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93)
탑 매니지먼트 294화
몸에 꿀을 발랐나, 벌레가 (1)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뭐지?
가스 불을 안 끄고 나왔나? 껐는데.
보일러? 그것도 껐는데.
그 외에도 걸리는 게 없는데, 이상하게 찜찜했다.
뭐지?
“정선우님, 들어가실게요.”
잡념을 밀어두고 대기석에서 일어났다.
거의 1시간 만이었다. 주말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라 그런지 대기인원이 어마어마했다. 클리닉 진료실로 들어가니,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상냥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나를 아는 눈치였다.
혹시 몰라서 마스크까지 쓰고 왔는데. 안경도 낄걸 그랬나.
“어떤 문제로 오셨어요?”
“요즘 새벽에 자꾸 잠에서 깨는데, 약 처방 좀 받을 수 있을까요?”
“혹시 수면장애가 생긴 이유는 짐작 가시는 게 있으세요?”
“글쎄요. 아마······ 스트레스?”
“아. 그런 문제라면 전문적인 상담을 좀 받아보시는 것도 좋을 텐데.”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상담사한테 미래예지 얘길 할 것도 아니고. 어차피 대충 거짓말 늘어놓으면서 시간 낭비나 하게 될 것 같아서 관뒀다.
원래는 병원에 올 생각도 없었는데, 계속 잠이 부족하니까 영 집중력이 떨어져서.
진료는 순식간에 끝났다.
뻐근한 어깨를 한 바퀴 돌리고 일어나는데, 의사가 말했다.
“오신 김에 수액 한 대 맞으면서 잠깐 눈 좀 붙이실래요? 아, 그리고 병원에서 연예인이나 유명인 분들 대상으로 협찬도 진행하고 있거든요,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아뇨.”
“요란한 건 아니고 그냥 홈페이지에 사진 한 장,”
“괜찮습니다.”
몹시 아쉬워하는 의사를 뒤로하고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근데 진짜,
뭐지······.
*
“뭘까.”
“네? 뭐가요?”
장서정이 수건으로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를 짜며 대꾸했다.
방금 뽑아온 에너지음료 캔 하나를 건네고, 내 것을 뜯으며 말했다.
“내가 뭘 깜빡한 거 같은데 뭔지 모르겠네.”
“오늘 주말인 걸 깜빡하고 출근하신 거 아니에요?”
“알고 출근했어.”
병원 때문에 외출한 김에 잠깐 들른 건데, 벌써 저녁 8시 반이었다.
슬슬 들어갈까.
생각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장서정은 서랍에서 젖은 머리용 에센스를 꺼내 바르는 중이었다. 익숙한 모습이다.
“너는······.”
“전 내일 새벽에 스케줄 있어서 그냥 회사에서 자려고요.”
“아.”
핸드폰을 꺼내 새벽 알람을 맞추는 장서정을 위로하고 팀장실로 돌아가려던 때였다.
“악!”
장서정이 느닷없이 비명을 질렀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음료를 떨어뜨릴 뻔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돌아보니 장서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있었다.
“뭐야, 바퀴벌레 나왔어?”
“아뇨. 로또 추첨 시간이길래 제거 확인해 봤는데······.”
“로또?”
······로또?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장서정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날 바라봤다.
“왜, 팀장님이 넵튠 라이브 방송 때 찍어주셨던 번호 있잖아요.”
“당첨됐다고 하지 마.”
“됐어요.”
“농담,”
“아니에요.”
아, 젠장.
잠깐만.
캔을 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일단 대충 보이는 책상 위에 캔을 내려놓고 심호흡부터 했다.
“5등?”
“아뇨.”
미치겠네.
설마.
“1, 2등은 아니지?”
“4등이에요. 5만 원.”
미래예지에서 5만 원짜리 로또를 바꿨던 기억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어쩐지 뭘 잊어버린 것처럼 계속 찜찜하더라니.
요즘 수면 부족이라 뇌가 녹았나?
청년 치매인가?
이걸······.
아니, 이걸······.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 보니 홍보팀 박팀장이었다.
전화를 받자, 건너편에서 묵직한 숨소리가 이어졌다.
-······.
“······.”
-봤어?
“네.”
-곧 첩보 제작 엎어졌단 기사 뜰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예의주시 중이었는데······ 로또가 먼저 터졌네?
“······.”
-자기 어디야?
“회사요.”
-그냥 거기 있어. 나도 지금 출근할게.
“······.”
전화를 끊고, 의자를 하나 끌어다 털썩 앉았다.
장서정이 핸드폰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팀장님. SNS 난리 났는데요, 지금.”
그래.
난리가 났겠지.
“로또 산 팬들이 다들 간증한다고 사진 올리는 중······ 아. 송하 이거 백 장 샀는데.”
“······뭐?”
***
-정선우가 찍어준 로또 번호 4등 당첨됨 어그로 아님 진짜임 로또 산 사람 빨리 확인해봐라
└???????????진짜?
└당첨됐다고? 4등??? 4등이면 얼마야?
└5만 원
└헐 나도 샀는데 잠깐만
-나 생일선물 준 친구들한테 고마워서 정선우 로또 한 장씩 보냈는데 지금 다시 단체 문자 돌리는 중임ㅋㅋㅋㅋㅋ 대박이다 진짜
-정팀장님 감사합니다 이 돈은 앨범값으로 잘 쓰겠읍니다
-난생처음 로또 5만 원 당첨돼 봄 이게 뭔 일이냐 열 장 살까하다가 걍 다섯 장만 샀는데, 시부럴 그냥 열 장 살걸! 굿즈에 수십만 원씩 질러놓고 왜 로또 살 돈은 아꼈냐고 등산아
-실시간 넵튠 팬들 뒤집어진 이유. 로또 당첨됨.jpg
└진짜네? 이게 왜 진짜냐
└임서영이 라이브 할 때 정선우가 찍은 로또 번호 알려주고 나서 너무 믿지 말라고 도박중독 예방 캠페인까지 했다던데 당첨ㅋㅋㅋㅋㅋ
└돌이 찍어준 번호로 5등 됐단 얘긴 들었었는데, 4등도 나온 적 있나?
└있긴 한데, 지금이 훨씬 소란스러운 느낌 간증글 엄청 올라오네 로또 산 사람 개많은 듯
└넵튠 찐팬들은 기본 수십장씩 지른 애들 많은 것 같더라, 막 백장, 이백장씩 산 사람들도 있던데
└와 지금 오백 장 인증 올라옴. 넵튠 팬인데 한군데서 십만 원어치씩밖에 안 팔아서 판매점 다섯 군데 돌아다니면서 샀대
└5백 장??? 걔는 뭐 정선우 신도야? 로또 산다고 50만 원을 꼬라박았다고? 제정신 아니네, 그 돈이면 치킨이 몇 마리냐
└포카 뽑겠다고 앨범깡하는 놈들이 가성이 따지고 자빠졌네
└아니 포카랑 로또는 다르지······
└5백장 샀으면 당첨금 2500만원임 미친
└시발 내 연봉이네
***
“······.”
“······.”
토요일 밤 9시 반.
포털 실시간 검색, SNS와 위튜브 인기 검색을 포함해 온갖 검색 순위 1위가 정선우 로또였다.
박팀장과 나, 장서정 세 명이 참여한 회의가 열렸다.
이름은 대책 회읜데, 대책이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러니까요.”
“난 진짜 농담인 줄 알았어. 어떻게 이 와중에 로또가 돼?”
“······그러게요.”
박팀장의 얼빠진 질문에 마찬가지로 얼빠진 답변을 돌려보냈다.
달리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나도 이 상황이 정말이지······.
“자기 진짜 어디까지 가려고 그래?”
박팀장이 물었다.
“요즘 우리 회사 연예인들보다 자기 찾는 전화가 더 많이 와. 여태껏 해놓은 걸로도 충분히 연구감인데, 거기다 로또를······ 아니, 물론 자기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 그렇겠지. 로또를 어떻게 의도하겠어.”
말하는 동안에도 박팀장의 핸드폰은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내 것도 마찬가지다. 발신인은 대부분 기자였다.
클릭을 유도하기 딱 좋은, 재밌는 기삿거리니까. 아마 ‘정선우 본인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는 내용을 덧붙여서 기사를 쏟아내고 있겠지.
박팀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4등인 게 어디야. 더 높았으면 뉴스에 나왔을 텐데.”
“뉴스에 나왔는데요.”
장서정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에 캡처 사진이 떠있었다.
“종편 뉴스에서 짧게, 단신으로 떴대요.”
“······.”
“······.”
냉수를 반쯤 들이켰다.
턱을 괴고 노트북을 들여다보면 박팀장이 아, 하고 말했다.
“이쪽도 떴네. 하긴, 지금 타이밍이 딱 좋긴 하지.”
“뭐가요?”
“이거.”
박팀장이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영화 ‘첩보’ 결국 제작 무산, 투자자 “정선우 블랙리스트 영향 커”] [‘첩보’ 터뜨린 W&U 정선우 지금 뭐 하나 했더니······ 로또 당첨]“······.”
정말 타이밍 예술이네.
남은 냉수를 마저 마시는데, 박팀장이 내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일단 내가 돌아가는 상황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자긴 들어가서 좀 자. 얼마 전에 잠 못 잤다고 그러더니, 오늘도 눈가가 좀 푸르딩딩한 것 같은데? 어차피 주말이니까 그냥 푹 쉬어. 자기 컨디션이라도 좋아야지.”
그리곤 덧붙였다.
“앞으로 벌레 많이 꼬일 것 같은데.”
***
-구대표님, 인터뷰 좀 잠깐 부탁드릴 수 있을,
“제가 지금 어마어마하게 바빠서요.”
대충 둘러댄 구성민 대표가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미 봉두난발에 가까운 머리를 다시 쥐어뜯었다.
그는 기자들의 연락을 매우 반기는 사람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토요일에 첩보 제작 무산에 관한 기사가 뜬 이후로 주말 내내, 그는 기자들의 취재 열기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디부터 잘못됐지?”
“구대표가 정선우 작품 쌔벼오자고 했을 때부터?”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홍이사가 대꾸했다.
구성민 대표가 웅얼거렸다.
“이사님이 그때 좀 말리지 그랬어요.”
“말렸었어.”
“좀 더 열심히 말리지······.”
홍이사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 수영이가 우리랑 재계약 안 할 거래.”
서지준을 대신해 첩보의 주인공 자리에 낙점된 배우, 최수영은 지금 기자들의 주요 취재 대상 중 한 명이었다. 구성민 대표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연락해 볼게요.”
“쪽팔려서 죽었으니까 연락도 하지 말라던데.”
“······.”
구성민 대표가 다시 머리를 쥐어뜯었다.
***
시끄러운 주말이 가고 월요일이 왔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거울을 바라봤다.
내 머리 주위로 마치 먹구름이 떠다니는 것 같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지난밤도 뜬눈으로 새웠더니, 머리가 물이 잠긴 것처럼 무거웠다.
컨디션도 별론데 그냥 택시 타고 갈까, 고민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봤더니 피터팬 구성민 대표였다. 이 정도 됐으면 수신 차단한 걸로 생각할 법도 한데, 정말 끊임없이 연락이 온다.
이렇게 끈질기기도 참 쉽지 않은데.
다시 무시하고 핸드폰을 넣으려는데 또 진동이 울린다.
이번엔 저장이 안 된 번호로 온 메시지였다.
아, 아까 같은 번호로 전화 온 걸 안 받은 것 같긴 한데······.
-정선우 팀장님, 전화 받으세요.
-제가 오늘 정팀장님하고 연락이 안 되면 대신 기자한테 연락할 거고. 그럼, 기사가 하나 뜰 거거든요.
-그거 별로 안 보고 싶을 텐데.
뭐야, 이건.
이거······ 협박인가?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순간 흐리멍덩하던 머릿속이 확 맑아졌다.
그리고 이상하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