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80)
탑 매니지먼트 281화
우리 집에 금송아지가 (3)
저녁에 백한성 대표와 약속을 잡아놓고, 오후엔 예능프로그램 제작사 대표와 만났다.
분명 미팅을 잡을 땐 임주원 얘길 하기로 했었는데.
“······심사위원이요? 제가?”
이런 헛소리를 들을 줄 알았으면 그냥 바쁘다고 쨀걸 그랬지.
“네. 저희가 아이돌 오디션 프로를 기획 중인데, 정팀장님께 꼭, 심사위원 한자리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대표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정말 진심인 모양이다. 아니었으면 했는데.
“그런 일이라면 신인 개발팀이나 A&R팀을 찾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매니지먼트를 하는 사람이고, 신인 아이돌을 뽑는 거라면 더 적합한 전문가들이 많을 텐데요.”
“전문가요?”
“네. 족피디님이라고, 프로듀서 쪽에 방송 좋아하시는 분도 있고. 신인 개발팀에도 능력 있는 트레이너 선생님들이나······.”
“그런데 그분들은 정선우 팀장님만큼 안 유명하잖아요?”
“아.”
“희소성도 없고. 능력 있는 프로듀서나 트레이너야 대형 엔터사마다 있겠지만, 정팀장님같은 캐릭터는 어디 가서 또 찾겠어요?”
제대로 된 전문가보다는 방송에 적합한 사람을 찾겠다는.
그냥 개소리였다.
“심사위원이라는 게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아무나 해요.”
던지듯 말한 대표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정팀장님이 아무나라는 건 아니고. 요즘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애들이 심사한답시고 앉아있잖아요. 게다가 연예인 아닌 애들을 데려다 앉혀놓으니까 비방용 얼굴이 너무 많아.”
역시 개소리였다.
“아니, 카메라 앞에 얼굴 내밀 거면 관리를 좀······ 아, 정팀장님은 괜찮아요. 정팀장님 정도면 완전 방송용이지. 충분히 전문적이고.”
여전히 개소리였다.
대표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애들 뽑아서 데뷔시킬 때 매니지먼트는 정팀장님이 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예 그 그룹만 담당하는 레이블을 하나 만들고, 정팀장님이 거기 공동대표로 들어가면 어때요?”
“······.”
일어날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였다.
노크와 함께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정팀장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입니다.”
GTBN 미디어사업부 본부장. 최교원.
저번에 백한성 대표의 소개로 만나 화기애애하게 딤섬을 먹었었던 그 사람이다. 그 뒤로 W&U와 GTBN이 제대로 척지고 관계가 경색됐으니, 지금도 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대표님. 우리 둘이 잠깐 얘기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천천히 얘기들 나누세요.”
제작사 대표가 룸을 나가더니, 맞은편 자리를 본부장이 채운다.
무슨 비밀접선도 아니고.
“저한테 용건이 있었으면 그냥 전화를 하시죠.”
“용건은 있는데, 전화로 할 얘긴 아니라서.”
“그럼 따로 약속을 잡으시던가.”
“백한성 눈치 보느라 못 나올 것 같아서요.”
빙긋이 웃은 본부장이 본격적으로 말했다.
“정팀장, 우리가 엔터사랑 제작사 몇 개를 인수해서 본격적으로 매니지먼트 겸 제작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에요. 거기 본부장으로 오는 거 어때요?”
아.
그냥 아까 일어날걸.
“백한성한테 W&U 지분 받았죠? 조건이 어떤지 모르겠네, 지금 퇴사하면 그거 다 토해내고 나와야 하나?”
“······.”
“그럼, 정팀장이 손해 보는 만큼 우리가 조건에 더 신경 쓸게요. 기본급이든, 상여든, 정팀장 섭섭하지 않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비즈니스 앞에서 친구고 뭐고 없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왜? W&U에서도 우리 사람 빼갔는데, 우리도 그쪽 사람 빼 올 수 있는 거지. 좀 껄끄러워요? 혹시 비즈니스에서 모럴 찾는 편인가? 백한성이 데리고 다니는 친구가 그런 스타일일 줄은 몰랐네.”
뭐 신기한 거라도 보는 것처럼,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면 혹시, 못 나오는 상황인가? 뭐 약점 잡힌 거 있어요?”
“······아뇨. 그런 거 없습니다.”
“그래, 걔가 약점을 들고 있더라도, 깡패처럼 그거 흔들어 대면서 협박이나 하고 그럴 스타일은 아니거든. 그냥 저절로 알게 되는 거지.”
혼자 떠들다가 혼자 웃은 본부장이 다시 말했다.
“곤란하네, 정말. 나도 사실 회사에서 까라니까 까는 거지, 독립해서 내 회사 차렸으면 어지간해선 걔 안 건드릴 거예요. 안 그러고 싶어. 그런데 어쨌든 지금은 GTBN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생각 없습니다.”
거절하고, 일어나려던 때였다.
“생각 없어요? 월드아트 픽처스에서도 제안이 갔다고 들었는데.”
소문 빠르네.
내 표정에서 속마음을 읽었는지 본부장이 의뭉스럽게 웃었다.
“이런 일은 당사자가 입 다물어도 얘기가 안 퍼질 수가 없죠. 월드아트 픽처스에 임원이 몇 명인데. 라운딩 한번 돌면 이 얘기, 저 얘기······ 아마 백한성도 얘기 들었을걸요?”
그러더니 다시 웃기 시작한다.
“오늘 일까지 귀에 들어가면 걔도 좀, 빡이 치겠다. 그죠?”
본부장씩이나 하는 양반이 단어 선택하곤.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 그러라고 만든 자립니까?”
“겸사겸사. 아, 제의는 진짜예요. 요즘 백한성이랑 사이도 좀 애매하다며. 만약 완전히 찢어지면 진짜 우리 쪽도 생각해 봐요. 지원도 빵빵하게 해줄 거고, 간섭 안 받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닐 것 같은데.”
“네?”
일단 매니지먼트사가 신설되면 입김 센 작자들이 대표니, 부대표니, 이사진을 꾸리며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들어와 앉을 테고. 자칫하면 일하는 것보다 사내 정치에 신경이 더 팔리게 될 것 같은데.
라는 마음의 소리를 표정에 띄웠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일어났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첫사랑입니다가 예상보다 시청률이 더 잘 나오는 중이라, 요즘 많이 바쁘거든요.”
“······그래요. 잘 나오더라.”
“GTBN에서 깔끔하게 넘겨준 덕분에 IP가 저희 손에 있어서, 앞으로 돈 많이 벌 것 같아요.”
“······.”
“감사합니다.”
웃는 얼굴로 인사를 던지고 미팅룸을 나섰다.
***
“개나 소나 정선우, 정선우, 우리나라에 매니저가 걔밖에 없냐?”
조병환이 술잔을 비우며 중얼거렸다.
옆쪽에서 잔에 새로 얼음을 넣던 남자가 대꾸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매니저잖아.”
“염병, 제일 싸가지없는 매니저겠지.”
“왜? 난 정선우 되게 얌전하게 논다고 생각했는데.”
“얌전?”
“그렇잖아.”
표정을 확 구긴 조병환을 무시하며 그가 어깨를 들썩였다.
“야, 솔직히 내가 정선우만 한 나이에 그만한 커리어 쌓았으면, 콧대 높아져서 일반 집에선 살지도 못해. 돔구장 같은 데서 살아야지.”
“무슨······.”
“진짜로. 일할 때도 기분 조금만 잡치면 윗대가리한테 저 새낀 무능한 게 존나 나대네? 능력 있으면 네가 해보든가, 내 커리어 안 보임? 이러고 지랄하다가 인간관계 박살이나 냈겠지.”
혼신의 연기를 펼친 남자가 낄낄거렸다.
“연예인도 뜨기만 하면 바로 귀족으로 신분 상승한 것처럼 거들먹대는 애들 얼마나 많은데. 정선우는 매년, 아니 매 분기를 커리어하이 찍고 또 하이, 하이, 하이, 씨발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야?”
“······.”
그가 표정이 점점 썩어가는 조병환을 슥 보곤 계속 말했다.
“어쨌든 정선우가 신인일 땐 성격이 어땠나 몰라도, 지금 보이는 걸로 봐선 그렇게까지 싸가지없는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너 지금 나 멕이냐?”
“뭔 소리야, 또.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술맛 떨어지게······.”
“알았어, 알았어. 마셔.”
다시 술잔을 든 조병환 실장이 힐끔 문 쪽을 바라봤다.
“근데 뭐 여기까지 와서 우리 둘이 마시냐?”
“오래간만에 보는데 우리끼리 먼저 얘기나 하자고. 듣는 귀 많아지면 말조심해야 해서 불편하잖아.”
“뭐 그러든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조병환이 입맛을 다셨다. 시답잖은 신변잡기를 주고받는 동안 술잔이 연거푸 비워졌다. 적당히 말을 돌리던 남자가 다시 화제를 몰아갔다.
“첫사랑입니다는 앞뒤로 광고가 월드컵 수준으로 붙던데. 이거 주인공들 몸값도 헐값이라 제작비도 얼마 안 들었을 거 아냐. 회수 다 끝났지? 앞으로 돈 끌어모을 일만 남았네.”
부러움을 잔뜩 담은 목소리가 조병환 실장을 찔러댔다.
“정선우는 상여금 얼마나 받냐? 한 십억쯤 받나?”
“씨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미안, 미안. 아, 너 전에 얘기했던 건 어떻게 됐어?”
“전에 뭐?”
“손채영 데리고 회사를 나가니 어쩌니 했었잖아.”
이번에야말로 술맛이 뚝 떨어진 듯, 조병환이 술잔을 부술 것처럼 내려놨다.
“왜? 나가리야?”
“채영이가 지금 회사에 얽힌 게 많아서······ 좀 그러네, 상황이.”
“아······ 이직 안 하게?”
“내 배우 중에 채영이가 제일 비싼 앤데, 걔를 놓고 가면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그리고 요즘 채영이 멘탈 나가서 내가 딱 붙어있어야지, 눈 떼면 사고 난다.”
남자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손채영 멘탈이 왜? 무슨 일인데?”
“얼마 전에 이송하랑······ 이송하 걔도 정선우 옆에서 나쁜 물만 들어가지고, 어린 게 똑같이 싸가지가······.”
“이송하? 하긴 걔 좀 독해 보이긴 하더라. 근데 둘이 뭐 있어?”
조병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가 그렇게 궁금해? 너 밖에서 입조심해라.”
“그냥 직업병이야, 직업병. 야, 나도 너희 대표님 무서워.”
남자가 실실 웃으며 다시 조병환 실장의 잔에 술을 따라 밀었다.
“그래서, 이송하랑 손채영이랑 뭐 어쨌는데?”
*
백한성 대표는 오늘따라 유난히 느슨한 분위기였다.
미색 스웨터가 그를 한층 더 부드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속이 시커멓다는 걸 빤히 아는데도 눈이 현혹된다.
“한 잔 더 줄까?”
“네, 감사합니다.”
사실 꽤 거북한 자리가 될 줄 알았다.
그래서 미리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웬걸.
최근 강설량부터 렛잇스노우의 현황, 다음주엔 기온이 더 떨어진다는데 4층 사무실은 따듯한지 따위의 화제를 따라가면서 술도 몇 잔 받아 마시다 보니, 꼿꼿하던 신경줄이 국수 면발처럼 흐느적거린다.
이것도 재주다.
인상 때문에 손해를 보고 사는 입장에선, 솔직히 배우고 싶었다.
“얼마 후에 매니지먼트 사업본부장 자리가 공석이 될 거야.”
“본부장님이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그렇게 밀크티를 물처럼 마셔대더니, 결국 건강이 악화됐나?
아니면 설마.
날 올려주겠다고 본부장을 끄집어 내리겠다는 건 아니겠지?
“미국에 갈 거라서.”
미국?
“그쪽 사업을 다시 해볼 생각인데, 거기 사장으로 갈 거거든.”
“미국 사업을 다시 한다고요?”
그렇게 말아먹고?
사업 다 접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백한성 대표가 잔을 천천히 두드렸다.
“그게 내 꿈이었거든.”
“······일하면서 낭만 찾는 건 안 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요.”
“그랬지.”
그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꿈이라는 건······ 어떻게 안 되더라고.”
“······.”
“마침 정팀장 덕분에 회사에 좋은 기회도 생겼으니까. 지금이 괜찮은 타이밍 같더라고. 그래서 앞으론 정팀장이 매니지먼트 사업을 다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백한성 대표가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정팀장이 직접, 미국으로 가든가.”
······내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