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07)
운빨로 탑스타-107화(107/200)
제107화
‘……SNS 계정이라.’
이민기가 핸드폰을 잡은 채로 눈을 깜빡거렸다.
까놓고 말해서, SNS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다.
SNS는 인생 낭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논란이 자주 터지기도 한다만, 그 이상으로 수혜를 보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사내 불륜이 있다고 해서 유부남 유부녀가 회사를 못 다니는 건 아니듯 말이다.
[SNS는 연예인들에게 있어서 꾸준히 화제를 유지할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적당히만 사용한다면, 득이 실보다는 많지요.]서정우 이사의 발언이 합리적이다.
내심 동경심도 있었다.
그 또한 직접 하지만 않았을 뿐, 눈팅은 많이 했으니까.
잘나가는 배우들이 SNS에 뭔가 올릴 때마다 쏟아졌던 반응들, 하나하나 보면서 많이 부러웠지.
더욱이 그의 공식 팬카페로 선정된 [민기단]에서도 관련 문의가 매번 쏟아졌고.
[우리 배우님은 왜 우리랑 소통 안 해?] [ㄴ 맡겨둔 건 아니잖아] [그래도 다른 연예인 팬들 보면 가끔은 좀 부러워ㅜㅜ] [신중하려나 보지] [이런 말 하는 게 민기한테 부담 줄 수도 있으니까 자제하자] [그래도 공식으로 사진 쪄 올 창구는 있었으면 좋겠다]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였다.
‘나도 저러지 않았나?’
소식이 뜸한 배우들을 보면서 많이 아쉽지 않았나.
3년에 작품 1개 찍고, 일상은 철저하게 감추는 배우들을 보면서 아쉽지 않았나.
갈증에 맥을 못 추었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딱 사진만 올리면 어떨까.
굳이 날카로운 멘트 치고 사상 언급하고 논란에 말 한마디씩 던지고, 그러지만 말자.
맛있는 거 먹었으면 먹었다고.
좋은 곳 다녀왔으면 다녀왔다고.
옷 예쁜 거 입었으면 입었다고.
그런 것만 올리자.
‘그게 날 사랑해 주는 팬들한테도 보답이 되는 거라면.’
결심을 내린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SNS 계정, 한번 만들어 볼게요.”
그 순간이었다.
서정우 이사가 빙그레 웃더니,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마침 JC에서도 관련 마케팅 절차를 전부 준비해 두었으니, 계정을 지금 바로 만들고 비밀번호와 함께 전달만 해 주시면 됩니다.”
“네?”
“배우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JC가 배우님의 손과 발이 되어 뛰겠습니다.”
멘트는 좋다.
아니, 근데 너무 빠른데.
설마 이 사람, 이미 다 준비해 둔 거 아닌가?
이거 낙장불입이라고 아예 이번에 도장 찍으려는 기세인데.
서정우 이사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말했다.
“일단 3개월 내로 100만 팔로워부터 찍어 보지요.”
“100만이요? 3개월에?”
그거 숫자가 너무 크지 않나?
3개월이라는 숫자는 또 너무 짧지 않나?
100만에 3달이면 하루에 1만씩 붙어도 못 채우는 거 아닌가?
이민기가 눈을 깜빡거리는데 서정우 이사가 이상할 게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못 찍을 건 없습니다. JC의 마케팅팀은 꽤 유능한 편입니다. 배우님의 소득에 공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왜 이렇게 신나셨어.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으면 차라리 말이라도 한마디 미리 주시던가.
그랬으면 큰 고민 없이 만들었을 텐데.
“참, 해외 진출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진행하기 편하겠군요. 로컬 팬들과 달리, 해외 팬들은 SNS에 주목하는 경향이 크니 말입니다.”
또, 또 해외 진출 이야기다.
박한모 매니저도 그렇고 왜 자꾸 해외랑 엮으려고 하나.
“아직 해외 진출은 멀지 않았나요?”
이민기가 헛웃음을 짓는 찰나였다.
“그리 멀지는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몹시 무뚝뚝한 얼굴에, 목소리만 들어도 고집이 엄청나게 셀 것 같은 중년 남자였다.
“배우님이 아카데미상을 타는 것보다는 쉽겠지요.”
그리고 또한.
이 남자의 정체는 바로.
“JC의 서정우 이사입니다. 이민기 배우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국 영화계의 산 전설이기도 했다.
“황의성 감독님.”
* * *
그것 아는가.
배우들은 대부분 작품을 찍기 전부터, 그 작품을 통해서 촬영할 수 있을 광고를 계산하고 진입한다.
이민기가 [카페 델 디아]를 통해 식품 광고를 찍었듯.
재벌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자동차 광고를 찍는다거나, 미남미녀 캐릭터라면 화장품 광고를 찍는다거나.
여러 가지 방안으로 광고를 찍을 방향을 계산하며 진입한다.
황의성 감독의 영화 [패션 앤 패션].
이 작품 또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의상을 실제로 제품으로 내놓아 판매하고 싶다. 이 말이로군요.”
“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서정우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패션 영화이니만큼 패션과 연결 짓는다면, 향후 투자사들을 통해 마케팅을 끌어내기에도 수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외 판매에도 큰 보탬이 될 겁니다.”
서정우 이사는 [패션 앤 패션]이라는 단어가 이민기의 입에서 나왔을 때부터, 이번 작품 속 패션을 실제 상품으로 팔아먹을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규언이가 극구 거절해서 참아왔지만, 결국 고집을 접었다.’
유규언이 걸림돌이었다.
그는 평소에 유한 사람인 것 같다가도 상업성에 관해서는 이상한 고집이 있는 편이었다.
이번에는 그게 콜라보 상품 판매였고.
영화의 힘을 빌려서 자기 옷을 팔면, 그건 제대로 된 실력이 아닐 것 같다나.
하지만 이민기를 통해 [테르미누스] 브랜드 런칭을 성공한 순간, 저런 고집은 이미 쓰잘데기 없는 것이 되었다.
다만 조건을 걸었다.
[나는 잘 모르겠고, 이런 건 정우, 네가 잘 아니까 알아서 해 봐라.]전적으로 JC에 맡기겠다는 것.
오히려 좋다.
다만 그 뒤에 단서를 하나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일은 나 한 명 설득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황의성 감독까지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황의성 감독만 설득하면 끝이다.’
이민기는 처음부터 반대한 적이 없다.
의류를 디자인한 유규언은 설득에 성공했다.
남은 건 황의성 감독뿐.
그런데 이 황의성 감독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보면 가장 난관이기도 했다.
‘협찬이란 협찬, 마케팅이란 마케팅은 어지간하면 다 거절하고 본다지.’
깐깐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유규언이 예술주의에 취해서 지 팔자를 지가 꼰 사람이라고 하였던가.
황의성 감독은 예술주의에 취했으면서 망하지도 않았다.
실력이 워낙 좋다 보니, 그놈의 예술주의로 잘도 벌어먹는 사람이었다.
작품이 작품다우려면 자본의 침범을 차단해야 한다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며 투자사의 작품 내 개입을 거의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소신 있고 고집 있고 실력 있는 창작자처럼 골치 아픈 설득 대상은 없다.’
해서, 이번 콜라보 또한 황의성 감독을 넘기는 게 최대 관건이었다.
“……해외 시장의 경우, 작품 그 자체보다는 그 작품의 마스코트가 홍보에 수월한 경우가 잦습니다.”
서정우 이사가 첫 운을 뗐다.
한마디 한마디를 그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으려 주의하듯 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과자를 상품으로 내놓은 게 화제가 되는가 하면, 의도적으로 춤을 삽입할 때도 있습니다.”
“춤이라면?”
“춤을 유행시켜, 그 춤을 기반으로 작품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겁니다. 주로 일본 시장에서 유행하는 기법입니다.”
시큰둥한 모양새였다.
그렇다고는 해서 멈출 수는 없다.
일단, 되는 말이라면 다 덧붙여야 한다.
서정우 이사가 아슬아슬하게 미소를 유지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감독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사치재와 미디어의 콜라보레이션은 먼 옛날부터 서로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파리의 한 방울]에 등장한…….”
“샤또 그랑드생트 77년산.”
“예, 정확하십니다. 역시 잘 알고 계셨군요.”
황의성 감독의 말에 서정우 이사가 맞장구를 치고는 말을 이었다.
“샤또 그랑드생트는 유명한 와인입니다만, 사실은 영화가 성공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공의 상품이었죠. 역으로 영화에서 등장한 뒤 추후 현실 속 상품으로 등장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영화 속에서 환상의 명품 와인으로 등장하며 명성을 얻은 샤또 그랑드생트가 사실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공의 산물이라는 것.
이후 [샤또 그랑드생트는 어디에서 살 수 있냐]며 쏟아지는 관객들의 문의에 현실에서도 발매하고 대박을 터뜨렸지만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영화계는 계속해서 와인 업계와 지속적인 콜라보레이션을 이어왔습니다. 물론, 작품성을 해치지 않는 방향이 되지 않게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지요.”
‘패션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작품성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무조건 선을 긋겠지.’
까놓고 말해서 중국 시장이 이 방면으로는 선두주자다.
그쪽은 아예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상품을 다 콜라보레이션화시키려는 것마냥 작정했지.
하지만 일부러 언급 안 했다.
왜냐?
황의성 감독은 중국 영화 시장을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황의성 ‘내 영화는 검열과 양립할 수 없다.’ ‘검열? 나치들이나 좋아할 발상.’ 발언 논란] [황의성 감독 日 ‘잘 팔리면 그만이라는 발상이 문화를 망친다’]중국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미디어 검열 시장이니까.
황의성 감독의 영화가 유독 저자본으로 이어지는 데는 이런 사정도 있었다.
세계 최대 영화 시장인 중국에 팔아먹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투자금을 팍팍 끌어다 쓰겠는가.
한국인 감독으로서 중국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남자.
그게 황의성 감독이라는 사람이었다.
사회고발을 좋아하는 양반이라 애초에 신경도 안 썼을 테고.
‘아니, 자랑스럽게 여겼겠지. 그렇다고 해서 콜라보를 관둘 수는 없다. 패션 영화를 찍으면서 의류 콜라보를 진행 안 해? 그건 정신이 나간 거지.’
서정우 이사가 숨을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작품 속에 의류 브랜드의 강조가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단지, 콜라보 상품을 내놓아 마케팅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흠.”
길게 이어진 말에도 황의성 감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민하는 건지, 아니면 기도 차지 않는 제안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한없이 태연하게 정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유명한 무표정이었다.
제아무리 성격 더러운 배우들도 일제히 입을 다물게 한다는 그 무표정.
황의성 감독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표정에 서정우 이사가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거부하려는 건가? 아니면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건가?’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황의성 감독은 이번 결정을 단칼에 마칠 것이다.
하면 하고, 거절한다면 거절하겠지.
일단 거절했다면, 무슨 말을 하든 마음을 돌리지 않을 터.
꿀꺽.
그렇게 공기의 밀도가 느껴질 만큼 숨 막히는 적막이 이어지는 와중이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마침내 황의성 감독이 입을 열었다.
“일단 한 가지 묻겠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예, 뭐든 편히 말씀 주십시오.”
다음 순간.
황의성 감독이 서정우 이사에게서 고개를 돌려, 이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배우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네?”
이민기가 움찔했다.
갑작스럽게 화살이 돌아왔다.
서정우 이사가 이번 설득은 전적으로 자기한테 맡겨 달라고 해서 일부러 말을 삼가고 있던 참인데, 황의성 감독이 그의 의견을 물어왔다.
“생각이라면 어떤.”
이민기가 조심히 운을 뗀 찰나였다.
황의성 감독이 감정이라고는 1나노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 콜라보레이션, 이게 과연 작품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