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Management RAW novel - Chapter (93)
내가 잘할 수 있을만한 거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
진짜 미래를 보는 사람 앞에, 물론 그걸 아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지만, 어쨌든 내 눈앞에 ‘미래 예지자’라는 카드가 떡하니 놓여있는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하게 느껴진다.
홀린 듯 카드를 살짝 만진 순간, 배정환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네?”
“오늘 하루 선우 씨는 미래를 보게 될 겁니다.”
그것참 환상적이네.
독방을 나와 VJ와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야외촬영을 준비하느라 부산스러운 스텝들 사이로 디자인은 같고 색깔만 다른 승합차 두 대가 서 있다.
버릇처럼 운전석 문을 열자, 미리 타고 있던 두 명이 홱 돌아본다.
한 명은 아까 몇 마디 나눴었던 황재현. 다른 쪽은 ‘지금우리’ 팀 막내 캐릭터에, 본업이 배우인 임주원이다.
인사를 하자마자 황재현이 말을 놓고 물었다.
“너도 카드 골랐지? 무슨 능력이야?”
“아, 저는 미래를 봅니다.”
정선우, 28세. 미래 예지자죠.
뭐랄까. 말이라는 게 힘이 있긴 한가보다. 거의 반년이 돼가는 시간 동안 혼자 꼭꼭 숨겨온, 앞으로도 숨길 예정인 내 가장 큰 비밀. 그걸 입 밖으로 꺼내놓으니까 뱃속이 후련하다.
황재현과 임주원도 각각 능력이 하나씩 있었다. 그 설명을 듣는 동안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속속 도착했다. 아역 여자애 송유리. 이태희. 그리고 내 옆자리에 올라탄 이송하까지.
“송하 넌 뭐 골랐어?”
“최면술사요.”
이송하가 뿌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딱 한 사람한테 최면을 걸어서 제 걸로 만들 수 있대요.”
“네 거?”
“네. 최면 걸고 이마에 제 이름 쓰면 된대요. 잘 고른 거 같아요.”
그러면서 내 이마를 지그시 쳐다보는 게, 어째 심상치 않다.
“너 그거 나한테 하려는 건 아니지?”
이송하가 슬그머니 눈을 피하며 딴청을 피운다. 하려고 했구나.
“그걸 왜 나한테 허비해. 나한테 최면을 걸어서 뭐에 써먹게.”
“음. 이런 거나, 저런 거나.”
그게 뭔데!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노리라고 했더니만 ‘왜요?’ 하는 얼굴로 날 본다. ‘지금우리’ 멤버들한테 해야 방송분량도 나오고 더 재미있을 거라고 한참 얘기하는데, 뒤에서 황재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표정 좀 풀어라.”
“내가 뭘.”
그러고 보니 임주원의 반응이 좀 이상하긴 하다. 여자들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곱상하게 잘생긴 얼굴이 유난히 굳어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아까부터 나와 이송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황재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쟤 지금 배 아파서 그래. 원래 고양이 수호령 남자주인공 배역이 쟤한테 먼저 들어왔었거든. 서지준 씨가 한 그 역할. 그냥 했으면 지금 쟤가 대박 터졌을 텐데, 그걸 걷어찼으니 속이 얼마나 쓰리겠어?”
“아, 진짜, 형!”
그러고 보니, 서지준 전에 임주원도 캐스팅 관련 기사가 났었지. 어디가 다쳤었다고 했나?
힐끔 돌아보자 임주원이 까칠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살짝 다친 거라 드라마 스케줄에 맞출 수 있었는데, 회사에서 하지 말자고 했다니까. 잘 안될 거 같으니까 그냥 다친 거 핑계 대고 까자고. 안될 것 같긴, 씨. 망할 놈의 회사! 도움이 안 돼. 이번에 계약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옮길 거야.”
“저도 슬슬 소속사 찾으려고요, 선배님.”
가운데 자리, 송유리가 눈을 귀엽게 깜빡거리며 끼어들었다.
“지금까지는 외삼촌이 스케줄을 봐주셨는데, 좀 답답해서요. 앞으로 성인 배우로 연기변신 잘하려면 소속사가 필요할 것 같더라구요.”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매니지먼트 회사 몇 개를 거론했다. 전부 이 바닥에서 이름깨나 알려진 메이저 회사들이다.
뭐, 저 둘이면 거의 모든 회사가 환영하겠지. 임주원이야 공중파에서도 주인공이 가능한 원탑 배우고, 송유리도 아역으로써는 이례적으로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탔던, 잠재력 넘치는 아역배우니까.
우리 회사에서도 환영할 텐데. 홍보팀 쪽에서도 FA시장에 나오는 배우들을 계속 주시하는 눈치였고. 한번 찔러나 볼까?
“W&U는 어때요?”
내 말에 둘의 대화가 끊어졌다.
임주원과 송유리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뺨이 따끔따끔할 즈음, 임주원이 미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스카웃 제의하는 거예요?”
내가 웃으며 입을 열려는 때, 차 문틈으로 배 피디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초능력자분들 출발할 준비 되셨죠?”
“뭐야, 우리가 끝이야? 나머지 사람들은?”
황재현의 물음에 피디가 좀 떨어져 있는 흰색 승합차를 가리킨다. 그쪽에는 송 작가가 붙여서 뭔가 설명하고 있는데, 열린 문틈으로 엘제이와 임서영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배 피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초능력자 팀과 연구원 팀, 두 팀으로 나뉩니다. 초능력자 팀원들은 연구원 팀원들에게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초능력자들은 귀한 실험체이기 때문에 잡히면 연구실로 끌려가게 됩니다.”
귀한, 뭐?
“너무 잔인한 거 아니에요? 초능력자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진심을 담아 물었다. 안 그래도 예지 능력을 들켜서 매드 사이언티스트한테 납치당하는 악몽도 꾼 적 있다고. 온몸이 꽁꽁 묶인 채로 수술 침대 위에 누워있다가 깨어났단 말이야.
피디가 뭐가 문제냐는 듯, 빤빤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원래 그런 세계관입니다.”
“전체 이용가 예능에 뭐 그런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을······.”
“원래 세상이라는 게 그런데요, 뭐. 애들도 알 건 알아야죠.”
이거 초등학생들이 봐도 괜찮은 거 맞아?
“그럼 출발하시기 전에, 선우 씨가 미래를 봐 주시죠.”
“어떻게 보는데요?”
“이걸로요.”
피디가 내 머리통만 한 상자를 하나 건네준다. 안에는 색깔이 다른 주사위 몇 개가 들어있는데, 여섯 면에 모두 스티커가 붙어있다. 뒷좌석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주사위를 한꺼번에 들고 던지시면 됩니다.”
“초능력 쓰는데 뭐 주문 같은 것도 없어?”
하마터면 카메라 앞에서 황재현한테 욕할 뻔했다.
주사위를 손에 들고 ‘나와라, 미래!’ 따위의 주문을 외는 모습을 상상했더니 전신이 소름으로 뒤덮인다. 아니겠지. 아닐 거다. 정말 그런 걸 하게 된다면 내가 죽은 미래가 보일지도 모른다고. 이번에야말로 사인은 수치사겠지.
피디가 나를 힐끔 본다.
“굳이 주문을 원하신다면 문 프리즘 파워, 빛으로······.”
“아뇨, 그냥 던지겠습니다. 당장 던질게요.”
숨도 안 쉬고 주사위를 한꺼번에 집어 던졌다. 옆좌석에서 마치 아쉬워하는 듯한 탄식이 들린다. 홱 쳐다봤더니 이송하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딴청을 피우고 있다.
상자 벽에 부딪히며 빙글빙글 돌던 주사위들이 하나둘 멈췄다.
“이제 윗면의 스티커를 벗기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봐주세요.”
배 피디의 주문대로 빨간색 주사위의 스티커부터 벗기며 읽었다.
“초능력자 팀은, 한 시간 후에, 신촌 길거리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미션을 수행한다.”
하하. 미래 예지라는 게 이런 식이었구만. 나한테 보이는 미래가 이거 반만 자세했어도 지금쯤 내 직함이 실장이 돼 있을 거다. 입맛을 다시며 주사위를 반납했다.
그리고 우리는 예지가 가리킨 대로 신촌으로 출발했다.
물론 차 안에 넵튠의 신곡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으니까, 미션 하시면서 안전사고 안 나도록 다들 유의해 주세요.”
승합차에서 내리자마자 배 피디가 당부했다.
많긴 많다. 주말이라 차량도 통제해놓은 상태라, 인도는 물론 아스팔트 도로까지 연세로 전체가 사람들로 붐볐다. 눈 돌리는 곳마다 커플이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도 많았다.
“어어어! 임주원이다!”
“저기 ‘지금우리’ 팀 아냐? 맞지? 야, 빨리 와! 여기 뭐 촬영해!”
“송유리 게스튼가 본데! 그 옆엔 누구지?”
“넵튠 아냐? 헐, 실물 대박······! 조금만 더 가까이 가보자.”
거리로 들어가자 금방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촬영 스텝들이 있어서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지만, 여자들은 모두 임주원을, 남자들은 이송하와 이태희를 보며 흥분을 펌프질하는 중이다.
“깔려 죽겠다. 날씨도 우울한데 뭐 이런 날까지 데이트를 하겠다고.”
“그래도 사람 많아서 연구원 애들이 우리 찾긴 힘들겠는데?”
임주원의 불평에 황재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이태희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좀 뛰어야 할 텐데. 넵튠 멤버들 운동신경은 좀 어때?”
“저희 팀에서는 엘제이가 제일 좋아요. 취미가 복싱이라서. 서영이도 어렸을 때부터 댄스 연습한 애라 운동신경이 좋고, 송하도 연료만 제때 챙겨주면, 아, 먹을 것만 챙겨 먹이면 잘 움직여요.”
“너는?”
“저질이에요.”
이태희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질? 달리기는 어떤데?”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로 달리기는 해 본 적이······.”
먼 산을 쳐다보며, 이태희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먹는다. 팬한테서 받은 건강식품. 홍삼 젤리다. 그 모습을 본 황재현이 이쪽은 글렀구만, 하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피디님, 얼른 미션 줘요! 연구원 팀 오기 전에 빨리하고 튀게!”
임주원의 닦달에 피디가 미션 카드를 나눠줬다. 내 카드에는 동갑내기 커플을 데려오라고 쓰여있다.
“태희 너는 뭐야?”
“전 생과일주스 두 잔 사오기요.”
내 물음에 이태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대답했다.
“송하는?”
“저는 유모차 타고 있는 남자애 데려오는 거요.”
다행히 둘 다 까다롭진 않다. 까다롭긴 내게 제일이다. 커플이야 수도 없지만, 일일이 붙잡고 동갑인지 아닌지 물어봐야 하니까.
일단 애들하고 흩어져서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내 담당 VJ가 바짝 쫓아온다. 저마다 웃고 있는 커플을 잡아 양해를 구하고 나이를 물어봤다.
그런데 어쩐지, 여유롭게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으니까 느낌이 좀 이상하다.
그동안 연예계 바닥에서 정신없이 사느라, 이런 일상적인 환경에서 너무 멀어져 있었던 것 같달까. 현실감이 확 밀려온다.
다음 휴일에는 나도 친구든 누구든 만나야지 안 되겠다.
다짐하며, 네 번째 커플을 찾아 나섰을 때였다.
“야, 너 정선우 아냐? 맞지? 정선우?”
뒤를 돌아봤더니 낯선 커플이 날 쳐다보고 있다. 내 이름을 정확하게 부른 건 남자 쪽이었다. 분명 기억에 있는 얼굴이긴 한데, 대학 동기였던가? 아니면 고등학교?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입술만 달싹였더니, 남자 쪽이 인상을 구겼다.
“너 설마 나 누군지 기억 안 나냐?”
“어. 미안하다. 안면인식장애가 좀 있어서.”
“김태종, 임마! 김태종! 근데 너 요즘 뭐하냐? 여긴 혼자 왔냐?”
알아서 이름을 밝힌 놈이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질문을 퍼부었다. 여자친구의 어깨를 슥 끌어당기는 폼이, 이 봄날 주말에 넌 솔로냐고 묻고 싶은 모양이다.
아까보다 더한 현실감이 밀려온다. 마치 쓰나미처럼.
“너 옛날엔 PC방도 안 가고 맨날 애들 데리러 가고 그랬잖아. 무슨 동생 줄줄이 딸린 소년가장처럼. 지금도 애들 돌보고 사냐?”
“뭐, 비슷해.”
애들을 돌보고 있긴 하지.
“인생을 좀 즐겨, 인생을. 우리 좀 있으면 서른이야!”
김태종이 그렇게 말했을 때, 여자친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태종아, 근데 내가 언제 네 친구 봤었어? 되게 익숙한데?”
“야, 나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네가 어떻게 봐?”
“아냐, 분명 어디서 봤는데. 한번 보면 쉽게 잊힐 인상도 아니고.”
내용보다는, 둘이 반말로 대화하는 것만 들렸다.
동갑이구나! 재빨리 김태종에게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여자친구랑 동갑이냐?”
“어, 그런데······ 야, 저 카메라 우리 찍고 있는 거 같지 않냐?”
김태종이 갑자기 머리를 정돈하더니 내 뒤쪽을 바라본다. 좀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VJ가 나를 찍고 있다. 내가 김태종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고 섭외하려는 순간이었다.
“오빠.”
오른쪽 대각선 방향에서 이송하가 다가왔다.
살짝 웃는 얼굴로. 손으로는 조심조심 유모차를 밀면서. 바람결에 흩어지는 풍성한 머리카락 뒤로는 단단히 홀린듯한 표정의 남자들 몇 명이 좀비처럼 따라오고 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전 다 됐어요.”
“어, 나도 될 것 같아. 아는 사람을 만······.”
“너 결혼했냐?”
불쑥, 김태종이 황당한 소릴 했다. 놈은 이송하와 유모차를 멍청한 얼굴로 번갈아 보더니, 다시 나를 봤다.
“겨, 결혼했어? 너 결혼했냐, 저··· 저분이랑? 네 애야?”
“누구 혼삿길 막을 일 있나. 아냐.”
“그렇지? 그럼, 어쩐지. 애가 너랑 안 닮았더라. 깜짝 놀랐네.”
이송하 뒤에서, 유모차 아기의 부모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다시 김태종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는 순간이었다. 이번엔 왼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생과일주스 사왔어요.”
이태희가 인파를 뚫고 나왔다. 양손에 녹색 주스 잔을 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인지 평소답지 않게 빠른 걸음으로 내 옆까지 온 이태희가 김태종을 쳐다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김태종이 입을 벙긋거리다가 다시 나를 보고 물었다.
“야, 혹시, 저······.”
“아니야. 뭘 생각하든 아니야.”
“아! 넵튠!”
김태종의 여자친구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그리곤 삿대질했다.
“넵튠 맞죠, 그, 매니저 맞으시죠? 설날에 방송 나왔던!”
“맞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예능 촬영 중인데,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미션 좀 같이 해주실래요?”
“괜찮아요! 어머, 어떡해! 완전 괜찮아요! 영화 취소하면 돼요!”
“뭐? 넵튠이 뭔데?”
두 사람에게 지금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중에, 이번엔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또 누군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했다.
익숙한 얼굴. 엘제이와 임서영이 직진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오빠! 거기 딱 서 있어요! 도망가지 말고!”
임서영의 흉흉한 고함을 듣고서야 상황파악이 끝났다.
“어, 야, 우리 일단 도망가야겠다.”
“뭐?!”
김태종 커플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우리는 재빨리 엘제이와 임서영을 피해서 흩어졌다. 벌써 들켰으니 이번 미션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사소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앞쪽. 인파가 몰려있는 곳에서 갑자기 찢어지는 비명이 터졌다.
두 번, 세 번, 비명은 빠르게 전염됐다. 처음에는 임주원이 뭔가를 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아니면 ‘지금우리’ 팀원이 모여서 함성을 유도했거나. 저 정도로 격한 반응을 끌어낼 만한 일이 그 둘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연예인을 보고 좋아서 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들렸다. ‘피해’, ‘도망쳐’ 같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외침도 섞여 있었다.
“저기 무슨 일 난 거 같은데? 어어, 저 사람들 왜 저래?”
“뭐야, 저러다 사람 다치겠다!”
근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비명 지르던 사람들이 도망치듯 이쪽으로 달려왔다. 몇 초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아냈다. 생수통을 실은 낡은 트럭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잔뜩 깔린 도로로.
······저게 지금, 뭐하는 거지? 제정신인가?
도망치던 여자 한 명이 트럭에 부딪혔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트럭은 휘청거리듯 이쪽저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달려왔다. 사람들이 바윗돌에 얻어맞은 송사리떼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일상적이던 곳에서, 가장 비일상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잠깐, 애들. 애들은 다 어딨지?
혼란 속에서 황급히 두리번거렸다. 엘제이와 임서영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고, 이태희도 좀 거리가 있다. 그리고 이송하는 유모차를 팽개치고 아기를 꺼내서 품에 안고 있었다.
트럭이 돌진하고 있는 방향이다.
나는 상황을 파악할 정신도 없이 튀어 나갔다. 아기를 감싸 안고 피하던 이송하가 뭐에 걸렸는지 휘청 엎어진다. 다시 일어났을 때, 트럭은 이미 지척에 있었다.
“송하야!”
이송하가 내 쪽을 쳐다봤다. 놀란 얼굴에 한 가닥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다. 나는 거의 달려들다시피 가서 이송하와 아이를 감싸 안았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부딪친다. 그렇게 느낀 순간.
돌연 이태희가 내 등을 세게 밀쳤다.
[ 지금부터 우리는 (2) > 끝ⓒ 장우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