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50)
탑 매니지먼트 251화
얼마나 더 성공해야 (5)
남자가 뺨을 씰룩거렸다.
“같은 걸그룹 출신에, 이미지 비슷하고, 연기자로 데뷔시키는 과정도 비슷하고. 이건 대놓고 제2의 이송하로 키우겠다는 거 아니에요?”
“······.”
“송하 씨야 뭐, 이제 잡아놓은 물고기다 이거지. 지금이야 송하 씨가 대체 불가능하니까 정선우도, W&U도 송하 씨한테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거죠, 앞으로 정재이 씨가 확 뜨면 사정이 달라질걸요?”
“어떻게 달라지는데요?”
이송하가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 반응에 흥이 오른 남자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회사 자원이든, 관심이든, 송하 씨 혼자 먹던 거 앞으론 걔랑 나눠 먹어야 하니까. 그러다 만약에 송하 씨가 뭐 논란 생겨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곧바로 대체품이랑 자리 바뀌는 거고.”
내내 이송하의 표정을 살피던 남자의 목소리가 은근하게 바뀌었다.
“큰 회사에 있으면 이게 문제예요. 내부에서까지 경쟁해야 되는 거. 회사가 절대적인 내 편이 아니라는 거. 제가 탑독 엔터라고, 작은 기획사를 하나 갖고 있는데······.”
“저 아직 계약 기간 남았는데. 이런 거 문제 되지 않나?”
남자가 뭉툭한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아니, 계약 얘기할 건 아니고. 제가 송하 씨 팬이라 안타까워서 조언하는 거예요. 왜, 사람들이 송하 씨 보고 정선우 작품이다, 정선우가 다 키웠다, 그렇게 후려치잖아요.”
“정선우 작품이다?”
“그런다니까요? 사실 제가 봤을 때 송하 씨 능력이면 무조건 떴을 거거든. 정선우가 대단한 게 아니라 송하 씨가 대단한 건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몰라.”
남자가 팔짓을 해가며 열변을 토했다.
“송하 씨가 아직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해서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같은데, 이젠 그럴 급 아니에요. 아직 넵튠이랑 묶여있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송하 씨는 무조건 독립을······.”
“명함 좀 주세요.”
이송하가 손을 내밀었다.
눈을 껌뻑이던 남자가 잽싸게 지갑을 뒤졌다.
“명함! 명함 드려야죠.”
얄팍한 명함을 받은 이송하가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눌렀다.
“제가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한 이미지예요?”
“네?”
“회사에서 이미지 관리를 너무 잘해놔도 문제예요. 사람이 쉬워 보이니까 뭐가 계속 꼬이잖아.”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손이 멈칫했다.
“아, 정선우 팀장님은 별로 안 무섭죠? 우리 팀장님도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다시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인 이송하가 핸드폰을 곧 귀에 갖다 댔다.
남자가 당황해서 주춤거리는 사이, 통화가 연결됐다.
“대표님. 이송하예요.”
“······!”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송하가 명함을 눈높이로 들었다.
“탑독 엔터, 배기훈 대표님, 이분이 지금 절 찾아오셔서요. 여자 화장실 앞까지. 저보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무조건 독립해야 된다고······.”
오늘의 날씨 얘기하듯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다.
“아뇨, 저기 오시네요. 네, 알았어요. 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저, 잠깐!”
“조언은 잘 들었어요. 조심히 가세요.”
전화를 끊고, 이송하가 남자를 무시한 채 움직였다.
앞쪽에서 이관우가 양손에 짐과 커피 따위를 바리바리 들고 모퉁이를 돌아오다가 남자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운동을 오래 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덩치가 빠르게 가까워지자, 허둥거리던 남자가 황급히 도망쳤다. 곧장 따라가 잡으려는 이관우를 이송하가 붙들었다.
“그냥 둬요. 제 팬이래요.”
“무슨 팬이 여기까지 들어와?”
이송하가 그에게 명함을 넘기고 커피를 받아왔다.
“대표님한테 얘기했어요.”
“대표님?”
“팀장님은 바쁘잖아요. 안 그래도 신경 쓸 일도 많을 텐데 이런 건 대표님보고 처리하라고 해요. 아, 팀장님 오늘 회사에 계세요?”
“그럴걸? 따로 외부 일정 없으시니까.”
“그럼 저 회사 들렀다가 퇴근할게요.”
이송하가 커피 스틱을 입에 물고 말했다.
새벽에 홍콩에서 귀국하자마자 연달아 주얼리 화보 촬영을 마친 터라, 화보용 메이크업을 올린 얼굴엔 피로가 엉겨 붙어있었다.
이관우가 힐금 눈치를 봤다.
“곧장 숙소로 가서 쉬는 게 낫지 않겠어? 피곤하잖아. 요즘 계속 못 쉬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텐데.”
“팀장님 보고 들어갈게요.”
단호한 태도였다. 입을 벙긋거리던 이관우가 결국 포기했다.
승합차 안은 줄곧 조용했다.
시트 등받이에 기댄 채, 창밖을 물끄러미 보던 이송하가 물었다.
“정재이 씨 연기 잘해요?”
이관우가 힐끔, 백미러로 뒤쪽을 살폈다.
이송하는 여전히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서인지, 평소보다 날이 선 얼굴이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송하가 중얼거렸다.
“잘하겠죠. 그러니까 팀장님이 연기해 보라고 했겠지.”
“그,”
“저랑 비교하면 어때요?”
이관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운전대를 꽉 부여잡고 대답을 궁리하던 그가 말했다.
“비교가······ 안 되지. 정재이 씨는 아직 촬영장에 나간 적도 없고, 이제 막 연기 배우기 시작한 상황인데. 너하고 어떻게 비교를 해.”
“다들 하던데.”
고민하듯, 이송하가 느리게 눈을 깜빡거렸다.
“혹시 정재이 씨 카메라테스트 영상 있으면······.”
“어?”
“아니에요. 그건 안 보는 게 낫겠다. 못 들은 걸로 하세요.”
“저기, 송하야. 정말 신경 쓸 필요,”
“제가 이런 거 물어본 건 팀장님한텐 말하지 마세요.”
이관우가 다시 백미러를 봤다.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빤히 응시하던 이송하가 입 끝을 비틀었다.
“말하지 마세요.”
“어······ 알았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송하가 편안히 눈을 감았다.
회사까지는 금방이었다.
주차장의 엘리베이터는 모두 위층에서 올라가는 중이었다. 전광판을 확인한 이송하가 망설임 없이 계단으로 발길을 돌렸다.
빠른 걸음으로 4층까지 올라갔을 즈음.
“정팀장이 GTBN에서 깽판 치고 왔다면서요? 소문 쫙 났던데.”
“앞으로 GTBN 예능국 들어갈 때마다 눈치 보이게 생겼네. 이게 뭐야? 밖에서 굽신거리는 사람 따로 있고, 저 꼴리는대로 사는 놈 따로 있고. 엿같아서 일하겠냐?”
“그래도 대표님이 이뻐하시는데 뭐.”
“홍길동전 망하고 한참 죽상이더니, 여론 좀 좋아진다 싶으니까 다시 얼굴이 확 폈더라. 아까도 정재이? 걔하고 웃으면서 나가던데.”
한적한 라운지. 유일하게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2팀 실장 몇 명이 작은 목소리로 떠드는 중이었다.
핏대를 세운 이관우가 움직이려다가 멈칫, 이송하를 돌아봤다.
이송하는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비딱하게 서 있었다.
얼굴이 무표정하게 가라앉았다.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한 이관우가 황급히 이송하에게 붙었다. 이미 이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숙지한 터라, 눈으로는 재빨리 주위에 집어 던질 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송하야, 참아. 그냥 무시해. 회사잖아.”
“······.”
“팀장님 잠깐 자리 비우셨나 본데 오늘은 이만 숙소로 들어가자.”
이송하가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놓았다.
“알았어요.”
후, 짧게 숨을 내쉰 이송하가 돌아섰다.
그사이 실장들의 화제는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손채영은 회사 왜 들어왔대? 아까 슬쩍 보니까 완전 저기압이던데.”
“걔가 고기압일 때가 있어?”
“요즘은 더해. 뭔 일인지 완전······.”
떠들던 실장이 갑자기 사레라도 걸린 것처럼 쿨럭거렸다. 위쪽 계단에서 손채영이 내려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누군가는 트라우마를 마주한 사람처럼 황급히 자리를 뜨기까지 했다.
신경질적인 눈으로 그들을 훑어본 손채영이 이송하를 발견했다.
한 명은 아래쪽에서, 한 명은 위쪽에서 멈춰 선 채로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지금껏 둘이 부딪힌 전적이 워낙 화려하다 보니, 손채영의 뒤를 따라온 조병환과 이관우의 얼굴이 절로 굳어졌다.
“가자, 송하야.”
이관우의 조심스러운 재촉에 이송하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짝이 바뀌었네?”
이송하와 이관우를 번갈아 보며, 손채영이 픽 웃었다.
“그렇게 유난을 떨어대더니. 어린애 소꿉놀인 이제 끝났나 봐?”
“채영아······.”
말리는 시늉을 하던 조병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전긍긍하는 건 이관우뿐이었다.
“송하야.”
“······.”
안 그래도 날 서 있던 이송하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손채영이 느긋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둘 사이가 바짝 좁혀졌다.
“하긴, 이젠 소꿉놀이 관두고 비즈니스 시작할 때도 됐지. 너도 이 바닥 물 먹더니 좀 변했다.”
이젠 말리는 시늉마저도 포기했는지 조병환은 주위의 눈만 경계했다.
라운지 한쪽에 엉거주춤 선 실장들이 손채영의 희생양이 또 하나 나오는구나, 이송하가 오늘 잘못 걸렸구나, 하며 곁눈질하고 있을 때.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도 있어야죠, 사람이.”
이송하가 말했다.
“근데 내 소꿉놀이 시절은 끝났는데, 그쪽 사춘기는 안 끝날 건가 봐요?”
“뭐?”
“현장 매니저가 오래 붙어있지도 못하고 서로 떠넘기다가 결국 제비뽑기까지 했었다던데. 그렇게 떼쓰고 진상떠는 건 사춘기 애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 그쪽도 이제 좀 크지 그래요?”
탕, 누군가 들고 있던 캔을 떨어뜨렸다.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비슷했으니까. 지켜보던 사람들은 죄다 뻣뻣하게 굳은 채 눈알만 굴려댔다. 특히나 조병환 실장과 이관우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손채영이 비뚜름히 웃었다.
“너 지금 나한테 충고하니?”
“아뇨. 빈정거리는 건데.”
태연한 대꾸에, 이번에야말로 손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분위기는 마치 용광로 속 쇳물처럼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뭐가 날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여차하면 주먹다짐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대치였다.
이관우가 황급히 핸드폰으로 문자를 찍기 시작했을 때.
손채영을 말리려다가 빠르게 포기하고, 이송하를 말리려다가 더 빠르게 포기한 조병환이 대뜸 이관우에게 화살을 돌렸다.
“야, 인마! 넌 뭐하고 앉아있어?”
“네?”
“말려야 될 거 아냐, 뭘 멍청하게 보고만 있어! 너 몇 년 차야?”
이관우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2년 찬데요.”
“2년? 이 자식이 정신머리를 빼놓고 다니나, 너 정선우한테 이렇게 배웠어? 이거 대표님 귀에 들어가면······!”
“지금 저 들으라고 하는 말이에요?”
이송하가 말을 뚝 자르고 끼어들었다.
“경력도 얼마 안 되는 게 선배 앞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조병환이 당황해서 머뭇거리자, 이송하가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 보고 배운 건 그게 아닌데.”
그리고 다시 손채영을 바라봤다.
“대표님 귀에 들어가면, 대표님이 저한테 뭐라고 할 것 같은데요?”
“너 지금,”
“내가 새로 계약한 광고가 몇 갠데. 나 하나에 걸려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람 붙잡고 짜증 나게 하지 말라고요.”
언젠가 들었던 말을 이송하가 그대로 쏟아냈다.
“이 바닥이 원래 이런 거라면서요?”
손채영이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조병환도 손채영 눈치를 보며 입만 어물거렸다.
이윽고 손채영이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야. 많이 컸다, 너.”
“네. 덕분에 잘 컸어요.”
이송하가 빙긋이 웃으며 말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대로 계단을 한 칸, 두 칸, 내려가다가 돌연 멈춰 섰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 손채영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사실은요. 저 선배님한테 고마울 때도 있어요. 가끔 욱하고 속에서 뭐가 올라올 때마다 선배님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도 생각해요. 아······ 참아야지. 선은 넘지 말아야지.”
이송하가 손채영과 눈을 맞춘 채로 속삭였다.
“절대로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뭐?”
손채영이 입을 달싹거리다 멈췄다.
꽉 다물린 턱이 파르르 떨렸다.
눈길을 옆으로 돌린 이송하가 조병환에게 말했다.
“그리고 조실장님. 왜 자꾸 정선우라고 하세요?”
“어?”
“팀장님이라고 해야 되잖아요.”
“어, 어······.”
얼굴이 확 붉어진 채로 더듬거리는 조병환을 무시한 이송하가 라운지 구석에 서 있는 2팀 실장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한명 한명의 얼굴을 확인했다.
“밖에서 사람들 떠들어대는 것도 지겨운데 똑같은 소리를 회사 안에서까지 들어야 돼요? 피곤하게.”
아까까지만 해도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어댔던 실장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들이 그대로 찌그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가 되어서야 이송하가 다시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던 이관우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뒤따라갔다.
발소리가 멀어져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손채영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 위로 드러난 표정은 화가 난 건지, 놀란 건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했다.
“······.”
손채영이 홱 돌아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조병환이 허겁지겁 뒤를 쫓아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닫히고 전광판의 숫자가 내려간 후에야, 숨소리도 들리지 않던 라운지에 긴장감이 확 풀렸다.
“뭐야, 방금?”
다들 서로를 돌아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하나같이 멍청한 얼굴이었다.
***
정재이를 숙소로 보내고 막 회사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이관우한테서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팀장님 지금 회사로 ㅈㅎㅁ즐어어셔요더ᅟᅵᆯㄹ 것겉아요 소아렁 선태영씨랑 부답차ㅓ서요 정재으씨런 같이 오시지 말고 혼자혼잫ㅅㄴ자
뭐야, 이건.
다잉메시지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