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79)
탑 매니지먼트 280화
우리 집에 금송아지가 (2)
W&U 야외 정원.
뼛속까지 찬바람에 드는 날씨 탓에 텅 비어있던 정원에 2팀 실장 세 명이 몰려나왔다. 다들 바퀴벌레 껍질 같은 반들반들한 패딩을 입고, 손에는 담뱃갑과 라이터, 김이 피어오르는 종이컵이 들려있었다.
“정선우랑 대표님 분위기 살벌하다길래 진짜 회사 나가나 싶었는데.”
“나가긴커녕 이러다 승진하겠다.”
“승진은 못 하죠. 거기서 더 올라가려면 본부장님 제껴야되는데.”
“······제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잠시 복잡한 침묵이 감돌았다.
누군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대단하긴 대단하다. 시발, 뭐 할 말이 없네.”
“일찌감치 그쪽에다 줄을 좀 댈 걸 그랬나? 그 팀은 하는 것마다 잘돼서 성과금도 존나 빵빵하다던데.”
“내 말이. 이봉준 실장이랑 성의민만 줄 잘 잡아서 회사 생활 노났네. 부럽다, 시발. 어떻게 지금이라도 좀 비벼볼까?”
둘의 대화를 듣던 실장이 낄낄거렸다.
“니들은 글렀지. 저번에 정선우 욕하다가 이송하한테 딱 걸렸다면서.”
“아니, 따지고 보면 그게 다 조병환 실장 때문이라니까.”
다른 실장이 무안한 얼굴로 말했다.
“조실장이 정선우 싸가지없네 어쩌네하면서 계속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니까, 우리도 덩달아 따라간 거 아냐. 윗사람이 욕하는데 그럼 맞장구 안 치냐고. 안 그러냐?”
“그렇죠.”
“하여튼 그 인간도 자의식 과잉이야. 왜 지가 정선우랑 경쟁 중이라고 생각하지? 솔직히 둘이 비교가 되냐? 쪽팔리지도 않나.”
“어차피 임시팀장 그것도 순전히 손채영빨로 얻은 거잖아요.”
“손채영이랑도 요즘 애매하던데? 무당 계약 건도 1팀장님 쪽으로 보고 들어가는 거 보면, 이젠 손채영한테도 까였······.”
“야, 야.”
담배를 피던 실장이 돌연 손을 허둥지둥 내저었다. 그리고 입구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통유리창 너머로 조병환 실장의 뒷모습이 비쳤다.
방금까지 신나서 떠들던 실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들었나?”
***
마치 물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몸은 물을 따라 끊임없이 밀려 올라간다.
[제작비 280억 들인 ‘소금’ 누적 41만, 최악의 성적으로 퇴장하나] [안병선 감독 인터뷰서 눈물 “흥행 참패 납득 안 돼, 관객들이 의도적 악평에 휘둘린 탓”] [렛잇스노우 관객 750만 돌파, 올해 첫 천만 영화 가능할까?] [넵튠 스노우폴 빌보드 19위로 껑충··· 올겨울 글로벌 차트 점령] [시청률 20프로 목전에 둔 ‘첫사랑입니다’ IBC 품에 안긴 이유는?]⦙
매일매일 기사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어제보다 오늘 더 난리였고, 오늘보단 내일을 더 기대했다.
흥행, 돌파, 가능성, 열광, 신드롬······.
이건 뭐. 끝날 줄 모르는 축제 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그야말로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닌가 싶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주목받는 나날이다.
진심으로.
사람들이 나를 금덩어리 보듯 보고 있었다.
“정팀장님, 오디션 지원서 다 보셨어요?”
화장실까지 쫓아온 신인 개발팀 직원이 채근했다.
미지근한 물에 손을 씻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너무 많아서요.”
“그것도 저희가 한번 거르고 보낸 건데, 많긴 하죠. 지원서 접수량이 말도 안 되게 늘어났어요. 지원동기 읽어보면 다들 정팀장님 얘기를 그렇게······.”
흥분한 얼굴로 조잘거리던 직원이 다시 물었다.
“근데 4팀은 계속 신인 충원 안 하실 거예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합니다. 손이 부족해서.”
“아······ 회사 옮기고 싶다고 연락오는 탑급 배우들도 거절하신다면서요? 근데 그 사람들이야 다 정팀장님이 직접 붙어서 케어해주길 바라는 거니까 못한다 쳐도. 신인들은 일단 뽑아놔도 되지 않아요?”
그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나를 보는 시선이 얼마나 뜨거운지 살이 다 익을 지경이다.
“정팀장님 안목이면, 일단 뽑기만 하면 띄우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은데. 정선우가 뽑았다는 거 자체가 성공 마크나 다름없으니까. 다들 그걸 아니까 눈도장이라도 한번 찍어보려고 지원서 보내는 거고.”
“······.”
대답 없이 페이퍼타올을 뽑았다.
개발팀 직원이 입맛을 다셨다.
“4팀에 충원 안 하시더라도, 오디션 지원서 보시면서 얘는 그나마 눈에 띈다, 싶은 애 있으면 꼭 좀 알려주세요. 네? 정팀장님 픽이면 카메라테스트 패스하고 바로 실물 미팅 잡으라고 하셨어요.”
화장실을 나서려다 멈칫했다.
“······누가요?”
“네? 누가 아니라,”
직원이 대답했다.
“다들 그러시는데요.”
*
오전 시간을 빼서 오디션 지원서를 들여다봤다.
이십 대 초반에서 후반까지. 기대를 품고 막 첫발을 디딘 지망생이거나 이미 몇 차례 꺾여본 무명 배우거나. 모든 칸을 정성 들여 빽빽하게 채운 지원서엔 어김없이 기회를 향한 간절함이 넘실거린다.
“······.”
한참 보는데, 전화가 울렸다. 프리티걸의 이태신 실장이었다.
오늘 프리티걸 스케줄이, 오후에 녹화가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정재이는 지금 드라마 촬영 중일 거고.
“네.”
-팀장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저기, 어후. 여기 지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지는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에요?”
-재이가 새벽부터 세트장에 스탠바이 중인데요. 딱 두 씬이라 원래는 9시 전에 다 끝나는 거였거든요. 근데 지금 계속 미뤄지고 있어서요, 오후에 녹화 있어서 시간 맞추려면 두 시간 안엔 끝나야 하는데······.
“촬영이 왜 미뤄지고 있는데요?”
-감독님하고 이재우씨하고 문제가 좀 있나 봐요.
타이틀롤 주인공과 깐깐한 감독 사이의 신경전이라.
뭐, 흔해 빠진 일이긴 한데.
-지금 현장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다음 일정 때문에 먼저 가봐야 한다고 말을 꺼내도 괜찮을지······ 지금 재이보다 연차 훨씬 높은 다른 배우들도 뒤에 스케줄 줄줄이 취소하고 벌서는 중이라서요.
시간을 보고, 겉옷을 챙겼다.
“······촬영장 위치 좀 보내주세요.”
-네?
“지금 갈게요.”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중에 문자가 왔다. 인천에 있는 세트장. 이송하가 드라마를 찍을 때 지겹게 들락거린 곳이었다.
사십 분쯤 걸려서 목적지 주차장에 도착하자, 이태신 실장과 로드매니저가 보였다. 둘 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특히 이태신 실장은 대역죄를 저지르고 사약이라도 기다리는 듯한 얼굴이었다.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제 선에서 해결을 해보려고 했는데······.”
“문자로 얘기한 건요?”
“아, 여기, 사놨습니다.”
로드매니저가 재빨리 커피 캐리어와 디저트용 간식거리를 들었다.
“근데 현장 스탭이나 배우들 다 합치면 수십 명인데, 이거 몇 잔으로 될까요? 차라리 한 잔씩 다 돌리는 게······.”
“주인공도 아니고 조연, 그것도 신인이 이런 분위기에 커피 돌렸다가 무슨 눈총을 받으려고요. 줘 봐요. 감독님은 어디 계세요?”
캐리어와 디저트를 넘겨받고, 감독이 틀어박혀 있다는 대기실 쪽으로 들어갔다. 지나가며 살펴보니 스탭, 배우 할 것 없이 다들 넋 놓고 세트장에 주저앉아서 한숨만 푹푹 쉬어대고 있었다.
대기실 앞엔 이쑤시개처럼 비쩍 마른 남자가 닫힌 문에 이마를 박고 서 있었다. 시발, 시발, 시발, 입으로는 온갖 욕지거리를 쏟아내면서. 딱 봐도 조연출이었다.
“안녕하세요.”
“또 뭐······ 어?”
성가시다는 듯 대답하던 조연출이 날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어, 아, 정재이씨 때문에 오셨구나.”
조연출이 날 신기한 것 보듯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에게 커피 한 잔을 넘기며 물었다.
“분위기 안 좋다고 해서 와 봤는데, 무슨 일이에요?”
“재우씨랑 감독님이랑 붙었어요. 디렉팅 문제로 계속 마찰이 좀 있어서, 안 그래도 저거 누가 터져도 터지겠다 싶더라니. 오늘 재우씨가 미리 얘기도 없이 촬영 쨌잖아요.”
“펑크를 냈다고요?”
“매니저 말론 아프다는데. 기싸움하는 거죠, 뭐. 중간에 낀 새우들만 죽어나는 거고.”
“아.”
이거면 들을 얘긴 다 들었다. 조연출과 함께 감독 대기실 문을 슬쩍 열고 들여다보니, 감독은 느긋하게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스탭 몇 명이 주위에 달라붙어서 애를 태우는 중이었다.
“감독님, 다들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는데요.”
“이재우 왔어?”
“일단은 조연들 씬부터 찍고, 재우씨는 따로 추가 촬영해서······.”
“이재우 오기 전엔 촬영 안 해. 이재우부터 내 앞에 갖다 놔.”
감독을 달래던 여자가 콧김을 뿜었다. 간신히 참는 얼굴이었다.
“감독님, 재우씨 지금 몸살나서 링거 맞는 중이라고······.”
“지랄 똥을 싸고 있네. 내가 등신이야, 그걸 믿게? 링거 질질 끌고라도 오라 그래! 안 그러면 나도 제작비 바닥에 펑펑 뿌려 볼 거니까.”
“감독님!”
“배우님, 배우님 해주니까 버릇이 더럽게 들어가지고. 저만 드러누울 줄 알아? 나도 드러누울 줄 알아!”
완전 개판이구만.
“감독님,”
“아, 뭐!”
내 부름에 감독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고개를 홱 돌려 날 보더니, 조금 전 조연출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웃는 얼굴로 감독에게 커피 캐리어를 내밀었다.
“한잔 드세요.”
“아······ 정팀장님 왔어요?”
엉거주춤 빨대를 문 감독이 곧 험악한 얼굴로 떠들었다.
“아니, 배우 비위 맞추기 힘들어서 드라마 찍겠어요? 내가 초장에 잡고 가려고 좋게 좋게 몇 번 타일렀더니, 그거 아니꼬워서 지금 꼬장부리는 거라고. 이게 회당 억대로 받아 처먹는 배우가 할 짓이에요?”
“아니죠.”
“걔네 소속사도 문제예요. 배우가 지랄하는 거 다 받아주고 오냐오냐하니까 제가 무슨 귀족인 줄 알잖아. 하긴, 이재우가 번 돈으로 회사가 먹고 사는데 누가 걜 건드리겠어요.”
혀를 찬 감독이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이래서 차라리 큰 회사랑 일할 때가 편하다니까. W&U정도 되면 배우 발밑에 납작 엎드리진 않잖아요. 아······ 내가 원래 서지준씨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그때가 정팀장님 까다로워서 대본 들어가는 것마다 다 까인다고 곡소리 나던 때라······ 앞으론 더 말도 못 꺼내게 생겼네요.”
“감독님 작품이면 까다로울 필요가 없죠.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장 분위기도 좋은데. 그래서 신인 데리고 오디션 본 거고요.”
웃는 얼굴로 입바른 말을 던지자, 감독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리곤 커피잔을 쥐고 빨대를 잘근잘근 물어뜯는다. 적당히 얘기해도 될 타이밍인 것 같아 말을 꺼냈다.
“재이가 낮에 녹화 스케줄이 하나 있는데, 취소해야 할까요?”
“녹화를 당일에 어떻게 취소해요. 정팀장님이 또 여기까지 왔는데.”
감독이 한숨을 쉬며 조연출을 쳐다봤다.
“찍을 수 있는 것만 찍고 오늘 촬영 접자. 준비해.”
“네!”
조연출과 스텝들이 십년감수한 얼굴로 뛰쳐나갔다.
나도 이태신 실장과 함께 세트장으로 나갔다. 촬영 재개 소식에 사람들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이젠 익숙해진 시선을 무시하고 정재이에게 다가갔다.
“새벽부터 벌서느라 고생했어. ”
“혼자도 아니고 다 같이 대기했는데요.”
“다음부턴 이런 일 있으면 좀 일찍 연락해요.”
뒷말은 이태신 실장에게 건넸다. 그리고 다시 정재이를 돌아봤다.
“감독님도 대충 화 풀렸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얼굴이 영 뻣뻣한데.
“촬영하면서 따로 불편한 건 없고?”
“불편한 건 없는데······ 그냥, 다들 되게 쳐다봐요. 그리고 선배님들이나 감독님, 다른 스탭분들도 팀장님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시고요.”
“뭘?”
“이거 얼마나 잘될 것 같은지······.”
정재이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달싹였다.
“팀장님한테 뭐 들은 거 있냐고요.”
아.
이 정도면 걸어 다니는 금덩어리 정도가 아닌데.
우리 집에 금광이 있는데, 지금?
어수선한 마음을 누르고 있을 때.
드륵.
문자가 도착했다.
-퇴근 후에 술 한잔할까?
백한성 대표였다.
-내 집에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