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68)
탑 매니지먼트 269화
화이트, 화이트, 크리스마스 (3)
무당의 제작진, 주연진 상견례 장소는 회사 대회의실이었다.
외부 식당에서 만났다가 접시가 날거나 물벼락이 치는 불상사라도 생기면 난감하니까. 회사 안에서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수습은 되겠지.
시간에 맞춰 6층으로 올라갔다. 아래층과는 달리 공기부터 무거웠다.
3팀장과 김현조가 믹스커피가 든 종이컵을 하나씩 쥐고 회의실을 기웃거리다가 나를 보고 다가왔다.
“너 오늘은 뭐, 전투복이냐? 힘이 빡 들어갔네. 껍데기만 보면 바로 대표명함 하나 파도 되겠다.”
3팀장이 내 차림새를 훑어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침에 옷장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쓰리피스 정장을 꺼내입었다. 백한성 대표한테 받은 그거. 전투복이란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송하는?”
김현조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관우랑 같이 오고 있을 거예요.”
“야, 나도 회의실에 같이 들어가면 안 되냐? 본부장님은 참석한다며. 나도 입 닥치고 조용히 구경만 할게.”
은근한 3팀장의 말에 김현조가 경멸의 시선을 쏘아 보냈다.
“형은 그러고 싶냐? 재밌어? 난 손채영이 촬영하는 내내 송하 피 말리려고 저러나, 옆에서 갈구려고 저러나, 별생각이 다 드는데.”
“아니, 나도 걱정되지. 근데 송하라고 당하고만 있겠냐? 얼마 전 일만 봐도······.”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6층에서 멈췄다. 안에서 네 명이 걸어 나왔다.
숨은 쉬고 있는지 궁금한 이관우. 말끔한 수트 차림의 1팀장. 그리고 이송하와 손채영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투샷은 시각적으로 몹시 충격적인 데다 심장에도 안 좋았다.
“안녕하세요.”
“여기 뭐 구경났어요?”
둘이 동시에 말했다. 나도 1팀장에게로 다가갔다.
“오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회의실에요. 저희만 들어가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1팀장의 시선이 잠깐 내 쪽에 머물렀다.
“옷 예쁘네.”
“네?”
뜬금없이?
안경을 쓰고 있어서인지, 1팀장이 평소보다 더 사무적으로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한 회사 소속이어도 배우 입장은 또 다른 거고. 우린 각자 맡은 배우 편에 서서 얘기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앞으로 사소한 문제는 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가 손을 내밀었다.
“잘해봅시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손을 잡고 대답했다.
따라오고 싶어서 안달 난 3팀장을 떼어놓고 대회의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서지준과 이봉준 실장, 신수연 피디, 장준섭 작가, 권피디, 그리고 본부장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경직된 순간.
무채색 회의실에서 홀로 번쩍거리는 서지준이 손을 들었다.
광택이 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오렌지색 실크 셔츠. 마치 오늘의 어그로는 혼자 다 끌어보겠다는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차림새였다.
그가 부드럽고 여유 있는 미소로 아이스브레이킹을 시도했다.
“송하 안녕.”
“안녕하세요, 선배님.”
“채영······.”
“성 떼고 부르지 마. 속 메스꺼우니까.”
분위기가 3초 만에 도로 얼어붙었다.
신수연 피디와 장준섭 작가, 권피디가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사람들이야 이미 각오하고 온 참이었으니까.
손채영이 본부장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 미리 얘기하는데, 난 촬영장에 사감 끌고 오는 거 딱 질색이야. 슛 들어가면 연기나 잘해. 괜히 집중 깨지게 하지 말고.”
저건 양심이라는 게 없나?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지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나 잘해.”
손채영이 들은 척도 안 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피디님.”
“네?”
지목당한 신수연 피디가 흠칫했다.
“저한테 얘기하실 땐 쓰리톱 드라마라고 하셨죠. 보도자료든 제작발표회든 명확하게 언급해 주세요. 서브니, 조연이니, 기자들이야 어차피 신나서 떠들어대겠지만 공식적으론 말 안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럼요, 그건 당연하죠. 손채영씬데.”
“저 둘 테마 OST 있으면 제 것도 당연히 있어야 하고, 지금 완성된 대본을 기준으로 제 캐릭터 대사나 지문이 과도하게 수정되면 계약 위반으로도 볼 거예요. 계약서에 다 명시해 주세요.”
“아, 수정되는 씬이 있으면 미리 양해를 구하는 걸로······.”
“그리고 촬영장 대기실은 같이 안 써요.”
손채영이 손목을 꺾어 늘어뜨린 손으로 서지준과 이송하 쪽을 차례로 가리키더니, 마지막으로 신수연 피디를 바라봤다.
“사이 별로인 거 들으셨죠? 길게 보기 싫으니까 개인실 준비해 주세요. 지방, 해외로케, 장소가 어디든.”
“······으음.”
조금 전에 촬영장에 사감 끌고 오지 말라던 게 누구였지?
신수연 피디가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권피디와 장준섭 작가는 쉽사리 입도 떼지 못하고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는 중이었다. 그 반응을 본 손채영이 어깨를 가볍게 들썩거렸다.
“저 원래 이래요. 밖에서 이미지 신경 쓰는 것도 피곤한데 회사 안에서까지 그럴 필욘 없잖아요.”
손채영이 픽 웃으며 본부장을 쳐다봤다.
“예전에 대표님이 그랬거든요. 밖에서만 조심하라고. 회사 안에선 괜찮으니까. 어차피 피디님도 이제 W&U 직원이고, 비밀 유지 계약서 다 쓰고 들어오셨을 거 아니에요.”
“작가님은 우리 직원 아니다.”
광고용 입간판처럼 얌전히 앉아있던 본부장이 덧붙였다.
손채영이 눈을 깜빡이더니 장준섭 작가에게 말했다.
“그럼, 작가님은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네? 네, 네, 그럼요······ 와, 그런데 진짜······.”
장준섭 작가는 홀린 듯이 손채영을 보고 있었다. 캐스팅에 만족해하는 걸 넘어 감격한 얼굴이다. 효과적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은 손채영이 할 말 끝났다는 얼굴로 어깨를 들썩이자, 이송하가 말했다.
“시작부터 말 되게 많으시네요.”
“뭐?”
“바라는 것도 많고. 주인공도 아니면서.”
손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야. 이게 이젠 대놓고 말을······.”
“저도 원래 이래요.”
“너랑 나랑 경력이 몇 년 차인 줄 알아?”
“그건 모르겠고 서브 경력은 이제 시작하시겠네요.”
권피디가 헉 소리를 내다가 입을 막았다.
흐르는 공기마저 따끔따끔한,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서 서지준이 싱그럽게 웃었다.
“커피 마실 사람? 오늘 길어질 것 같은데.”
“······.”
뭐.
이만하면 시작이 괜찮았다.
적어도 뭐가 날아다니진 않았으니까.
*
장준섭 작가는 카페 구석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 멍하니 놋쇠 촛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당의 상견례가 있었던 날로부터 줄곧. 그는 정신이 몽롱했다. 끼니를 건너뛰어도 배고픈 줄도 몰랐고, 뜨거운 커피를 입에 들이부었다가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져도 아프지도 않았다.
일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가 그가 원했던 것들이 착착 이뤄지고 있어서인지 현실감이 부족했다. 어느 순간 이 모든 게 무너져 내릴까봐 걱정돼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
“형, 전화 오는 거 아냐?”
동생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퍼뜩 정신을 차린 장준섭이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네, 장준섭입니다!”
-작가님, 저 SS필름 한기정 피딥니다.
“아······.”
그가 등받이에 풀썩 기대며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렸다. 대본에 빨간펜으로 빗금을 찍찍 긋던 그 피디였다. CG씬을 왕창 들어내고 러브라인을 굵직하게 넣어보자고 강요했던.
-혹시 그 뒤로 생각 좀 해보셨나 싶어서요.
“무슨 생각이요? 그때 얘기하신 대로는 수정 못 한다고 확실히 말씀드렸었는데······.”
-아이고, 저도 말씀드렸잖아요. 작가님 원하시는 대로 다 하려면 국내에선 이거 절대 못 찍는다고.
“저기.”
-저랑 만나신 뒤로 딴 제작사도 가 보셨어요? 뭐라고 해요? 다들 안 된다고 하죠?
장준섭 작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미 W&U와 얘기가 끝났으며, 주연진으로 무려 손채영과 이송하, 서지준을 픽스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일렀다.
그는 인내심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다 쓰며 말했다.
“다시 전화 주신 건 감사한데, 제가 이미 긍정적으로 얘기 중인 곳이 있어서요. SS필름하고는 못할 것 같습니다.”
-네? 어딘데요?
피디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건 아직,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하고요.”
-저희랑 미팅 한 번 더 해보시고 결정하시지··· 어차피 지금 얘기 중이신 곳도 대본 그대론 못 갈 거예요.
“아뇨, 대본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네? 그렇게 한대요? 어디, 어딘데요?
당황한 듯 갈라지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진동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메시지와 톡이 들어왔다는 팝업이 미친 듯이 떴다. 무당, 드라마, W&U 따위의 글자가 스치듯 지나갔다.
“형, 형형형, 기사 떴나 봐.”
옆에서 보고 있던 동생이 제 핸드폰을 두드리더니 휙 내밀었다.
[인기 웹툰 ‘무당’ 드라마 化]기사 타이틀을 다 읽자마자 신수연 감독에게서 전화가 들어왔다.
얼굴이 벌게진 장준섭 작가가 흔들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중요한 전화가 와서요, 좋은 하루 되세요!”
-잠깐만요, 작······!
다급한 목소리를 뚝 끊고 신수연 피디의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방금 기사 뜬 거 보셨어요?
“네, 보고 있습니다.”
-주연진 계약조건 조율 끝났어요. 곧 회사에서도 공식 입장 나갈 거라네요. 작가님도 이제 주변에 마음껏 얘기하셔도 돼요.
장준섭 작가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동생의 등짝을 철썩 두들겼다. 기대감과 안도감이 번갈아 가며 그의 심장을 쥐어짰다.
떨리는 목소리로 통화를 마친 그가 곧장 SNS에 접속했다. 그리고 참았던 것을 터뜨렸다.
장준섭 작가의 무당은 제법 유명한 작품이었다.
웹툰을 전혀 안 보는 사람도 제목은 한 번쯤 들어 봤을 정도고, 영화가 크게 망한 이후로는 더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극성팬들은 무당의 영상화를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았다.
-뭐야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뭔 개소식이야
-결국 올게 왔구만 작가가 재작년부터 무당 드라마 대본을 직접 쓰네 어쩌네 해서 불안했었는데 작가 SNS보는 사람들은 다 알걸?
-아니, 아는데 그걸 아무도 안 말렸단 말임? 제정신들임?
-안 말렸을 것 같냐? 그때 팬들이 진짜 존나 뜯어 말렸는데······ 심지어 친한 작가들하고 출판사에서도 말리다가 포기했댔음
-하지 마······ 하지 마라, 진짜······
-불안하다가도 한 편으론 기대되고, 좆같은 거 왜 하냐 싶다가도 진짜 제대로 한번 만들었음 좋겠다 싶고 나도 내 맘을 모르겠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소화가 안 될 작품인데 심지어 드라마로? 차라리 영화로 만들지
-영화로는 이미 만들어서 망했잖아
-무슨 헛소리야 무당 영화 없음
-??? 있잖아? 예전에 유희림이랑 박석훈이······
-개소리하지마 없다면 없는 거야
-아
-작작하지 개망했던 거 이제 잊혀졌는데 무덤 파헤쳐서 부관참시까지 되게 생겼네
-영화 망하고 작가 멘탈 나갔길래 내가 팬심으로 그 쓰레기 같은 영화를 두 번을 봤어. 근데 그 짓을 또 한다고? 지랄 마라 진짜
-파묻혀 있던 극성팬들 다 튀어 나오네ㅋㅋㅋㅋㅋ 이제부터 배역 캐스팅 하나하나 확정 기사 뜰 때마다 팬이고 안티고 지랄병들 도져서 얘 싫다 쟤도 싫다 개염병을 떨 텐데 벌써 지친다
-드라마 방영 직전까지 존나 싸우고 드라마는 어차피 망하겠지
-최근 몇 년간 국내 드라마들 퀄리티 많이 높아졌고, 대형 제작사에서 캐스팅 잘하고 제작비도 빵빵하게 쏟아부어서 만들면 또 모름 다들 시작하기도 전에 망염불 하지 말자
[인기 웹툰 ‘무당’ 원작 집필한 장준섭 작가가 직접 대본 작업 맡아] [콘텐츠 제작 뛰어든 W&U, 웹툰 ‘무당’ 드라마화······ 캐스팅은?]-망했네
-망
-W&U? 여기 드라마도 만들어?
-이제 시작함 아직 작품 나온 거 하나도 없음
-아······ 에반데
-좆같은 거 하나 나오겠구만 걍 이미 봤고 망한 걸로 치자
-그래도 W&U면 캐스팅은 좋지 않을까? 거기 소속 배우들, 이송하나 서지준, 손채영, 장요한 같은 애들로 쫙 발라주면 좋겠다
-되겠냐?
-걔네 다 나오면 출연료가 얼만지나 앎? 그거 떼고 나면 제작비 뭐 남냐? 독립영화처럼 배우들이 출연료 깎고 들어가면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소속사에서 제작하는 거래도 그렇게까지 하겠음?
-소속사가 미쳤다고 지네 간판 배우들 몸값 낮추겠냐고
-사방에서 존나 물어뜯네 행회라도 좀 돌리게 냅둬라 개새끼들아···
[웹툰 ‘무당’ 드라마 캐스팅 서지준, 이송하, 그리고 손채영 확정] [W&U 톱배우들 총출동, ‘무당’ 드라마 판 초호화캐스팅 어떻게 가능했나] [웹툰 ‘무당’ 장준섭 작가, SNS에 장문의 심경글 올려······“캐스팅 만족을 넘어 눈물이 날 지경, 정선우 팀장님과 신수연 피디님께 감사”]-???????
-뭐임? 이게 뭐임? 진짠가?
-기레기 설레발 아냐? 주연 캐스팅이라고? 특출 아니고?
-W&U공식 입장 떴음 진짜 맞네
-이게 왜 진짜지?
-캐스팅이 중요하긴 중요하구나 갑자기 존나 기대되네
-W&U에서 푸쉬 엄청 할 건가 봄
-근데 이송하가 주인공이고 손채영이 악역이네······? 좀 당황스럽다
-당황 이 지랄 벌써 시동 거네
-지금 이 순간부터 아무도 배역 갖고 지랄 떨지 마라
-영화판도 캐스팅은 꽤 괜찮지 않았나? 드라마도 이 캐스팅으로 망하면 진짜 전설로 남을 듯ㅋ
-다들 작가 SNS 봤음? 이거 첨에 정선우한테 대본 보냈는데 하루 만에 연락받았다고, 정선우가 회사 설득해서 제작하기로 한 거래
-정······ 선우?
-이건 된다 명색이 미다스의 손이 붙었는데 망할 리는 없다고 봄
-홍길동전 망했을 땐 정선우 감 떨어지고 운빨도 떨어졌다고 신나서 물어뜯는 놈들 개많았는데 다시 미다스의 손으로 부활했네ㅋㅋㅋㅋ
-잘하면 OTT에서 물지 않을까? 그럼 제작비는 빵빵할 텐데. 전 세계에 공개되면 헐리웃 영화급으로 대박 날 수도 있는 거 아님?
-야 너는······ 행복 회로를 거기까지 돌린다고?
-왜? 안되?
-아니······ 그냥 니 말이 맞는 걸로 하자! 무당이 전 세계에서 초대박이 나서 주인공 월드 스타 되고 에미상에서 트로피도 받고 한국 대중문화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갈 수도 있고 그렇지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