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0)
운빨로 탑스타-10화(10/200)
제10화
잼 액팅스쿨.
마포구에 위치한 명문 연기학원.
어지간한 연극영화과 못지않게 우수한 성과를 이끌어 냈다.
[잼 액팅스쿨과 함께 배우의 꿈을 펼치자!] [수천 명의 선배와 함께 가는 잼 액팅스쿨!]어딜 가든 잼 액팅스쿨 출신 연기자가 존재한다.
끈끈한 연 덕분에, 그들만의 네트워크망마저 존재할 정도.
일개 학원이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하면, 철저한 승자 독식 구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수생에게는 장학금 전액 지급!] [데뷔 준비반도 남다르게 가자!]그곳의 원장, 박 원장은 최근 조마조마한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저러다가 진짜로 붙는 거 아냐?’
이민기 탓이었다.
얼마 전, 박 원장은 김아성 트레이너와 한가지 내기를 했다.
이민기가 다온 엔터 오디션에 붙는가 떨어지는가를 두고 상품을 걸었다.
사실, 붙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고?
이민기는 뒤에서 세는 게 빠를 정도로 실력이 떨어지니까!
[풋] [또 넘어졌어] [왜 저렇게 어색하지?]데뷔 준비반에 몸을 담고는 있으나, 그가 진심으로 데뷔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잘해 봐야 단역.
정말 운이 좋으면 웹드라마 조연 정도일까.
이민기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연기를 보는 눈이 있다면, 일단 깔볼 수밖에 없는 사람.
그랬던 그가.
최근 좀 바뀌었다.
“끄응.”
복도에서 연습실을 바라보기를 잠시, 박 원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민기의 연기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불과 얼마 전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어색했던 연기에는 활력이 자라났으며, 실수가 대폭 줄었다. 둔하기만 했던 몸에서는 이제 자그맣게 각이 느껴졌다.
고작 한 달 사이에 찾아온 변화다.
‘아무리 연기 실력 발전은 계단식으로 찾아온다고 하지만, 이럴 수가 있나.’
그렇게 이민기의 연기를 훔쳐보는 와중이었다.
“어? 원장님?”
움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박 원장이 식겁했다.
급히 돌아본 그곳에는 후리하게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이죽거리고 있었다.
“아, 좋은 아침입니다.”
“그 좋은 아침부터 무슨 일이래요.”
그가 큭큭 웃더니, 곁눈질로 연습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하, 설마?”
“……!”
박 원장은 찔린 가슴을 숨기려는 듯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냥 지나가다가 온 겁니다. 지나가다가. 제 학원인데 맘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합니까?”
“에이, 당연하죠. 원장님 학원인데. 누가 어디서 뭘 하든 뭐 어떻겠나요?”
박 원장의 혈압이 치솟았다.
김아성 트레이너는 그런 박 원장의 모습이 못내 즐겁다는 듯 킬킬 웃더니 말했다.
“잘하죠? 민기 씨.”
“…….”
“겁나 성실해요. 매일 아침마다 남들보다 한두 시간씩 일찍 나와서 뭐라도 연습한다니까요? 요즘 헬스도 다니는 것 같던데. 이야, 저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은 프로 중에서도 흔치 않지.”
“…….”
“어떻게 저렇게 하는지 몰라. 독종이야, 독종.”
“……커흠!”
박 원장은 더 이상 들어주고 있기가 버거워, 슬쩍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신경 안 씁니다!”
“네,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도망치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길.
문득, 박 원장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민기 학생, 이러다가 진짜로 다온 엔터 오디션에 합격하는 거 아니야?’
학원으로서는 기뻐해야 할 일이다.
다온 엔터는 업계 전체를 통틀어 내로라하는 명문 기획사고, 그런 곳에 합격생을 배출했다는 건 학원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실적이 되니까.
하지만 그는 김아성 트레이너와 내기를 했다.
그에게 장학금을 지불하기로.
돈이 아까운 게 아니다.
그저, 그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이상한 감정을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박 원장은 몰랐다.
그의 안에서, 점점 이민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워낙에 오랫동안 무시했던 탓에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이었다.
여기에 덤으로.
‘그 사람, 신나서 죽으려고 할 것 같은데?’
김아성 트레이너의 히죽 웃는 얼굴이 재수 없어서 못 견딜 것 같을 뿐.
그렇게 지나가는 와중이었다.
“오, 원장님이다.”
우연히 한 명을 더 마주쳤다.
이번에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한 남자, 김탁이었다.
‘이 학생은.’
평소 지지리도 노력을 안 할 뿐더러, 수업도 종종 빼먹는 학생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게으르다.
재능은 있는 것 같지만, 노력을 안 하는 타입.
집안에 돈이 어지간히 많다고 했지.
그런 그가 최근 들어서는 매 수업을 한 번도 안 빼먹을뿐더러, 아침마다 자율 연습까지 오고 있었다.
“……열심히 하세요.”
“오옷! 감사합니다!! 원장님도 좋은 아침 되십쇼!”
쓸데없이 활기차다.
* * *
그것 아는가.
성실하게 보내는 시간은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흘러간다.
열 시간이 한 시간처럼.
일주일이 하루처럼.
한 달 전이 어제처럼.
가장 즐거운 시간은 찰나에 스쳐 지나간다고 하였던가, 이민기가 근래 보내는 시간 또한 그러했다.
아침에는 자율 연습, 오후에는 학원, 저녁 늦게는 헬스장.
세 가지 루틴을 반복하는 사이, 기다려 마지않았던 그 날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오늘이다.’
아침에 번쩍 눈을 뜬 이민기의 머릿속으로 엔돌핀이 치솟았다.
‘다온 엔터 오디션까지 앞으로 5시간. 씻고, 먹고, 몸 좀 풀고 간다.’
오디션은 아침 11시부터다.
하지만 이민기는 늘 그렇듯 새벽 6시에 기상했다.
밤 동안 잠을 자며 이완된 사람의 몸에 탄력이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고,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도 완만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
평소 다온 엔터에 맞춰 생체 리듬을 맞춰 둔 셈이었다.
쏴아아!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이민기는 머릿속으로 오늘 소화할 연기를 복기했다.
‘지금까지 했던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조금 더 얍삽하게 해 보자.’
배우는 자기 자신을 모니터링할 줄 알아야 한다.
이민기는 숙련된 엔지니어가 차량의 부품을 분석하듯, 자기 자신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어떤 약점이 있는지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렇게 매일 아침 그날의 연기를 보완해 나갔다.
[7시 30분]잠에서 깬 이민기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다온 엔터 오디션장까지는 집에서 여유로운 걸음으로 1시간. 충분히 뛰어가 볼 만한 거리다.’
언제부터였을까.
일어나면 목적지까지 조깅을 하며 몸을 푸는 게 이민기의 아침 일과로 자리 잡았다.
더 이상 뛰다가 발목을 삘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불안하지 않다.
대신 은근한 근육통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참 많이 바뀌었네.’
끼익!
문을 열고 나와, 강변을 따라 부지런하게 달리며 이민기는 생각했다.
‘좋은 예감이 든다.’
아침부터 번잡한 도로와는 달리, 막힘 없이 시원하게 달려 나가는 그의 두 다리가 너무나도 좋다.
폐부를 가득 채우는 아침 공기가 그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다.
다온 엔터 오디션에 붙을 것 같다는 직감.
막연히 바라기만 했던 일이, 이제는 코앞까지 다가온 현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
좋은 선생 아래에서 한 달의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다.
처음에만 해도 불편했던 김탁과 유선아는 그가 긴장감을 놓지 않게끔 좋은 잣대가 되어 주었다.
‘좋아, 이제 금방이다.’
무아지경에 빠져 달리기를 한참.
어느새 목적지의 코앞까지 다다랐다.
“후우.”
이민기는 뜨거운 숨을 내쉬며 멈춰섰다.
강변 산책로에서 위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그게 미래를 향하는 길처럼 반짝였다.
거듭 말하지만, 좋은 예감이 들었다.
* * *
다온(多溫) 엔터테인먼트.
줄여서 다온.
한국의 연예계에서 견고하게 입지를 굳힌 굴지의 기획사.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만한 이곳에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특징 하나가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다온 엔터? 거기 사람을 뽑기는 하나?
사람을 잘 뽑지 않는다는 것.
업계인들 사이에서는 일명 소수정예로 통하는 기업이었다.
-다온은 알짜배기만 가지고 있지
-계약 자체를 잘 안 한다는데?
물론, 소수정예를 표방하는 업체는 많다.
하지만 실상을 따져 보면 조금 달랐다.
스타 배우가 소수인 만큼, 확장 자체가 어려우니 저절로 소수정예가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다온 엔터만큼은 달랐다.
그들은 진정으로 소수정예를 추구한다.
수익 활동 그 자체보다도 배우의 자유를 존중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립한다는 게 의심스러운 기업. 팬들은 이 회사의 정체를 두고 한마디씩 던지고는 했다.
-공개채용은 거의 안 하고, 유명한 연예인들끼리 인맥으로만 영입한다더라
-그들만의 리그라는 거지
-우리 언니가 기획사에서 일하는데, 다온 엔터는 직원도 잘 안 뽑나 봐. 소개로만 들어갈 수 있대.
-그렇게 하는데도 회사 운영이 되나?
온갖 좋은 소문이 나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실상을 말하자면, 조금 달랐다.
-사장이 깡패야.
사장이 양아치였다.
사채업과 유흥을 기반으로 돈을 박박 긁어모은 깡패 사장이 현질로 운영하는 현실 배우 육성 게임, 그게 다온 엔터라는 회사의 진실이었다.
왜 배우를 안 늘리는가.
사장이 자기 입맛에 맞는 배우들을 수집하듯 하니까.
실로 단순한 이유였다.
몸값이 높다고 해서 데려오는 게 아니다. 인기가 많다 해서 데려오는 게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적으로 사장 마음에 달린 일이었다.
-다온 엔터? 거기 진짜 까다로워
-사장이 자기만의 왕국을 차린 거지
-오디션을 열면 뭐 해. 사람을 뽑지를 않는데
-미팅 약속 잡아놨더니 2시간 대기해 본 건 다온이 처음이다
그 탓에 진짜 사정을 아는 업계인들에게는 개껌처럼 씹히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이 회사는 잘 나간다.
사장의 선견지명이 은근히 좋았기 때문.
운이라면 운이고, 실력이면 실력이다.
결과적으로 승승장구가 이어지니 소문이 좋게 돌 뿐.
이 바닥의 정보라는 게 원래 그러했다.
무엇이든 비밀리에 돌아다니다 보니, 주류 사회에 못 끼면 정보 수집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민기처럼 잘해야 조연, 보통 단역이었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다온의 직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사장님 아직도 안 오셨어요?”
“으아아, 진짜 어디서 뭐 하고 계시는 거야!!”
사장이라는 사람이 워낙에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오디션의 심사위원을 맡은 남자, 김종혁 이사 또한 바라지 않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디션이 시작된 게 언젠데! 말도 없이 이렇게 자리를 비우시면 어쩌자는 거야!”
“사장님 연락 안 돼요?”
“핸드폰이 꺼져 있어! 까똑도 안 받으신다! 내가 미쳐 버리겠네!”
오늘의 오디션은 세 명의 심사위원이 직접 맡을 예정이었다.
김종혁 이사, 사장, 그리고 경영팀장.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사장이 자리를 비워 버렸다.
남은 두 사람이 어떻게든 뽑으면 되는 거 아니겠냐만, 꼭 그렇지가 않았다.
‘사장님 마음에 들어야 사람을 뽑든 말든 하는데.’
다온 엔터는 구조 자체가 기형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이외의 부분이라면 최대한 직원들의 재량을 존중해주지만, 소속 연예인과의 계약만큼은 별개였다.
사장의 맘에 안 드는 인재를 데려왔다가는 나중에 무슨 빈축을 살지 모른다.
‘이렇게 나오신다는 거지?’
이번 오디션도 사장은 시큰둥해하는 걸 그가 꼭 필요한 일이라며 밀어붙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면 트집을 잡으려고 돌겠지.
그래도 오디션은 진행해야 한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을 차마 물 먹일 수는 없으니까.
고민하기를 한참.
“허들을 높여.”
김종혁 이사는 결론을 내렸다.
“정말 잘하는 사람 딱 둘만 뽑고, 나머지는 떨군다.”
“잠시만요. 둘만 뽑으라고요?”
믿기 어렵다는 듯한 목소리에 김종혁 이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잘못 뽑느니, 안 뽑는 게 나아. 어지간히 뛰어난 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