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60)
PBS에서 한 캠페인 생방송이었다는데, 비 맞으면서 리허설 하다가 2분 24초에 이송하가 겁나 세게 엎어짐. 근데 2초 만에 허겁지겁 일어나서 계속함. 이송하가 신인이면서 팀 활동에 불성실한 것 같다고 아니꼬워하는 사람들 있던데, 이런 거 보면 그런 애는 아닌 것 같음.
-헐. 보는 내가 다 아프다.
-화면에 저 정도로 찍힌 거면 실제로는 완전 폭우 쏟아진 건데.
-직캠찍은 사람이 블로그에 후기 남겨놓은 거 봤는데, 기상악화 때문에 리허설만 하고 방송엔 나가지도 못했다네요. 안쓰럽ㅜㅜ
-딴 데서 들었는데 저 날이 넥스트 K스타 첫 미션 녹화 날이래요. 첫방보고 이송하 혼자 표정 뚱하네, 열심히 안 하는 거 같네, 궁예질하는 사람들 쩔었는데, 솔직히 저 후에 녹화한 거면 컨디션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을 듯.
-그런데 영상 계속 돌려보니까, 넘어졌다가 일어난 다음에 2분 34초쯤에 발목을 힐끔 쳐다보네요. 접질리거나 그런 거 아닌가.
-어, 그러네요?
-태도논란에 인성논란까지 나오는거 솔직히 어이없음. 내 친구가 W&U 사옥 앞에서 이송하 봤다는데, 엄청 친절하게 사진도 찍어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줬다던데.
-인증샷 있어요?
-있긴 있는데 차마 인터넷에 올릴 수가 없다고 함. 매니저가 사진을 발로 찍어줘서.
이송하가 넘어지는 영상은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용히 퍼졌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순식간에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하거나 기사가 도배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떡밥의 효과가 없었느냐, 그건 아니다. 오히려 놀라울 만큼 긍정적이었다.
화제의 주인공, 논란의 주인공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이송하 개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늘어났으니까.
그리고 그건 넵튠 전체에 대한 반응으로 이어졌다.
-넵튠 무대는 좋았어도 이송하 구설수 때문에 덕질 할 마음은 안 들었는데, 직캠에 발목 잡혔네요. 이거 보고 겁나 응원하고 싶어졌음.
-2222 저도 덕통. 아, 신인은 자료 없어서 덕질하기 빡신데ㅜㅜ
-저도 관심 가서 뒤지고 있는데 자료가 없어도 너무 없음. W&U 일해라! 공중파 예능에 좀 팍팍 꽂아 주지 뭐하냐!
-기세를 타고 넵튠 영업글 하나 던져봅니다! 일단 들어오면 출구는 없다.
넵튠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자료를 찾아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홍보팀에서 관리하는 공식 홈페이지와 포털 팬카페에 들락거리는 사람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거의 빈집이나 가깝던 홈페이지에 글들이 쭉쭉 올라오고 있어서 요즘은 모니터링 할 맛이 난다. 넵튠 애들도 틈이 날 때마다 핸드폰으로 팬카페나 공식 홈페이지를 둘러본다. 특히 임서영은 중독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이송하에게 악의적인 비난을 던지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가다 참전해서 한 마디씩 던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공들인 반박자료를 만들어서 대응하는 팬들이 생겼다.
변화는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일어나는 중이다.
“그게 뭐예요?”
“선물. 팬들한테서 온 거야.”
“……팬이요?
다른 애들도 얼떨떨한 표정이지만, 임서영은 유난히 놀란 얼굴이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졌다. 뒤통수를 툭 치면 눈알이 앞으로 쏟아지겠다.
양손에 두 개씩 들고 온 종이가방을 숙소 거실에 내려놨다.
모두 넵튠 멤버들 앞으로 온 선물들이다. 선물을 모아서 건네준 회사 직원은 블랙아웃에 비하면 참 소소하다며 웃었지만,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애들 앞으로 선물들이 왔다는 게 더 중요하다.
진짜 팬들이 생겼다는 증거나 마찬가지니까.
“진짜로, 진짜예요?”
“그럴걸?”
농담조로 대답했더니, 임서영이 초조하게 나와 종이가방을 번갈아 본다.
“어어, 이런 걸로 농담하시면 안 돼요. 오빠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런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일로 사람 놀리고 그럴 만큼 못된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
“이거 도로 가져간다.”
“안돼!”
종이가방을 도로 들었더니 임서영이 거실 바닥을 슬라이딩하다시피 하면서 붙잡는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다른 애들까지 가까이 불렀다. 임서영만큼 유난 떠는 애는 없지만, 모두 기대하는 눈으로 다가온다.
종이 가방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애들한테 나눠줬다. 임서영이 두 개, 이태희와 엘제이가 각각 하나씩이다. 가끔 선물이랍시고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걸 보내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고 해서 다 확인해 봤는데, 임서영에게 온 선물은 아기자기한 캐릭터상품이나 인형 종류다.
임서영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글썽글썽한 눈을 하고 좋아한다.
“누구지? 누가 보냈는지 궁금하다. 으아아…… 인형이 네 개나 왔어! 나 인형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지?”
“공식 SNS에 니 사진 올라갔잖아, 멍청아. 니가 인형 끌어안고 무슨 나라 잃은 백성처럼 질질 짜는 거.”
엘제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새 인형들을 보고 좋아 어찌할 줄 모르던 임서영이 곧장 도끼눈을 뜬다.
“니가 주먹질해서 다리 찢어놨잖아, 깡패야!”
“손채영 때문에 열 받아서 그랬지! 그래서 내가 고쳐놨잖아!”
사실이다. 엘제이가 바느질로 터진 부분을 꿰매놨다. 그것도 상당히 그럴싸하게. 상상도 못 했던 재주라서 꽤 놀랐었지. 그것도 사진으로 남겨서 SNS에 올렸는데, 그래선지 엘제이의 선물에는 반짇고리세트가 끼어있다.
그리고 이태희한테 들어온 선물은 목캔디와 피로회복에 좋은 홍삼 농축액이다. 가끔 허리를 두드리거나 무기력해 뵈는 행동을 해서 그런가, 늙은이 이미지가 붙은 모양이다. 이제 고작 22살인데.
단숨에 농축액을 한 팩 쭉 마신 이태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가보다. 혼자서 산삼주 마실 때부터 느꼈지만, 쟤도 취향이 참 남달라.
인증샷을 남기려고 각자 받은 선물을 끌어안고 있는 애들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
아까부터 물끄러미 보고만 있던 이송하가 고개를 기웃기웃하며 내 뒤를 쳐다본다.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내 납작한 코트 주머니, 빈손까지 보더니 도로 러그 위에 앉아서 대본을 들춘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깨 끝이 조금 내려가 있다.
“송하, 이리와. 이거 먹어.”
이태희가 목캔디를 내밀었다. 이송하만 받은 게 없다는 걸 알아차린 임서영과 엘제이도 흥분한 표정을 지우고 모여든다. 임서영이 날 보면서 진짜 없는 거냐고 입을 벙긋거린다.
“기다려봐, 왜 이렇게 안 오…….”
현관문을 쳐다보는데 마침 문이 덜컹 열린다.
배신자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온다.
“미안, 엘리베이터 안에서 쏟는 바람에 다시 담느라고.”
애들의 시선이 배신자가 끌고 들어온 핸드 카트에 꽂힌다. 박스 하나와 종이가방 두 개가 올려져 있다. 박스는 내가 두 팔 벌려 끌어안아도 못 들 만큼 크다.
이송하가 눈을 빛내며 성큼성큼 다가온다.
“이거…….”
“너한테 온 거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송하가 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멍하니 입을 벌린다.
안에 들어있는 건 전부 먹을 거다. 큰 봉지 과자부터 손바닥보다 작은 초콜릿 바까지, 커다란 박스를 군것질거리로 다 채웠다. 과자 표면에는 맛있게 먹고 기운 내라는 포스트잇이 정성스럽게 붙어있다.
“서지준씨 팬들 알지? 드라마 첫 촬영 날 봤던 사람들.”
“네.”
“이건 그 사람들이 너 응원한다고 보낸 거야.”
그 날 접시에 간식을 쌓아서 먹는 모습을 보고 가서인지 이송하한테 최적화된 선물을 보냈다. 그 팬들이 드라마 서포트 후기를 남기면서 이송하가 먹는 걸 좋아하더라는 얘기를 언급한 덕분에, 다른 선물들도 먹을 것 위주다.
손글씨로 쓴 편지들도 있다.
대부분 지금 상황이 안 좋지만 기운 내라, 나쁜 소리는 무시해라, 드라마 기대하고 있다, 같은 힘을 주는 말들이다.
이송하는 선물을 끼고 앉아서 과자를 들었다가, 편지를 들었다가 반복했다.
티는 잘 안 나지만, 좋아한다. 저건 엄청나게 좋아하는 거지.
“송하, 좋겠네.”
“야, 너 니 방에다가 편의점 만들어도 되겠다.”
“손으로 만든 것도 있어! 너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먹을래?”
넷이서 머리를 맞대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선물까지 받으니까, 인지도 올라간 게 실감 나네.”
“그러게.”
배신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대로 팬덤이 점점 단단해지고, 넥스트 K스타, 송하 드라마가 차례대로 성공하면, 그리고 다음 앨범 성적이 받쳐주기만 하면…… 내년에는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돼야지.”
“그래. 그렇게 돼야지.”
나는 시선을 돌려 배신자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인상 좋은 얼굴, 그중에서도 서글서글한 눈이 넵튠 애들을 바라보고 있다. 문득 그가 나를 돌아본다. 눈이 마주쳤다. 조금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인데도, 반사적으로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배신자가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만들어야지.”
드라마 촬영은 강행군이었다.
밤낮이 없다. 출퇴근 시간은 당연히 없다. 현장 상황에 따라 밤에 도착해서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대기만 하기도 했다. 식사시간도 불규칙하고 수면시간은 더 불규칙했다.
그나마 나랑 이송하는 쉴 수 있는 차라도 있지, 스텝들은 노숙자처럼 궁둥이를 붙일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잤다. 건물에서 촬영하다가 비상구 문을 열어보면 반드시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서 졸고 있을 정도다.
진심으로, 드라마 찍다가 과로로 죽어 나간 사람이 없는지 궁금하다.
다행히 오늘은 넥스트 K스타 녹화 때문에 드라마 촬영이 없어서, 차에서 자는 건 피했다. 그래 봤자 회사 숙직실이지만.
칫솔을 입에 물고 멍하니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처음엔 넵튠 이름이 가뭄에 콩 나듯 보였는데, 지금은 매주 빠짐없이 두세 개씩 있으니까 몸은 거지꼴이어도 마음은 풍족하다. 저 대부분이 이송하의 드라마 스케줄이긴 하지만, 앞으로는 팀 스케줄이나 다른 애들 개인 스케줄도 조금씩 늘어나겠지.
“좋은 아침.”
함께 숙직실에서 잔 김현조가 하품하며 다가온다. 얼굴을 봤다가 흠칫 놀랐다. 안 그래도 다크서클을 문신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인데, 요즘은 얼굴 전체가 다크서클 색깔이다.
“실장님.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응?”
“실장님이 하셨던 일을 지금은 저랑 건영이가 좀 나눠서 하잖아요.”
“어, 많이 나눠서 하지.”
“그런데 왜 실장님 일이 안 줄어드는 것 같죠.”
보통 신입사원이 윗사람을 보면, 나도 열심히 해서 빨리 저렇게 돼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몇 년 후 내 모습이 김현조라고 생각하면 털썩 주저앉고 싶어진다.
“야, 돈이 생기면 쓸 일이 생기잖아.”
“그렇죠.”
“시간이 생기면 할 일이 생겨.”
김현조가 흐릿하게 웃고는 화제를 돌려 묻는다.
“그런데 너 다음 촬영은 언제냐?”
“녹화 끝나면 바로요. 새벽 2시 스탠바이예요.”
“사람 잡네, 잡아. 그놈의 드라마는 무슨 촬영을 매일 하냐? 대본도 꽤 나온 상태로 시작했고, 공중파랑 비교하면 일찍 촬영 들어간 편이잖아. 근데 니들이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보다 더 바빠, 어째.”
“신 감독님이 완벽주의자더라구요.”
일단 촬영 콘티가 어마어마하게 섬세하다. 크게 카메라 포지션이나 컷 사이즈만 표시하는 게 아니라 감정, 편집에 대한 것까지 적혀 있어서 콘티북이 글자로 새까맣다.
한 씬, 한 씬 굉장히 공들여서 다양하게 찍기도 하고.
하지만 그걸로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을 거라고 믿으니까. 그리고 미리 촬영분량을 두둑하게 쌓아놔야 방송 들어갔을 때 쫓기지 않을 테니까.
생방으로 급하게 찍어내는 것보다, 지금 바쁜 게 훨씬 낫다.
“고양이 수호령 본방까지 이제 2주 남았지?”
“네.”
본방까지 앞으로 2주.
아직도 고양이 수호령에 대한 관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확하게는, 수그러들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짤막짤막한 메이킹 영상, 티저, 현장 사진이 주기적으로 풀렸고, 이송하에 대한 논란도 가라앉을 만하면 고개를 치켜든다. 넥스트 K스타의 고준태 피디가 시청률을 위해 이송하를 불쏘시개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놈.
넥스트 K스타는 얼마 전에 최고시청률 7프로를 넘어섰다. 나날이 고공행진 중이라, 고준태 피디의 콧대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
시청률이 올라가는 만큼 넵튠의 인지도가 덩달아 올라가는 건 좋은데, 이송하가 활활 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송하쯤 되니까 덤덤하게 버티는 거지 멘탈이 약한 애였으면 어디가 고장 나도 벌써 고장 났을 거다.
편집을 그렇게 해놓고 녹화 때는 능글능글하게 웃는 얼굴로 분량을 많이 뽑아줬느니 어쨌느니 헛소리를 하는데, 주둥이를 쭉 찢어놓고 싶을 정도다.
언제고 그 낯짝에 똥이라도 던져줘야 속이 시원해질 텐데.
그래도 요즘은 넵튠 팬들이 인터넷에서 고준태 피디를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어서, 그걸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다. 그런 위안거리라도 없었다면 나도 성질나서 못 버텼을 거다.
생각만으로도 울컥해서 입안의 칫솔을 꽉 깨물었을 때.
배신자가 등 뒤로 다가왔다. 방금 씻고 나왔는지 앞머리에서 물이 떨어진다. 돌아봤다가 흠칫 놀랐다.
김현조도 심각했지만, 이쪽은 한술 더 뜬다.
얼굴에 피곤해 죽겠다고 쓰여 있다.
내가 드라마에 매달리는 동안 김현조를 도와서 넵튠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살만하겠거니 했는데. 웬걸. 나보다 더 고생하는 것 같은 얼굴이다.
“밖에서 담배 좀 피우고 있을게.”
목소리도 반쯤 잠겨있고.
“너 준비 끝나면 전화해.”
“그래.”
내 대답만 듣고는 담배를 피울 장소를 찾아 사라진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김현조에게 물었다.
“앨범 준비하는 것도 엄청 빡빡한가 보네요.”
“아, 쟤는 요즘 따로 공들이는 게 있어서…….”
다시 하품하며 말하던 김현조가 아차, 하고 입을 닫는다.
“공들이는 거요?”
바로 물어봤지만, 김현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있어. 내가 보기엔 헛고생하는 것 같은데, 뭐 그것도 경험이니까.”
몇 번 더 물어도 지금 얘기할만한 건 아니라면서 고개만 젓는다.
요즘 공들이고 있는 거라…….
대체 뭐지?
[ 슛 들어가겠습니다 (3)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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