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ar by Luck RAW novel - Chapter (11)
운빨로 탑스타-11화(11/200)
제11화
다온 엔터 오디션장.
수년간 꿈꿔 마지않았던 무대에 도착한 이민기의 머릿속에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러했다.
‘왔다.’
내가 드디어 이 자리에 섰다.
이 공기를 맡으며, 이 장소에, 이 건물 안에 두 다리로 서 있다.
쿵쾅쿵쾅.
그 사실 하나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뛰었다.
전생에는 오디션의 기회는커녕 서류 심사조차도 탈락했지.
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붙어서, 이 건물을 내 집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니, 꼭 그렇게 하고야 만다.’
지나치게 들뜨면 오히려 안 좋다.
이민기는 애써 심호흡을 내시며 들뜬 호흡을 가라앉혔다.
접수처로 가서 서류를 제출하자, 직원이 곧 번호표를 건네주었다.
“번호표는 바로 보이게끔 겉옷 위에다가 붙여 주시고요. 저쪽에 가시면 대기실 있어요. 가서 스태프가 호출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네.”
이민기는 작은 번호표마저도 소중한 선물처럼 어루만지고는 가슴팍 위에 붙였다.
17번(4조).
적당히 빠른 순번이다.
그 숫자를 되새기며 오디션장 바깥까지 늘어선 대기 줄에 가만히 섰다.
‘일단 선아 씨는 없고.’
구석구석 뒤져 봤지만 유선아는 없다.
그녀는 점심이 지나 저녁에 오디션을 치를 일정이기 때문일까.
아쉽게도 일정이 안 겹쳤다.
어찌 보면 그녀에게는 불운이고, 이민기에게는 행운이었다.
오디션의 합격률은 대체로 오전이 더 낫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인데, 심사위원들의 피로가 덜 쌓인 시간대인 탓이었다.
‘운이 좋다.’
하지만 복도를 보면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확실히 비쥬얼이 강하다.’
대기실에 선 사람 한 명 한 명의 외모가 눈에 띄었다.
엄청나게 특출난 미남은 드물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지간한 일반인의 평균을 여유롭게 웃돌았다.
평균이 과탑.
설령 못생겼다고 해도 그냥 못생긴 게 아니었다.
개성 있게 못생긴 얼굴이었다.
벽에서 불룩 튀어나온 대못처럼 기억에 단단히 박힐 듯 못생긴 얼굴.
얼굴 자체가 무기, 그런 사람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민기는 알았다.
‘여기 사람들은 거의 다 떨어지겠지.’
이 장소에 있는 사람은 거의 전원이 탈락한다는 사실을.
“후, 하, 후, 하.”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저 단발머리 여자도.
탁, 탁, 탁, 탁.
조마조마한 기분을 못 숨기고 긴 다리를 떨고 있는 저 남자도.
“예이.”
대기실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저 잘생긴 남자도.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건 물론, 훗날 업계에서 어떠한 두각도 드러내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이번 오디션에서는 딱 두 명만 붙었다고 했지.’
이민기는 오죽 아쉬웠으면 구체적인 숫자와 합격자의 이름까지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1000명에 가까운 지원자가 몰려서 단 두 명만 합격이다.
500:1.
지금부터 그가 극복해야 할 경쟁률이었다.
‘역시, 쉽지 않은 업계다.’
경쟁률이 너무나도 높다.
사실, 이민기 그는 자신의 실력에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가지고 있었다.
무명이었다지만 필드를 경험한 만큼, 지망생들과는 양적으로 차원이 다른 인풋과 아웃풋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디션은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타고난 색깔을 따질 때가 잦았다.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
대표가 선호한다는 건달 연기를 준비했고, 완성도 또한 할 수 있는 한계까지 최대한 다듬었다.
그럼에도 떨어진다면.
‘아니다. 이런 건 생각하지 말자.’
의미 없는 가정이다.
지금은 붙는 것만 생각하자.
그보다는, 준비한 연기를 머릿속으로 복기해서 정밀도를 높이자.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흐아암.”
이곳 대기실에 단 한 명, 누군가가 거대한 하품을 내뿜었다.
‘누구지?’
너무나도 튀는 목소리에 그곳을 바라본 순간, 이민기의 눈이 자기도 모르게 크게 뜨였다.
‘김지환?’
김지환.
이민기가 그 이름과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왜냐.
‘합격자잖아.’
김지환, 그는 이번 오디션에서 합격한 두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민기가 놀란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16번(4조).
김지환의 가슴팍에 새겨진 숫자였다.
이민기의 17번(4조)과 불과 숫자 하나 차이.
그 말이 무엇이냐.
두 사람은 같은 조라는 말이었다.
‘운이 더럽게 나쁘다.’
이민기의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충격에 사로잡혔다.
서류 통과에 붙고 오디션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했더니, 하필 그 합격자와 같은 조라니.
500:1을 뚫고 붙은 김지환이다.
잘 기억하고 있다.
시큰둥한 표정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배우인데, 프로 씬에서도 연기력으로 툭 튀지는 않지만 적어도 흠집을 잡히지는 않는 신인이었다.
하지만 작품 운이 좋았는지 흥행작 위주로만 맡았지.
그 덕에 20대 신인 중 열 손가락 안에 넉넉히 들어갔다는 인물이었다.
얼핏 만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전생의 이민기가 얼굴을 마주하기에는 아득하게 먼 인물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하필 저쪽이랑 같은 조라니.
한 조에서 두 명을 뽑지 말라는 법칙은 없다. 하지만 실력자가 같은 조라면 상대적으로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을 터.
그나마 보였던 희망이 순식간에 떠나갔다.
[으하하! 아디오스다!]하지만 그의 멘탈이 약했던 게 하루이틀이 아니다.
이민기는 급하게 고개를 흔들며 정신줄을 도로 잡았다.
‘경쟁률이 중요한 게 아니야. 선생님이 했던 말을 되새겨 보자.’
김아성이 그에게 누차 강조했던 말이 있었다.
[보통 멋모르는 지망생들이 맨날 하는 피해망상 있거든? 경쟁률이 높아서 떨어졌다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지. 그냥 못해서 떨어진 거야. 심사위원들은 몇 명 TO 정해놓고 뽑는 게 아니라, 잘하는 사람 있으면 최대한 뽑으려 하는데 사람 노릇을 하는 사람이 그것밖에 없는 거다. 내가 심사위원 많이 해 봤으니까 믿어.]남들이야 어찌 됐건, 그냥 본인이 잘하면 뽑힌다는 말이었다.
김아성의 무심한 얼굴이 떠오르자 이내 긴장감이 걷혔다.
‘좋아, 나는 500:1 경쟁률을 뚫으려고 온 게 아니라, 1:1로 뽑히려고 온 거다.’
김지환이 있건 말건, 나는 나다.
그렇게 멘탈을 다잡은 순간이었다.
“4조 들어오세요.”
스태프가 크게 외쳤다.
잠시 뒤, 이민기와 김지환을 포함해 5명의 사람이 오디션장으로 이동했다.
떨린 마음을 안고.
* * *
이민기가 도착한 오디션장은 뭐라고 해야 할까.
생각보다 사무적인 공간이었다.
‘그냥 토익 학원 교실 같네.’
너무나도 평범한 나머지, 오히려 그 평범함이 거북하게 느껴지는 장소.
차라리 공연장처럼 조명이라도 쏟아지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오디션장 안으로 카메라를 쥔 직원이 한 명.
그리고 또 모를 스태프가 한 명.
심사위원은 둘이었다.
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탓일까, 같은 4조에 배정된 다른 참가자들의 표정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이 사람은 계속 태연하네.’
김지환.
그는 시종일관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시큰둥하다 못해 졸린 느낌.
그나마 심사위원들이 앞에 있으니까 간신히 하품을 참는 정도일까.
“지금부터 오디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심사위원 중 깐깐한 인상을 한 남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16번부터 20번까지 한 명씩 차례대로 나와서 연기를 해 주시면 됩니다. 종목은 사전에 고지했던 대로 1분 30초 동안 자유 연기 한 번이며, 끝난 뒤에는 들어오셨던 문으로 그대로 나가시면 됩니다.”
16번부터 시작이다.
즉, 김지환이 제일 먼저였다.
다음으로 이민기.
‘하필 바로 다음 순서네.’
비교당하기 좋겠다.
이민기가 부담을 털어낼 틈도 없이, 김지환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왔다.
심사위원들이 앞에 홀로 서서도 여전히 일말의 긴장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 이민기는 생각했다.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그 김지환이다.
이번 오디션의 둘밖에 안 되는 합격자 중 한 명.
거칠더라도 몰입감 넘치는 연기로 심사위원들을 제압할까, 아니면 빈틈없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줄까.
긴장감 이전에 기대감이 고개를 들이밀기를 잠시.
‘……어?’
이민기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몰라요. 알아서 해. 꼰대들은 나를 뭐라고 평가하는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신경 안 씁니다. 나한테는 내가 일하는 방식이 있거든.”
대사는 편안하게 나온다. 긴장한 모습이라고는 여전히 없다.
특별히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뿐이었다.
‘너무 평범한데?’
김지환의 연기는 평범했다.
타고난 비주얼 덕에 주목을 끄는 느낌은 있지만, 아주 각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어딘가 건성건성이라는 뉘앙스마저 풍길 정도.
‘이 정도면 차라리 탁 씨가 더 나을 것 같은데.’
딱 김탁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못하지는 않지만, 눈에 띄게 잘하지도 않는다.
그것만 해도 지망생 중에서는 훌륭하지만 500:1을 뚫은 합격자라기에는 어중간했다.
“예,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지환은 짧은 연기를 마치고는 인사 한번 던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할 일은 다 했고 아쉬움도 없다는 듯.
‘수상하다.’
이쯤 되자 역으로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연기력을 보는 게 아니라 다른 걸 보는 건가.
의심의 싹이 텄지만, 길게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17번 나오세요.”
다음이 바로 그의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후우.’
이민기는 심사위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잡념을 털어내고는 앞에 섰다.
이 이상 다른 생각을 해 봤자 의미는 없다.
김아성 트레이너의 말이 맞다.
이민기는 이민기이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네.”
잠시 뒤.
이민기가 앞으로 조심스레 나와서는 숨을 고르고, 이내 연기를 시작했다.
“내가 호구로 보이냐?”
그리고.
오디션장의 심사위원 둘 그리고 참가자 중 셋이 같은 생각을 했다.
‘개잘하는데?’
공간의 분위기가 한순간 바뀌었다.
* * *
다온 엔터 심사위원 중 한 명.
김종혁 이사는 이민기가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작은 쾌재를 질렀다.
‘잘한다.’
이민기의 연기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연기력으로는 나무랄 구석이 없었다.
앞서 전날까지 이미 200명의 연기를 본 그지만, 이민기의 실력이라면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수준.
“아무리 쓰레기라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있다. 돈 그리고 여자. 그런데 너는 둘 다 건드렸잖아. 자식아, 내가 지금 네 똘마니로 보이냐?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대사가 강하다.
하지만 그 강한 대사가 아이러니하게도 허세로 보였다.
힘이 약해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다. 사소한 억양부터 몸짓까지 정교하게 다듬어 허세를 연출한 것이었다.
‘와, 이거를 알고서 한 거면 진짜 대단한 건데.’
말하면서도 팔다리가 미세하게 후들거린다.
입으로는 그럴듯한 허세를 뱉으면서도, 몸은 솔직하다는 증거였다.
쫄았다.
이민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쫄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건달이었다.
“쳐, 쳐 봐! 누가 진짜로 지는지 봐. 어?!”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김종혁 이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앞에 근육질 남자가 서 있다.’
이민기의 앞으로 함께 연기하고 있는 상대가 보이는 듯했다.
‘무뚝뚝한 성격에 바위 같은 외모.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캐릭터로군.’
실력 있는 연기자들의 연기 시연을 볼 때면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연기자의 앞 빈 허공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그린스크린 연기가 중요시되는 요즘 들어서는 유독 선호되는 자질이기도 하였다.
“이번만 봐주는 거야. 어! 다음에는 국물도 없어. 짜식아! 확! 눈깔을 숟가락으로. 어?!”
찌질함이 줄줄 흘러나온다.
몸짓 하나하나가 얄밉다. 얄미우면서도 어딘가 정겹다.
옆에 두면 스트레스받고, 옆에 없으면 뭐 하는지 궁금해지는 그런 인간군상이 이민기의 몸 위에 덧씌워졌다.
성격만 그런 게 아니다.
옷 위로 양아치의 상징, 쫄쫄이 츄리닝마저 보이는 듯했다.
‘대단한데.’
김종혁 이사가 거듭 감탄했다.
‘신인 맞나. 신인 아닌 것 같은데. 장수생인가? 아니지, 오히려 장수생이면 주눅이 들어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호하는데.’
물론, 이민기의 긴장한 모습은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긴장한 것이었다.
당연하다.
오디션장이라는 거 자체가 긴장해야 정상인 장소인데, 같은 공간에 합격자까지 서 있다. 심지어 앞 순번이었다.
긴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감칠맛이 돌았다.
왜냐.
애초에 긴장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기 때문.
[민기 씨 연기하는 거 보면 종종 느끼는 건데.]김아성 트레이너의 안배가 여기에서 힘을 발휘했다.
[겉으로는 당당한 척하면서 의외로 주눅 드는 구석이 있다니까. 꼭 패배를 무서워하는 사람처럼. 그걸 살려 보자고.]그냥 양아치 연기가 아닌, 찌질하게 허세를 부리는 양아치 캐릭터.
그렇기에 더더욱 이민기에게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이야.’
김종혁 이사가 거듭 속으로 감탄했다.
한편, 아쉬워했다.
‘대표님만 괜찮으면 바로 데려가고 싶은 자질인데.’
이 오디션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한들, 자질이 뛰어난들, 대표의 통과를 거쳐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끝에 가서 대표의 손에 추락했는가.
이들 둘도 심사위원이라고는 하나, 막상 그들조차 조언만 가능할 뿐 최종 선택권자는 아니었다.
“아주 확! 이 바닥에서 묻어버릴까 보다.”
이민기의 연기가 1분 30초의 끝까지 다다랐을 무렵.
김종혁 이사가 한 생각은 이러했다.
‘더 보고 싶은데.’
우선.
대표님한테 적극적으로 추천해 보자.