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45)
현관문이 열리고 김현조가 쇼핑백을 하나 들고 들어온다.
“오셨어요?”
“모니터링 할 준비는 다 됐어?”
“네. 노트북 세 대요. 와이파이도 확인했어요.”
배신자가 거실에 주르륵 놓인 노트북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애들은 괜찮아?”
“다른 애들은 괜찮은데 서영이만 정서불안이에요.”
“아닌데요! 저도 멀쩡한데요!”
내 말에 임서영이 거세게 항의한다. 돌아보니 두 손으로 스마트 폰을 꼭 쥐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멀쩡하면 핸드폰 좀 내려놔. 한 시간 째 연예 기사 새로고침하고 있잖아.”
“뭐 올라올 수도 있잖아요. 확인을 안 하면 안정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게 정서불안이야, 멍청아.”
엘제이가 거침없이 비웃음을 날린다. 임서영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거실 테이블에 치킨과 과자 같은 간식거리를 늘어놓고 앉아서 넥스트 K스타가 시작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김현조가 들고 온 쇼핑백을 테이블에 척 내려놓았다.
“이거 영훈이 형이 준 건데, 귀한 거라고 최고 시청률 1.5 찍으면 마시란다.”
“귀한 거? 뭔데? 술이야?”
“와인?”
애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모여들자 김현조가 쇼핑백 안에서 내용물을 쑥 꺼낸다. 나도 힐끔 쳐다봤다. 40센티 정도 되는 원통형 유리병. 하얗게 색이 바랜 잎사귀와 줄기 아래로 검지 굵기의 뿌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
“……뭐야, 이거?”
“자연산 산삼주. 직접 캐서 담근 거래. 이거 주는데 영훈이형 손 떨리더라.”
하지만 애들 얼굴에는 관심 없다고 써 있다. 누군가에게는 귀한 보양주겠지만, 이십 대 초반의 어린 여자애들한테는 그냥 비싼 풀뿌리가 잠겨 있는 소주일 뿐인 거지. 산삼주는 쓸쓸히 테이블 아래로 퇴장했다.
김현조가 힐끔 벽시계를 보며 말한다.
“이제 30분 남았네. 다들 가족들한테는 연락했어?”
“벌써 했지. 우리 집은 엄마가 이모들까지 다 불렀대.”
임서영이 진정하려 애쓰면서 대답했다. 이태희와 엘제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대답이 없는 건 이송하뿐이다.
“송하는 왜, 집에 말씀 안 드렸어?”
“전 처음에 많이 혼났잖아요.”
이송하가 과자 봉지를 끌어안은 채 덤덤하게 대답한다.
문득 지난번에 이송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연예인 하는 걸 반대하신다고 했었지. 안 되는 걸 왜 자꾸 하느냐고. 저번 앨범이 망한 뒤로는 전화도 잘 안 온다고 했던가.
그런 상황이라면 집에 말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간다. 첫 미션 녹화 때 이송하만 심사위원들의 혹평을 받았으니까. 그래선지 첫방을 기다리는 표정도 다른 애들에 비해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다.
드르륵.
내 핸드폰은 아까부터 쉴 새 없이 진동하고 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도, 형네 가족도 TV 앞에 앉아 있단다. 친구놈들도 다 같이 호프집에 모여서 Knet 채널을 틀어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인증사진을 보내왔다.
이번 건 박우정 기자가 보낸 톡이었다.
-기사 쓸 준비 끝내고 기다리는 중! Knet 들어갔다 온 선배가 넥스트 K-스타 첫방은 넵튠 중심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함. 저번에 진 빚도 좀 갚을 겸 기사 기깔나게 써서 올릴게요!
“실장님. 아는 기자한테 톡이 왔는데, 넥스트 K스타 첫방은 넵튠이 중심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데요?”
김현조와 애들이 홱 돌아본다.
“그래?”
“진짜요? 진짜? 진짤까, 오빠?”
임서영의 부산스러운 재촉에 김현조가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기자 얘기면 아예 신빙성이 없는 건 아닌데. Knet은 프로그램 편집본 시사할 때 스무 명 정도 우르르 모여서 한다더라고. 거기 들어간 사람 중에 누가 말을 흘렸을 수도 있지.”
실내의 분위기가 한층 고조됐다. 나는 박우정 기자에게 고맙다고 답톡을 날리고 내 몫의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옆에서 배신자가 다른 노트북을 두드리며 말한다.
“SNS랑 포털 연예란은 내가 다 훑을게.”
“어. 그럼 나는 사이트들 모니터링한다.”
인터넷 창에 오늘을 위해 미리 즐겨찾기 해 둔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줄줄이 띄웠다. 다들 연예 이야기가 많이 거론되는 곳들이다. 오늘을 위해 초중고생들이 우글거리는 회원제 카페에도 가입신청을 해놨었다.
쭉 훑어보니 아직까진 별 반응이 없다. 미래 예지로 넥스트 K스타 첫 시즌이 시청률 대박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도 신경 쓰일 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배신자와 김현조는 미간에 굵직한 주름을 그은 채 마우스를 움직인다.
물론 제일 심각한 건 임서영이었다.
“어떡해, 누가 카페에 ‘넥스트 K스타 첫방 기다리시는 분?’이라고 글 올렸는데 11분째 무플이야! 나라도 댓글 남길까? 그럼 안 되겠지?”
“건영…… 아니다, 왠지 너는 도로 뺏길 것 같고.”
김현조의 말에 배신자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는다.
“선우야, 쟤 핸드폰 좀 뺏어라.”
“네.”
임서영의 손에서 핸드폰을 가로챘다. 임서영이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중독자처럼 내 다리에 매달린다.
“아, 아, 오빠!”
“TV봐, TV.”
“안 보고 들고만 있을게요! 아니, 1분에 한 번만 확인할게요!”
“안 돼.”
“피도 눈물도 없어!”
“피도 있고 눈물도 있어, TV 봐, 얼른.”
나는 단호하게 TV를 가리켰다.
우리가 초조함을 가라앉히기 위해 더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동안, 분침은 한 칸 한 칸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그리고 11시 12분.
“으아아, 시작한다, 시작한다. 아, 떨려서 못 보겠어!”
“야, 조용히 좀 해. 입을 확 그냥…….”
오랫동안 기다려온 넥스트 K스타의 첫방이 시작됐다.
방송은 넵튠이 중심이긴 했다.
나쁜 쪽으로.
시작부터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출연팀들이 하나씩 등장하더니, 마지막 넵튠의 차례가 됐을 때 갑자기 레몬걸즈의 영상이 불쑥 튀어나왔다.
처음 넥스트 K스타에 섭외됐던 팀이며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하차하게 된 경위까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넵튠의 캐스팅 당일 올라왔던 기사들의 헤드라인들과 인터넷 댓글들이 쾅 박혔다.
-난데없이 듣보잡이 튀어나오네. 제작진 겁나 급했나 봄ㅋㅋㅋㅋ
-레몬걸즈 하차 기사 뜨자마자 얘들 합류 기사 나옴. 뭐지? 어이없네.
-쟤들 W&U소속이래요. 백퍼 회사에서 꽂아준 거.
첫 만남 녹화 때 찍은 영상과 다른 팀들의 사전 인터뷰 오디오가 맞물린다.
‘누군지 아무도 몰랐어요. 다들 저 팀 누구야? 알아? 이러다가 W&U 소속이래, 하니까 아…….’
‘대형 기획사 소속이라 특혜를 받고 들어왔나?’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다음 순간, 넵튠 애들의 사전 인터뷰 영상이 튀어나온다.
‘일곱 팀 중에 다섯 팀이 넵튠을 꼴찌로 찍었어요.’
고준태 피디의 말을 듣고 임서영의 표정이 굳어지는 컷에서 스틸이 잡힌다.
“…….”
실내에 싸늘한 정적이 흐른다. 당연하다. 저건 누가 봐도 넵튠과 나머지 그룹들을 대치 상태로 만들면서 논란을 키우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편집이었으니까.
그 후로도 편집은 시종일관 넵튠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반응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넵튠이 언급된 글은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딱 봐도 비주얼로 밀어붙이는 애들. 인지도도 쥐뿔도 없고 실력도 없는데 이런 프로그램엔 왜 나오나요?
-진짜 K팝스타 될 잠재력 있는 신인들도 많은데 저기 들어가 있는 거 쪽팔리지도 않나?
-이럴 거면 제목을 왜 넥스트 K스타로 했음? 진짜 나라 망신도 가지가지.
-명불허전 Knet, 또 악마의 편집 스멜ㅋㅋㅋㅋ 걸그룹 하나 갈아넣네요.
-악마의 편집이 아니라 쟤들은 욕 바가지로 처먹어도 싸죠. 진짜 극혐.
-시작할 땐 잠잠했는데 성공적으로 어그로 끌어서 반응 핫해지네요. 제작진은 이런 거 노리고 넣은 거죠. 초반 화제몰이용.
임서영한테서 핸드폰을 뺏은 게 천만다행이다.
한숨을 쉬고 있는데 배신자가 내 옆구리를 툭 친다. 그리고 ‘그쪽은 어때?’ 하고 입 모양으로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는?’ 하고 되물었더니 녀석도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하긴, 그나마 얌전한 커뮤니티 반응이 이 정도면 포털 기사 댓글이나 SNS 반응은 더 원색적인 비난이 올라오고 있겠지. 안 봐도 뻔하다. 힐끔 보니 김현조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표정이 어둡다.
“아…… 엄마한테 얘기하지 말걸…… 괜히 보라고 했어.”
임서영이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엘제이는 TV를 힐끔거리면서 쿠션에 주먹질하고 있고, 이송하도 과자 봉지 속으로 들락거리는 손길이 점점 빨라진다.
그나마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 이태희뿐…… 인줄 알았는데, 말없이 산삼주를 따더니 맥주잔으로 마시기 시작한다.
김현조가 거칠게 머리를 헝클었다.
“좀 더 기다려보자. 미션은 잘했잖아. 자극적으로 끌고 가다가 반전으로 끝날 수도 있어.”
배신자와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제작진 급했나 보다, 이런 코멘트 내용 띄우면서 셀프디스까지 했잖아요. 그런 거 보면 실장님 말씀대로 반전 구성일 확률도 높아요.”
“원래 극적인 게 잘 먹히기도 하고.”
그래도 분위기는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다른 멤버들은 물론 우리까지 합류해서 독한 산삼주를 안주도 없이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몇 잔을 연거푸 마신 김현조는 음산한 목소리로 방송이 이대로 끝나면 고준태 피디를 죽여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곧이어 미션 무대가 시작됐다.
무반주 무대, 심사위원들의 극찬과 필터 없는 혹평이 자극적으로 이어진다. 시청자의 눈으로 보면 시선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편집이다. 넷상의 반응도 점점 늘어나다가 슈가캣의 순서에서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그리고 마침내 TV 화면에 넵튠 애들이 무대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 분명 반전 편집일 거야. 누가 봐도 멋진 무대였으니까.
그런데 무대 분량은 쥐꼬리만큼 넣고 이송하가 들은 혹평 멘트만 잘라붙였으면 어떡하지? 설마 미래 예지에서 들었던 그거, 넵튠이 욕먹었다고 했던 게 이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긴박한 BGM, 초반에 나왔던 다른 팀 멤버들의 저격 멘트가 인서트로 다시 한 번 지나가고, 넵튠 애들의 무대가 시작됐다. 그때까지도 나는 긴장으로 어깨를 뻣뻣하게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스피커에서 이태희의 리드가 흘러나온 순간.
거짓말처럼 긴장이 탁 풀렸다.
“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거실에 자욱하게 깔렸던 침울한 분위기가 단숨에 씻겨나간다. 다들 얼떨떨해 하다가, 허탈해 했다가, 마지막에는 안심한 표정으로 TV 화면을 쳐다봤다.
임서영이 멍한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우리 잘하는 거 아냐? 맞지? 지금 안 이상하게 나오는 거 맞지?”
“지금 몇 초째야? 우리 무대가 제일 길게 나오는 거 같은데?”
“어어어, 어떡해, 원샷도 엄청 잡혀…….”
애들의 공연 모습, 그리고 심사위원들과 관객석에서 지켜보던 다른 팀의 멤버들이 놀라는 리액션 컷이 교차편집 되면서 반전에서 오는 짜릿한 쾌감을 극대화시킨다.
넵튠의 무대는 다른 어떤 팀보다도 긴 분량이었고, 성공적이었다.
드르륵!
방송하는 내내 잠잠했던 핸드폰이 진동한다.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1)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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