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73)
탑 매니지먼트 274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2)
“설마설마했는데.”
W&U 대표실.
홍보팀 박팀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금까지 이러면, 이제 리스트에서 세 개가 터진 셈이네요.”
“그렇지.”
맞은편 소파에서 본부장이 둥글둥글한 턱을 매만졌다.
“이게 진짜 이렇게 되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눈을 가늘게 좁힌 박팀장이 중얼거렸다.
“밖에서야 아직도 운이다, 얻어걸렸다, 다 회사 마케팅이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흰 알잖아요. 이거 운 아닌 거.”
“······.”
“저번에 첩보 안 하겠다고 했을 때, 렛잇스노우 OST 해야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래요. 잘될 것 같다, 망할 것 같다, 이런 수준이 아니라, 이건 잘된다. 이건 망한다. 그런 확신이 보였다고요.”
의구심을 담은 목소리가 점점 끓어올랐다.
“원래는 그냥 자기 안목에 자신감이 넘치는 타입인가보다 했거든요. 근데 그 정도가 아닌 것 같아요. 어제 제가 소금 재촬영 들어간단 소식 듣자마자 달려가서 얘기했더니, 선우씨 반응이 어땠는지 아세요?”
“어땠는데?”
“아, 그래요?”
박팀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 말더라니까요? 그냥 터질 게 터졌구나, 하는 얼굴로. 꼭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것처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요. 사람이 미래에서 온 것도 아닌데.”
“어이구야, 이젠 SF로 가는 거야?”
“이해가 안 되니까 그렇죠. 두 분은 이게 이해가 되세요?”
턱을 괸 채로 생각에 잠겨있던 백한성 대표가 말했다.
“모르겠네. 나도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서.”
***
종로 MN빌딩 15층. 매일뉴스 연예부.
파티션이 미로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사무실 한편. 김해영 기자는 이어폰을 귀에 끼고 인터뷰 녹취 내용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뒤로 슥 다가온 부장이 이어폰을 잡아빼며 물었다.
“야, 김해영. 너 정선우 특집기사 쓴다는 거 어떻게 됐어?”
“쓰고 있잖아요, 지금.”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건데? 넌 기자라는 게 시의성이 뭔지 모르냐? 한창 뜨거울 때 내보내야 할 거 아냐. 기사는 타이밍이 생명이야. 렛잇스노우 난리 났고, 소금도 재촬영을 하네마네 하고 있는데 지금,”
“소금 제작사에서 공식 입장 안 나왔잖아요.”
“그거야 시간문제 아냐.”
“아직 타이밍이 아니에요. 좀 기다려 보세요.”
태평한 소리에, 부장이 파티션을 붙잡고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기다려, 얼마나! 지금 정선우가 들어간 거, 공범자랑 무당 뚜껑 열 때까지 기다려? 그게 언젠데, 야, 아끼다 똥 돼! 아니 똥도 그때쯤이면 완전분해돼서 흙 됐겠다, 인마!”
“렛잇스노우 쪽, 좀 있으면 아카데미 후보작 발표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첫사랑입니다도 제작발표회 잡혔던데. 그것도 기다려 봐야죠.”
“그러다 김 다 빠지면 어떡할래?”
부장이 머리를 휙 쓸어 넘기며 물었다.
“만약 노미네이트 안되고, 첫사랑입니다는 별로면?”
“이거나 보세요.”
김해영 기자가 파일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뭔데?”
“정선우 타임라인이요.”
“······.”
안경을 꺼내쓴 부장이 종이 위에 프린트된 표를 훑었다.
시청률, 관객수, 순이익, 음원 순위, 음반 판매량······.
넵튠의 로드매니저로 시작해서 지금 매니지먼트사업부 팀장에 이르기까지, 정선우가 쌓아놓은 모든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야, 이거······.”
“예술이죠?”
“예술이네.”
“뭐가요?”
지나가던 기자들이 끼어들었다.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더니, 곧 감탄사가 흘렀다.
“필모 장난 아니구만. 진짜 예술은 예술이다.”
“미다스의 손, 미다스의 손, 하긴 했지만 이건 뭐······.”
“이렇게 하는 것마다 대박 나면 어떤 기분일까?”
“이 정도면 미래에 있는 사람이랑 무전기 같은 걸로 막 서로 정보 주고받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닌 이상에야 말이 되나, 이게?”
“그런 무전기가 있으면 로또 1등 번호부터 물어봤겠지. 주식이랑.”
“아, 그러네.”
쭉 뻗어온 손이 종이를 빼앗았다. 김해영 기자가 종이를 다시 파일 안에 감추듯 집어넣었다.
“얌마, 니거 안 뺏어가.”
“너 이거 기사 언제 낼 건데?”
“······때가 되면?”
김해영 기자가 눈을 빛냈다.
***
-플랜플러스에서 무당 조건을 다시 얘기해 보자고 전화 왔어요.
“그래요?”
-BP하우스에서도요.
이어폰 너머에서 신수연 피디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한테 유리한 쪽으로 줄다리기 한번 해볼게요. 어차피 우린 주연 캐스팅도 끝났고, 급할 필요 없으니까.
“네. 그럼 회의 때 봬요.”
전화를 끊고 계속 트레드밀 위를 걸었다. 보기 편하게 스프링 제본된 영화 시나리오를 들고 다시 멈췄던 부분을 읽어 내려갈 때였다.
“정팀장님.”
트레이너가 다가왔다.
“지금 운동하는 거예요, 일하는 거예요?”
“일하면서 운동하는 거죠.”
“뭐,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낫긴 한데.”
그가 5.1km/h가 띄워진 모니터를 보더니 경사도를 올린다.
짧게 호흡을 고르며 물었다.
“요즘 우리 팀 어때요?”
“4팀이요? 어디 보자.”
두꺼운 팔뚝으로 겨우 팔짱을 낀 트레이너가 눈동자를 굴렸다.
“엘제이는 스케줄 때문에 못 오는 날 빼면 여전히 올출이고, 지준이랑 임주원씨도 새 작품 들어가는 것 때문에 거의 매일 와요. 나머진 대부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아, 남조윤씨는 한 번도 못 봤네요.”
“그 형은 따로 다니는 체육관 있어서 괜찮아요.”
“그리고 태희······ 씨는 아예 안 와요.”
“요즘 넵튠 신곡 녹음 중이라서요.”
“녹음 안 할 때도 안 왔어요. 데뷔 전부터 쭉.”
이태희는 뭘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연예인으로서는 축복받은 체질이라 본인이 건강관리만 잘하면 회사에서 터치할 필요가 없었다. 건강관리를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으로만 해서 문제지.
슬슬 검진 한번 받으라고 해야겠네.
“근데 임주원씨 이번 역할이, 몸이 좀 좋아야 하는 역이에요?”
“아뇨. 왜요?”
트레이너가 미간을 좁혔다.
“지준이 몸 만드는 중이라고 했더니, 주원씨가 되게 신경 쓰더라고요. 자기도 몸 만들 거라고 루틴 짜달라던데요.”
“······그래요?”
“이게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는 격이라서요. 지준이는 전부터 꾸준히 운동했었던 애라, 마음먹고 웨이트 시작하면 근육이 금방금방 붙거든요. 주원씨랑은 몸 만들어지는 게 차원이 다르니까······.”
서지준 이름만 들려도 고양이처럼 털을 곤두세우던 임주원이 떠올랐다.
“주원씨가 요즘 의욕이 좀 과해서······ 혹시라도 운동하다가 다치는 일 없게 신경 좀 써주세요.”
“그럼요.”
시나리오를 덮고 트레드밀에서 내려가려는데, 트레이너가 잽싸게 버튼을 조작했다. 경사도와 속도가 동시에 쭉쭉 올라간다.
“자, 좀 뛰고 가세요. 일하는 것도 체력이 받쳐줘야죠, 체력은 어디서 온다? 유산소에서 온다!”
“······.”
뭐.
잠깐 고민하다가 시나리오를 내려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앞으로 소모될 일이 많을 것 같으니까.
*
“팀장님, 이 옷 어때 보여요?”
“추워 보이는데요.”
밖은 50년 만의 최강한파니 어쩌니 난리가 났는데. 임주원이 위에 걸친 거라곤 목덜미가 다 드러난 셔츠 한 장뿐이었다. 고전 명화 같은 패턴이 화려하고 예쁘긴 했지만, 얼어 죽기 딱 좋은 옷이었다.
심지어 샵에도 들렀다 왔는지 머리까지 풀세팅을 했다.
“진짜 이러고 갈 거예요?”
“저 원래 추위 잘 안 타요.”
살갗이 다 얼어서 뻣뻣해진 주제에, 임주원이 태연한 척 말했다.
뒤쪽, 성의민 실장과 의상 스텝이 수척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최선을 다해 말려봤으나 들어먹질 않더라는 뜻이 고스란히 얼굴 위에 떠올라있었다.
“오늘 리딩 하는 날이라 신경 좀 썼어요. 기선제압 컨셉으로. 서지준은 저번에 무당 상견례 할 때 벨마디 옷 입고 왔다면서요?”
브랜드까진 모르겠지만, 그것도 화려하긴 했지.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어쨌든······ 출발하죠.”
“서지준은요?”
“그쪽은 따로 올 거예요. 현장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아, 팀장님은 나랑 같이 가고?”
“네.”
임주원의 입 끝이 작게 들썩거렸다.
고작 이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면야, 싸게 먹히는 셈이지.
공범자의 대본리딩 장소는 투자배급사인 파인 엔터 건물이었다.
건물 주차장에서 먼저 도착한 정재이와 이태신 실장과 합류했다. 롱패딩을 김밥처럼 말아 입고 온 정재이가 꽃단장한 임주원을 보더니 주춤했다. 이태신 실장도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어, 전 그냥 편하게 일상복 입고 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떡하지? 옷 갈아입을까요? 차에 어제 스케줄 때 입었던 원피스 있는데.”
“그냥 가도 돼.”
두 사람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익숙한 번호판을 단 밴이 천천히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서지준과 이봉준 실장이 탄 차였다. 문이 열리고 서지준이 내렸을 때. 임주원은 팔짱을 끼고 선 자세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서지준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 위에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편하다 못해, 좀 전까지 운동이라도 하다 온 듯한 행색이었다.
“······.”
“우리가 제일 늦게 왔네?”
서지준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임주원이 더 뻣뻣하게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금세 코앞까지 다가온 서지준이 임주원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더니, 날 보고 물었다.
“안에 혹시 레드카펫 있어요?”
“······먼저 올라가요,”
안 그래도 당황한 사람 놀리지 말고.
슬쩍 임주원을 돌아봤다.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귓바퀴가 시뻘겋게 타고 있었다. 목덜미도 서서히 붉어지는 중이었다.
“그럼, 나 먼저 올라갈게요.”
능청스럽게 윙크를 남긴 서지준이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야 임주원이 제 손에다가 얼굴을 묻었다.
“아, 씨······!”
얼굴까지 다 달아오른 임주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팀장님, 오늘 단체 사진 찍죠?”
“찍죠. 나중에 홍보할 때 내보내야 하니까.”
“그럼, 서지준이랑 나랑 투샷도 찍을 거 아니에요.”
“제일 많이 찍겠죠. 투톱 주연이니까.”
“안돼, 안 돼요. 이렇게 둘이 사진 찍으면 나만 혼자 엄청 신경 쓴 것 같이 보이잖아요!”
그렇겠지. 혼자 엄청 신경 썼으니까.
“안돼······!”
결국 임주원은 샵에서 세팅한 머리를 제 손으로 헝클어뜨렸다. 그리고 화려한 셔츠 위에 성의민 실장의 패딩을 걸친 채로 리딩에 참석했다.
모인 배우진은 화려했다.
영화가 화제가 된 덕분에 캐스팅이 쉬웠다고 제작사 도형태 대표가 좋아죽을 것처럼 굴더니, 그럴만했다.
이젠 익숙한 시선 속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눈으로는 임주원을 살폈다. 서지준과의 신경전 때문에 리딩에 영향이 가면 어쩌나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캐릭터 몰입감이 대단했다. 부스러진 자존심과 열등감을 부여안은 연기가 어찌나 생생한지, 서지준에게 악감정을 대놓고 터뜨리는 씬에서는 이창인 감독이 박수칠 정도였다.
마주 보고 앉은 임주원과 서지준 사이엔 리딩 내내 불꽃이 튀었다.
“······왜 저래, 둘이?”
내 옆자리에 앉아 지켜보던 이봉준 실장이 중얼거렸다.
“서로 되게 의식하네. 같이 영화 찍다 정분나겠어, 아주.”
“······.”
순조롭게 대본리딩을 마친 후 저녁 식사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배우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낯을 익히는 사이, 나는 도형태 대표와 파인 엔터 쪽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지난번에 회사로 찾아왔던 투자팀장도 함께였다.
소금 개봉을 연기하게 된 것 때문인지 표정이 착잡해 보였다.
파인 엔터 투자금만 200억이랬나?
재촬영을 하게 되면 추가로 돈을 더 쏟아부어야 할 테니, 착잡할 만도 했다.
“그, 재촬영은 확정이에요?”
도형태 대표가 슬그머니 물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투자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정입니다.”
“거기 안병선 감독님도 보통 아니신데······.”
“그분은 재촬영도, 재편집도 안 하겠다는 입장이신데. 안감독님이 계속 의사를 안 굽히시면 아예 감독 교체하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제작사하고도 얘기 끝났고요. 안감독님도 메가폰 놓고 싶진 않으시겠죠.”
“······!”
“저희도 그렇게까진 안 됐으면 좋겠고요.”
감독 교체라.
이건 수습 불가능한 상황에서나 쓸법한 수단이었다.
휘두르기 쉬운 신인 감독도 아니고, 제작비 수백억짜리 대작을 맡길 정도면 감독도 보통 감독은 아니니까.
미래예지에선 홍길동전과 함께 근본 없는 영화, 충무로에 역병을 불러온 쌍두마차 취급이었는데. 만약 다른 감독이 재촬영하고 편집까지 하면 달라질까?
그렇게 되면, 이 블랙리스트니 하는 것도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지도.
하는 생각을 했을 때.
“저기, 저······!”
담배 냄새가 매캐하게 풍기는 남자가 허둥지둥 다가왔다.
“지금 밖에, TV, 뉴스에······!”
“뉴스에 왜요?”
“안병선 감독님 나오시는데요.”
“······!”
테이블 위로 몹시 꺼림칙한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
드르륵,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염되듯 퍼져나간다.
내 핸드폰도 마찬가지였다. 홍보팀 박팀장이었다.
“네.”
“자기, 지금 TV 좀 봐. GTBN 뉴스.”
GTBN?
젓가락을 내려놓고 단독룸 밖으로 나갔다.
홀 한쪽에 TV가 재생 중이었다. 낯익은 중년 남자의 인터뷰화면 아래, ‘안병선/영화감독’이라는 네임 수퍼가 박혀있었다.
-투자자 입맛대로 재촬영, 재편집 안 하면 하차시키고 감독 바꿀 거라는데, 이게 협박이 아니면 뭡니까? 이렇게 예술이 자본에 휘둘리는 상황이 계속되면 헐리웃처럼 되는 겁니다. 거긴 감독을 파트타임 알바생 취급하잖아요.
-이 일이 W&U엔터 정선우씨와 관련이 있다고요?
-그게 제일 어이가 없어요. 블랙리스튼지 뭔지, 정선우씨 본인은 그런 거 만든 적도 없다는데. 투자자들이 넘겨짚고 해석해서는 다 만든 영화를 엎으라고 나오는 게,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영화감독조합이랑 영화제작가협회쪽에 연락 취해놓은 상태고요, 정 안되면 소송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전 재촬영, 재편집 안하고, 무조건 예정대로 설 연휴에 제 영화 개봉할 생각입니다.
“······.”
맙소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