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74)
남자의 어깨를 꽉 붙잡고 뜯어냈다.
그리고 옥죄던 손길에서 벗어난 이송하를 내 등 뒤로 돌렸다. 작은 손이 내 등에 닿더니, 옷을 꽉 잡는 게 느껴진다.
“괜찮아?”
낮게 물었다. 이송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겉으로 티는 안 나지만 그래도 놀랐는지 내 등에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하긴, 웬 시커먼 놈이 끌어안고 만지는데 안 놀랐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찌푸린 눈으로 아직도 실실 웃고 있는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심각함이라곤 전혀 없는 얼굴이다. 오히려 입맛을 다시면서, 이송하의 등허리를 쓸어내렸던 양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놀라셨나? 제가 이송하 씨 팬이거든요.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몰라서. 와씨, 며칠 동안 손 안 씻어야지.”
“밖에 나가서 얘기하시죠.”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다. 특히 기자들. 소란을 키웠다가 성희롱이니 뭐니 자극적인 단어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가장 곤란해지는 건 여자 연예인인 이송하다. 분명 온갖 더러운 상상, 말들이 흘러나올 테니까.
조용히 다가온 경호원이 남자를 끌어내듯 데려갔다.
다행히 이쪽 상황을 눈치챈 서지준과 사회자가 시선을 끌어주고 있고, 기자들 쪽에는 김현조가 가서 얘기하고 있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인터넷에 올라가더라도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그치겠지.
한숨 돌리며 다시 뒤를 돌아봤다.
“송하야, 이제 괜찮으니까 나와봐.”
“네.”
돌아오는 목소리가 흐리다. 뱃속이 뜨거워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런 일이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겪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남자한테 욕을 한 바가지 퍼붓지 않으면 오늘 밤 잠도 못 자겠다. 경호원이 남자를 데려간 쪽으로 성큼 걸어가는데, 이송하가 질질 따라온다. 돌아보니 여전히 손이 내 등 부분의 옷을 그러쥐고 있다.
“아.”
저도 몰랐는지, 이송하가 눈을 깜빡이더니 손을 뗀다.
그리고는 자기 손을 빤히 쳐다본다.
몇 초간 침묵이 고였다. 이송하의 입술이 살짝 달싹거렸을 때, 떠들썩하게 다가온 사회자가 이송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팬을 소개한다.
자연스럽게 이벤트가 진행됐다.
나는 김현조에게 문자를 보내서 내 몫까지 변태 같은 놈에게 욕을 퍼부어달라고 부탁했다.
직접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위치를 바꿀 때마다 이송하의 시선이 졸졸 따라온다.
아무렇지 않게 굴고 있지만 내 눈엔 어쩐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팬들과의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나는 줄곧 이송하의 시야 안에 있었다.
*
관람석 한쪽.
사회자가 내는 퀴즈를 맞히기 위해 아우성을 치는 팬들 사이에서 몇 명이 소곤거렸다.
“뭔가, 자꾸 기가 죽네요. 우리 좀 쭈구리들 같아요.”
“서지준네 팬들 겁나 무섭다. 살 떨려서 퀴즈도 못 맞히겠네.”
그들은 오늘 모인 팬 중 절대다수를 차지한 서지준의 개인 팬도 아니고, 그다음으로 지분이 많은 드라마 팬도 아니었다. 넵튠 공식 팬 페이지에 가입까지 한 넵튠 팬들이었다.
“송하랑 인증샷 한 장은 찍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른 것 같죠?”
“이따가 다 끝나고 매니저 오빠한테 슬쩍 가봐요, 우리.”
“매니저? 매니저한테 가면 해줘요?”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물었다. 아직 뺨에 젖살이 동글동글한 여자, 닉네임 ‘먹송하’가 카메라로 분주하게 이송하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누구한테 가느냐에 따라 달라요. 넵튠 담당 매니저가 세명인데, 그중에서 맨날 같이 다니는 오빠들이 두 명 있어요. 얼굴 보면 딱 알아요. 한 명은 인상이 겁나 좋고, 한 명은 찬바람 쌩쌩 불거든요.”
“그럼 인상 좋은 사람한테 가면 돼요?”
이번엔 다른 여자가 물었다. 먹송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오빠는 이상하게 좀 껄끄럽고요. 오히려 정선우라고, 다른 오빠를 공략해야 돼요.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 오빠한테 말 잘 안 거는데, 직접 부딪쳐본 팬들은 다 그 오빠한테 졸라요. 해달라는 건 웬만하면 다 해주거든요. 사진 찍어주고 사인도 받아다 주고.”
“진짜요?”
“네, 사람 무안하게 귀찮은 티 내거나 무시하거나 그러지도 않고. 아, 근데 한번 안된다고 하는 건 암만 졸라도 안 돼요. ‘안돼’가 ‘돼’로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완전 단호박.”
“얼굴 봐놔야지. 지금 저기 있어요?”
“저기 송하 옆에…… 어?”
대답하던 먹송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퀴즈를 맞혀서 무대로 나간 남자가 별안간 이송하를 끌어안았다가, 매니저의 손에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곧바로 경호원과 문 쪽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상함을 눈치챈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예의 없다느니, 그래도 부럽다느니,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송하를 끌어안았다가 사라진 남자보다, 사람들은 다른 것에 더 집중했다. 팬의 과도한 스킨쉽에 당황했는지 이송하가 매니저의 등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 달라붙어 있었다.
“헐, 백허그…… 저 사람 누구야? 스텝?”
“매니저라는데. 뭐야, 팬들 모아놓고 계는 매니저가 타냐!”
“딱 붙어있는 거 봐. 저 사람 등짝 사고 싶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넵튠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 이송하는 우리랑 다른 세상에 사는 연예인 느낌이었는데, 저러고 있으니까 좀 사람 같네.”
“대박 심쿵짤 하나 나오겠네요. 공홈에 올려야지.”
“벌써 누가 SNS에 올렸네요. 겁나 빨라.”
먹송하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방금 찍은 게 분명한, 두 명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힌 사진이 누군가의 SNS에 올라갔다. 그리고 이벤트에 당첨되지 못해서 올라오는 인증사진만 쳐다보고 있던 다수에 의해 이곳저곳으로 퍼 날라지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남자가 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매니저는 일반인인데, 모자이크도 안 하고 막 올려도 되나?”
*
나도 예상은 했었다.
홍보팀 박 팀장이 ‘자기, 얼굴 좀 팔아도 괜찮아?’라고 물었을 때부터. 언젠가 내 얼굴이 SNS나 웹사이트에 돌아다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 날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닥칠 줄은 몰랐지.
“엄마. 별일 아냐, 신경 쓸 거 없어.”
-별일이 아니긴, 네 고모 말이 너랑 연예인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 인터넷 기사에도 올라오고 그런다던데.
핸드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유난히 밝다. 이게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일인가. 뭐, 사고 쳐서 사건·사고 기사에 올라가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만, 그래도 낯이 좀 뜨겁다.
부모님만이 아니라 이미 친척들과 친구놈들에게서도 폭격 수준으로 연락을 받았다. 친구놈들과의 단톡방은 쉬지도 않고 진동을 울려대서 아예 알림을 꺼놨다.
아침부터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숨을 쉬며 진열대에서 이송하 몫의 간식을 골랐다.
어째 아까부터 편의점 직원이 자꾸 내 얼굴을 힐끔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겠지. 그래, 괜한 생각이지. 겨우 사진 한 장인데. 더군다나 이송하도 아니고 매니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계산하는데 엄마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아버지가 그거 사진 뽑아다가 거실에 걸어놓을 거라더라.
“뭐? 아니, 그걸 왜?”
-설날에 친척들 오면 한 번씩 보여준다고.
미치겠네.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가 너한텐 얘기 안 해도 집에서는 입만 열면 네 걱정이었는데, 그래도 그건 쏙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이네.”
-너 혹시 TV에는 안 나오니?
“난 연예인이 아니라 매니저야, 엄마.”
말하면서도 한 가지가 걸렸다.
박 팀장과 김현조가 얘기했던, 설 특집 예능프로그램. 뭐, 아직 별 얘기 없는 거 보면 엎어진 거겠지.
-그래도 또 모르잖아. 나오면 꼭 미리 얘기해야 된다. 알았지?
“알았어요, 알았어.”
“IBC 특집 예능 픽스됐어, 자기.”
창밖에 날리는 함박눈을 쳐다보고 있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앞자리. 오붓하게 커피나 한잔 하자며 나를 회사 밖으로 끌어낸 박 팀장이 눈웃음을 짓고 있다.
“픽스됐다구요?”
“응. 제작진이 자기 사진 뜬 거 보고 자료조사를 좀 했나 봐. 자기 만나본 팬들이 경험담 식으로 써 올린 글 같은 거 보고 마음에 들었나 보더라. 나도 찾아봤는데 팬들 사이에서 자기 평이 꽤 재밌더라고.”
“아…….”
“인터뷰에, 방송에, 자기 잘하면 스타 매니저 되겠다? 연예인 병 안 걸리게 조심해야겠어.”
“하하. 재미없어요.”
어쨌든 축하할 일이다.
이송하만이 아니라 넵튠 전체가 공중파 예능에 입성하는 거니까.
특히 임서영은 이 얘길 들으면 눈물을 흩뿌리며 기뻐할 거다. 예능프로에 나가는 그 날을 위해 늘 개인기를 갈고닦고, 도통 쓸모없을 것 같은 상식 퀴즈 책까지 독파한 애니까.
가서 전해줄 생각을 하니 풍랑에 흔들리던 마음이 푸근해진다.
박 팀장이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웃었다.
“예상치 않게 얼굴이 일찍 팔리긴 했지만 잘됐다고 생각해. 만약 송하가 거기서 지준이 등에 붙었어 봐. 지금쯤 스캔들 터지고 욕 얻어먹고 있을지도 몰라. 그나마 일반인인 자기 등에 붙었으니까 거북이 등껍질이니, 뭐니 하는 훈훈한 말이 돌아다니는 거지.”
“그것참 위안이 되네요.”
입맛을 다시며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잠깐 사이 눈발이 더 굵어졌다. 예보에도 없는 갑작스러운 눈이라, 우산 없이 걷는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에 눈가루가 하얗게 덮여있다.
저 눈 때문에 고양이 수호령 촬영도 올스톱 상태다. 눈이 그치면 다시 스케줄을 잡는다는데, 아무래도 오늘 내론 안 그칠 것 같다.
“그런데 이 얘기 하시려고 회사 밖으로 나오신 거예요?”
쌉싸래한 커피를 마시며 묻자, 박 팀장이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 내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그보다는…….”
점심시간의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전쟁통처럼 북적거려서 우리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도, 박 팀장의 목소리는 바닥을 길 것처럼 작았다.
“손채영이 슬슬 들이닥칠 때가 됐지 싶어서.”
눈이 번쩍 뜨였다.
한번 보러 갈까. 얼마 전까지라면 미친 생각이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어제 방송한 고양이 수호령이 마침내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 시청률을 넘어섰으니, 아마 얼굴이 야차처럼 변해있겠지.
“또 홍보기사 때문에 온대요?”
“아니, 송하한테 걸려있는 광고 때문에.”
뭐?
“그러니까 내가 자기까지 데리고 피신 나왔지. 오늘은 웬만하면 회사 들어가지 마. 손채영 눈 뒤집혀서 다 뒤집어엎고 있을지도 몰라.”
“송하 광고랑 손채영이 무슨 상관인데요?”
설마 이송하가 광고 찍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깽판 놓으러 온다는 소린 아니겠지. 설마, 하면서도 손채영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여자니까.
하지만 박 팀장의 말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송하한테 간 광고, 그거 원래 손채영이 찍던 거거든.”
*
손채영은 주인 없는 대표실에 홀로 서 있었다.
박 팀장의 예상과 달리 눈이 뒤집히지도, 다 뒤집어엎는 중도 아니었다. 하지만 얼린 것처럼 싸늘하게 굳어있는 눈은 폭풍전야의 그것처럼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시선이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화면에는 사진 한 장이 떠 있다.
뒤를 돌아보고 있는 남자는 누가 봐도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두 눈에서 걱정이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여자, 이송하가 그 등을 부여잡고 찰싹 붙어있다. 마주 보는 눈엔 신뢰가 담겨있다.
달칵, 대표실 문이 열렸다.
백한성 대표가 겉옷을 벗으며 들어왔다.
“제가 기막힌 얘기를 들어서, 대표님한테 직접 여쭤보려고 왔어요.”
“음. 해봐.”
의자에 앉으며, 백한성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CF 이송하한테 넘어간다는 거 진짜예요?”
“맞아.”
“대표님!”
“내가 돌렸어. 그쪽에서 모델을 바꾸자길래.”
태연한 대답에 손채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제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송하한테 주셨다구요?”
“다른 회사에 주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손채영이 손에 들린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눈에 불똥이 튀었다.
“왜 하필 걔예요? 저 환장하는 거 보려고 그러세요?! 차라리 다른 사람이 낫지, 걔한테 뺏기는 건 싫어요! 제가 재계약서에 아직 사인 안 한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할게요. 그러니까 걔한테 제 CF 주지 마세요!”
다른 때처럼 떼쓰듯 소리를 지르던 손채영이 멈칫했다.
백한성 대표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느긋하게 웃는 얼굴. 하지만 눈빛이 달랐다.
손채영이 W&U에 몸을 담은 것도 수년째다. 백한성 대표의 저런 눈빛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닿은 시선은 늘 부드러웠다. 단 한 번도, 저 시선이 손채영 자신에게 향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눈을 피한 손채영이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한참 전부터 잘근잘근 씹은 입술은 피가 스민 것처럼 붉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손채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알았어요. CF 그까짓 거. 하나 가지라고 해요.”
입술이 비틀렸다.
“그 대신 이송하 걔 매니저, 그 사람 저한테 붙여주세요.”
[ 여러모로 역대급 드라마 (3) > 끝ⓒ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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