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78)
탑 매니지먼트 279화
우리 집에 금송아지가 (1)
나는 길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이번 미래예지는 걷다가 끝나는 건가?
의심하던 참에, 문득 앞쪽 대로변에 큼직한 광고를 써 붙인 가판대가 눈에 들어왔다.
로또 명당.
······무작위로 미래를 보여줄 거면 저런 거나 좀 알려주든가.
생각하자마자 발이 가판대 앞에서 우뚝 멈췄다.
응?
손이 주머니에서 영수증 같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민다.
그리고.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5만 원을 받았다.
“······.”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5만 원짜리 지폐의 감촉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뭐야 이게?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당첨 번호를 보여줘야 할 거 아냐?
······설마 놀리는 게 맞나?
계단에서 한참 동안 끓는 속을 다스린 후에야, 회의실로 들어갔다.
“여기 화이트초콜릿 모카라떼하고, 허브티 두 잔이요.”
아까 미래예지로 봤던 것과 똑같다.
장서정이 카페 캐리어에서 일회용 컵을 쑥쑥 뽑아 돌린다.
“난 아메리카노.”
홍보팀 박팀장이 팔을 쭉 뻗길래, 뚜껑에 따로 체크 된 컵을 건넸다.
“여기요.”
“땡큐. 아, 깜빡했네.”
플라스틱 빨대를 입에 문 채로 박팀장이 말했다.
“내건 샷 추가해달라고 할걸.”
“······그거 샷 추가된 거예요.”
“어?”
커피를 쭉 빨아들인 박팀장이 퀭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 텔레파신가?”
“원래 피곤할 땐 진하게 드시잖아요.”
“감동이다, 정말. 자기 덕분에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
“······다행이네요.”
이 와중에 행복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서.
*
엿같은 걸 보여줘 놓고, 미래예지는 또 잠잠했다.
안정됐다기보다는······ 뭔가 폭풍 전의 고요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이상 증상을 보이는 미래예지 쪽에 줄곧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머리를 비웠다.
폭풍이든, 해일이든.
그냥 와라.
성큼성큼 사무실 방향으로 가다가 멈칫했다.
회의실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창에는 빈틈 없이 블라인드가 쳐진 상태였다. 짧게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
“······뭐 하세요?”
신수연 피디와 권피디, 그리고 곱슬머리인지 산발인지 헷갈리는 헤어스타일의 조연출이 회의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화이트보드엔 뭔가 잔뜩 써 갈겨져 있고 테이블 위는 무당 대본과 종잇장들로 난잡했다. 다 먹어 치웠거나 먹다 남은 음식과 음료수 포장들까지, 전체적으로 쓰레기통 같았다.
“정팀장님 퇴근하세요?”
“······일단 환기부터 좀 시키시죠.”
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신수연 피디가 집게로 집어놓은 머리를 긁적였다.
“냄새나요?”
“네. 떡볶이랑 튀김, 순대, 컵라면? 그리고 치즈 냄새도.”
“맥앤치즈맛 감자칩이요. 귀신이네.”
“사무실 두고 이 좁은 데서 뭐 하세요?”
신수연 피디가 입술을 오므렸다.
“아니 이상하게, 이 회의실에 있으면 일이 더 잘 돼요. 바로 옆이 정팀장님 사무실이라 그런가? 뭔가, 기가 충만한 느낌?”
“지금 기를 빨리시는 것 같은데······.”
벌떡 일어난 그녀가 화이트보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 만난 김에 캐스팅 얘기 좀 할까요? 우리 주조연 리스트업 중인데, 이준재 역에 송창인 어때요?”
“송창인이요? 송창인······ 괜찮죠.”
주로 사이즈 큰 작품의 2롤을 맡다가 최근 원톱으로 올라가고 있는 배우였다. 감자칩 부스러기를 입에 털어 넣은 권피디가 어깨를 들썩였다.
“백퍼 까일걸요. 걔 이제 막 주인공급으로 올라가서 자리 잡느라 몸 사리잖아요, 이 시기에 다시 조연으로 들어가면 급 어중간해지니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까이면 2, 3순위로 내려가더라도.”
신수연 피디가 보드펜으로 송창인 이름 위에 동그라미를 겹쳐 그리며 강조했다.
그걸 보다가, 문득 이름이 떠올랐다.
“오현수씨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네? 오현수요?”
두 사람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잠깐 침묵이 지나더니 회의실 안에 가볍게 웃음소리가 번졌다.
“그렇죠. 어울리겠죠.”
“마스크 좋고, 연기도 좋고. 근데 안 되겠죠, 당연히.”
오현수는 서너 편 정도의 흥행작을 가진 영화배우로, 드라마 출연은 신인 때 두 번이 전부였다. 영화판으로 넘어간 후로는 순조롭게 인지도를 쌓아 올려 지금은 명실공히 주인공급이고.
안 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소속사 뉴원엔터죠? 연락 한번 해 볼게요.”
핸드폰을 꺼냈다. 전에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사람에게 ‘통화 가능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당황한 얼굴로 눈을 껌뻑였다.
“정팀장님, 진짜 하려······.”
권피디의 말을 자르며 진동이 울렸다.
“네, 이사님. 안녕하셨어요?”
-저야 그냥 살아있죠. 어쩐 일이에요?
“제가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데요. 무당이라고.”
-알죠, 무당.
“거기 이준재라는 캐릭터가 있어요. 지금 피디님하고 회의하다가, 이건 오현수씨가 하면 너무 잘 어울리겠다는 얘기가 나와서.”
-우리 현수요?
어느새 회의실은 숨소리도 잦아들었다. 신수연 피디는 감자칩을 입에 넣은 채 씹지도 못하고 있었다. 전화 건너편에서 이사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우리 현수 드라마 안 하는데.
“아직 확정은 아닌데, OTT 쪽이랑 얘기 중이에요. 그렇게 되면 영화처럼 전체 사전제작으로 갈 거니까 부담은 없으실 겁니다.”
-아, 그건 그렇겠네요. 근데 내가 원작을 못 봐서, 비중이 어떤지 모르겠네? 멀티캐스팅이라는 얘긴 들었는데, 그래도 드라마는······.
“여기 손채영이 악역이에요. 이보다 멀티캐스팅인 드라마가 어딨어요? 현수씨야 영화배우니까 익숙하시잖아요. 원톱이 다 끌고 가는 작품 아닌 이상에야, 캐릭터가 중요한 거.”
손채영 이름을 팔아먹자, 잠깐 고민하는 듯하던 이사가 말했다.
-일단은 좀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데, 만나서 얘기할까요?
“좋죠. 대본도 가져갈게요. 언제 괜찮으세요?”
-이따가 점심 어때요?
“점심엔 제가 미팅이 있는데, 저녁 어떠세요?”
-저녁엔 유태형 감독님이랑 오랜만에 한잔하기로 해서··· 아, 차라리 같이 갈래요? 제가 감독님한테 얘기해 놓을 테니까. 둘이 초면이죠?
“그럴걸요. 그럼 저녁에 뵐까요?”
전화를 끊고, 찐득하게 달라붙는 시선들 쪽을 돌아봤다.
“얘긴 해 볼게요.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알죠, 알죠, 기대 안 하고 있을게요.”
신수연 피디가 흐물흐물한 감자칩을 삼키며 끄덕거렸다.
***
자정을 코앞에 둔 시간. 신수연 피디는 다 식어서 쓴맛만 남은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시계를 힐긋거렸다.
“아직도 술 마시나?”
“글쎄요.”
“2차 가고도 한참 지났을 시간인데. 술자리 파하면 정팀장님이 나한테 연락은 하겠지?”
“글쎄요.”
“그냥 내가 전화해 볼까? 너무 부담스럽나?”
쉰 목소리로 대꾸하던 권피디가 한숨을 쉬었다.
“피디님, 기대 안 하신다면서요.”
“안 해.”
“그러는 사람이 이 시간까지 퇴근도 안 하고······.”
“기대는 안 하는데.”
신수연 피디가 무릎을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뭔가, 자리 옮기면 끗발 떨어질 것 같잖아.”
“끗발이요?”
“운빨?”
“······.”
한 시간쯤 더 지났을 때.
신수연 피디는 테이블에 뺨을 눌러 붙인 채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흰자위에 핏발이 선 권피디가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저 먼저 갈게요. 피디님도 적당히 하고 들어가 쉬세요.”
“어, 그래. 난 그냥 여기서 날밤 까려고. 피트니스센터에 샤워실 있는데 거기 어메니티도 다 있대. 수면실도 괜찮다더라.”
“돈 벌어서 비싼 아파트를 사면 뭐하나, 집엘 안 가는데······.”
“그 비싼 집은 내 고양이가 누리고 있잖아.”
권피디가 혀를 차면서 회의실 문을 잡았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신수연 피디가 튕기듯이 일어나서 확인했다.
“와, 씨발.”
“왜요?”
권피디가 가방을 내던지고 황급히 다가왔다.
“뭔데요?”
신수연 피디가 핸드폰을 들었다. 정선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피디님, 시간이 늦어서 문자 남깁니다. 오현수씨 하기로 했어요.
권피디가 비명을 질렀다. 어두컴컴한 회사 4층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미친 거 아니에요?”
“미쳤나 봐.”
동시에 중얼거린 둘이 눈을 마주쳤다.
곧이어 두 겹으로 늘어난 비명이 다시 복도에 메아리쳤다.
***
“주연 같은 조연인데 스크롤엔 특별출연으로 올리기로 했어요.”
내 말에, 신수연 피디가 말했다.
“해 드려야죠, 오현수씬데. 저 잠깐 전화 한 통만 할게요.”
곧,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그녀의 입아귀가 위로 쭉 찢어졌다.
“어, 야, 뭐하냐? 출근했냐? 너 나 수백억짜리 드라마 준비 중인 거 알지? 이송하랑 서지준이랑, 손채영 데리고 찍잖아. 그리고 또 있는데 기사 뜨기 전이라 아직 얘길 못 하겠네. 요즘 사는 거 너무 재밌다, 야.”
단번에 할 말을 쏟아부은 신수연 피디가 웃었다.
영상통화가 아닌 게 안타까울 만큼 상쾌한 미소였다.
“너무 자랑하고 싶어서 전화했어. 넌 오늘 기분 뭣 같겠다, 미안.”
그리고 전화를 뚝 끊어버린 신수연 피디가 덧붙였다.
“죄송해요. 전 회사 동료였는데 거지같이 흩어져가지고.”
“아.”
권피디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끼어들어 말했다.
“플랜플러스 쪽에서 다시 연락왔어요. 우리 수익 비율 조정하는 방향으로 얘기해 보자고.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으로요. 그러니까 BP하우스랑 간 보지 말고 자기네랑 하자네요.”
“좋은 소식이네요.”
“본사 방침 어쩌고 하면서 절대 안 되는 것처럼 굴더니. 이젠 제작비 더 필요하냐고 묻던데요?”
듣고 있던 제작실장이 혀를 내둘렀다.
“그럴 만도 하죠. 렛잇스노우 지금 왈드와이드 수익이 미쳤잖아요. 이러다 3억 달러까지 가겠던데.”
신수연 피디가 테이블을 탁, 내리쳤다.
“우리도 그런 거 만들면 되지!”
“꿈도 크시네요. 전 쫄려 죽겠는데.”
“뭐가 쫄려? 난 이참에 제작비나 더 땡겼으면 좋겠는데.”
“대신 이거 말아먹으면 저희 앞으로 몇 년은 드라마 못 찍고 백수 되지 않을까요? 피디님도 차기작 투자 절대 못 받을 것 같은데.”
“아니, 왜 망할 생각을 해?”
비관적인 말을 듣던 신수연 피디가 정색했다.
“왜, 권피디 자신 없어? 난 자신 있어.”
그리곤 홱, 나를 돌아본다.
“정팀장님도 자신 있으시잖아요. 그죠?”
“······.”
“그죠?”
어딘가 좀 돌아있는 눈동자였다.
신수연 피디가 무당의 대본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렛잇스노우가 메가 히트를 하고 첫사랑입니다가 대박이 나도, 그건 결국 남의 새끼고. 이거, 이거, 무당이 우리 친자식이잖아요. 우리 새끼가 제일 잘 돼야죠, 그죠?”
아무리 그래도 그 두 개보다 잘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쨌든.
“그걸 목표로 해 봐야죠.”
진심을 담아 대답했더니 신수연 피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확신이 부족하시죠? 백프로가 아닌 것 같은데?”
“백프로 확신을 하면 그건 예언이죠. 제가 신도 아니고.”
신수연 피디가 고장 난 것처럼 입을 벙긋거리다 말했다.
“뭔가 렛잇스노우랑 첫사랑입니다하곤 뉘앙스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그땐 좀 더, 성경 같은 느낌이었는데?”
“······성경 같은 느낌이 어떤 느낌인데요?”
“정팀장님 가라사대 모든것이 내 뜻대로 이루어질지어다, 이런 느낌? 근데 왜 갑자기 우리 새끼한테서만 확신이 없어지셨지?”
물론 내 나름의 확신은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지도 않았지.
하지만 렛잇스노우와 첫사랑입니다는 미래 예지가 성공작이라고 인증 도장을 딱 찍어준 작품들이고, 무당은 오롯한 내 선택이었다.
힌트도 없고, 답안지도 없다.
당연히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니 내 마음가짐이나 태도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가볍게 무당 대본을 짚으며 말했다.
“이 작품에 자신 있습니다. 이젠 최선을 다해서 잘 만들어봐야죠. 좋은 결과로 돌아올 걸 기대하면서.”
“······아니, 그게 정론이긴 한데.”
중얼거린 신수연 피디가 미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요······ 괜찮아요. 저도 자신 있어요. 우리 대본 좋고 주연 캐스팅 좋고 제작비도 빵빵할 것 같으니까, 이제 내가 잘 찍어볼게요.”
자신만만한 것 치고는 어딘가 기가 빨려 나간 듯한 목소리였다.
“이거 망하면 나랑 정팀장님이랑 같이 손잡고 미국 가면 되지 뭐.”
“······.”
“그럼 되지 뭐······.”
미국이라.
가긴 갈 것 같은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