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66)
탑 매니지먼트 267화
화이트, 화이트, 크리스마스 (1)
손채영이 무당에 합류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명확한 실체를 가지고 덮쳐왔다.
이젠 서지준에게도 상황을 알려야 했다. 이쪽도 손채영과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니까. 서로 개 닭 보듯 하는 사이쯤 될까.
일단 이봉준 실장에게 전화 통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서지준이 화보 촬영 중인 일산 스튜디오로 향했다.
“진짜야? 아니지?”
도착하자마자 이봉준 실장이 구르듯 달려왔다.
“진짜예요.”
“진짜라고? 그게 왜 진짜야?”
“뭐가 진짜예요?”
깎아놓은 듯한 맨 가슴 위에 무스탕을 걸친 서지준이 다가왔다.
“손채영이 무당을 하겠대.”
“알아.”
서지준이 말했다.
“처음부터 송하가 하기로 얘기된 거 아니었어?”
“뭔 소릴 하는 거야. 송하 말고 손채영. 손채영이 합류한다고.”
“······?”
잠깐 고장 났던 서지준이 나를 바라봤다.
“진짜요?”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촬영장 분위기 괜찮겠어요?”
“안 괜찮겠지, 당연히.”
이봉준 실장이 즉답했다.
서지준이 날렵하게 뻗은 눈썹을 찌푸렸다.
“뭐, 저야 상관없는데. 현장 분위기 살얼음판이면 스텝······.”
“넌 상관없냐? 난 상관있는데?”
이봉준 실장이 다시 끼어들었다. 서지준이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스텝들이 힘들겠는데요. 피디님이 이거 감당할 수 있대요?”
글쎄.
나도 그게 걱정인데.
***
W&U 신설 콘텐츠사업부는 축제 분위기였다.
신수연 피디와 권피디, 제작실장은 잭팟이라도 터뜨린 사람들처럼 흥분해서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두 배는 높아져 있었다.
“손채영, 이송하, 서지준, 주연진 황홀하네요, 정말.”
“이 정도면 블록버스터 영화 세팅이지. 매니지먼트랑 같이 일하면 원래 캐스팅이 이렇게 쉬워요?”
“아니지, W&U가, 정팀장님이 배포가 큰 거지. 원래 투자할 때도 달걀 한 바구니에 안 담잖아. 이 작품 하나 망했다간 탑급 배우들 기회비용이 줄줄이 날아가는 건데, 그러면 회사 입장에선 손해가 얼마야?”
“어쨌든 이번 작품 시작부터 조짐이 좋은······.”
“야! 신피디! 신수연!”
표영호 부장이 도깨비 같은 얼굴로 사무실로 밀고 들어왔다.
신수연 피디가 가슴팍을 짚으며 엄살을 떨었다.
“아, 깜짝이야. 애 떨어질 뻔했네. 왜 그러세요?”
“왜? 왜 그러세요? 너는 예의도 도리도 없냐? 내가 손채영 주인공으로 데려올 거라고 말했냐, 안 했냐. 근데 그걸 홀랑 채가? 그것도 주인공도 아니고 서브로? 네가 사람이냐?”
“죄송해요. 근데 제가 대박 내면 부장님도 좋잖아요.”
“뭐?!”
“그리고 니꺼 내꺼가 어딨어요. 먼저 데려가는 사람이 임자지.”
표영호 부장이 뒷목을 붙잡았다.
“후배를 위해서 좀 양보해 주세요. 부장님은 이번 거 말아먹어도 망신이나 좀 당하고 말지, 짤리진 않을 거 아니에요. 앞길 창창한 후배부터 좀 살아야죠.”
“야, 뭐 이런 게······!”
“저 얼마 전에 아파트 사느라 통장 다 털었어요. 돈 벌어야 돼요. 근데 부장님, 여긴 성과급도 많이 주겠죠? GTBN은 시청률 그렇게 뽑아도 쥐뿔 없었잖아요. 공노비보단 부잣집 사노비가 낫다고들 하던데. 아니, 거기도 공노비는 아니었나?”
입만 벙긋거리던 표영호 부장이 한참이 지나서야 뜨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야, 넌 미국으로 가. 한국에 어떻게 너 같은 게······.”
“이 시대의 성과주의가 저 같은 괴물을 낳은 거죠, 뭐.”
신수연 피디가 빤빤한 낯짝으로 생글거렸다.
“넌 나중에 꼭 너 닮은 딸 낳아라.”
“무슨 그런 악담을 하세요. 전 손채영 같은 예쁜 딸 낳을 거예요. 실물 가까이서 보셨어요? 진짜, 와, 종족이 다르던데······.”
“손채영이랑 이송하랑 사이 나쁘다더라. 고래 싸움에 등 터져서 스트레스성 화병이나 얻어라.”
저주하는 듯한 말에, 신수연 피디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배우들 사이 나쁜 게 뭐 놀라운 일이라고. 드라마 한두 번 찍는 것도 아니고. 일단 계약서에 도장 찍으면 그때부턴 감독이 잘 중재하고 다독여서 끌고 가면 되죠.”
다리를 척, 꼬아 올린 그녀가 기세 좋게 턱을 치켜들었다.
“부장님, 저 모르세요? 현장이 잘 굴러가느냐 마느냐는 다 감독 하기 나름이고, 제 현장에 불화는 없어요.”
***
“죄송한데 쪼끔만 돌아서 가주세요! 촬영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야, 야! 저기 오토바이 또 오잖아! 차량통제 제대로 안 하냐!”
“죄송합니다!”
카메라와 반사판, 조명 장비 따위를 든 사람들이 골목을 빽빽하게 채웠다. 리허설을 앞두고 스텝들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지나가다가 촬영 현장을 발견한 사람들이 목을 빼고 구경했다.
“촬영하나? 연예인 있나 봐봐.”
“저기 모자 쓴 사람 그 사람 아냐? 그, 아, 뭐더라? 아, 최종윤!”
“진짜? 아, 진짜네. 드라마 찍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일행이 기사를 찾아냈다.
“이건가보다, 첫사랑입니다. 최종윤이랑 장효은이 주인공이네.”
“아, 진짜? 별로 안 궁금하다. 추운데 걍 가자.”
미련 없이 멀어지는 행인들을 바라보던 남자. 기건우 피디가 힐끔 옆 사람의 눈치를 봤다. IBC 드라마국 김부장, 첫사랑입니다의 담당 CP가 복잡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테스트 촬영인데, 정선우 팀장 온단 얘기 없었지?”
“······없었죠.”
“대본리딩 때도 얼굴도 안 비쳤지?”
“······그랬죠.”
팔짱을 낀 김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장님이 말이야, 나한테 약을 파셨거든. 정선우 팀장이 딱 꽂혀서 제작비 투자에다 공동제작까지 제안한 작품이라고, 이거 대박 날 거라고. 근데 내가 이 작품 맡고 나서 정팀장 얼굴을 한번 못 봤네? 왤까?”
“······현장을 신뢰하는 거겠죠. 저번 미팅 때, 정선우 팀장님이 W&U는 작품에 크게 간섭 안 하고 감독 작가만 믿고 맡길 거라고······.”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그게.”
김부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도 정팀장이 일하는 방식을 좀 아는데. 그 친구가 이건 된다, 하고 판단이 서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이라고 들었거든.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그거, 공범자 캐스팅 얘기 들었지?”
“네.”
“주연을 자기 배우로 싹 깔았잖아. 감독 설득하려고 작업실 들락거리면서 북엇국까지 사다 먹였다던데. 이런 게 진짜 제대로 꽂힌 거지.”
촬영 현장을 돌아본 김부장이 가늘어진 눈으로 기피디를 바라봤다.
“근데 우리한텐 왜 이렇게 관심이 없어? 왜 방치되는 느낌이지? 응? 왤까? 정팀장이 이 작품에 꽂힌 게 맞긴 한 거야? 아니면 내가 지금 국장님한테 낚인 건가?”
“······.”
기감독은 먼 산 쳐다보듯 말없이 지미집 카메라만 올려다봤다.
처음 W&U가 투자 겸 공동제작으로 들어와서는 주연배우를 교체하느니 마느니 할 때만 해도, 그는 척화비를 세운 흥선대원군처럼 외세의 침략을 경계했다.
정선우가 직접 찾아와 최대한 간섭하지 않을 테니 찍고 싶은 대로 찍으라고 했을 때는, 그 꿍꿍이속을 좀 의심하긴 했어도 어쨌든 안도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마치, 홈쇼핑을 보다 혹해서 구매했는데 막상 실물은 별로고 반품하기도 귀찮아서 다용도실 구석에 처박아 둔 기능성 냄비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몹시 떨떠름했다.
“이거 잘 되겠지? 응? 잘 할거지?”
“그럼요. 잘하겠습니다.”
기건우 피디가 바싹 마른 입술을 핥았다.
***
핸드폰 너머에서 IBC 국장이 떠보듯이 말했다.
-담당 CP가 영 불안한가 보더라고. 그놈 한창 다른 작품 기획 중이던걸, 내가 정팀장 이름으로 꼬드겨서 이거 맡긴 거거든. 가서 얼굴이라도 한번 비춰주지 그래? 이러다 내가 사기꾼 되게 생겼어.
“리딩이나 촬영 현장은 굳이 저까지 안 가도 될 것 같아서요. 안 그래도 한번 놀란 배우들, 다시 동요할 수도 있으니까.”
내 배우가 출연한 것도 아닌데 자꾸 들락거리면 피디나 배우들도 신경 쓰일 거고. 게다가 가만 놔두면 알아서 성공할 드라마다. 괜히 촬영 중에 이상한 나비효과라도 생기면 골치 아프지.
스케줄표를 훑어보며 말했다.
“제작발표회 할 때는 꼭 참석할게요. 그땐 기자들도 다 올 테니까.”
-그래요, 그때는 꼭 봅시다. 정말 잘 돼야 할 텐데······.
국장이 다시 엄살을 떨었다.
-아무리 정팀장이 들고 온 작품이라도, 조건이 영 애매해서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내가 무조건 하겠다고 밀어붙인 거예요, 이거. 안 그래도 지금 수목 시청률 2프로로 죽 쑤고 있는 마당에 이거까지 잘못되면······.
“잘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확신을 담아 말했다.
*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편성이 확정된 첫사랑입니다는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갔고,
넵튠은 조용히 렛잇스노우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남조윤의 차기작은 도통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꽤 오랫동안 골치가 아팠는데, 전화 한 통으로 가닥이 잡혔다.
-도시정글 흥행하면 확 뜰 것 같더라니. 그때 구두계약을 받아놨어야 했는데. 내가 일전에 얘기했잖아요. 꼭 남조윤 씨한테 맡기고 싶은 배역이 있다고. 시나리오 작업 다 끝나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요. 어?
얼라이브의 최성원 감독.
무명 배우 남조윤을 씬스틸러로 만든 그가 반드시 맡기고 싶은 배역이 있다고 하니, 이건 무조건 1순위에 놓아야 했다. 도의를 떠나서 미리 받아본 시놉시스만으로도 충분히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스케줄을 업데이트했다.
남조윤 옆에 최성원 감독의 이름을 적어놓고 전체를 쭉 훑어봤다. 팀의 스케줄표는 더 이상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했다. 넵튠, 서지준, 임주원, 프리티걸, 송인호까지, 안 바쁜 사람이 없었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만족스러웠다.
곳곳에 지뢰가 묻어있긴 하지만, 겉으론 그저 아름다운 광경이다.
손깍지를 끼고 쭉 기지개를 켰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1시였다. 오랫동안 앉아 있었더니 어깨 근육이 뻐근해서, 스트레칭도 할 겸 4층 라운지로 내려갔다. 누군가 이미 테이블에 앉아 믹스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물론 김현조였다.
“실장님, 대체 회사에서 며칠째 살고 있는 거예요?”
“삼 일짼가?”
김현조가 검푸른 눈을 문지르며 말했다.
“요즘 바빠죽겠는데 집에 갈 시간이 어딨냐. 데뷔조 확정되고 얼추 타임테이블도 나와서 할 일이 산더민데, 내 밑에 애 하나가 또 관뒀어. 대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네.”
“사수가 삼 일째 퇴근을 안 하니까?”
내 말에, 답답하다는 듯 김현조의 숨이 거칠어졌다.
“야, 같이 밤새라는 것도 아니고, 난 먼저 퇴근하라고 하잖아.”
“그러기가 쉽지 않죠.”
“왜?”
“사람한테는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
놀리듯 말하면서 자판기에서 이온 음료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김현조의 맞은편 의자를 꺼내 앉으려는 때였다.
“그 자리 주인 있다.”
“······누구요?”
“저요.”
이태희가 탑처럼 쌓은 컵라면을 들고 걸어왔다.
긴 머리를 귀신처럼 풀어 헤친 채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