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296)
탑 매니지먼트 297화
이거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1)
IBC 드라마국 사무실은 첫사랑입니다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벽에는 포스터가 걸렸고, 눈에 잘 띄게 형광펜을 칠해둔 시청률 그래프도 회차별로 빼곡히 전시돼있었다.
“부장님, 부장님! 선배! 국장님 출근하셨어요?”
기름진 머리를 모자로 덮은 윤동섭 피디가 국장실 쪽을 훔쳐봤다. 얼굴엔 초조한 빛이 역력했다. 책상 파티션 뒤에 숨어서 모가지도 함부로 못 내미는 게, 흡사 사채쓰고 쫓기는 빚쟁이 같은 꼴이었다.
“아직. 왜?”
“저 국장실 들어갈 때 선배가 좀 같이 들어가 주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왜. 뭔 일인데?”
“저 어제 시청률 죽 쒔어요! 국장님한테 뒤지게 생겼어요, 진짜.”
그가 뽑아온 시청률 그래프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뭐 얼마나 죽을 쒔길래?”
“······3프로 나왔어요.”
종이컵에 율무차 스틱을 세 개째 쏟아붓던 부장이 멈칫했다. 근처에 있던 다른 피디들도 눈을 크게 떴다. 다들 귀를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3프로? 어쩌다 3프로가 나왔어?”
“진짜 디질수도 있겠는데?”
분위기는 이미 장례식장이었다.
얼마 전 IBC 수목드라마가 2프로라는 처참한 성적을 내며 케이블 포함 동시간대 꼴찌로 내려앉았을 때, 드라마국 피디들은 국장 눈치를 보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지내야 했다.
“오신다, 오신다.”
누군가 급박하게 말했다.
국장이 복도 모퉁이를 돌아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국장님 오셨어요?”
“그래, 좋은아침! 니들 주차장에 까치 봤냐? 오늘 좋은 소식이······.”
온화하게 웃으며 둘러보던 국장이 윤동섭 피디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시청률 표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곧, 국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어, 국장님, 그게요,”
“3프로네?”
“아마 이번 편이 내용이 어려워서,”
“뭐 얼마나 어려웠는데? 드라마 안에서 수능 문제 풀었냐?”
국장이 끔찍한 그래프에서 눈을 떼고 윤동섭 피디를 바라봤다.
“너, 전에 그랬지? 첫사랑입니다만 좋은 시간대에 재방 넣어주는 거 불공평하다고, 네 것도 넣어달라고? 아예 후배들까지 다 모아놓고 떠들었다며? 첫사랑입니다는 백프로 외주 납품이고 네 건 본사 제작인데, 네 걸 더 밀어줘야 맞는 거 아니냐고?”
“그.”
“너 첫사랑입니다, 재방 시청률 얼만지 아냐?”
“잘,”
“8프로야, 인마! 8프로!”
국장이 고함을 내질렀다.
드라마국 피디, 조연출뿐 아니라 다른 쪽 직원들까지 구경을 와서 웅성거렸다. 낯빛이 벌겠다가, 창백했다가, 오락가락한 윤동섭 피디가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태세로 몸을 움츠렸다.
“재방 반토막도 안되는 시청률을 들고 와 놓고, 이거를 지금······!”
부장이 흥분한 국장을 붙들었다.
“진정하세요. 국장님. 혈압 조심하셔야,”
“진정하게 생겼어?! 내가 첫사랑입니다 덕분에 혈압이 좋아졌다가 저놈 때문에 다시 악화돼서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야!”
부장이 얼른 진정제를 투여했다.
“국장님, 첫사랑입니다는 오늘 회차도 잘 뽑았다면서요?”
“······.”
“그럼 오늘 30프로 넘겠는데요?”
“······그럴 것 같지?”
효과가 탁월했다.
30프로 소리를 듣자마자 국장의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무조건 넘죠. 30프로 넘고, 어디까지 더 가느냐의 문제죠, 이건.”
“일단 인터뷰부터 준비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마케팅부에서 국장님 인터뷰 받으러 올텐데?”
“그렇겠지? 인터뷰를 또, 하자고 하면 해야지, 뭐.”
“아예 촬영장에 한번 가시는 건 어때요? 문제없는지도 좀 살펴보고, 현장에서 일하는 스텝들 격려도 할 겸. 국장님이 한번 움직여 주시면 기사도 이쁘게 뽑힐텐데.”
“내가 거기까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정팀장도 안 가던데.”
윤동섭 피디를 관심 밖으로 던져버린 국장이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말했다.
“참, 정선우 팀장은 40프로까지 갈 거라고 했다던데요?”
“뭐가?”
“첫사랑입니다 시청률이요.”
그가 핸드폰 화면에 동영상을 찾아 띄웠다. ‘정선우 호언장담, 첫사랑입니다 시청률 40프로 넘을 것’이라는 타이틀이 박힌 영상이었다.
“40프로?”
피디들이 떨떠름해졌다.
국장이 있으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다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냐는 표정이었다.
시청률이 30프로만 돼도 드라마 판이 들썩거렸다.
만약 종영 전에 최고시청률이 한 번이라도 35프로를 찍는다면, 그것도 난리가 날 만한 일이었다. 벌써부터 설레발을 치고,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40프로를 언급하진 않았다.
예전에야 시청률 50, 60프로짜리 드라마도 있었지만, 그건 수십 년 전, 스마트폰도 없고, 케이블도 없고, OTT도 없던 시절. 지상파방송 말곤 볼 게 드물던 시절의 일이었다.
지금의 40프로는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는 숫자였다.
“이건 너무 허무맹랑,”
“아, 이거 딱 봐도 가짜뉴스구만. 요즘 이런 거 많더라.”
피디들이 손을 내저을 때.
국장이 다시 중얼거렸다.
“······40프로?”
***
-정팀장, 혹시 첫사랑입니다 시청률 40까지 갈 거라고 했어요?
“제가 그랬대요?”
물병을 트레드밀 홀더에 끼우고 속도를 5.5.1km/h로 맞췄다.
리모컨으로 모니터 채널을 띄워보니, IBC 계열의 케이블 채널에서 첫사랑입니다의 최근 회차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런 얘기가 있다길래, 난 또 정팀장 입에선 나간 말인가 했지. 하여튼 요즘 이 가짜뉴스가 문제예요. 싸그리 잡아넣어서 그냥 콩밥을 먹야야된다니까.
IBC 국장이 아쉬움이 줄줄 흐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첫사랑입니다팀 시청률 30프로 넘으면 팬미팅하기로 공약한 거, 우리 스튜디오에서 진행할 계획이예요. 찍어서 나중에 스페셜로 내보내려고. 정팀장도 잠깐 올 수 있으면······.
“네. 그때 뵙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손에 들고 있던 우렁이 15회차 대본을 내려다보는데, 옆에서 부담스럽게 쳐다보던 트레이너가 말했다.
“더 늘었네요?”
“뭐, 속도요?”
“아뇨. 멀티태스킹이요. 운동하면서 통화하고 대본 읽는 걸로 모자라서 이젠 드라마까지 보시네요? 이게 사람 뇌 기능에 그렇게 안 좋대요. IQ 떨어진다던데?”
“······.”
대본을 내려놓으려던 때였다.
“잠깐만, 잠깐만, 그대로 있어봐.”
언제 왔는지, 홍보팀 박팀장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첫사랑입니다 30프로 넘으면 우리도 공계로 축하 멘트 하나 올려야지. 자기만 괜찮으면 이거 사진 찍어서 같이 올릴까? 바쁜 와중에도 드라마는 챙겨보는 게, 그림이 딱 좋잖아.”
“뭐······ 그래요, 그럼. 아, 우렁이 대본 내용은 찍히면 안 돼요.”
“오케이.”
곧 박팀장이 핸드폰을 들고 몇 걸음 뒤에서 자리를 잡았다.
찰칵 소리가 수십번쯤 이어진 후에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자기 찌라시 또 생겼더라? 시청률 40프로?”
“그렇더라고요.”
심드렁히 대꾸했다. 박팀장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로또 당첨에, 협박에, 워낙 다사다난했어야지. 이젠 이런 찌라시 정도론 간지럽지도 않았다.
***
[30프로 돌파한 ‘첫사랑입니다’ 시청률 고공행진 어디까지?] [‘첫사랑입니다’ 거침없는 상승세에 희비 엇갈린 방송사]-탁월한 안목 자랑한 드라마 명가 IBC
-땅 치고 후회 중인 GTBN
마침내 30프로의 벽을 넘어선 첫사랑입니다를 축하하는 물결이 세상을 휩쓸고 있을 때.
기다렸다는 듯, 날조 전문 위튜브 채널에 후속 영상이 업로드됐다.
첫사랑입니다의 영상자료, 그리고 정선우가 제작발표회에 참석했을 때의 사진 자료를 얼기설기 엮어놓은 화면과 함께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선우가 첫사랑입니다의 시청률이 40프로를 넘을 거라고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어요. 40프로? 이거 솔직히 말도 안 되지. 정선우도 말도 안 되는 걸 알아. 그런데도 왜 이런 얘길 했느냐?
-해외판권 더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지금 첫사랑입니다 IP를 W&U에서 공동 보유 중인데, 이거 판권 비싸게 팔면 정선우도 돈 버는 거거든.
-30프로짜리 드라마가 비싸겠어요, 40프로짜리가 비싸겠어요?
비슷한 시간.
연예부부젤라 채널에도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현직 연예부 기자 두 명이 얼굴을 가린채 나란히 앉아 떠들었다.
-안녕하세요, 연예부부젤라 A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B기자입니다.
-첫사랑입니다가 시청률 30프로를 넘었습니다. 다 예상은 했죠. 지금 워낙에 인기가 많으니까.
-이게 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 굉장히 시청층이 넓더라고요.
-남녀노소한테 두루두루 어필을 하니까 이런 시청률이 가능한 거죠.
-자, 오늘 또 W&U 정선우 팀장님 얘길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어요.
-이번에도 정선우 팀장님 인터뷰는 따로 못했습니다. 저희가 업계에서 들은 얘기와 뇌피셜을 섞어서 얘기해 볼 테니까, 모쪼록 양해 부탁드리고요.
-정선우 팀장님이 첫사랑입니다 시청률이 40프로를 넘을 거라고 장담했다는데 이거 진짠가요, 뭐 이런 질문이 좀 많이 들어왔어요.
-이 얘기가 갑자기 확 번졌더라고요?
-처음 이 얘길 꺼낸 영상을 봤는데, 좀 애매하던데? 왜냐면, 만약 정선우 팀장님이 진짜 40프로 어쩌고 얘길 했으면 우리 귀에도 들렸을 거거든. 이 바닥 소문이 워낙 빨라서. 근데 난 못 들었어요.
-저는 오늘 방송하기 전에 알아봤는데, 35프로까진 언급하신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진짜요?
-첫사랑입니다 회식 때 30프로, 35프로 시청률 공약은 뭐로 할 거냐, 뭐 그런 얘기가 나왔었다는데? 근데 이게 술자리에서 나온 말이잖아. 다른 사람이 이런 말 했으면 화제가 되지도 않아, 이거.
-어쨌든 40프로 발언은 팩트로 확인된 바가 없다, 이거죠?
-그렇죠. 근데 사실, 뭐, 진짜 발언을 했어도 그게 문제가 되나? 마케팅전략의 일환으로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정선우가 시청률 40프로 찍을 거라고 했다? 그럼 드라마 안 보다가도 궁금해서 보는 사람들 있을 거 아냐.
-아, 그럴 수 있죠. 말하자면 쇼맨십 같은 느낌으로?
-정선우 팀장님은 그렇게 요란 떠는 타입은 좀 아닌 것 같긴 한데, 나 같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아.
⦙
[시청률 40프로? 위튜버 연예부부젤라 “정선우, 쇼하고 있네”]***
-선우씨도 영상 보면 아시겠지만, 전혀 그런 뉘앙스가 아니었거든요.
박우정 기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쇼하고 있다, 이런 말은 전혀 없었고, 만약 40프로 발언이 사실이라면 쇼맨십의 의도였을 수는 있다, 이런 거였는데, 기레기가 워딩을 저따위로 바꿔서 내보낸 거예요.
“네, 저도 영상 봤어요.”
-연예부부젤라 하시는 분이 제 선밴데, 저한테 전화해서 사정 사정을 하더라고요. 선우씨한테 꼭 사정 설명 좀 해달라고. 제발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다고요.
통화를 끝내고 다시 노트북을 끌어왔다.
쭉 모니터링을 해보니, 이번 이슈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키우려는 듯한 시도가 은근히 느껴지긴 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걸고 내보내는 기사들도 그렇고.
참고로 ‘정선우, 쇼하고 있네’라는 타이틀을 건 기사는 GTBN 계열의 언론사였다.
사실 나는 여전히 크게 신경 쓰진 않았는데, 오히려 주변이 난리였다.
오후에 첫사랑입니다의 주연배우, 종윤과 장효은이 각자 소속사 직원들을 대동하고 찾아왔다.
심지어 기건우 피디와 조연출도 함께였다.
당장 시청률 공약 준비하랴, 남은 회차 촬영하고 편집하랴, 눈코 뜰 새도 없어야 할 사람들이.
“죄송합니다, 정팀장님.”
최종윤이 해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뭐가요?”
“정팀장님이 우리 회식 때 30프로, 35프로 얘기했던 걸 제가 인터뷰할 때 몇 번 말했었는데, 아무래도 그거 때문에 지금 이 사태가 생긴 거 같아서요.”
그가 거의 무릎이라도 꿇을 것 같은 기세로 이실직고했다.
장효은의 말도 비슷했다.
그리고 기건우 피디도 침통한 얼굴로 덧붙였다.
“조연출이 그냥 말해도 된다고 했었나 봅니다. 그냥 재밌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하고,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줄은 모르고 그랬다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조연출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최종윤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다시 말했다.
“근데 진짜 40프로는 얘기한 적 없거든요, 처음 영상 올린 사람이 과장한 것 같은데, 제가 기자한테 연락해서 해명 인터뷰라도 할······.”
“아뇨.”
최종윤의 말을 잘랐다.
“굳이 해명 안해도 됩니다. 틀린 얘기도 아니니까.”
“네?”
“시청률 40프로, 넘어갈 거 같은데요.”
다들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날 바라봤다.
“······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