담당 피디랑 술 한잔하다가 재밌는 얘길 들었거든요.”
“······.”
“정팀장님이 닥터 25시 사달 날 걸 미리 알고 관련 정보 토스한 거라고. 그러니까 정선우 리스트는 대박작 리스트가 아닌 게 확실하다고요. 차라리 블랙리스트면 모를까?”
“······.”
“제가 그 얘길 듣고 소설을 한 번 써봤거든요. 혹시 이게 정말 블랙리스튼가? 그런 거면 정팀장님이 극구 루머라고 하시는 것도 이해가 되니까.”
“······.”
“저 누군지 아시잖아요. 기사 써도 정팀장님 이름은 언급도 안 해요. 그러니까 노코멘트로, 아니, 제 소설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시면 눈만 한 번 깜빡거려 주세요.”
“아, 눈에 먼지가.”
눈을 비비며 다섯 번쯤 깜빡거렸다.
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자를 뒤로하고, 계속 걸었다.
***
임서영이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제로 콜라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불현듯 눈을 껌뻑이더니 사레에 들렸다. 임서영이 목을 붙들고 컥컥거리면서 손을 흔들었다.
“무, 컥, 으억, 물!”
“가지가지 하고 자빠졌다, 진짜.”
엘제이가 폐를 토할 것처럼 컥컥거리는 임서영에게 생수병을 따서 내밀었다. 황급히 물을 들이킨 임서영이 겨우 기침을 멈췄다. 시뻘건 얼굴로 한참을 더 쌕쌕거리던 임서영이 힐끔, 대기실 구석을 돌아봤다.
이송하가 스탭에게 머리를 맡긴 채 거울 앞에 앉아있었다.
“야야야, 야······!”
임서영이 엘제이의 옆구리를 쿡쿡쿡 찔렀다.
그리곤 이송하에게 들리지 않도록 확 낮춘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 그거 생각났어! 이 구역의 미친년, 그거 손채영 아냐? 예전에 선우 오빠가 보여줬었잖아!”
“너 말고 다 알아, 등신아.”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것을 보는 눈으로, 엘제이가 말했다.
“전에 그렇게 쌩난리를 쳐놓고 그걸 잊어먹냐? 하긴, 팀장님 본인도 기억 못 하는 것 같더라. 이렇게 허술한 타입이 아니었는데, 뇌에 과부하가 걸렸나?”
“나 빼고 다 알았다고? 그럼, 이송하 쟤도?”
“모르겠냐?”
임서영이 다시금 이송하 쪽을 힐긋거렸다.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저거 지금 저기압이구만? 아니, 근데 왜 아까 오빠한테 안 물어봤어? 손채영이 왜 전화했는지 물어봤어야지!”
“이송하도 가만있는데 굳이?”
“쟤는 아직 트라우마가 있잖아! 우리가 대신 물어봐야지! 왜 연락했지? 같은 팀도 아니고 같이 일하는 것도 아닌데, 혹시 사적으로 연락하는 사인가? 설마 그동안 사이가······ 좋아졌나?”
옆구리에 붙어서 연신 초조하게 중얼거리는 임서영에게, 엘제이가 심드렁히 말했다.
“그냥 냅둬 봐. 이송하 쟤도 벼르고 있는 것 같으니까.”
“뭐?”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는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있더라도, 지금 이송하 정도면 이제 손채영이랑 체급이 맞지 않나?”
엘제이가 왼손에 대고 오른쪽 주먹을 퍽, 꽂아 넣으며 말했다.
“이참에 한판 붙는 것도 괜찮지.”
***
녹화는 예정대로 잘 끝났다.
부장 하나를 들이받았으니, 혹시 오늘 녹화에 문제가 생길까 봐 애들한테도 미리 말해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녹화하는 내내 피디도, 작가도, 담당 CP도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넵튠 애들을 이관우에게 맡겨 보내고, 나는 회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대표실로 향했다. 오는 길에 미리 연락을 넣어둬서, 들어가 보니 본부장과 백한성 대표가 함께 앉아있었다.
“거기 부장한테 뭐라고 했다고?”
“욕은 안 했어요.”
본부장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날 보는 눈빛이 뭔가.
밖에서 사고 치고 온 문제아를 보는 듯한 시선이라, 좀 억울했다.
“아니 근데, 시비는 그쪽이 먼저 걸었다니까요. 애들한테 한물 갔네 어쩌네 하질 않나, 꼴 같지도 않은 기획안 내밀면서 이거 안 하면 앞으로 재미없을 줄 알라고 협박하질 않나. 저도 참을 만큼 참다가.”
“참다가?”
“뭐, 욕은 안 했잖아요.”
“자랑이다.”
본부장이 골치 아픈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 이제 성깔 더럽다고 소문 쫙 나게 생겼다.”
“어차피 지금도 많이들 그렇게 알고 있던데요. 인성 논란 나면 광고 끊기는 연예인도 아닌데, 그냥 성깔 더러운 놈으로 좀 살게요.”
“······그래. 네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긴 했지.”
이놈을 어떡하면 좋지?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본부장과는 달리.
백한성 대표는 아까부터 유난히 느슨한 얼굴이었다. 뭐 좋은 소식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잘했어.”
“······대표님?”
본부장이 백한성 대표를 홱 돌아봤다.
“왜. 정팀장이 사리 분별을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감당할 수 있겠다 싶으면, 하고 싶은 말은 하면서 살아야지.”
“쟤 저러다가 하면 안 되는 말까지 하고 살지도 몰라요.”
백한성 대표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하면 안 되는 말이라는 게 있나? 하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거지.”
“아니······.”
나와 백한성 대표를 번갈아 바라본 본부장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 마디 얹었다.
“아, 그리고 이제 여론 관리를 좀 해야겠어요.”
“여론? 여론을 뭐 어떻게 하려고?”
*
[이창인 감독 ‘공범자’ 서지준, 임주원 주연 캐스팅 확정] [서지준·임주원·정재이 ‘정선우 배우’ 총출동한 영화? ‘공범자’]따분한 평일 오후.
영화 캐스팅 기사가 뚝 떨어졌다.
기사는 서지준과 임주원의 차기작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던 팬들, 그리고 어떤 의미로든 기사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SNS와 커뮤니티에 뿌려졌다.
그리고 얼마 후.
얼굴을 가린 연예부 기자 두 명이 연예계 찌라시에 대해 떠들어대는 위튜브 채널, ‘연예부부젤라’ 채널에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연예부부젤라 A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B기자입니다.
-그동안 정선우 리스트에 대해서 질문이 정말 많이 들어왔었잖아요? 댓글도 많고. 그래서 오늘 그 얘기를 해볼 건데, 아쉽게도 정선우 팀장님 인터뷰는 못 했어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실 인터뷰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다 까였어요. 그분은 요즘 저희도 얼굴 보기 힘들어요.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그거예요, 정선우 리스트가 진짜냐.
-사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전부터 이상하다는 얘기가 나왔었잖아요.
-그죠.
-아니, 정선우가 찍었다고 소문난 대박작 리스트에, 정선우 팀장님네 배우가 하나도 없는 게 이상하잖아.
-이상하죠. 작품 하나도 아니고 네 갠데.
-그리고 지금, 진짜가 튀어나왔잖아요?
-나왔죠. 이거 캐스팅 확정 기사 풀리면 우리도 영상 올릴 거라, 이미 기사 보고 오신 분들도 계실 텐데. 공범자라고, 이창인 감독님 신작 준비하는 게 있어요.
-아직 못 보신 분들은 포털에 기사 검색해 보시면 뜰 거예요.
-그 공범자에, 정선우 팀장님 배우 몇 명인 줄 아세요?
-세 명이죠.
-맞습니다. 투톱 주연롤 두 개를 다 가져오고, 그것도 모자라서 정재이씨라고 프리티걸이라는 걸그룹 멤버 있는데, 그분까지 갖다 꽂았어요.
-뭐, 제작사에 물어보니까 오디션 봤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영화 하나에 자기 배우 셋을 넣었어. 이게 무슨 뜻이야?
-이 영화는, 무조건, 대박이, 날 것이라, 라고 확신을 했다는 뜻이죠.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정선우가 꽂힌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정선우 리스트가 진짜였으면 이런 작품이 거기 들어갔겠죠.
-그러니까 연예부부젤라의 결론은, 정선우 리스트는 루머가 확실하다,
-아니죠.
-네?
-정선우 리스트가, 대박작 리스트라는 건 루머가 확실하다.
-뭔 소리예요? 똑같은 말 아냐?
-여기서부턴 제가 그냥 재미로 하는 얘긴데, 홍길동전 망했잖아요?
-망했죠.
-닥터 25시는 지금 제작이 엎어졌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리스트 네 개 중에 절반이 터진 이 시점에서, 나는 그게 너무 궁금하더라고.
-뭐가요?
-나머지 두 개가 어떻게 될까? 아니, 생각을 해 봐요.
위튜브 화면 속에서,
목 아래만 보이는 기자가 양손을 들고 말했다.
-리스트에 있는 작품이 전부 성공하는 것보다, 전부 망하는 게 더 무섭지 않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