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88)
탑 매니지먼트 289화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5)
“뭐가요?”
눅눅해진 나초를 씹으며 되물었다.
임주원이 조급하게 발을 굴렀다.
“지금 마,”
입 밖으로 꺼내놓기도 겁나는지, 그의 목소리가 확 낮아진다.
“······약 사고 터졌다는데, 이거 뭐냐고요.”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전화는 주원씨가 받아놓고.”
“아니, 어제 최주완 파티에, 나 그거 갔으면 지금쯤······.”
중얼대던 그가 소스라치듯 어깨를 움츠렸다.
“팀장님 이거 터질 거 알았어요?”
“······.”
“알았구나, 그래서 새벽에 나한테 약 하냐고 물어본 거······!”
“······.”
“잠깐, 우리 이거 때문에 어제 하루 종일 영화 본 거예요?!”
내가 대답할 틈도 없었다.
임주원이 저 혼자 묻고 저 혼자 떠들며 연달아 헛숨을 삼켰다.
저러다 숨넘어갈 기세였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빛이 점점 형형해진다. 임주원뿐만 아니라 남조윤과 서지준, 방금 막 잠이 깨서 어리둥절한 송인호까지. 모든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시선에도 온도가 있다면 지금쯤 살이 지져졌겠는데.
익숙한 벨 소리가 적막을 깼다.
핸드폰을 꺼내 보니 홍보팀 박 팀장에게서 온 전화였다.
“잠깐만요······ 네, 팀장님.”
-자기, 얘기 들었어?
박팀장이 득달같이 물어왔다.
“그,”
-들었구나. 그래, 당연히 들었겠지.
그러곤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가 이 일에 얼마나 연관이 돼 있는진 모르겠는데,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요.”
-그래. 그런 걸로 해야 돼. 발 뺄 거 있으면 얼른 빼고,
“그런 걸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 연관도 없어요.”
-오케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모르는 것 같은데.
한숨과 섞인,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일이 좀······ 어쨌든 우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자. 멀리.
“그래야죠.”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암막 커튼을 슬쩍 걷어보니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이렇게 맑은데도 불구하고, 저 먼 곳에서 먹구름이 밀려오는 듯했다.
······앞으로 비가 얼마나 쏟아질지 모르겠네.
뭐.
장마가 오든, 천둥 번개를 동반한 태풍이 올라오든.
상관없었다.
내가 있는 곳은 멀쩡할 테니까.
*
[연예계 마약 파문······ 유명 아이돌 멤버 A씨 입건]시작은 이니셜이었다.
연예인이 엮이면 무조건 ‘유명’ 타이틀을 붙여 클릭을 유도하는 게 그간 연예매체의 행태라, 이때까지만 해도 세상은 조용했다.
아이돌 팬들이 모인 커뮤니티나 SNS에서만 누구 아니냐며 부추기는 말이 나오는 정도였다.
그리고 고작 반나절 만에,
[아이돌 ‘원프레임’ 멤버 최주완, 마약 혐의로 입건]실명 기사가 터졌다.
그 뒤론 뭐. 난장판이었다.
[최주완 파티에서 마약 의혹··· 참석자들 수사선상에 올라] [최주완 마약 게이트에 연예계 발칵, “전 아니에요”]-파티 참석자 누구누군지 다 나옴?
└누가 명단 정리한 거 있었는데
└누가 맞다, 누군 아니다, 댓글 거의 천 개 달면서 싸워서 삭제됨
-일단 황민우는 확실한 듯
└황민우 해명 글 올렸던데? 초대받아서 파티만 참석한 거고 마약은 절대 안 했다고
└그걸 누가 믿어ㅋ 존나 친분 과시할 땐 언제고
-근데 임주원은 진짜 아닌 거 확실함?
└얘는 확실함, 그날 하루 종일 동선이 실시간으로 떴잖아
└영화 보고 새벽에 파티 갔을 수도 있는 거 아냐?
└정선우팀 그 멤버 그대로 새벽에 남조윤 집에 가서 드라마 봤대 그 근처에서 우르르 편의점 들렀다 간 거 인증샷도 올라옴. 임주원이 남조윤 집 거실에서 사진 찍은 거 SNS에 올린 것도 있음
└임주원 팬이 그날 임주원 동선 표로 만들어서 올렸어, 확인해 봐ㅋㅋㅋㅋㅋ
-정선우가 배우들 데리고 온종일 영화관 전전했다길래 뭔 일인가 했는데······ 터질 걸 알고 그런 건가?
└빼박이지
*
그야말로 지뢰밭이었다. 매일 뭔가가 터져나갔다.
누구 하나가 지뢰를 밟으면 그 주위가 다 휘말려 들어간다.
활동 중인 아이돌 멤버가 걸려 나오니 팀 활동에 제동이 걸렸고, 배우는 영화든 드라마든 관련된 모든 게 멈췄다.
이미 촬영까지 다 마친 예능프로의 경우 논란이 일어난 게스트를 통째로 들어내느라 피디들이 편집실 안에서 쌍욕을 했다.
휘말린 이들은 어떻게든 폭발의 잔해를 수습하고 있었고, 아직 무사한 사람들은 부디 내 주변엔 지뢰 밟는 놈이 없기만을 기도하며 오들오들 떨었다.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은 물론 광고와 투자, 홍보를 비롯한 관련 산업 전체가 난장판이었다.
며칠째 출근할 때마다 아침 인사가,
“자기, 들었어?”
이거였다.
홍보팀 박팀장이 몹시 흥분한 얼굴로 달려왔다.
늘 세파에 찌들어 까칠까칠하던 낯에 모처럼 생기가 돈다.
“이번엔 또 뭔데요.”
“첩보 제작 엎어졌어.”
“······첩보요?”
제작이 엎어졌다고?
“어쩌다가?”
“투자철회 때문에.”
투톱 주인공 모두 이번 사고하곤 엮인 게 없을 텐데.
박팀장이 의미심장한 투로 말했다.
“소금 망하고, 첩보 투자자들 분위기 계속 안 좋았잖아. 안 그래도 자기 블랙리스트 때문에 찝찝해하던 사람들 많았는데, 이번에도 자기가 귀신같이 사고 피하는 거 보고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얼른 탈출 버튼 누른 것 같아. 말하자면 첩보는,”
목소리에 열기가 번졌다.
날 보는 눈빛은 뭔지 모를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자기가 엎은 거지.”
맞은편 박팀장의 상체가 점점 내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러다 테이블을 넘어올 기세였다.
“혹시 이거, 다 자기가 계획한 거야?”
“아니,”
“대체 언제부터 계획한 거야?”
아니라고.
***
눈을 떴을 때.
이송하는 급히 일어나지 않고 컨디션을 점검했다.
먹먹한 어둠 속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시트 밖으로 꺼낸 손을 쥐었다 펴 보았다. 그리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무당의 첫 촬영 날은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시작됐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거실에는 무드등이 켜져 있었다.
딱히 요리 실력이 좋은 멤버가 없어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도자기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뭐해?”
싱크대 앞에 서 있던 임서영이 화들짝 놀라서 돌아봤다.
“깼어? 컨디션은 어때. 괜찮은 거 같아?”
“괜찮아.”
“어디 결리는 데 없고? 어제 마사지 받을 걸 그랬나? 날이 날인데 어제는 안무 연습을 쉬었어야 했나?”
긴장한 티가 나는 임서영이 주절주절 말하다가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삼초를 참은 후에 다시 말했다.
“너 샵에 언제 가? 시간 아직 넉넉하지?”
“어. 7시에 오빠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
“알았어. 그럼 내가 지금 국 데울 테니까, 일단 씻고 나와.”
임서영이 이송하의 등을 떠밀었다. 잠시 후 이송하가 욕실에서 다시 나왔을 때, 거실 소파에는 보풀이 잔뜩 일어난 뽀글이 털 티셔츠를 입은 이태희가 잠이 덜 깬 얼굴로 앉아있었다.
주방에선 달큼한 갈비찜 냄새가 진동했다.
다른 쪽 냄비에는 곰탕이 끓고 있었다.
“뭐야? 배달시켰어?”
이송하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물었다. 간장양념이 배어 촉촉한 고깃살에 동글동글하게 썰린 감자와 당근이 어우러진 갈비찜이나. 뽀얀 국물 위로 소고기와 후추, 파가 올라간 곰탕은 넵튠 멤버들의 솜씨라기엔 지나치게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아니. 갈비찜은 태희 언니네 어머니가 압력솥에 담아서 보내주신 거고, 곰탕은 우리 엄마가 보낸 거. 너 알지. 우리 엄마 곰탕 진짜 예술이야. 머리 말리고 빨리 앉아.”
드라이기로 떨어지는 물방울만 대충 말린 이송하가 자리에 앉았다.
목을 이쪽저쪽으로 꺾으며 걸어온 이태희가 맞은편 의자를 빼고 털썩 앉았다. 그 옆자리를 차지한 임서영이 이송하 앞으로 갈비찜을 밀었다.
“많이 먹어. 체력 달리면 안 되니까.”
“나 혼자 먹으라고?”
“우리는 너 보내고 한숨 더 자고 일어나서 먹을 거야. 지금 뭐 먹으면 잠 못 자. 숟가락 들어, 빨리.”
시키는 대로 숟가락을 든 이송하가 곰탕 그릇에 잡아끌며 물었다.
“······왜 이래?”
“뭐가? 아, 물 줄까? 보리차 줄까?”
“곰탕 먹다 체할 거 같아.”
“거짓말하지 마, 너 안 체하잖아.”
코웃음을 친 임서영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짓고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얼른 정수기에서 미지근한 물 세 잔을 뽑고 보리차 티백을 골고루 넣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하루치의 기력을 다 빨린 것처럼 보이는 이태희가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네가 일찍 출근해야 쟤가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으니까 얼른 먹어.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고.”
“잘 먹겠습니다.”
이송하가 본격적으로 숟가락을 움직였다.
배를 든든하게 채웠을 즈음, 현관문이 열렸다. 운동복을 입은 엘제이가 찬 기운을 잔뜩 묻히고 들어왔다.
임서영이 호들갑을 떨었다.
“야, 빨리 문 닫아, 빨리. 얘 방금 씻고 나와서 아직 머리도 덜 말랐어. 찬바람 들어와서 감기 걸리면 어떡해.”
“······뭐래. 이송하, 이거 먹고 가라.”
엘제이가 비닐봉지를 식탁에 툭 올려놨다.
임서영이 대신 확인했다.
“뭔데. 다 딸기우유야? 너는 꼭 골라도······이런 날 유제품 먹고 배탈이라도 나면 어떡해.”
“얘가 우유 먹고 배탈 나는 거 봤어?”
“못 봤지만, 어쨌든 매뉴얼이 있는데 주의할 건 주의해야지. 후식은 내가 호두랑 다크초콜릿 준비해 놨어. 집중력도 좋아지고 운동능력도 향상된대.”
“뭔 유난이야. 얘 오늘 수능 보냐?”
“아니? 전쟁이지.”
임서영의 눈이 매섭게 반짝였다.
“손채영도 오늘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올 텐데, 우리도 기를 모아야 할 거 아냐. 첫 싸움에서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고. 그 기세가 앞으로 쭉 가는 거야!”
“······일리가, 없진 않네.”
빈자리에 털썩 앉은 엘제이가 딸기우유에 빨대를 꽂아 이송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훈수를 뒀다.
“손채영 쪽에서 먼저 빡치게 하면 너도 참지 말고 쳐. 걔 비리비리해서 맷집도 별로 안 좋아 보이더라.”
“그래!”
임서영이 기세등등하게 식탁을 쳤다.
“손채영한테 4대 1로 붙기 싫으면 짜져 있으라고 해.”
“진짜 붙으면 네가 1인분을 하겠냐?”
“야, 원래 머릿수가 중요한 거야. 그 자체로 압박이 되잖아!”
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금방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이송하는 딸기우유를 빨며 지켜봤다. 입 안이 달았다.
언제부턴가 이송하의 입 끝이 느슨하게 휘어져 올라갔다.
좋은 아침이었다.
***
출근 전. 거울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도 동요하지 말자고.
넵튠 숙소에 도착해서 이송하를 픽업하는데, 임서영이 신발장 앞까지 쫓아 나오며 당부했다.
“야, 잊어버리지 마. 손채영이 못되게 굴면 곧바로 우리한테 지원 요청해. 스탠바이하고 있을 테니까.”
“······스탠바이는 무슨, 너흰 안무 연습하러 가야지.”
“회사에서 스탠바이하면 되죠. 오빠도 미리 알아두세요, 손채영이 또 시비 걸면 이번엔 우리 4대 1로 붙기로 했어요. 아니지, 손채영 쪽에도 지원군이 있을 수도 있지. 그래도 우리가 쪽수가 많겠죠?”
임서영이 전투적으로 말했다.
문득 우리 집 쌍둥이들이 떠오른다. 한 명을 때리면 어디선가 세 명이 튀어나와서 무조건 4대1이 되기 때문에, 유치원 때부터 우리 애들은 웬만해선 시비 걸리는 일이 없었다.
“여차하면 한판 하는 거지 뭐! 뒷수습은 선우 오빠가 해줄 거야.”
“내가?”
······그래 뭐.
어떤 사고든, 수습하지 못할 일은 없으니까.
······없겠지?
***
“괜찮겠죠?”
무당 촬영 준비가 한창인 현장.
조연출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신수연 피디가 펜 자국으로 너저분한 대본을 휙휙 넘기며 말했다.
“괜찮다니까.”
“피디님은 괜찮으시겠죠. 피디님이니까.”
조연출이 침울하게 말했다.
“제가 안 괜찮겠죠. 조연출 나부랭이니까.”
앞으로 촬영 내내 배우들과 관련된 모든 뒤치다꺼리를 도맡을 사람이 바로 조연출이었다. 배우들 사이에 마찰이 생기면 바쁜 피디를 대신해 양쪽으로 뛰어다니며 위장에 구멍이 날 사람도 조연출이었다.
신수연 피디가 대본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내가 해결책을 알려줄게.”
“해결책이요?”
“이송하가 핸들링이 안 되면 정선우 팀장님한테 매달려.”
“······그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서지준이 핸들링이 안 돼도 정선우 팀장님한테 매달려.”
조연출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뭐. 그쪽이 담당 팀장이니까.”
“마지막. 손채영이 핸들링이 안 돼도 정선우 팀장님한테 매달려.”
“왜요?”
의아한 목소리였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외워. 너 오늘 날씨 어디다 물어보냐?”
“기상청이요?”
“그래. 배우들 사고 나면 일단 정선우 팀장님한테 먼저 연락해. 내가 볼 때 거기가 직빵이야.”
신수연 피디가 덧붙였다.
“누구한테 먼저 연락하라고?”
“정선우 팀장님.”
“그래. 가, 빨리.”
“······네?”
멍한 조연출에게, 신수연 피디가 재촉했다.
“가서 오늘 날씨 어떤지 물어보고 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