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90)
탑 매니지먼트 291화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7)
촬영 현장은 으스스했다.
떠도는 공기마저 흉악한 게, 진짜 귀신이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였다.
이송하와 손채영에게 칼부림 씬을 줬을 때부터 판이 깔린 셈인데, 거기다 신수연 피디는 디렉팅으로 부추기기까지 했으니.
서로 치고받는 정도가 얼마나 과격한지, 진짜 유혈사태라도 나는 거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이봉준 실장은 질린 얼굴로 구급차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고 중얼거렸다.
아는 사람들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아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몰입을 넘어서 진짜 신들린 거 같은데. 내가 다 숨을 못 쉬겠네.”
“와, 난 아까 애드립인가 싶어서 대본 다시 확인했잖아.”
“저러다 씬 하나 찍고 탈진하는 거 아냐?”
······뭐.
이유야 어쨌든 결과물은 찬란했다.
신수연 피디는 어느 순간부턴 디렉팅도 안 하고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둘이 기운이 상극입니다.”
누군가 불쑥 말했다.
돌아본 이봉준 실장이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나를 붙들었다.
희끗희끗한 쪽진머리에 소복 같은 흰 한복을 입은 중년 여자. 신수연 피디가 드라마에 나오는 경문이나 굿 따위의 자문을 위해 오랜 설득 끝에 모셔 왔다는 무속인이었다.
듣기론 돈다발을 들고 찾아가도 예약 잡기가 쉽지 않은 분이라던데.
어디 방송국 국장도 단골이고.
그녀가 이송하와 손채영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길흉화복이 충돌하고 팔자가 순탄치 못해서, 가까이 있어 봐야 서로 좋은 꼴 볼 수가 없겠어요.”
“저 둘이요? 상극이라고요?”
언제 기겁했냐는 듯, 이봉준 실장이 혹한 얼굴로 다가갔다.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게 더 나을 텐데, 어쩌다 묶였을까.”
“어쩐지······ 선생님, 혹시 우리 지준이는······.”
“잠깐.”
무속인이 손을 들었다.
이봉준은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되려 내 쪽을 바라본다.
“따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저요?”
“네. 여기 자문하겠다고 온 것도, 사실은 그쪽 때문입니다. 제가 모시는 분께서 뱀이 허물을 다 벗기 전에 꼭 한번 만나보라고 하셨거든요.”
옆에서 이봉준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다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힐긋거리고 있던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쑥 빼고 쳐다보는 중이었다. 마치 무속인에게 길거리 캐스팅이라도 당한 기분이다.
기분이 아주, 몹시, 찜찜했다.
“일단······ 가시죠.”
촬영이 잠시 멈춘 틈을 타서 무속인과 자리를 옮겼다.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 죽겠다는 시선들이 질질 쫓아온다.
촬영 장비가 실린 탑차 옆에서 걸음을 멈추자, 무속인이 지그시 나를 뜯어봤다. 내 어깨 위쪽과 머리 위에서 유난히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뒷목으로 소름이 올라온다.
······진짜 뭐가 보이나?
미래예지 능력은 무속신앙보단 SF 쪽일 줄 알았는데.
설마, 정말로 나한테 귀신 붙은 건 아니겠지.
묘하게 무거워진 듯한 어깨를 슬쩍 쳐다봤을 때였다.
“진짜 뭐가 있어요?”
무속인이 확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신을 받으셨어? 지금도 여기 어디 계세요?”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안되지.
떨떠름하게 쳐다봤더니, 무속인이 더 가까이 붙었다.
“잘될 거, 안될 거, 어떻게 그렇게 확실하게 찍어요? 뭐 비법이 있나? 요즘 이쪽에서 예약하고 오는 손님들이 다 정선우처럼 찍어달라는데, 내가 아주 할 말이 궁해서 죽겄어.”
목소리가 훅 낮아진다.
“맨입으로 알려달라는 거 아니에요. 나도 여의도에 신당 차린 지 이십 년째고 상도덕이 있는 사람인데. 우리 이참에 조용히 MOU를 맺어가지고, 같이 장사 한번 해봅시다.”
“······.”
“7대3.”
어이가 없는 와중에도 궁금했다,
누가 7이지?
*
이튿날 회사에 출근했을 때. 내 이미지는 또 한차례 달라졌다.
이젠 무당집에 발만 담근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반신욕을 하는 상태였다. 내 사무실에 제단 차리고 촛불을 켜놔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한편으론 편하기도 했다.
깨끗하게 다 터져버린 블랙리스트와 최주완 마약 사건 탓에, 요 며칠 어떻게 알았냐고 캐물어 대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난 상태였는데.
안목이 높다, 감이 좋다, 운이 좋다.
지금까진 이런 걸로 어떻게 둘러댔는데 이젠 그것도 잘 안 먹혀서, 나야말로 대답이 궁하던 참이었는데.
이젠 캐묻는 사람이 좀 줄어들었다.
대신 ‘넌 말하지 않지만 나는 알고 있다’는 눈으로 쳐다보긴 하지만.
그리고 가끔 이상한 손님이 방문할 때도 있지만.
“그······ 정팀장.”
경영지원본부장이 팀장실 문을 열고 우물쭈물 들어왔다.
그리곤 곱게 접은 종이를 내민다.
“막내아들 놈이랑 며느릿감 사주팔잔데, 한번 봐줄 수 있을까······?”
“······.”
“저번에 정팀장이 엘리베이터에서, 잘 맞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했던 말이 영 신경 쓰여서. 내가 그때 정팀장 말을 일부러 무시한 건 아닌데, 혹시라도 기분 상했으면 이거 받고 맘 풀어.”
그러면서 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낸다.
뭐가 들었는진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그거 다시 집어넣으시고요.”
그래, 뭐.
지난번에 미래를 본 뒤로 좀 찝찝하긴 했다.
둘이 천생연분이고, 또 연애할 땐 다 좋았다가 결혼하고 나서야 안 맞는 걸 알았다고 하니.
“결혼하더라도 혼인신고는 최소 3개월 후에 하셨으면 좋겠네요.”
“정팀장······!”
그가 매달리듯 내 손을 붙잡았다.
감격한 얼굴로 어떻게든 봉투를 떠넘기려는 걸 겨우 말렸다.
그리고 밖에서 떠들지 말라고 단단히 입막음까지 하고 내보냈다.
내가 진짜 신내림 받은 사람도 아니고. 이번이야 미래예지에서 확실히 본 거니까 한마디 거들 수 있다 쳐도, 너 나 할 것 없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곤란하니까.
“······.”
책상에 덩그러니 남은 사주팔자 메모를 내려봤다.
내 이미지 이대로 괜찮은가 싶긴 한데.
······나중에 잘 수습하면 되겠지.
***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덟 잔, 캐리어에 좀 담아주세요.”
주문하고 결제를 마친 이관우가 막 돌아섰을 때였다.
그가 커피숍에 들어왔을 때부터 힐끔힐끔 쳐다보던 이들이 결국 엉덩이를 떼고 등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PBS 방송사 코 앞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라 연예계 종사자들이 발에 치이는 곳이었지만, 이 사람들은 누가 봐도 매니저였다.
염색할 때가 지나 머리가 반은 노랗고 반은 까만 남자가 말했다.
“이관우씨 맞죠? 저번에 인사했었는데, 최기형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이관우의 머릿속 회로가 바쁘게 돌았지만, 떠오르는 정보가 없었다.
방송사나 촬영장에 들르면 친한 척하는 사람, 아는 척하는 사람, 초면인 사람을 통틀어 인사만 수백 번을 한다.
특히 ‘W&U 정선우팀’이라는 간판이 붙은 그에게는 접근하는 사람이 어마어마했다.
기억하는 얼굴만큼이나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도 많았다.
다행히 이번엔 본인이 추가 정보를 꺼냈다.
“KS엔터 데뷔조 팀에 있다가 엎어지는 바람에, 요즘은 잠깐 에버페버 애들 보고 있어요.”
“아, 신곡 잘 듣고 있습니다. 되게 좋던데요.”
“넵튠도, 오늘 1등 미리 축하드립니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립서비스가 끝나기 무섭게 최기형이 말했다.
“근데 혹시, W&U에 사람 안 뽑아요?”
“네?”
“아는 동생이 지금 일자리 찾고 있어서 좀 알아봐 주는 중이거든요. 신인 아니고 3년 찬데 혹시 W&U에 경력직 필요한 팀 있으면 이력서라도 보내볼 수 있을까 싶어서.”
이관우가 난감한 표정으로 손에 든 영수증을 문질렀다.
주로 인맥으로 사람을 구하던 업계라, 그도 이런 문의를 한두 번 받은 게 아니었다. 그때마다 이력서를 받았으면 벌써 메일함이 터져나갔을 것이다.
“당장은 구하는 팀이 없을 거예요, 아마.”
“나중에라도 구하면 연락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매니저가 얼른 명함을 내밀었다. 주위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도 얼른 주머니를 뒤져 한 장씩 보탰다.
“혹시 정선우 팀장님 팀에 빈자리 생기면 꼭, 꼭 좀 연락주세요.”
“로드라도 좋으니까 거기 자리 나면 내가 가고 싶다, 내가.”
“전 연차랑 월급 깎고라도 들어갈게요. 진짜로.”
곧 이관우의 손에는 명함 다섯 장이 남았다.
때마침 주문한 커피가 나와서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데, 최기형을 비롯한 무리가 어차피 방송사에 들어가야 한다며 따라나섰다. 이관우는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 너머로 한숨을 삼켰다.
“관우씨는 W&U에서 일 시작했죠? 부럽다, 진짜.”
“시작부터 정선우 팀장님이랑 쭉 같이 한 거 아니에요?”
“정선우 팀장님 밑에서 일하면 어때요? 내가 이렇다 저렇다 썰은 많이 들었는데, 워낙 얘기들이 도시 전설 같아서.”
“피터팬 구성민 대표님이, 정팀장님 스타일이 백한성 대표님 옛날 스타일이랑 좀 비슷하다고 했다던데, 그 스타일이 뭔 스타일인지 내가 알 수가 있나.”
이관우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듣다가 매뉴얼 같은 답을 했다.
설사 불편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밖에다 얘기할 리가 없었다.
이관우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는 실제로 현재 직장환경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일은 늘 빡센 편이지만,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적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술자리에 나갈 때마다 수많은 업계 진상과 인간 말종을 소재로 한 뒷말을 얻어듣는데, 매니저 일을 W&U에서 시작한 이관우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남들이 말하는 ‘정선우팀’에서 뼈를 묻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최기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정팀장님 작품 정하기 전에 직접 굿하신다는 거 진짜예요?”
“······아뇨. 누가 그런 말을······.”
소문은 일파만파 퍼지는 중이었다.
***
아.
미래다.
눈앞에 보이는 익숙한 소파 테이블, 익숙한 인테리어.
내 오피스텔이었다.
나는 소파 위에서 뭔지 모를 시놉시스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엔 송인호가 소파 밑동에 등을 기대고 퍼질러 앉은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시놉시스에 고정된 눈동자를 움직였다.
위로.
좀 더 위로.
느릿느릿하게 움직인 시야에 전자시계가 들어온다.
6월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달쯤 뒤.
“무서워 죽겠어요.”
아래쪽에서 송인호가 말했다.
술을 꽤 마셨는지, 좀 어눌한 말투였다.
“자고 일어나면 누구 입건되고, 누가 잡혀가고······.”
마약 사건 여파로 3개월 후에도 시끄러운가?
아니, 그것보다.
6월이면 공범자와 무당, 최성원 감독 신작은 한참 촬영 중일 거고.
송인호 차기작인 우렁이는······ 이미 방송이 나갔을 텐데.
어떻게 됐지?
“와, 나는 진짜 약은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지.”
“넌 술부터 먹지 마.”
내 입에서 내 의지완 상관없는 말이 흘러 나간다.
“저 왜요? 저 술 쎈데.”
“웃기지 말고.”
아니.
이런 쓸데없는 얘기 말고.
“우렁이 어떻게 됐냐고.”
······응?
“네?”
술기운으로 얼굴이 벌건 송인호가 고개를 틀어 나를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우렁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