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
운빨로 탑스타-1화(1/200)
제1화
어느 법정.
우드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일반적인 법정과는 달리, 이곳은 온 사방이 안개로 가득했다.
마치 구름 속에 들어오기라도 했다는 듯 비현실적인 공간.
그곳에서 한 남자를 둘러싸고 열 명의 배심원과 한 명의 거인이 앉아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풍성하게 수염을 기른 배심원이 입을 열었다.
“이민기, 32세, 직업은 배우, 계단을 내려가던 중 뒤로 넘어져서 사망.”
그가 손에 쥔 문서를 펄럭펄럭 넘기며 말을 이었다.
“아파트 앞에서 머리가 깨져 뇌출혈이 일어났고, 빠르게 구조를 받았더라면 살 수도 있었겠지만 마침 주위에 사람이 없었군요. 무려 1시간을 방치당했습니다.”
“운이 나빴군요.”
“예, 운이 나쁘다고 할 수밖에. 그래도 병원으로 이송된 뒤에 바로 응급처치를 받았더라면 가망이 있었겠지만, 마침 같은 날에 응급 환자가 많았습니다.”
“남는 의사는 없었나요?”
“과로로 입원했습니다.”
계속해서 한 남자의 인생이 배심원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11살,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뒤로 넘어져서 코가 깨졌습니다.”
“운이 나빴군요.”
“12살, 급식으로 나온 떡국을 먹다가 식도가 막혀 죽을 뻔했습니다. 다행히도 담임 선생이 하임리히 요법을 익혀 살았군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요?”
“그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 신세를 졌습니다. 이어, 13살, 학예회 연극 전날 뒤로 넘어져 발목을 삐었습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면 두 번 중 한 번은 배달부가 빼먹었군요.”
한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 죽기까지의 과정이 계속해서 일컬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운이 나빴군요.”
말 그대로, 운이 나빴다.
사내의 삶은 지독하리만치 운이 나빴다.
“22살, 심장에 증상이 있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걸 모르고 입대했습니다.”
“운이 나빴군요.”
“24살, 첫 자가용으로 중고 오토바이를 뽑았지만, 인근 중학교의 학생들에게 도난당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운이 나쁘다.
이민기라는 사내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무엇을 하든 운이 따르질 않았다.
원래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 했던가.
사내의 삶이란 그 운이 칠은커녕 일조차도 못 미치는 듯했다.
“스물다섯의 나이, 배우가 되려 마음을 굳혔습니다. 하지만 오디션은 족족 탈락. 배역은 단역으로 밀리고, 스튜디오는 파산하고, 기획사와 가까스로 계약했지만……그마저도 사기를 당했군요.”
운.
운이라고 할 것이 지독하게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가뜩이나 운이 중요하다는 배우에 도전해서는 더 호되게 당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접싯물에 코 박고 익사할 수준도 지나쳤다.
그의 불운이란, 코를 파다가 혈관파열이 일어나 뇌척수막염으로 사망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경지였다.
가히 인간 개복치라고 불러도 좋을 영역.
그게 이민기라는 사람이었다.
“이건 정말……허어,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서른을 넘어서까지 살아남은 게 신기할 정도군요.”
결국에는, 온갖 경우를 다 겪어 본 배심원마저도 혀를 차고야 말았다.
“제가 사자(死者) 재판의 배심원으로 참가한 것이 어느덧 육백 하고도 구십이 년입니다만, 차마 이렇게까지 기구한 삶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이 재판은 죽은 자의 인생을 되짚는 재판.
죽기 전까지의 삶을 판단해, 내생에 어떤 삶을 부여할지 정하는 자리였다.
이곳에 사내, 이민기는 32살의 젊은 나이로 목숨을 잃어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상하군요.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운이 이렇게까지 나쁠 수 있는 겁니까? 어딘가 오류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동의합니다. 피고인의 삶을 전적으로 재검토하기를 바랍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콧수염 배심원의 주장을 시작으로, 배심원들의 목소리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결국에는.
“조용.”
판사가 입을 열었다.
덩치가 족히 3미터는 될 것만 같은 판사는 얼굴은 악마처럼 사납고, 전신이 홍삼처럼 붉었다.
덩치만큼이나 장엄한 그의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여태껏 입을 놀리기 바쁘던 배심원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판사는 그제야 만족한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배심원단의 주장에 앞서 조금 전 상부에 검토를 의뢰했고, 정밀 검사 결과가 내려왔다. 원인은 이러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에게는 운이 부여되지 않았다.”
“…….”
충격적인 결과가 판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운이 없었다고 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냥 운이 없어서 저런 삶을 살았다고 한다.
무책임하게까지 느껴지는 말.
하지만 배심원들의 표정은 썩 심각해 보였다.
“그럴 수가.”
“어쩐지.”
“이런 오류가 있으리라고는.”
판사가 말을 이었다.
“모든 사람은 전생의 행적에 따라 제 몫의 운을 가지고 태어나야 하는 법. 하지만 피고인에게는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피고인의 운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갔다.”
판사가 리모콘을 들더니 벽에다가 대고 삑 눌렀다.
그러자 곧 어느 잘생긴 남자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찍은 문제가 다 맞았어] [제가 로또에 당첨됐다고요? 정말로요?] [부동산이 3배로 올랐어!] [부모님이 남겨 주신 땅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대] [너도 날 좋아했다고?]이쪽 사내의 삶은, 이민기의 삶과는 달리 무엇을 하든 운이 따랐다.
복이 많은 수준을 넘어서서 운의 화신이라도 된 모양.
숨만 쉬어도 돈과 인맥이 굴러들어온다.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재수 좋은 삶이었다.
“피고인은 피해자였군요.”
“허어, 설마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배심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위엄 있어야 할 사자 재판에 중대한 오류가 있어, 사람 한 명이 한평생을 고통만으로 보냈다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한 명이 두 명분의 복을 누린 만큼, 다른 한 명은 모든 운이 없었던 겁니다.”
한편, 그 말을 잠자코 듣는 이민기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지금까지 운이 나빴던 거라고?’
* * *
이민기, 32살에 계단을 내려가던 중 발을 헛디뎌서 사망.
평생 운이 나쁜 건 알았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되잖아.’
설마 태어날 때부터 운이 나쁠 운명이었다니.
한평생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여태껏 노력에 노오력을 기울여 왔다.
배우라는 직업은 운이 나쁘면 안 되는 일이다.
이걸 극복하려고 남들보다 곱절의 시간을 연기에 쏟아부었다.
‘작품이 망했을 때 운이 나빴다고 변명하는 사람이 안 되려고, 연습실에서 아예 살다시피 했는데.’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는가.
얼마나 더 분석하고 참고하고 공부했는가.
그래, 분명 그랬는데.
그 모든 노력들이 그저 운이 부족해서 허사였다니.
하물며 죽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다니.
‘인정할 수 없어.’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더욱 화가 나는 건, 그는 이 자리에서 말 한마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 …!!”
그에게는 지금 육체가 없기 때문이었다.
한 영혼이 되어 이 재판에 제삼자로서 참관할 권리만이 주어졌을 뿐.
“허어, 딱한 일이로다.”
“너무나도 불쌍합니다. 너무나도 불쌍하옵니다!”
“배우를 꿈꿨다고 했나요. 필히 고생이 따랐을 겁니다. 이 영혼의 삶은 언제나 오롯이 연기에 중심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배심원들은 그의 삶이 마치 자기네 삶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연기는 훌륭했습니다. 그저 설 자리가 없었을 뿐.”
하물며 눈시울을 붉히는 배심원마저 있었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중얼거리기만 할 뿐.
마땅히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 가여운 어린 혼을 위해 보상을 해야 합니다.”
“옳습니다. 올바른 배역을 줘야 합니다.”
“피고인이 연기자로서 날개를 펼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합니다.”
“안 됩니다. 이건 사자 재판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입니다.”
“저 말이 맞소. 예외를 둘 수는 없느니라.”
“그럼 무고한 피해자를 방치하자는 말입니까? 재고를 바랍니다.”
“지엄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저 꼰대.”
“지금 뭐라고 했나?”
“들으셨습니까? 들으시라고 한 말인데 잘 됐습니다.”
“……후우, 이래서 천한 출신은 안 된다니까. 위랑 아래가 없어.”
“내세울 게 그깟 윗물 아랫물 이야기밖에 없으셨나? 그러니까 꼰대 소리를 듣는 거지.”
“뭐가 어째?”
이내 지엄한 법정에 추잡한 말싸움이 번져나갔다.
그렇게 웅성거리기를 한참.
쾅! 쾅!
마치 미사일이라도 폭발한 듯한 망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용!”
판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마치 확성기에 대고 말한 듯 거대한 목소리. 음파 공격을 연상시키는 성량에 배심원들이 일제히 귀를 막았다.
어느새 법정이 다시 조용해질 무렵.
“피고인의 처분을 선고하겠다.”
붉은 판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렇게 불운을 타고난 사람이 어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었겠는가? 모든 피고인은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판결.
법정 내 모두가 숨을 죽이기를 잠시.
판사의 묵직한 목소리가 법원에 울려 퍼졌다.
“하여, 피고인에게는 보상 차원에서 두 번째 삶을 부여하노라. 7년 전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회귀를 주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이민기가 움찔 떨었다.
배심원들에게도 놀람의 물결이 퍼져나가는 한편, 이게 끝이 아니었다.
“보상을 주어야겠지. 그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하였다.”
판사가 이민기의 혼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의자를 툭툭 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번 삶에는 타인의 배는 되는 운이 따를 것이다.”
“……!”
기존에 없었던 운에 더한 운을 덧붙여서 보내주겠다는 말이었다.
“배우로서의 꿈을 펼쳐 보아라. 상처를 말끔히 씻어낸 뒤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거든, 그때 다시 사자 재판에서 판단하겠다.”
파격적인 보상.
과거로 돌려보내 주겠다니. 찰나에 행운을 손에 거머쥔 주인공이 된 이민기의 사고가 잠시 마비되었다.
‘잠깐, 그럼 주식, 주식부터 살까? 아니지, 나 지금 어쨌든 화를 내야 하는 타이밍이잖아.’
과거로 보내준다고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보상이 되는 거 아닌가.
배우로서 이만한 보상이 더 있나.
설령 운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앞으로는 성공할 작품, 성공할 회사만 고르면 그만이다.
‘그래, 우선은 이 정도로 받아들이자.’
내심 머릿속에 꽃밭을 피운 찰나였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꼬장꼬장한 선비 차림의 배심원이 소리를 질렀다.
아까 노비 출신의 배심원과 한참이나 말싸움을 벌이던 그 배심원이었다.
그가 얼굴의 주름을 잔뜩 잡으며 입을 열었다.
“판사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바는 지엄한 법정의…….”
뭐라고 항의를 덧붙이려는 찰나였다.
“닥쳐라!”
판사가 그의 말을 잘랐다.
“나이도 어린 게 감히 어른이 하는 말에 반박을 해? 당 배심원은 가정교육을 원격으로 배웠나?”
“……!”
“나 때는 윗사람이 말을 하면 당장 틀린 말 같아도 고개를 조아리고 예~ 대답한 뒤 몇십 번을 곱씹어 봤는데, 하여간 요즘 것들은.”
판사가 혀를 한참을 찼다.
난데없이 쏟아진 말에 한참이나 반대를 쏟아내던 배심원들이 일제히 조용해졌을 무렵.
판사가 판사봉, 아니, 판사 해머를 다시 내려치며 말했다.
“이상, 제9159124541호 사자 재판을 마무리한다.”
그 순간이었다.
이민기.
그의 혼이 바스러져 새하얀 재가 되었다.
이윽고 불어온 바람에 휩쓸려 저 하늘 어딘가로 훌훌 날아갔다.
* * *
이른 새벽.
어느 비좁은 원룸.
삐비빅!
삐비비비비빅!
알람 소리가 울리기를 잠시.
“허억!”
한 남자가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무엇이 그리 놀라운지 황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온몸을 손으로 더듬었다.
‘사, 살아 있다.’
확실했다.
그는 지금 살아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활했다고 말함이 옳았다.
죽음을 맞이하고 재판을 겪었거늘, 그는 오류의 보상으로서 두 번째 삶을 받아낸 것이었다.
그 모든 기억이 선명했다.
‘가만, 그 빨간색 거인이 7년 전으로 보내준다고 했지. 그럼 지금은 대체.’
이민기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오늘의 날짜를 확인했다.
잠시 뒤.
그의 눈이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뜨였다.
‘미친.’
스물다섯.
그것도 그가 처음으로 배우에 도전한 나이였다.
하지만 이 상황은 이민기,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오디션 1차 서류 심사에 합격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