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95)
탑 매니지먼트 296화
몸에 꿀을 발랐나, 벌레가 (3)
“본부장님. 지금 사진 하나 보낼게요.”
-사진?
양아치와 투자사 대표의 투샷을 본부장에게 전송했다.
사진을 확인하고 있는지 본부장의 목소리가 살짝 멀어졌다.
-이게 돈줄이야? 벌써 찾았어?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의심스럽긴 하죠. 한번 확인해 볼게요.”
-확인한다고? 어떻게? 너 또 혼자 찾아가려는 건 아니지?
“일단 좀 알아보고요.”
통화를 끝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움직임이 가뿐했다.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어떻게 꾸역꾸역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배부르게 자고 나니 그동안 내 상태가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알겠다.
물속에 잠겨있다가 막 수면 위로 올라와 폐호흡을 하는 느낌이었다.
숨통이 탁 트이고 온몸의 장기가 살아나는······ 그런 느낌.
샤워하고, 머리를 대충 말리면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매우 의심스러운 투자사 대표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한 이력을 찾아봤다.
MVK파트너스. 박창주 대표이사.
문화 콘텐츠 분야, 그중에서도 영화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데, 최근에 조달한 자금을 소금에다 갖다 부은 모양이었다. 메인 투자배급사인 파인 엔터를 제외하면 가장 큰 규모인가 본데.
손해가 컸겠네.
그래서 정신이 나갔나?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겼다.
열어보니 송인호가 큼직한 캐리어를 들고 서있었다.
“······뭐야?”
“매니저 형한테 물어보니까 형 오늘 출근 안 하셨다길래······.”
활기차던 놈이 하룻밤 새 풀이 죽어서 시들시들하다.
“일단 들어와.”
“감사합니다.”
송인호가 캐리어를 끌어안고 비척비척 들어왔다.
그리고 소파에 넘어지듯 주저앉는다.
“형, 잠을 못 자겠어요.”
“못 잤어? 내일 광고 촬영 있는 놈이 잠을 못 자면 어떡해.”
들여다보니 눈가가 푸르스름하다. 그늘 없이 화창하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하고. 분위기가 황폐한 게, 탄산수가 아니라 보드카 광고를 찍어야 하게 생겼다.
“광고······ 찍어도 괜찮을까요?”
“뭔 소리야.”
“만약 학폭 글 올라오면······ 지금 마약논란 터진 연예인들, 광고주 쪽에 위약금 물고 손해배상 소송 걸리고 그러던데.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송인호가 큰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우렁이도, 저 때문에 차질 생길 수도 있으니까 차라리 지금 하차하는 게 좋은가 싶기도 하고. 지금이면 배우 교체하는데 리스크도 적을 테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시청률이 16.7까지 간다는데 미쳤다고 그걸 하차해?
“너 일단, 들어가서 좀 자.”
“······잠이 안 와요.”
송인호가 핏발이 선 눈을 깜빡였다.
안정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불안한 얼굴이었다.
“자는 사이에, 이상한 글 같은 거 올라올 것 같아서······.”
“······.”
“형, 저 정말 괜찮을까요?”
“괜찮아.”
쯧, 혀를 차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글이 올라온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괴롭힌 것도 아니고 서로 치고받고 한 건데 전혀 문제 될 거 없어. 홍보팀에서 손 쓸 거고, 별것도 아닌 해프닝으로 끝날 거야. 광고든 드라마든, 네가 빼도 박도 못하는 대형 사고를 치는 거 아닌 이상 교체 얘긴 나올 일 없을 거고.”
뭣보다 우렁이 쪽은 작가가 워낙에 송인호를 좋아해서.
감독이나 제작사에서 하차 얘길 꺼내면 작가가 드러누울걸.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따라서 송인호에게 건넸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지도 않을 거야. 그 양아치 뒤에 있는 게 누군지 대충 찾았으니까.”
“정말요?”
“내가 해결할 테니까 쓸데없는 데 신경 팔지 말고 잠이나 자.”
“······형이요?”
“그래. 그러니까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한참 얘기하는데 반응이 없었다.
돌아보니 송인호가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가만 놔뒀더니 옆으로 슥 기울어진다. 아예 쿠션을 베개처럼 베고 드러누웠다. 꿈틀거리면서 제가 편한 자세를 잡더니, 곧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
깨워서 방으로 들여보낼까, 하다가 그냥 담요나 덮어줬다.
“잘 자라.”
일이 순조로우면,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땐 모든 게 해결돼 있을 테니까.
*
MVK파트너스는 역삼동에 있었다.
빌딩 로비에 붙어있는 안내 표지판을 확인하고 4층으로 올라갔다. 사명과 로고가 큼직하게 붙은 벽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직원인 듯한 젊은 남자가 날 보고 멈칫했다.
“······어?”
“안녕하세요. 박창주 대표님 뵈러 왔는데요.”
“어, 어, 네, 이쪽으로 오세요.”
사람이 유명해지면 또 나름대로 장점이 있네.
직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얼빠진 얼굴로 앞장섰다. 출입문을 지나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내내 놀란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정선우야? 왜 왔지? 수군거리는 소리가 속속 귓가에 닿는다.
곧 직원이 미팅룸 앞에서 멈췄다.
“대표님! 여기······.”
안쪽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통화 중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날 보더니 눈이 튀어나올 듯 커다래진다.
사진 속에 양아치와 함께 찍혀있던, 그 얼굴이었다.
“정선우씨 오셨는데요.”
“······!”
***
박창주 대표는 통화 중이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서, 물로 축이지 않으면 말을 잇기도 불편했다.
“출근 전에 잠깐 만났는데, 자기가 이미 정선우하곤 얘기 다 됐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더라고. 근데 그 사람 행색도 그렇고 말하는 게 좀······ 그렇던데. 이거 뭐 문제 생기는 거 아냐?”
-문제가 생겨도 걔한테 생기겠죠. 대표님이야, 돈 내고 밥상 받으면, 그냥 잘 먹으면 되는 거고. 자세한 건 모르는 게 나아요. 들춰봤자 밥맛만 떨어지지, 뭐.
핸드폰 너머에서 YN컬처 본부장이 태연히 말했다.
“그래도 영 찝찝한데.”
-찝찝할 게 뭐 있어요. 정선우가 모는 버스 한번 타보겠다고 다들 줄 섰는데, 이렇게 안 하면 거기 비집고 들어갈 날이 언제 올 줄 알고. 앞으론 확실한 건 투자사도 안 끼워주고 W&U안에서 소화할 것 같던데요? 첫사랑입니다만 봐도, 지들이 돈 대고 지들이 다 먹겠다는 거잖아요.
“그건 그런데······.”
-그리고 사실, 정선우도 계속 잘 나가진 않을 거 아니에요.
남자가 혀를 찼다.
-이미 지금도 말이 안 되는데, 이게 앞으로도 쭉 유지될 리가 없잖아요. 내가 볼 땐 이미 고점이라, 언젠간 터질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작품 같이하려면 지금 해야지. 고점 딱 찍고 있을 때.
“그건 그렇지······.”
박창주 대표가 다시 차가운 물을 들이켰다.
망설임이 씻겨 내려갔을 때.
노크와 함께 직원이 미팅룸을 살짝 열었다.
“대표님! 여기, 정선우씨 오셨는데요.”
“······!”
귀를 의심했던 박창주 대표가 순간, 요란하게 일어섰다.
조금 전까지 그의 입에 오르내렸던 당사자가 눈앞에 서있었다.
-대표님? 왜 그,
그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휘둥그런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정선우였다.
눈치를 살피던 직원이 말했다.
“마실 것 좀, 어, 커피 드릴까요?”
“물이요. 감사합니다.”
정선우가 태연히 말하면서 미팅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빈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굳어있던 박창주 대표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앉았다. 머릿속에선 생각이 팽팽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떻게 찾아왔지? 정선우하곤 얘기가 다 됐으니까 좀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지, 그의 이름과 정보까지 다 넘겼단 얘긴 없었는데. 그새 일이 더 진행된 건가?
머릿속에 지진이 난 박창주 대표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여기, 여기 어떻게,”
“작품은 고르셨어요?”
“네?”
“영화, 같이 하자면서요.”
화를 내는 것도, 흥분한 것도 아닌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묘하게 불길했다. 느낌이 안 좋았다. 소금 개봉 날, 채 십만 명도 못 채운 오프닝스코어를 받았을 때도 딱 이런 느낌이었다. 뭔가 크게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은 느낌.
“어······.”
“브로커라는 사람이 그러던데요. 귀찮은 일은 이쪽에서 다 알아서 한다고. 근데 전 작품을 좀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라, 말도 안 되는 작품에 제 이름을 걸어놓고 싶진 않아서요.”
“그,”
마침 직원이 물 두 잔을 가져왔다.
차가운 물을 몇 모금 마신 정선우가 녹색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에 툭 올려놨다.
“따로 골라놓은 시나리오 없으시면 이걸로 하시죠.”
“······!”
박창주 대표의 시선이 봉투 위에 꽂혔다.
저도 모르게 뻗어나간 손이 봉투를 짚었다.
느낌이 불길했고, 촉도 안 좋았지만, 눈이든 손이든 뗄 수가 없었다. 정선우가 고른 작품. 남들이 찌라시 주워듣고 싶어 안달 내는 작품이 지금 손 아래 있었다.
그가 봉투를 집어 들려고 했을 때, 정선우가 말했다.
“그 브로컨지 뭔지 하는 사람은, 앞으로 볼일 없었으면 좋겠는데요.”
“······.”
“좀 거슬려서. 괜찮으시죠?”
“그럼요.”
박창주 대표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빨리 봉투를 열었다.
“정팀장님이랑 잘 안다고, 소개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하길래 제가 부탁하긴 했는데, 사실 만나보니까 좀 찜찜하더라고요. 혹시 그 사람이 정팀장님 기분 상할만한 짓이라도 했으면,”
봉투에서 내용물을 꺼낸 박창주 대표가 눈을 껌뻑거렸다.
백지였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그냥 흰 종이 뭉치.
“······어?”
***
의자에 툭, 등을 기대며 말했다.
“사진을 봐서 그럴 것 같긴 했는데, 저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마음이 편한 성격이라서요. 저 협박하라고 돈 대준 사람 말고 생사람 잡으면 안 되니까.”
“협, 협박이요?”
박창주 대표가 황급히 봉투에서 손을 뗐다.
“그 사람이 정팀장님한테 협박을 했어요?”
숫제 어리둥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이다.
그 속에서 눈알만 바쁘게 굴러다녔다.
“그건,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정팀장님하고 자리 마련해 줄 수 있다고 해서 소개비만 좀 쥐여준 거고, 안 그래도 멀쩡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후회하던 중이었어요.”
“썩 믿기진 않는데.”
눈 감고 아웅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양아치랑 만나서 한마디라도 했으면, 소개고 뭐고 정상적인 수단은 아니겠구나, 하는 걸 알았을 텐데.
주머니에서 녹음 중인 핸드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리고 잠시 녹음을 멈췄다.
“그 양아치 때문에 제 배우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겁을 내고 있어서, 제가 지금 기분이 안 좋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MVK파트너스에서 투자하는 것마다 다 망할 것 같다고 떠들,”
“정팀장님!”
대표가 의자를 내동댕이치며 벌떡 일어났다.
곧 심장마비라도 걸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양아치는 대표님이 잘 해결하세요. 돈까지 주셨다니까 뭐 고소를 하시든가, 방법은 알아서 아시고. 어쨌든 앞으론 저한텐 따로 연락오는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핸드폰을 다시 챙기며 말했다.
“그 양아치가 저한테 연락하면, 전 대표님을 찾아올 거니까.”
“······!”
“혹시 소문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뒤끝이 긴 편이라.”
*
“어······.”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소파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인호가 난잡하게 헝클어진 머리를 이고 일어났다.
여기가 어딘가,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날 발견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저 언제 잠들었어요?”
“오자마자.”
“······아.”
멍하니 앉아있던 송인호가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형, 저 자는 동안 무슨 일 없었어요?”
“있었어.”
“······!”
“그거 대충 해결됐으니까, 내일 광고 촬영이나 잘해.”
“······네?”
“해결됐다고.”
송인호가 눈을 깜빡였다.
“진짜요?”
“진짜.”
“언제······.”
“너 자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송인호가 다시 입을 뗐다.
“형.”
“왜.”
“······배고파요.”
“······.”
이걸 진짜.
“저 어제부터 계속 굶었어요. 입맛이 뚝 떨어져가지고.”
송인호가 티셔츠 위로 배를 문지르며 불쌍한 척을 했다.
짧게 혀를 차며 일어났다. 집에 먹을만한 게 뭐가 있더라.
냉장고 문을 여는데 송인호가 다시 말했다.
“형.”
“또 뭐.”
“······감사합니다.”
돌아보니, 송인호가 부스스한 꼴로 웃고 있었다.
불안이 말끔히 씻겨나간, 다시 화창하게 개인 얼굴이었다.
***
밤 11시.
선동과 날조로 조회수를 버는 위튜브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떴다.
썸네일엔 정선우의 얼굴과 함께, 자극적인 타이틀이 박혀있었다.
[정선우 호언장담?!] [첫사랑입니다 시청률 40프로 넘을 것]-40프로가 뉘집 개 이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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