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08)
운빨로 탑스타-108화(108/200)
제108화
“네?”
갑작스러운 황의성 감독의 질문에 이민기가 움찔했다.
황의성 감독은 여전히 동요라고는 없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물었다.
“배우님이 생각하기에, 이번 콜라보가 과연 패션 앤 패션에 도움이 될 것 같은가. 그 의견을 물었습니다.”
알지.
그거 물은 거 알지.
이민기는 시선을 슬쩍 돌려 서정우 이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당황하고 계신다.’
평소 매사에 침착하기 짝이 없는 서정우 이사가, 지금만큼은 명백히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배우님, 잘 대답하셔야 합니다.
몇 차례 그를 만난 이민기이기에 읽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저는요.”
이민기는 우선 불을 끄자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황의성 감독이 여전히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건.”
“구체적으로, 자세히 말해 보십시오.”
어렵다.
머릿속에 한없이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민기가 품은 의문은 저 의견을 왜 자기한테 묻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니지.’
물을 만한가.
현장에서 황의성 감독의 행동을 보거든, 그는 의외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편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다른 방법은 생각해 보지 않았나?] [아직 고민이 부족하군요.]얼핏 보기에는 갈구는 것처럼 들린다.
왜 그렇게 했냐, 생각이 있긴 하냐, 영혼도 없이 행동부터 하고 본 거냐.
그렇게 들릴 때가 태반이었다.
황의성 감독이라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사회성 결핍인가 싶을 정도로 무뚝뚝하기 짝이 없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한 달.
이민기가 황의성 감독과 함께 작업하며 깨달은 바가 하나 있었다.
‘저거, 진짜로 물어보는 게 맞다.’
황의성 감독의 질문은 말 그대로 질문이 맞았다는 것이다.
당장 김감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러했다.
[왜 카메라를 이쪽에 배치했습니까?] [빛 반사를 고려하지 않은 겁니까?] [촬영 동선에 낭비가 심하지 않습니까?]그럴 때면 김감은 언제나 러시아의 침략에 대응하는 우크라이나 의용군처럼 의연하게 대답하고는 했다.
김감만 그런 게 아니다.
당장, 멀리 갈 것 없이 이민기 본인에게도 몇 차례 의견을 묻지 않았나.
[지켜보고 있습니다.]지켜보겠다는 건 말 그대로 지켜보겠다는 말이었다.
[런웨이는 스스로 생각해 보시지요.]자유롭게 연기하라는 말이었다.
그 질문에 따라 이민기는 자발적으로 구상해서 연기했을 때가 잦았다.
황의성 감독은 그것을 주의 깊게 평가하고는 한방에 통과시킬 때마저 드문드문 있었고.
‘흔치는 않았지만.’
요컨대, 황의성 감독이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타인의 의견을 주의 깊게 참고하는 사람이었다.
결코, 독선적이지 않다.
한없이 신중하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기에 폭군으로 오해를 살 뿐.
괜히 그의 비위를 살핀다고 어중간하게 대답하느니, 차라리 대놓고 할 말을 쏟아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아니, 이거야말로 황의성 감독을 대하는 정답이었다.
[배우님에게는 주관이 없군요.] [예?] [모든 걸 타인에게 맞추기만 하는 배우는 우리 스튜디오에 필요하지 않습니다.]과거, 김도하가 그런 이유로 황의성 사단 작품에서 쫓겨났으니까.
[단역이라면 모르나, 주연이라면 자기 작품에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스스로 작품을 판단해 가며 더 나은 작품을 만들 방법을 한없이 구상해야 하지요.] [잠시만요. 전 어디까지나 감독님의 의견을 존중…….] [그렇습니까? 전 하청업자가 아닌 동업자가 필요합니다.]황의성 감독은 주관이 옅은 사람을 싫어했다.
한없이 착하기만 한 사람을 기피했다.
꿈이 없는 사람을 싫어했다.
목표를 감추는 사람을 혐오했다.
다소 무모할지라도, 자기가 바라는 말을 확실하게 뱉을 줄 아는 사람을 선호했다.
이게 이민기가 판단한 황의성 감독.
아니, 영화 제작자 황의성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결심했다.
“후우.”
이민기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 그의 대답에 따라 황의성 감독은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콜라보가 저 멀리 버뮤다 삼각지대까지 물 건너갈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할 말은 해야겠다.’
말을 감추고 어물쩍 넘어가면 뒤에 가서 후회하리라.
욕을 먹으면 먹지, 그건 싫다.
“한국은요.”
각오를 다진 이민기가 입을 열었다.
“아직 영화와 파생 상품을 콜라보로 판매하는 일이 드물다고 해요.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을 비롯해 미국까지 영화라면 전부 파생 상품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하고, 또 그 자체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고 있어요.”
“다른 나라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패션 앤 패션도 그렇게 해야 합니까?”
“네.”
여전히 딱딱한 질문 앞에서 이민기가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건, 포텐셜을 낭비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아차.
말하다가 좀 과하게 나가버렸다.
다소 꼰대 성향이 강한 감독이라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황의성 감독은 여전히.
“그 과정에서 작품성에 해가 간다면?”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학부생의 의견을 묻는 교수님처럼 말이다.
호흡을 되찾은 이민기가 호흡을 가다듬고 답했다.
“그러지 않을 거예요. JC도 저도 감독님도, 제작에 관여하는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우선 작품의 질을 끌어올려야 마케팅 비용을 환수할 수 있다는 걸.”
“어떤 식으로든 작품의 질이 최우선이다. 이 말이군요.”
황의성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거듭 물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콜라보 상품이 과연 작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냐는 겁니다.”
“제작비…….”
첫 번째 근거를 던지려는 찰나였다.
“그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황의성 감독이 이민기의 말을 끊더니 말했다.
“우리 스튜디오가 특별히 투자를 받아야 할 만큼 제작비에 쪼들리고 있지는 않으니.”
아.
이 사람 돈 많구나.
순수 작품적인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듣겠다는 거지.
그렇다면 플랜B가 있다.
생각을 다시 가다듬은 이민기가 헛기침을 뱉고는 입을 열었다.
“다른 이유도 있어요. 작품의 질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콜라보레이션 상품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면?”
이제는 완연히 흐름을 잡은 이민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작품을 즐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한데, 저희 상품을 구매하고 수집하고 입으면서 패션 앤 패션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장.”
그 순간.
이민기의 머릿속으로 반짝 번개처럼 들어온 광경이 있었다.
바로.
‘저 시계.’
황의성 감독의 손목에 매달려 있는 녹색 시계였다.
두껍기 짝이 없는 시계.
마치 존재감을 과시하듯 울퉁불퉁한 메탈 재질의 시계가 그의 두꺼운 손목을 꽉 조여주고 있었다.
있었다.
바로 이 장소에 가장 완벽한 예시가 있었다.
이민기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서브마리너를 차고 제임스 본드의 감성을 즐기는 007 팬들처럼이요!”
그렇다.
황의성 감독의 손목에 매달려 있는 시계, 그건 바로 롤렉스 서브마리너였다.
제임스 본드의 상징으로서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은 상품.
단순 협찬 상품을 넘어, 한 영화의 상징이 된 물건이 황의성 감독의 손목에서 당당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오늘 마침 황의성 감독은 양복을 입고 나왔다.
‘이 둘을 합쳤는데 007을 떠올리지 않았다고? 자칭 영화감독이라는 사람이?’
그건 직무유기였다.
하지만 확신에 차서 질렀음에도 그 밑에는 작은 의구심 하나가 남았다.
‘예술 감독이라고 해서 상업 영화를 싫어하진 않겠지?’
만에 하나 아니라면.
그 의문은 몇 초 뒤, 황의성 감독이 풀어주었다.
“롤렉스는 확실히 좋은 시계지요. 007에서도 멋있게 나왔고. 저도 그 작품 보고 이 시계를 구매했습니다.”
“……!”
정답이었다.
황의성 감독이 손목의 시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배우님의 말을 들으니, 패션 앤 패션에도 이런 상징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말에 이민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지금, 내가 제대로 말을 들은 게 맞나.
황의성 감독이 그 입으로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긍정적으로 발언한 게 맞나.
이번 의문도 그가 풀어주었다.
“더불어 우리 영화를 본 관객들도 배우님의 옷을 사며, 이종호가 된 기분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명백히 긍정의 표현이었다.
“감독님, 그럼.”
잠시 숨을 죽이고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서정우 이사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의류를, 저희 JC 엔터테인먼트와 유규언 대표의 YU를 통해 콜라보레이션 상품으로 판매하는 데 동의해 주시는 겁니까?”
괜히 상세하다.
그만큼 확답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싶은데 황의성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예, 동의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다음에는 시제품을 함께 가져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끝났다.
확고하기 짝이 없는 동의를 받아낸 서정우 이사가 늘어지듯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걸로, 이민기는 배우로서 한층 더 넓게 활동할 수 있게 됐다.
‘해냈다. 황의성 감독의 작품에서 콜라보를 따내다니.’
보는 눈이 없었더라면 아예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을지도 모른다.
이게 누구 덕인가.
전부 이민기의 덕이라고 느낀 서정우 이사가 이민기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정말 운이 좋으시군. 아니, 운이 좋을 수밖에 없는 건가.’
판단력이 좋다.
독이 될 행동을 피해 가고, 득이 될 행동을 취하니 그렇게 보이는 건가.
희미하게 웃음을 지으려니 황의성 감독이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JC는 참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예?”
“이민기 배우님이 소속되어 있는 걸 말하는 겁니다.”
“아.”
이건 못 참지.
서정우 이사가 마침내 못 참고는 웃으며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 *
패션 앤 패션의 공식 콜라보 상품 출시라는 협상 결과가 알려진 뒤.
“그걸 어떻게 해냈냐?”
부담감에 잠적했다가 휴가를 마치고 도로 복귀한 유규언 대표가 감탄했다.
“정우야, 너 뭐냐? 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서 제일 협상하기 힘든 사람인데, 그걸 해냈다고?”
“내가 해낸 게 아니야.”
놀라서 홍수처럼 쏟아내는 말 속에서 서정우 이사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이민기 배우님이 해낸 거지.”
“배우님이?”
“모르지? 배우님 평소에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은근히 말빨 좋은 거.”
“아 그건 알지.”
“음?”
“거의 현자시던데? 사람이 말실수를 한 번을 안 한다니까.”
“…….”
서로를 묵묵히 바라보기를 잠시.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합의를 내렸다.
“정우야, 내 생각인데 민기 배우님은 말하는 거 보면 20대가 아닌 것 같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 같지.”
“흠, 노인이 반로환동했다거나?”
“무협 소설 그만 읽어라.”
이민기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
좋은 의미에서 말이다.
“배우님 처음에는 다온에 갈 뻔했다는데, 우리 회사랑 계약한 게 복이지.”
“그렇지, 같이 일하는 게 복이다. 이번에 우리 브랜드 옷 보고 싶다고 예테보리에서 사람 한 명 찾아왔더라.”
“예테보리?”
“스웨덴에 있는 도시라는데.”
이민기 본인이 인지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자신에게만 운이 넘치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마저 그 운을 뿌리는 게 이민기였다.
“어쨌든, 같이 일하기 참 편해.”
그리고 마침.
이민기 본인도 [패션 앤 패션] 현장에서 일하기가 조금 편해졌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연기를 한 겁니까?”
황의성 감독의 얼핏 갈구는 것 같은 질문에 맞서 이민기가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종호라는 캐릭터라면 돈의 노예로 전락한 자기 신세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웃어넘길 것 같았어요.”
할 말을 다 하는 것이었다.
황의성 감독이 겉보기보다 타인의 의견을 아득히 잘 수용한다는 건 알았다.
그렇다면 굳이 눈치 살핀다고 할 말을 갈무리할 필요는 없으리라.
물론.
“해석이 잘못됐군요. 그런 식으로 연기하면 감정선을 망칠 겁니다.”
“…….”
“각본대로 연기하십시오.”
그렇다고 모든 의견을 다 가감 없이 받아들여 준다는 건 아니었고.
하지만 말 좀 나눠 보니까 알겠다.
‘지금, 웃으신 건가?’
황의성 감독의 얼굴에는 명백히 표정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김감뿐만 아니라 이민기 또한 조금은 느낄 수 있게 됐다.
‘에이, 내가 잘못 본 거겠지.’
당연하지만 느낄 수 있다고 확신까지 품는 건 또 다른 문제고.
“그럼 다음 장면 진행하지요.”
그렇게 야금야금 촬영을 진행하는 가운데.
마침내 [패션 앤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찍을 순서가 도래했다.
주인공 [이종호]가 돈의 노예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밖에 없는 가족의 병원비를 대기 위함이었다.
지금, 이종호는 그 가족이 병원에서 병마를 못 이겨내고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
그렇다면.
자기 인생을 회의적으로 느끼던 중 유일한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천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배우님, 준비하십시다.”
지금, 그 장면을 찍을 차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