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06)
운빨로 탑스타-106화(106/200)
제106화
이민기가 런웨이 위로 등장한 순간.
회장이 한지 속 섬세하게 그려진 수묵화의 한 폭으로 젖어 들었다.
펄럭이는 소매.
소재 그 자체의 주름으로 은근하게 들어간 세로 스트라이프.
한 걸음, 두 걸음.
이민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옷이 우아하게 펄럭이며 매번 다른 멋을 연출했다.
누군가가 그걸 바라보기를 잠시, 홀려서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건 개량 한복?”
아니다.
저건 개량 한복이 아니다.
분명 디자인 철학 자체는 한복에서 비롯했지만, 그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영국의 전통복이 양복으로 발전한 것처럼 기가 막힌 세련됨이 있었다.
‘아, 저거 뭐라고 해야 하지?’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하는 사이, 조금 더 눈썰미가 밝은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신한복이군.”
신한복.
근래 들어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된 물건이었다.
개량 한복이 과거의 한복을 실생활에 적용해 입기 좋게 고쳤다면, 신한복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한복의 개념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집중했다.
열한 걸음, 열두 걸음.
이민기가 런웨이에 등장하고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찰나의 걸음 하나하나가 관객들에게는 뇌리를 깨부수는 충격과도 같았다.
‘이민기가 저렇게 포스가 넘쳤나?’
옷도 옷이다.
하지만 그 옷을 소화하는 이민기의 모습이 압도적이었다.
‘분명 키가 작아. 하지만 작은 게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진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이어지는 걸음은 단아하게마저 느껴졌다.
시선은 고고하지 않다.
그보다는 맑게 느껴졌다.
어째서 부족한 피지컬이 저리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인가.
옷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민기가 한복과 유독 캐미가 잘 맞아 승화한 것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가연 이사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있을 법하네.’
이민기의 패션은, 있을 법했다.
한없이 현실적인 모습이었다.
패션모델들이 흔히 신화 속 신들을 영접하듯 이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면, 이민기의 런웨이는 달랐다.
‘현실적이다.’
한없이 현실에 가까웠다.
친근하게 느껴지다 못해, 내가 저렇게 입어보고 싶다는 충동마저 들었다.
차마 범접하지 못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만하지도 않다.
즉.
이민기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워킹이 살아 있군.’
그간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느낀 유규언 대표가 쓴웃음을 느꼈다.
‘내가 배우님을 믿었어야 했는데.’
이민기를 런웨이에 내보내기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상업 모델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전업 패션모델들에 비하면 미숙할뿐더러, 압도적인 느낌은 없었기 때문.
그래 놓고 무대 위에 올려놓고 보니 정작 결과가 어떤가.
‘저게 내가 추구했던 모습이었다.’
테르미누스.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물다.
유규언 대표가 이 브랜드를 만들려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결국, 패션이라는 건 남 일 아닌가?]예술이 너무 떨어져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모델이 입고, 그거 셀럽들이 줍고, 또 기성복 브랜드가 가다듬어서 좀 되게 평범해지면 그제야 대중이 입는 거잖아.] [결국, 시장에 내놓는 거 보면 다 비슷비슷.]그런 현실이 싫었다.
경계를 허물고 한층 더 가까이 가져오고 싶었다.
대중에게 안겨 주고 싶었다.
전업 모델들이 입을 때만 그럴듯한 예술품이 아닌,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착각에 잡혀 있었을지도 몰랐다.
정작 제일 중요해야 할 무대에서 테르미누스의 철학을 키가 훤칠한 전업 모델에게만 입히려고 하였으니.
이민기.
그의 몸에 걸침으로써 지금 이 순간, 테르미누스는 완성되었다.
‘저렇게 입어보고 싶다.’
‘길거리에서 보면 확 튀겠는데?’
‘여성복은 없나?’
멋있다며 감탄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직접 시도해 보고 싶은 예술.
그게 이민기의 몸에서 자연히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의심한 게 죄송할 따름이군.’
유규언이 몇 차례고 쓴웃음을 지었다.
매 걸음이 아쉽다.
등장했다고 십몇 초 남짓 지났을 뿐인데, 벌써 포즈 짓고 돌아가고 있지 않나.
마음만 같아서는 런웨이 회장에서 다른 모델들 다 치워 버리고, 이민기 특집으로 한 세 시간쯤 즐기고 싶다.
허수오 또한 대기실 카메라에서 그런 이민기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그래, 저게 내가 보여주려고 했던 거지.’
표현만 있었던 이민기였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은 집을 바라보는 것처럼 화딱지가 나서 버틸 수가 없었다.
좋은 집을 세운다고 전부인가.
어느 지반 위에 세우는지도 중요하지 않나.
그래서 바꿔 주었다.
비로소 이민기의 표현력 아래 기본기가 단단하게 깔렸다.
‘단아하군.’
그렇게 완성된 이민기의 표현은 단아하고 반듯하다는 말이 어울렸다.
대다수 패션모델의 표현 철학이 당당함이라면, 이민기의 표현에는 부드러움이 함께 위치했다.
마치 최고급 대리석을 보듯 부드러운 질감이 견고하게 공존했다.
문득, 회장에 참석한 한 기자가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까 이민기, 지난번에도 한복으로 좀 뜨지 않았나?’
경복궁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그게 오늘날의 복선이 아니었을까.
흠칫.
문득 소름이 올라왔다.
이민기는 이번 런웨이에 이벤트 모델로서 갑자기 투입한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기획 단계에 참가한 게 아닐까.
이번에 패션 영화 하나 찍는다는 말이 있던데, 오늘의 패션쇼도 그 빌드업 중 하나 아닐까.
‘빼박이다.’
이 추리를 시작함과 동시에.
기자로서의 사명감 또한 불쑥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서 이 소식을 세상 모두가 알아야 해.’
* * *
이민기.
얼마 전에 [카페 델 디아]와 [BFC 커피]로 한창 유명세를 누렸던 배우의 이름이다.
신인답지 않게 첫 작품부터 조연급을 차지하더니, 불과 세 작품 만에 공중파 드라마의 주연 자리까지 차지한 괴물 신인.
그런 그에게는 줄곧 따라오는 의혹이 있었다.
[소속사에서 억지로 밀어준 거 아님?]JC에서 의도적으로 펌핑을 넣어 준 게 아니냐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질투심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같은 연기자 지망생 중에서는 이민기만큼 속이 부글부글 끓는 대상이 없을 테니.
당장 친한 유선아부터 그 전조를 보이지 않았나.
[연기를 잘하기는 하는데, 저렇게 밀어줄 정도인가 하면] [얼굴도 ㅈㄴ 애매함] [더 잘생긴 애들 많지 않음?]성공한 신인 배우에게 의혹이라는 건 어찌 보면 통과 의례와도 같았다.
그런데.
이 의혹이라는 걸 걷어내는 방법이 하나 있었으니.
[와, 핏 미쳤다.]바로 비주얼이었다.
[테르미누스? 저기 옷 어디서 삼?] [YU 가면 전용 브랜드 페이지 있어] [한복 같은 건가?]일단 멋있으면 된다.
연기력은 주관적인 한편, 멋이라는 건 직관적이다.
그 누가 됐든 시작부터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준다면 반박의 여지 따위는 자리할 곳이 없어지는 법이었다.
[저 정도 비주얼이니까 밀어줬지] [아 ㅋㅋ 밀어줄 만하네] [민기단 집결-] [ㅁㄱ 보고 울었다] [언제 저렇게 준비했대????????] [와 지난번에 경복궁 그게 저거 아니야?? 민기 한복 진짜 선비 경복궁 사극 찍으면 나 그거 첫방송부터] [ㄴ 진정해 지금 문장 박살 나고 있어]누가 봐도 납득할 비주얼이다.
이민기가 이번 서울 패션 위크에서 보여준 포텐셜은 그 정도였다.
세상에서 옷빨 죽이는 사람이란 사람은 다 모아놓은 게 패션쇼인데, 거기에서 두각을 드러낼 정도다.
이게 말하는 바는 하나였다.
[실물 깡패 아님?]실물로 찍어누르는 배우 아니냐는 것.
[ㅋㅋㅋㅋㅋ 얼른 차기작 보구 싶다] [JC는 일해라]일개 패션쇼다.
일반인이라면 열린 줄도 몰랐을 패션쇼가 지금 비주얼 하나만으로도 포탈 검색순위 5위 안에 진입할 정도였다.
그 말은 무엇이냐.
[WTF] [MINGI import to malaysia plz] [えええええ?????このイケメンだれ??????どこのアイドル???]해외로도 퍼진다.
이미 지난번 경복궁 대첩 때부터 징조는 있었다.
그렇다.
이민기라는 배우의 명성은, 차마 본인조차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해외로도 차근차근 퍼져나가고 있었다.
잘 찍은 작품 작품보다 한 장의 멋진 사진이 더 강력하게 먹힐 때도 있다.
그게 해외 시장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민기의 운이라는 건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Arthur Danto official] [Everyone, attention please.]아서 단토.
서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권위 있는 패션 잡지의 편집장이 이민기에게 시선을 기울였다.
* * *
“와.”
이민기가 작게 감탄했다.
왜?
눈앞에 잡혀 있는 핸드폰 액정에 빤히 떠 있는 기사 때문에 그러했다.
[전통에서 패션의 의의를 찾으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흔했다. 영국의 양복을 골자로 개선해 나가는가 하면, 아프리카의 감성을 짙게 간직한 레게가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목할 건 시도의 가짓수다. 새로운 시도가 고갈되어가고 있는 지금, 눈을 돌려 동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전혀 다른…….]저 기사가 무엇인가.
바로.
테르미누스와 이민기를 소개하는 기사였다.
편집장이 직접 그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며 아주 대서특필을 하는 와중이었다.
‘이거 말 되나?’
마침 서울에 와계셨다고 한다.
서울에 온 김에 서울 패션위크를 보러 가는 건 당연한 행동이었고, 그 와중에 이민기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기사를 썼다고 주장한다.
그래, 이상할 게 단 하나도 없다.
너무 자연스럽네.
그런데 왜 하필.
‘나한테 주목을 했냐는 건데.’
덕분에 서양 인터넷에서 이민기를 향한 주목도가 미친 듯이 차오르는 와중이었다.
카페에 앉아 미팅을 기다리는 시간.
“배우님의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찾겠다는 사람이 레X에 스레드(인터넷 게시판)를 만들었군요.”
서정우 이사가 마치 고깃집 메뉴판을 읽듯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의도하셨든 의도하지 않았든, 배우님의 명성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게도 오는 연락이 많군요. 어떻게든 한 자리 놓아 달라고 합니다.”
“음.”
온 사방에서 말이 튀어나오고 있기는 하다.
유규언 대표는 부담감을 못 이겼는지 휴가를 빙자해 잠수를 탔다.
박한모 매니저는 그런 유규언 대표를 잡으러 가겠다며 특별 연차를 선언했고.
‘참 발로 뛰는 분이야.’
이민기가 그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서정우 이사가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온 김에 SNS라도 하나 만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SNS 계정이라.
툭 튀어나온 제안에 이민기가 바로 대답하는 대신 음료수 빨대를 모기처럼 쪽쪽 빨았다.
‘SNS 계정 그거, 틈만 나면 해킹당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
이민기는 단순 SNS에 관해서도 지독하리만치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계정을 만들기만 하면 몇 달 안에 해킹당하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는 별 사소한 이유로 테러를 당했던 거.
[혹시 이 옷 어디서 구하셨나요?]셀럽이 입은 옷이 멋있어서 댓글 하나 달았다가 어떻게 됐던가.
분위기가 싹 굳더니.
[제가 직접 만들었는데요. 왜 프레임을 씌우시죠? 혹시 제가 옷을 만들어서 입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기분이 썩 좋지 않네요.] [사과하세요] [무례하셨네요] [Mingi77님 남의 계정에 댓글 달 때는 눈치라도 읽어야 하는 거 아닌지 ㅎㅎ;; 조심스럽게 한마디 던지고 갑니다. 너무 상처받지 마세요.] [배우 준비하시네요?] [ㅋㅋ 무명이라서 질투했나 봄 자기는 못 나가는데 OGZ님은 너무 잘나가는 인플루언서니까 ㅋㅋㅋㅋ]그야말로 폭격이었다.
덕분에 불과 하루 만에 상처받고 계정을 터뜨리지 않았나.
“……좀 겁나는데.”
그 덕에 이민기는 신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뜬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SNS 계정이 없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원시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지경.
“흠, 배우님의 심정 자체는 이해합니다만.”
서정우 이사가 한참을 두드리던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그 화면에는 어느 연예인의 SNS 페이지가 떠 있었다.
무려 4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신인 배우, 김태양이었다.
최근 들어 퓨전 사극 한 작품에 출연했는데, 연기력과 외모 양면으로 주목을 받았다나.
40만이라니.
역시나 난 사람은 난 사람이다.
“SNS는 연예인들에게 있어서 꾸준히 화제를 유지할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적당히만 사용한다면, 득이 실보다는 많지요. 큰 이미지 소모 없이 광고 수입을 창출할 수단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사실이다.
왜 경쟁적으로 SNS에 자기 근황을 못 올려서 안달이겠는가.
그게 다 광고판이기 때문이었다.
서양의 어느 스포츠선수는 SNS 글 하나에 십억 대 광고비를 받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느 전기차 회사의 대표는 SNS로 마케팅을 다 해 먹는다고도 했고.
“그리고 배우님이 자기 자신을 못 믿겠다면, JC에서 계정을 대신 관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식으로 운영하시는 분들도 많은 편입니다.”
딸그락.
서정우 이사가 핸드폰을 책상 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우선 시범 삼아 계정만이라도 만들어 보시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