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75)
탑 매니지먼트 276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4)
족제비는 못 잡았다.
유해 야생동물도 포획하면 불법이라더라고. 그놈이 우리 아버지가 반년을 애지중지 기른 중닭들을 몰살시킨 흉악범이라도, 법의 보호를 받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실의에 빠지신 아버지한텐 그렇게 둘러대기로 했다.
사실은 법이 가로막지 않았더라도 못 잡았겠지만.
“야, 토종 족제비 이렇게 생겼대.”
“뭐야, 개귀여워. 키우고 싶다.”
“불쌍하니까 얘 그냥 잡지 말자, 한겨울에 지도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민가까지 내려와서 닭을 잡아먹었겠냐고.”
“그래, 새끼 있을 수도 있잖아.”
지들이 잡아 올 테니 할아버지는 집에서 딱 기다리고 계시라고 기세등등하게 산에 오른 쌍둥이들은, 핸드폰으로 야생 족제비를 검색해 보더니 불쌍해서 못 잡는다고 난리였다.
사진을 보니 귀엽긴 했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범람한 애들에게 당부했다.
“너희 할아버지 앞에선 족제비 편들지 마라. 안 그래도 속상하신데. 그 닭들이 다, 설 연휴에 삼계탕, 닭볶음탕, 닭백숙 돼서 너희 뱃속으로 들어갈 애들이었어.”
“······맛있겠다.”
쌍둥이들이 애석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족제비포획대는 어쩌다 보니 등산이나 하는 중이었다.
형과 형수님은 비탈길을 보더니 깔끔하게 포기하고 내려갔고, 엄마는 우리를 한심한 눈으로 보시곤,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듯 올라가셨다. 지금쯤이면 이미 정상에 계실지도.
나와 쌍둥이들만 포기하지도 못하고 서두르지도 못한 채, 깡깡 얼어붙은 겨울 산을 기어오르는 중이었다.
사실 쌍둥이들은 도로 내려가고 싶다고 얼굴에 쓰여 있는데. 먼저 포기하기 싫어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쟤들은 대체 누굴 닮아서 지고는 못 사는 성미로 컸을까.
“아, 개추워. 삼촌 안 추워?”
“추워.”
“삼촌! 삼촌! 우리 저 눈꽃나무 밑에서 사진 한 장만 찍어줘.”
“야, 삼촌이 찍은 사진은 어차피 쓰지도 못해. 이따 내려갈 때 할머니한테 찍어달라고 하자.”
“그래.”
“삼촌, 누가 위튜브 댓글로 ‘그 정선우가 삼촌인데 조카들 연예인 한다는 얘기 없는 거 보면 쌍둥이들 어지간히 못생겼나 봄 크크크’ 이렇게 달아놨는데, 이거 고소할 수 있어? 지는 어떻게 생겼길래?”
“······.”
참새떼처럼 조잘거리는 쌍둥이들을 뒤로하고 산길을 쭉쭉 올라갔다.
마침내 정상 부근에 도착해 보니, 어머니가 날렵한 몸짓으로 옆구리운동 중이셨다.
“쌍둥이들은?”
“기어 오는 중이에요.”
“네 형은?”
“집에 있을걸요.”
아니면 형수님이랑 데이트 중이든가.
혀를 쯧쯧 찬 어머니가 가방을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던졌다.
“귤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달달한 귤을 까먹으며,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간밤에 함박눈이 펑펑 내린 덕에 설경이 예술이었다. 숲을 뒤덮은 눈꽃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온 세상이 새하얗고 차가워서, 그 속에 서 있기만 해도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뒤에서 어머니가 물었다.
“정상에 올라오니까 좋지?”
“······좋네요.”
깍지 낀 손으로 기지개를 켜고,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슬슬 조조로 소금을 본 사람들의 후기가 올라올 때가 됐는데.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네.
***
[니들 소금 본다매. 오늘 소금 보기로 했었잖아]근데 시발 왜 관이 텅텅 비었어?
나 관 잘못 찾은 줄 알고 나가서 물어봤잖아. 근데 여기가 맞대.
영화 시작할 때쯤 둘러보니까 세 명 앉아있더라.
소금 개봉하면 전국민이 다 보기로 한 거 아니었어? 커뮤랑 SNS 대통합 아니었냐고. 내가 조조로 봐서 그런가? 연휴라 다들 처잤냐? 아니면 집에서 전 부치고 있냐?
왜 나만 시발······!
-어떻게 알았지? 나 지금 육전 부치는 중임. 영화 어땠어?
-난 조카들 보는 중임을 맡아서······ 그래서 영화는 어땠어?
-일어나보니 11시더라. 영화 어땠어?
[소금 조조로 가서 보고 온 후기(스포 없음)]영화 초초초초초대박임
지금 관람평점 10점 남기고 오는 중
개추천함 안 본 사람 빨리 가서 봐라
-재미없구나?
-얘 지금 우는 거 같은데
-낚시질을 하려면 좀 더 정성을 들였어야지 여기 홍길동전 때 이미 당한 놈들 천지라 면역 생김ㅋㅋㅋ
-영화 어땠는데? 나 어차피 안 볼 거니까 스포 좀
-(글쓴) 시발놈들 눈치 개빠르네
[오늘 개봉한 소금, 관람평 슬슬 올라오는 중인데]이거 반응이 익숙하다 싶더라니 홍길동전 때랑 똑같음ㅋㅋㅋㅋ
나 안 그래도 홍길동전 때 개봉 첫날 가서 보고 욕 존나하고 온 사람이라 이번엔 실관람평 보고 가려고 일부러 예매 안 했단 말임?
보아하니 똥 잘 피한 듯ㅋㅋㅋㅋㅋ
-난 이럴 줄 알았음ㅋㅋㅋ 이걸 개봉하자마자 보는 게 바보들 아님? 학습 능력이 없나?
-영화 대체 어떻길래 반응이 저러지
-진짜 망하는 거 아냐? 근데 이거까지 망하면··· 정선우 지금 뭐 하고 있을까?
***
“선우야! 이거 갖고 들어가라!”
아버지가 양손에 닭 두 마리를 들고 오셨다.
꼬치에 맛살과 쪽파를 끼우다 말고 일어나서 닭을 받았다. 묵직하다. 막 깃털을 뽑은 것처럼 보이는 게, 마트에서 온 애들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가져오셨어요?”
“이장님 댁에서 잡아 왔다.”
아버지 뒤로 마을 이장님이 따라 들어오셨다. 품에는 양 갈래로 머리를 질끈 묶은 아기를 안아 들고서.
“그거 뇌물이야, 뇌물, 알고 먹어.”
“네?”
“내가 이 집 아들내미 왔다길래 우리 집에서 제일 큰 놈으로다가 잡아 온 거라고.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가지고.”
“어떤 걸······.”
“자, 한번 봐봐.”
이장님이 아기를 불쑥 내밀었다.
“얘가 연예인이 될 상인가?”
“······.”
“내 외손녀딸인데. 애가 다행히 제 엄마랑 아빠를 하나도 안 닮고 외할머니를 쏙 빼닮아가지고, 아주 연예인 감이야. 목청이 얼마나 큰지 노래도 잘할 것 같더라고.”
어머니가 내 손에서 닭을 가져가며 맞장구를 쳤다.
“가수 시켜야겠네, 그럼.”
“그죠? 자, 딸기야, 삼촌한테 가봐. 되게 유명한 삼촌이야. 가서 좋은 기를 팍팍 받아봐.”
“저 방금 닭 만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기가 품에 쑥 들어왔다. 따끈하고 묵직한 것을 고쳐 안으면서 물티슈로 손을 닦았다. 낯가림이 없는 편인지, 아기가 까맣고 큰 눈으로 날 올려다본다. 돌쯤인가?
“지난달에 돌잔치를 했는데, 얘가 마이크를 잡더라고! 판사봉이랑 청진기를 제일 앞에다 뒀는데, 굳이굳이 테이블 구석에 있는 메이크를 잡더라니까? 트로트가수가 될라나?”
“어머, 이장님 앞으로 외손녀딸 뒷바라지하시게 생겼네.”
“애가 필요하다고 하면은, 내가 또 운전대 잡고 전국 팔도 노래자랑 하는 데마다 쫙 돌아봐야죠, 뭐.”
이장님과 어머니가 떠들썩하게 얘기하기는 동안, 주방에서 손을 씻고 나오신 아버지가 옆으로 슥 다가와 말했다.
“뇌물 아니다. 닭, 돈 주고 사 온 거야.”
“아.”
“우리 집에서 키운 게 더 좋았는데, 그놈의 족제비가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울컥한 아버지를 달래는 사이, 이장님과 어머니가 화제를 바꿨다.
“우린 이따가 저녁 먹고 영화 보러 가려고요. 애들이 소금인가? 오늘 막 나온 거를 예매해놨다네? 애들이 가자는데 또 가 봐야지.”
“소금이요?”
어머니가 내 쪽을 돌아봤다.
“선우야, 이거 네가 별로라고 한 거 아냐?”
“······.”
“왜, 재미없어요?”
“그냥 뜨신 방에서 설음식이나 먹으면서 드라마 봐요, 드라마. 낼 모래 IBC에서 새로 시작하는 거 있는데, 선우야, 제목이 뭐지?”
“첫사랑입니다요.”
“그래, 저거 봐요. 괜히 영화관에 가서 돈 쓰지 말고. 정 영화관에 갈 거면 렛, 뭐지?”
“렛잇스노우요.”
“맞다. 렛잇스노우를 보든가. 애들도 좋아하던데.”
“그럼 그걸 보자고 해야겠네.”
이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
-혹시 명절이라고 효도한답시고 부모님 모시고 소금 보러 갈 예정인 사람 있으면 빨리 취소해라
└왜? 나 예매해 놨는데, 영화 그렇게 별로야?
└부모님한테 쌍욕 먹고 싶으면 보고
└어떻길래? 홍길동전급이야?
└홍길동전처럼 뭐야, 이게? 싶은 건 아닌데 다른 의미로 거지 같아. 상황이 계속 꼬여, 계속계속 꼬여. 영화가 관객한테 고구마를 끊임없이 처먹이는데 진짜······ 아, 본지 한참 됐는데 아직도 기분 더럽네
[소금 후기 (스포 있음/근데 어차피 니들 안 볼 거잖아)]못 만든 영화는 아님. 오히려 잘 만들었어.
근데 시발, 내가 포스터를 보고 기대한 건 긴장감 넘치는 재난물이었단 말이야. 막 쓰나미 몰려오고, 주인공이 가족들 데리고 도망치고, 건물들 다 휩쓸리고 무너지고, 그런 거 있잖아?
근데 이게 재난 속 인간군상극이더라고?
두시간 동안 진상들이 종류별로, 끊임없이 나옴 주인공도 막판에 진상한테 죽음. 뭐 엄청난 희생, 그런 것도 아냐. 걍 개죽음이야
스토리 상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겠어,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지도 알겠어, 인간들의 드러운 민낯, 뭐 알겠어. 알겠는데
명절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에 기대하는 건 이런 게 아니잖음?
제작비 270억인가 그렇던데 어디다 썼는지 모르겠음
배우들 출연료로 썼나? 배우들 연기는 잘함
좆같은 연기를 진짜 좆같이 잘함 그래서 더 좆같음
다 보고 나니까 딱 그 생각 들더라
투자자들이 왜 재촬영하자 그랬는지 알겠고 걔들 개불쌍함
이거 개봉하라고 한마디씩 한 놈들이 백 원씩 모금해서 줘라
***
핸드폰이 뜨끈뜨끈하다.
안방 충전기에 꽂아놓고 가끔 한 번씩 들여다보면,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었다.
꼭 답신해야 하는 것들만 몇 개 챙기고 그냥 무시했다.
연휴에는 쉬어야지.
소금의 개봉 첫날 관객수는 98,512명이었다.
둘째 날은 훅 떨어진 5만 명 언저리였고.
이거 손익분기점이 거의 500만쯤 되는 것 같던데.
명절을 낀 연휴인 데다 개봉 전까지 화제성이 엄청났는데도 성적이 이렇게 바닥에 처박혔다는 건, 입소문이 아주 더럽게 났다는 뜻이었다. 그 입소문이 역바이럴처럼 커뮤니티와 SNS를 휩쓸어버려서.
모두 소금 얘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영화관에서 관람한 사람은 얼마 안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이거 어쩌면 원래 망할 것보다 더 크게 망할지도 모르겠는데.
“선우야! 드라마 한다!”
핸드폰을 다시 내팽개치고 거실로 나갔다.
형과 쌍둥이들이 형수님 댁 쪽으로 가서 좀 조용해졌다 싶었는데, 연휴 끄트머리라고 친척들이 하나둘 몰려드는 바람에 다시 집이 북적북적했다. 다들 TV 앞에 술상을 펴고 앉아서 날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게 선우가 만든 드라마라고?”
“만든 건 아니고, 투자했대요, 투자.”
“황금주 작가가 옛날에 그거, 오뉴월 서리 같은 그대 쓴 작가라며?”
“그래? 그럼 재밌겠네. 그동안 왜 드라마 안 썼대?”
“손주 키우다 왔다던데요.”
웅성거리는 어른들을 돌아 사촌들 사이에 앉았다.
사촌 누나가 불쑥,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 로또 번호 여섯 개만 찍어주라.”
“나도!”
“어차피 안될걸.”
“혹시 모르잖아. 너 운이 막, 미쳐 날뛰던데?”
사촌 형이 가늘게 좁힌 눈으로 나를 훑어내린다.
“혹시 조상님들이 너만 예뻐하는 거 아냐? 너 성묘 하러 갔을 때 소원 뭐 빌었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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